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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역사 제2부: 좋았던 한 시절, 1995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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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들어가기 전에: RTS가 정말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일까?

이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따라 RTS를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RTS를 그냥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Game’으로 정의합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RTS를 ‘시뮬레이션’의 영역에 밀어 넣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RTS 게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시뮬레이션(Simulation)’의 의미는 현실 세계의 현상이나 기계를 가상으로 모방해 재현하는 것을 말하므로, RTS는 애초에 시뮬레이션의 영역에 속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 우주 정거장 시뮬레이션

게다가 대부분의 RTS에서 ‘전략’은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며, 실질적으로 RTS에서 말하는 ‘전략’은 군사학적인 의미의 ‘전술’에 가깝습니다. 시뮬레이션 영역에 끼워 주려고 해도 끼워 줄 거리가 없다는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시뮬레이션’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미소녀 게임도 ‘미연시’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으니까요. ‘시뮬레이션’과 1g도 상관 없어 보이는 미소녀 게임 장르를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라는 말로 모조리 묶어서 인식하는 것을 보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여기 어디에 'Simulation'의 요소가 있단 말인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미연시’와 비슷한 예로 ‘SRPG’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역시 PC통신 시절에 많이 사용된 말로,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의 준말입니다. 말은 ‘시뮬레이션’이지만, 속을 까보면 ‘시뮬레이션’과는 1g도 관계 없는 게임에 붙여진 황당한 이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 기획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말을 따라 RTS를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번역하겠습니다.

웨스트우드의 강력한 라이벌 출현!: ‘워크래프트2’와 블리자드의 성장(1995)

웨스트우드의 주도로 굴러가던 RTS 시장은 1995년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2’를 발매하면서 상황이 뒤바뀝니다. ‘워크래프트2(1995)’는 여러모로 혁신적인 게임이었습니다. 기존 게임들의 해상도가 VGA(640x480)에 머물러 있던 반면, ‘워크래프트2’는 해상도를 SVGA(800x600)으로 과감하게 끌어올려 그래픽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고, 대규모의 성우 투입으로 유닛 하나 하나에게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 것도 혁신적인 면이었습니다.

겉 모습뿐 아니라 게임 내적인 면에 있어서도, ‘워크래프트2’는 선구자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유닛이 한 번 지나가면 맵에서 해당 지역을 계속 볼 수 있었지만, ‘워크래프트2’에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가 도입되어 유닛이 해당 지역에서 사라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개로 뒤덮히는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런 ‘전장의 안개’방식이 도입되면서 RTS 게임에서 정찰의 중요성이 강화됩니다. 한 번 정찰했다고 안심했다가는, 전장의 안개 속에 숨어 다가온 적에게 순식간에 털리게 되니 말이죠. 이는 RTS게임에 좀 더 강한 긴장감과 두뇌싸움을 부여하게 됩니다. 물론 이 ‘전장의 안개’와 더불어 전 편의 거지같던 길 찾기 AI도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또 하나 ‘워크래프트2’가 세운 공이 있다면 바로 멀티플레이의 보급입니다. ‘워크래프트2’의 멀티플레이 개선 패치 이후 ‘모플(모뎀)’과 ‘넷플(인터넷)’등의 멀티플레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고, 이후 멀티플레이가 RTS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에 자극을 받은 블리자드는 멀티플레이를 더욱 연구해, ‘배틀넷’이라는 강력한 멀티플레이 플랫폼을 만들어 내게 되지만, 이는 좀 더 뒤의 이야기입니다.

‘워크래프트2’의 순항과 더불어 블리자드는 RTS거장 웨스트우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이후 웨스트우드가 게임 업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블리자드와 웨스트우드의 대결은 계속됩니다. 이런 ‘워크래프트2’의 급격한 약진에 웨스트우드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워크래프트2’에 일격을 먹일 강펀치를 준비합니다.

짐이 곧 RTS니라 - 커맨드 앤 컨쿼: 레드얼럿1(1996)

'블리자드’와 ‘워크래프트2’라는 건방진 꼬꼬마 도전자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웨스트우드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바로 저 유명한 ‘커맨드 앤 컨쿼: 레드얼럿1’이었습니다. 1996년 발매된 ‘커맨드 앤 컨쿼: 레드얼럿1(이하 ‘레드얼럿1’)’은 순식간에 ‘워크래프트2’ 열풍을 잠재우고 ‘레드얼럿1’ 열풍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킵니다.

사실 ‘레드얼럿1’에는 크게 혁신적인 요소는 없었습니다. 대신 이미 검증된 요소를 개량해 잘 조합했고, 이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먼저 전작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에서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았던 ‘웨스트우드식 RTS’ 방식을 좀 더 개선해 적용했고, ‘워크래프트2’에 대항하기 위해 그래픽 부분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커맨드 앤 컨쿼’ 시리즈의 전매특허인 실사 동영상을 캠페인 중간 중간마다 대량으로 삽입했습니다. 물론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웨스트우드를 상징하는 테마곡인 ‘헬 마치’가 바로 ‘레드얼럿1’에 처음으로 삽입된 곡이니까요.

‘레드얼럿1’의 스토리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 히틀러를 없애고 왔더니, 스탈린이 미쳐서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고 있더라’라는 그럴 듯 하면서도 살짝 맛이 간 메인 스토리는, ‘레드얼럿1’의 주가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실사 동영상이 이런 스토리와 어우러지니, 게이머들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게임으로 즐기는 듯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레드얼럿1’을 가장 돋보이게 했던 요소는 바로 게임 속도와 상성의 개선입니다.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까지만 해도 게임이 상당히 느릿느릿했습니다. 자원채취만 해도 그냥 자원을 채취하는게 아니라, 하베스터가 타이베리움에 가서 집게 비슷한 부분으로 수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남은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하베스터가 집게를 꿈지럭거리며 느릿하게 타이베리움을 모으는걸 보면… 자원 채집이 느린 만큼 유닛 모으는 것도 빠르지가 않아서, 초반에 소수의 유닛으로 적 기지를 털어버리는 ‘초반 러시’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반면 ‘레드얼럿1’에서는 게임이 전체적으로 빠르게 변했습니다. 광물 트럭이 그냥 자원(광물Ore)위에 가서 삽을 몇 번 퍼서 기지로 돌아와 자원을 쏟으면 돈이 들어왔고, 자원이 빨리 들어오는 만큼 테크도 시원시원하게 올라가서 최대한 빨리 차량기지를 만들어 탱크를 뽑은 다음 초반에 적을 털어버리는 ‘탱크 러시’가 크게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레드얼럿1’에서는 상성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몇몇 공통 유닛을 빼면 소련군과 연합군 양 진영간의 유닛은 명백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복잡하지만 나름대로 밸런스가 잘 맞는 상성으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연합군의 경우 왕사기 유닛인 ‘순양함’으로 지상의 적을 위협할 수 있지만, 이 ‘순양함’이 소련군의 ‘잠수함’에 걸린다면 순식간에 털리며 다시 ‘잠수함’이 연합군의 ‘구축함’에 걸리면 털리는 식으로 잘 짜여진 상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성에도 불구하고, ‘탱크얼럿’ 짓만 제외한다면 ‘레드얼럿1’은 밸런스가 잘 맞는 게임이었습니다.

‘레드얼럿1’을 계기로 RTS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빠른 게임 속도와 상성을 이용해야 하는 게임 구조가 합해진 덕분에 RTS는 더 이상 느릿한 전략 게임이 아닌, 순간 순간의 판단과 컨트롤을 중시하게 되는 격렬한 게임이 된 것입니다. 두뇌 싸움에 속도감까지 결합되니 더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레드얼럿1’의 대성공 이후 현재까지 거의 모든 RTS는 ‘레드얼럿1’에서 처음 선보였던 ‘속도와 상성’이라는 기본 공식 위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탱크얼럿부터 유닛스팸까지

현대 RTS를 이야기하면서 ‘탱크얼럿’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탱크얼럿’ 전술이 ‘레드얼럿1’ 이후의 RTS에서도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탱크얼럿’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탱크얼럿’은 ‘레드얼럿1’ 밸런스 시스템의 약점을 이용해 상성을 무시하고 승리할 수 있는 전술이다.

▲ 소련군의 밥인 연합군의 '미디엄 탱크'

‘레드얼럿1’에서 소련군은 연합군에 비해 육군이 강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소련군의 ‘헤비 탱크’는 연합군의 ‘미디엄 탱크’보다 강한 스펙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이 헤비 탱크를 뽑을 때 걸리는 시간은 연합군이 미디엄 탱크를 뽑을 때 걸리는 시간과 비슷했다. 따라서, 소련군 게이머는 초반에 헤비 탱크를 떼거지로 뽑아 연합군 기지를 급습하면 상대가 뭘 하든 대부분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이런 ‘탱크얼럿’식 전술은 RTS의 밸런스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이었기 때문에, ‘레드얼럿1’ 이후 RTS개발사에서는 이 부분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밸런싱 실수로 특정 유닛만을 대규모로 뽑아 쳐들어가면 쉽게 이길 수 있는 전술이 가끔씩 등장했다. 이후 게이머들은, 이를 ‘스패밍(인터넷에서 똑같은 메시지를 대량으로 뿌리는 것)’에 비유해 ‘유닛스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좋았던 한 시절: RTS 춘추전국시대 (1996 - 1998)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까지가 RTS의 성장기였다면, ‘워크래프트2’부터 ‘레드얼럿1’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까지 포함하는 1995년부터 1998년 사이의 기간은 RTS의 전성기입니다. 이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RTS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워크래프트2(1995)’와 ‘레드얼럿1(1996)’을 시발점으로, ‘워 윈드(1996),’ ‘다크 레인(1997)’, ‘KKND(1997)’, ‘Myth(1997)’ 그리고 ‘토탈 어나힐레이션(1997)’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1997)’, ‘스타크래프트(1998)’까지. 가히 RTS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 기간에 나왔던 RTS 중 중요한 RTS를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던 'KKND - Xtreme'

1996년 출시된 ‘워 윈드’는 ‘워크래프트2’의 핵심 요소를 가져와 좀 더 발전 시킨 RTS입니다. ‘워 윈드’의 가장 특이했던 점은, 일반적인 RTS가 2종족 구도 였던 시절에 무려 4종족이 게임에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4종족은 무늬만 다른 ‘4종족’이 아니라 테크트리와 유닛이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진짜 4종족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워 윈드’는 멀티플레이보다는 싱글플레이 캠페인에 많은 역량을 쏟은 RTS였습니다. 다른RTS와는 다르게, 싱글플레이의 난이도가 상당해서 일부 게이머들은 ‘이건 RTS가 아니라 퍼즐게임이다’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만일 4종족 구도가 잘 잡혀있는 ‘워 윈드’가, ‘워크래프트2’처럼 강력한 멀티플레이 기능을 지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스타크래프트’ 이전 이미 ‘워 윈드’부터 멀티플레이 돌풍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워 윈드'의 플레이 화면

1997년 출시된 앙상블 스튜디오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더 많이 알려진 RTS입니다. 가야가 일본이 세운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이 게임 속에 여과 없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 왜곡 때문에 게이머들은 불매 운동을 벌일 정도였고, 결국 유통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수정된 버전을 발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사건은 막을 내립니다.

▲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유일한 RTS,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이런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지만, 게임적인 측면에서 보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정말 혁신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중독성이 굉장한 ‘문명’시리즈가 빠르고 재미있는 ‘워크래프트2’와 만나 색다른 느낌의 게임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턴 전략인 ‘문명’의 다소 지루한 느낌을 RTS로 극복해 냈다는 점에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새로운 형식의 RTS를 창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기간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한국산 RTS’가 이 기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1995년 동서게임채널에서 한국 최초의 RTS인 ‘광개토대왕’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96년 발매된 ‘충무공전’과 ‘쥬라기 원시전’등이 잇달아 발매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산 RTS는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가다 패키지 시장의 종말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한국산 RTS의 역사’는 이 기사에서 다룰 수 있는 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하게 줄이고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역사 외전’을 통해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RTS 전성기의 종말: 스타크래프트의 등장(1998)

▲ 솔직히 이젠 더 언급하기도 지겹다

1998년, 이제는 비벤디에 인수되어 대규모 개발사가 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됩니다. 지금 와서 냉정하게 보자면 ‘스타크래프트’는 혁신적인 RTS는 아니었습니다. ‘워크래프트2’에서 사용되었던 블리자드 고유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당시 등장했던 RTS들의 장점을 잘 조합해 만들어진 RTS라고 하는게 옳습니다. 한 마디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RTS 장르에 뭔가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길 만한 RTS는 아니었다’라는겁니다.

어쨌든 ‘스타크래프트’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별날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는데, 이 이야기는 외전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얼마나 성공했고,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나왔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고, ‘스타크래프트’에서 주목해야 할 점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이 정도 그래픽이 486에서도 돌아간다는게 신기할 정도

‘스타크래프트’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장점은 ‘낮은 요구 사양과 강력한 멀티플레이’입니다. 최신 그래픽 기술을 떡칠해 고사양 컴퓨터에서도 즐기기 어려웠던 다른 RTS들과는 달리, ‘스타크래프트’는 눈이 부실 정도의 최신 기술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즐길만한 그래픽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대신, 요구 사양은 놀랄 정도로 낮아서 당시 이미 구형이 되어버린 486에서도 ‘스타크래프트’가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지나친 고사양 게임이 반갑지 않은 게이머들이 반길만한 요소였죠.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가 사양을 위해 게임성을 희생한 것도 아니었기에 게이머들은 더욱 열광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스타크래프트’는 사양과 게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드문 게임입니다.

여기에 ‘스타크래프트’에는 ‘배틀넷’이라는 강력한 멀티플레이 플랫폼이 있었습니다. 게임 내부에 내장되어 있는 안정적인 멀티플레이 시스템과 래더 시스템의 도입은, 당시의 인터넷 열풍과 맞물려 멀티플레이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멀티플레이 열풍이 다시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만들어 낸 것일 겁니다. 낮은 요구 사양에, 강력한 멀티플레이 시스템이 탑재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멀티플레이를 통해 교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이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블리자드야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겠지만) 가장 역설적인 것은 ‘스타크래프트’는 크게 성공했지만 ‘스타크래프트’를 끝으로 RTS 장르의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너무나 성공한 나머지, ‘스타크래프트’ 이후 출시된 RTS들이 ‘스타크래프트’의 망령에 시달리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 한국에서는 1998년작인 '스타크래프트'가 2007년 발매된 최신 게임보다 더 잘 팔린다.

누가 무슨 평을 내리더라도 ‘스타크래프트’는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RTS 게임에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 방식을 요구했던 RTS 게이머들의 태도는 너무나 지나쳤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이후로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보다 훨씬 더 참신한 RTS가 여럿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장되어 갔던 것입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 이후 RTS 장르는 침체 아닌 침체를 겪게 됩니다.

웨스트우드의 최후 (1): 불길한 조짐

이렇게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으로 블리자드가 잘 나가는 동안 웨스트우드에는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1998년 여름, 웨스트우드는 EA 퍼시픽 산하로 편입되었습니다. 당시 게임 시장의 5~6%를 지배하고 있는 웨스트우드가 든든한 자금력을 가진 Eat All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많은 게임회사들이 바짝 긴장했습니다. 이제 RTS 게임 천하는 EA와 웨스트우드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습니다.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가 신나게 시장을 휩쓸고 있는 동안, 웨스트우드는 EA에게 인수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개발자의 유출부터 당장 문제였습니다. 인수되자 마자, 더러운 중소기업(?) EA를 싫어하는 웨스트우드의 고참 개발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커맨드 앤 컨쿼’시리즈에 몸담았던 개발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싫어서 나간다는데 EA와 웨스트우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EA는 덮어놓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게임계의 M$같은 존재

게다가 웨스트우드는 중요한 시기에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런 혼란기에 ‘듄2’의 리메이크작인 ‘듄2000’을 내놨다가 악평과 함께 형편없는 판매량을 기록한 것입니다. 잘 봐줘도 ‘레드얼럿1’에서 조금 개선된 수준의 게임에 ‘듄2’의 껍데기만 씌워놓은 꼴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거기에 막 발매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와 비교하면 ‘듄2000’은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웨스트우드를 위해 몇 가지 변명을 하자면 ‘듄2000’에 대한 혹평은 좀 과장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듄2000’은 웨스트우드가 만든 게임도 아니었고, (실제 개발은 인텔리전트 게임즈에서 담당했음. 인텔리전트 게임즈는 후에 ‘엠퍼러: 배틀 포 듄’의 개발도 맡는다.) 어디까지나 팬서비스 차원에서 만든 게임이었지만 어쨌든 웨스트우드 게임은 웨스트우드 게임이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 사실 '듄2000'은 웨스트우드에서 만든 게임도 아니다

‘듄2000’에서 불길한 징조를 느끼자, 웨스트우드는 차기작인 ‘타이베리안 선’에 전력을 다합니다. 4년 넘는(놀랍게도 ‘레드얼럿1’ 이전부터 개발이 진행 중 이었습니다) 개발 기간이 걸린 ‘타이베리안 선’에 게이머들이 걸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이제 ‘타이베리안 선’은 한창 인기몰이를 시작한 ‘스타크래프트’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습니다. 웨스트우드 역시 ‘타이베리안 선’ 만큼은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인 만큼, ‘타이베리안 선’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이베리안 선’이 1999년 가을에 출시됐습니다. 하지만 ‘타이베리안 선’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레드얼럿1’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타이베리안 선’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버그가 난무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베리안 선’은 신통찮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내막은 이렇습니다. ‘타이베리안 선’의 참패는 단순히 ‘스타크래프트’ 때문만이 아닙니다. ‘타이베리안 선’의 분위기나 플레이 방식은 웨스트우드 오리지널 스타일 그대로였고 나름 훌륭했습니다. ‘타이베리안 선’의 그래픽은 지금 봐도 깔끔하게 느껴질 정도니 당시로서는 끝내주는 그래픽이었지요.

그러나 ‘타이베리안 선’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제작과정에서 게이머들의 사양을 고려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토탈 어나힐레이션’과 똑같은 실수였습니다. 신기술인 ‘복셀 그래픽’을 게임에 떡칠해서 멋진 그래픽을 구현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덕분에 유닛이 조금만 많아져도 게임이 느려지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 지금 봐도 '타이베리안 선' 정도면 깔끔한 그래픽이다

경쟁작인 ‘스타크래프트’가 486에서도 어떻게든 돌아갔던 반면에, ‘타이베리안 선’은 당시의 최신 기종으로도 유닛이 많아지면 게임이 기어갈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커맨드 앤 컨쿼’시리즈는 유닛 수에 제한도 없었음) 게임을 멋지게 만들려는 욕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지요. 웨스트우드는 이를 뒤늦게야 깨닫고 부랴부랴 ‘타이베리안 선’의 사양 문제와 밸런스 문제를 패치 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지 오래였고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쉬어가기: 사실은 RPG의 명가 웨스트우드?

웨스트우드는 ‘듄2’와 ‘커맨드 앤 퀀커’의 대성공 이후 대표적인 RTS 개발사로 게이머들에게 확고히 자리잡았지만, 사실 웨스트우드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RTS때문만은 아니다. 웨스트우드의 롤플레잉 게임은 ‘미국식 RPG’의 선두주자였으며, ‘녹스’의 경우 라이벌 회사인 블리자드의 ‘디아블로’와 경쟁할 만큼의 게임성을 자랑했다.

▲ 영어도 잘 모르면서 어찌어찌 즐겼던 '키란디아의 전설'

게임 경력이 오래된 유저라면 웨스트우드의 첫 작품인 ‘화성 이야기(Mars Saga, 1988)’부터 ‘주시자의 눈(Eye of the Beholder, 1990)’, ‘지혜의 땅(Lands of Lore, 1992)’ 그리고 어드벤처 게임인 ‘키란디아의 전설(The Legend of Kyrandia, 1992)’까지 웨스트우드의 명작 RPG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점은, 웨스트우드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으로 제작했던 게임이 바로MMORPG라는 것이다. 한 회사가 RPG로 시작해 RPG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RPG로 인생을 마감했는데, 정작 세간에는 오로지 RTS로만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은 비극 아닌 비극이다.

웨스트우드의 최후 (2):  좋았던 한 시절의 종말

난감한 상황에 처한 웨스트우드는 당황했지만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회심의 병기인 ‘녹스’를 내놓습니다. 본래 RPG명가였던 웨스트우드의 명예(?)를 걸고 만들어진 ‘녹스’는 훌륭한 액션 RPG 게임이었습니다. 타격감도 괜찮고, 그래픽도 최적화가 잘 되어 대부분의 사양에서 그럭저럭 돌아가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성공은 따놓은 당상으로 보였습니다. 웨스트우드 스스로 ‘녹스는 디아블로 킬러가 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의 게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2000년 초, ‘녹스’가 출시되었습니다. ‘녹스’는 출시되자 마자 게임 평론가들과 게이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나름대로 세 몰이를 시작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게임이 적절한 시기에 나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웨스트우드로서는 ‘초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박은 가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을 만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쌍하게도 웨스트우드는 정말로 운이 없었습니다. ‘녹스’가 출시되고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경쟁사인 블리자드의 액션RPG ‘디아블로2’가 출시된 것입니다. 그리고 ‘디아블로2’의 게임성은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구요. 이후의 일은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디아블로2’는 게이머들에게 놀랄만한 찬사를 받으며 ‘스타크래프트’보다 더한 영향력으로 전 세계 게임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웨스트우드의 ‘녹스’는 ‘디아블로2’라는 파도 앞에 쓸려가는 모래성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 뭐? 누가 누구 킬러라고?

한 편, RTS쪽은 좀 더 참담했습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패치를 거듭하며 더욱 정교한 밸런스로 웨스트우드를 압박하기 시작했지만, 웨스트우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웨스트우드는 2000년 가을로 예정되어 있던 ‘레드얼럿2’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타이베리안 선’에 사용되었던 그래픽 엔진을 대폭 개량해 더욱 깔끔한 그래픽을 구현하면서도 사양은 낮췄고, 유명 배우를 기용해 미션 중간 중간에 삽입할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타이베리안 선’의 칙칙한 분위기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던 게이머들을 위해, ‘레드얼럿2’는 전체적으로 경쾌한 분위기의 게임으로 개발됩니다.

▲ 뭐가 부족해서 망했는지 모를 '레드얼럿2'

특히 ‘레드얼럿2’는 ‘스타크래프트’의 대성공의 기반이 된 한국 시장을 겨냥해, 유명 성우를 기용한 음성 더빙을 포함한 철저한 한글화를 시도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몇몇 팬이라면, ‘레드얼럿2’ 발매 초기에 유명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게임 채널에서 ‘레드얼럿2’ 리그를 벌였던 것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아이콘만 보면 '뉘집 자식이야?'라는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레드얼럿2’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을 깨기에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출시 후 게임 사이트들과 게이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드얼럿2’는 ‘스타크래프트’에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레드얼럿2’를 실패한 게임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레드얼럿2’는 훌륭한 RTS였고, 적지 않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을 휩쓸었던 옛 영광을 따라가기엔 ‘레드얼럿2’는 1g 부족했고 그 작은 차이 때문에 결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스타크래프트’에 밀려버리고 맙니다.

▲ 확장팩인 '유리의 복수'까지 완벽한 한글화를 해서 냈건만 망했다.

내는 게임 마다 게임계의 전설이 되었던 과거 웨스트우드의 영광은 이렇게 사라지고, 웨스트우드의 위상은 이래저래 축소되어만 갔습니다. 모회사인 EA입장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인 웨스트우드를 남겨둘 이유가 없었고, 웨스트우드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은근히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2003년 봄 웨스트우드 스튜디오가 EA LA에 합병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은 게임 업계에서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워크래프트2’와 ‘레드얼럿1’의 대결로 시작된 장대했던 RTS전쟁은 8년만에 그 막을 내렸습니다.

▲ '레드얼럿3'이 나오긴 하는데, 이런 거나 넣고 있으니.. 역시 EA가 문제다

에필로그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간은 RTS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웨스트우드와 블리자드가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면서, RTS의 장르를 확립했고 이에 자극 받은 많은 개발사들이 RTS를 제작하면서 RTS의 전성기가 열렸습니다. 비록 RTS의 전성기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고 웨스트우드가 경쟁에서 패하면서 그 막을 내렸지만, 이 시기를 살아갔던 RTS 마니아들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망한 '토탈 어나힐레이션'. 3D RTS시대의 개막을 알린 게임이다

RTS의 전성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RTS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7년, 아직까지 2D가 대세이던 시기에 과감한 3D 기술이 도입된 ‘토탈 어나힐레이션’은 게이머들과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블리자드가 ‘토탈 어나힐레이션’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스타크래프트’를 다시 제작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지요.

▲ 음성으로 조작하는 RTS인 'Endwar'. TA이후 고작 10년만에 여기까지 진보했다

이 ‘토탈 어나힐레이션’을 기점으로 RTS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3D의 시대가 그 막을 연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토탈 어나힐레이션’부터 시작된 ‘RTS 3D혁명’부터 현재의 RTS, 그리고 미래의 RTS까지의 방대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역사 3부  - 3D 혁명, 토탈 어나힐레이션부터 앤드워까지’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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