끊이지 않는 성폭력 범죄, 늘어만 가는 실업률, 좀처럼 힘나는 일이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당쟁만 일삼는 정치인들. 지금 이 나라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은 오직 게임과 스포츠 밖에 없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뿐 만은 아닐 것이다.
▲다들 공성전이라도 하러 가셨나? |
▲안습...믿을 건 지성뿐! 박지성을 여의도로! |
이처럼 현실이 우울할 때 사람들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에 열광하게 된다. 바로 승부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나 가상의 현실을 즐길 수 있는 게임, 특히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온라인 게임이다. 되는 일도 없고, 심심한데 게임이나 한판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또 해가 뜨는 경험,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누가 나 좀 말려줘요~하지만 우리는 안다.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
하루하루 열심히 몬스터 발(足)을 쳐서 돈을 모아 장비를 사고, 또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통해 기술도 배우고~ 여기에 벼룩시장도 열어가며 물물교환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단체전도 벌이는 가상의 공간, MMORPG.
분명 게임은 실제와는 많이 다른 공간이지만, 몇몇 MMORPG는 그 다름 속에서도 현실과 비슷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점이 우리나라의 많은 게이머들을 게임 속으로 인도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 특히 높은 인기와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리니지 2’와 2006년 한국사회를 살포시 비교해보고자 한다.
1. 유전무죄 무전유죄 : 돈이 곧 게임(현실)을 좌우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그 언젠가 누군가 했던 말처럼 공평함보다 불공평함이 아직은 더 많아 보이는 2006년 한국사회. 월 80에 연봉 1000 이 되지 않는 사람부터 연봉 1억은 훌쩍 넘는 사람들까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한 탈옥수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
외제차는 불법주차해도 견인하지 않고, 마티즈나 티코 같은 소형차는 불법주차와 동시에 사라져버린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한국사회에서는 뭐니 뭐니해도 ‘머니’가 대접받는 시장경제사회라 할 수 있다.
리니지2에서도 다분히 그럼 점이 엿보이는데, 물론 무한 사냥 반복을 통해 열심히 아덴을 모으는 방법이나 한 푼 두 푼 이익을 남기는 장사를 통해 돈을 모으는 방법 등도 있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현금을 이용한 아데나 사재기, 즉 ‘현질’이렸다.
▲맨위는 3000만 아덴, 다음은 5000만 아덴 구입. 2년만에 아덴 시세는 1/4이 되었다 |
혹자는 현질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다. 바쁜 하루 일과 중에 잠깐 짬을 내어 하는 게임, 그 게임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현질’이고, 게임 즐기는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아덴’ 모아 장비를 맞추냐는 것.
그렇다. 돈이 있으면 현실 생활은 물론 게임 속생활도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와 리니지 2의 공통점이다. 심지어 레벨업을 대신해주는 서비스까지 나오는 시점이니, ‘아덴’ 현질은 애교쯤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돈만 준다면 캐릭터 육성도 대신 해준다 |
▲현질이 불러 온 폐단, 계정 도용 사건! |
하지만, 과연 ‘현질’이 게임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게임 속에 좋은 장비와 레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게이머가 레벨업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또 좋은 장비를 얻었을 때 그 기쁨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노력(!)없이 좋은 장비와 강한 캐릭터를 얻는다면 그 순간 게임은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2. 획일화된 사회 : 다양함이 부족한 게임 속 아이템들
두발규제와 교복으로 대변되는 획일화된 한국 교육의 현실. 또한 누구나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획일화된 학력지상주의.
2006년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도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이 우선하는 사회이다. 어째서 머리 모양이 자율화되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사복을 입으면 왜 빈부 격차로 인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는가.
▲이래도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은 하지 않는다 |
결국 그런 획일화를 통한 공부의 목표는 대학진학일 뿐. 자기 개발이나 자아실현은 아닌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획일화는 경직된 사회풍조를 만들어 가게 된다.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만 리니지2 속에서도 획일화의 위험함을 엿볼 수 있다. 리니지2는 무급, D급, C급, B급, A급, S급 등.. 각 등급이 존재하고 해당 등급의 무기는 레벨업을 통해 캐릭터가 각 등급에 오르지 못하면 페널티를 부여받게 되어 있다.
또한 각 등급에는 소위 가장 좋은 무기들이 존재하는데, D급의 경우 국민쌍검 엘븐바타 이도류 일명 ‘엘바’, 둔기에는 타바르, 단검에는 미스릴 단검이 가장 인기 품목이다. 여기에 전사는 브리건딘 세트를, 또 법사는 미스릴 세트를 입는 것이 관례 아닌 관례가 되어 있다.
▲누가 누구냐, 교복은 학교에서도 충분하다 |
때문에 각 등급별로 같은 아이템을 착용한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캐릭터도 종종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브리건딘 세트보다 한 두 단계 낮은 아이템을 사느니 조금 더 모아서 브리건딘 세트를 사고 만다는 것이 일반적인 리니지 2 유저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 등급별 최고 아이템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명 잡템, 뽀개기 용으로 불리며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런 아이템을 제조할 수 있는 재료나 레시피 역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이 때문에 동급 아이템이라 하여도 디자인과 이름이 다른 아이템을 여러 가지 고를 수 있게 한다던가 아니면 미세한 능력치 차이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아이템이 많다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면에서 와우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3.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 : 카오 캐릭터, 일명 빨갱이
얼마 전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사건들이 있다. 이제 막 세상 삶을 시작한 어린 소녀에게 나쁜 짓을 한 어느 범죄자의 사건.다수가 한 명의 여학생에게 역시 나쁜 짓을 했던 밀○의 사건 등등.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자신보다 약자를 대상으로 행해진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이들 사건에 공분하는 것은 그들이 행한 범죄가 먹고살기 위한 생계형 범죄가 아닌,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저질러진 범죄라는데 있다.
▲발바리라는 별명마저도 아깝다 |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
리니지2에서도 이런 약자를 대상으로 한 쾌락 범죄(?)는 존재한다. 캐릭터 이름이 빨갛다는 데서 붙은 일명 빨갱이, 즉 카오 캐릭터에 의한 PK다. 필자 역시 몇 번 빨갱이에 의해 누워버린 기억이 있다.
특히 카오들 중에서 가장 겁나는 것이 활을 든 카오 캐릭터 일 것이다. 아무리 이동속도 향상물약을 먹고 뛴다 한들 넓은 범위와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활 앞에서는 속절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니지2의 게임 시스템 상 캐릭터가 죽게 되면, 경험치의 하락과 심지어는 아이템을 떨구는 일까지 생기기 때문에 카오 캐릭터의 공격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움을 준다.
마을은 멀고, 에너지는 줄어들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없는... 절망적인 상황.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때의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구결해서 모은 돈으로 현질해서 산 아이템이란 말이다! |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빨갱이 짓을 하겠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카오 캐릭터가 되면서 받게 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함정을 파는 제조 캐릭터다.
자신을 먼저 공격하게 만든 후 반격을 하게 되면 카오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기발한 방법으로 상대를 도발하는데, 여기에 걸린 상대는 카오 캐릭터에 의한 PK충격과 사기에 당했다는 자괴감까지 몇 배의 심리적 피해를 당하게 된다.
이런 카오 및 제조는 저 레벨 게이머들에게 게임 내내 카오 캐릭터 공포증과, 제조에 의한 타 캐릭터 의심증부터 게임을 한 후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게임 후 기분 저하 증후군’까지 불러오게 된다.
현실이나 게임이나 이처럼 강자에 의한 저질러지는 약자에 대한 만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또는 한 게이머의 게임 속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행동이므로 지양하도록 하자.
4. 집단 사회 : 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혈맹!
우리 사회에서 가장 타파해야 할 것으로는 3연, 즉 혈연, 지연, 학연을 든다. 능력이 부족한대도 어디어디 동문, 어디어디 지역출신, 누구누구 사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인사승진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 |
이처럼 끼리끼리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끼리끼리 문화, 즉 커뮤니티의 활성화라 할 수 있다.
PC온라인 게임이 비디오 게임과 가장 다른 부분이 바로 커뮤니티의 존재다. 수천의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온라인 게임은 비디오 게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친구 또는 동료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리니지2 의 혈맹 시스템은 게이머에게 소속감과 함께 혈맹 소유의 성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의식을 주기도 한다. 또한 게임 속 울트라 슈퍼 파워 보스들 역시 이들 혈맹들이 아니면 공략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혈맹의 존재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하는 게임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 올 포 원! |
혈맹에 속한 이들은 아무래도 다른 이들보다 뚜렷한 게임 목표가 있기 때문에 더욱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또한 서로간의 유대감이 강해서 게임을 ‘혼자’가 아닌 ‘함께’ 즐긴다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집단의 개념은 게임 속에서는 게임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5. 스트레스 없는 현실, 스트레스 없는 게임을 만나고 싶다!
지금까지 몇몇 부분에서 리니지 2와 한국 사회를 비교해 보았다. 다소 부정적인 부분을 많이 다루긴 했지만, 그만큼 리니지2는 판타지 MMORPG이면서도 다분히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게임이라 하겠다. 그것이 좋은 부분이거나 나쁜 부분이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리니지2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 크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리니지2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리니지2를 오픈 베타 때부터 즐겨온 게이머로써 더 나은 리니지2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한국대표 MMORPG 리니지 2. 물론 아직까지는... |
▲다른 게임들의 도전이 거세다! |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는 명언처럼 리니지2 역시 지금의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주변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받아들여 자신을 극복할 때 크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리니지2를 있게한 원조 게임 리니지의 개발자 송재경 씨는 K모 방송국 게임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게임이란 게임을 즐기는 본인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게임을 만든 개발자라고 해서 자신이 만든 게임을 어떻게 즐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게임을 통해 자기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낸다면 그것이 바로 게임의 진정한 재미이자 희망일 것이다’라고...
▲스트레스 없는 게임을 하고 싶다 |
그렇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가 게임을 통해 자기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 땅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삶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게임 속 사회와 현실 사회 모두 더욱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환경을 만드는 역할은 바로 게임 개발자와 현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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