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5조 1436억원. 그 중에 온라인게임은 2조 2403억원으로 43.5%를 점유하고, 온라인 게임의 이용자 수는 2천만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거대한 시장이다. (출처 : 2008 대한민국 게임백서) 하지만 그 모든 게임이 잘 될수는 없는 법. 상위 20%가 80%의 부를 독점한다는 ‘20대 80의 법칙’은 온라인 게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공한 온라인 게임은 꾸준히 돈을 벌어들일 수 있지만, 실패한 온라인 게임은 언제 서비스를 중단해야 할지 날짜 잡기에 바쁘다.
어떤 온라인 게임이 실패해서 손익분기점도 못 넘긴다 치자. 그럼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게임이 재미없는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마케팅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운영자가 관리를 거의 안해서일수도, 계정비가 너무 비싸서, 불법 프로그램의 사용이 너무나 많아서 일수도 있다.
▲헐리우드 징크스의 대표작 '워터월드'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게임의 ‘소재’ 라는것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헐리우드 영화의 ‘바다를 소재로 한 영화는 실패한다’(ex : 포세이돈, 퍼펙트 스톰, 워터월드) 라는 징크스처럼, 한국의 온라인 게임에도 이런 징크스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법칙이 아닌 고로 예외도 있다. 본 기획에서는 ‘손대기만 하면 망하는’ 징크스는 무엇이 있고, 이런 징크스를 벗어난 예외도 알아보도록 하겠다.
정말 바다를 소재로 한 게임은 실패할까?
▲여러가지로 아쉬웠던 대항해시대 온라인
‘바다를 소재로 한 영화는 실패한다’는 헐리우드 영화의 징크스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지속되는 것 같다. 바다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으로는 ‘항해세기’(스네일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코에이), ‘워터크래프트’(사이버리아), ‘네이비필드’(SD엔터넷)가 있다. 이중 ‘항해세기’와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MMORPG, ‘워터크래프트’는 해양 슈팅 게임, ‘네이비 필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해양 전략 게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다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운명이 하나같이 기구하다는 데에 있다.
‘워터크래프트’는 제작사인 ‘사이버리아’가 피시방 체인의 실패로 부도가 나자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PC게임 ‘대항해시대’와 표절 시비에 걸렸던 ‘항해세기’는 이름을 ‘코그 온라인’으로 바꾸고 컨텐츠를 확충했으나 이용자의 외면으로 08년 3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원작 PC게임의 후광으로 초기에 큰 인기를 과시했지만, 해적의 난립과 운영의 미숙으로 유저가 점점 떠나 현재는 극소수의 유저만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나마 ‘네이비필드’는 해전 마니아들의 충성심으로 유지되고 있어 네 개의 게임들 중 가장 처지가 낫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개발중인 네이비필드2
하지만 네 게임의 실패요인을 꼭 바다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해전이라는 마니악한 요소 때문에 유저를 많이 모을수 없는 ‘네이비 필드’를 제외하면, 문제는 게임 안에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항해세기’는 느린 게임 진행으로 국내 온라인 게임 유저들의 빠른 속도에 맞추지 못했고,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복잡한 항해시스템으로 유저들이 쉽게 싫증을 냈다. 이 모든 것을 바다라는 소재 탓으로 돌려야만 할까?
축구게임은 '피파 온라인' 뿐일까?
▲축구 게임의 유일한 승리자
우리는 ‘피파 온라인’(피망)의 성공 이전에 수많은 축구게임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축구 게임이었던 ‘강진축구’ 이후, 성공한 축구게임은 '피파 온라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다. ‘킥스 온라인’, ‘익스트림 사커’, ‘레드카드’, ‘리얼사커’, ‘풀타임’, ‘풋살’ 등등, 축구를 소재로 한 온라인게임을 여기서 다 다루다가는 독자 여러분의 인내심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리얼함을 강조한 정통 축구 게임이나, 코믹함을 강조한 캐주얼 장르나 다 실패의 쓴맛을 맛봤다고 요약하는 수밖에 없다.
‘피파 온라인’이 성공한 것을 보면, 축구가 꼭 ‘시도하면 망하는 소재’ 라고는 볼 수 없다. 피파 온라인의 성공은 그동안의 피파 시리즈로 쌓인 경험을 그대로 녹아있어 게임성이 보장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06년의 독일 월드컵 열풍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른 축구 온라인 게임도 그 특수를 노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피파 온라인이 재미있었기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후속작까지 제작했던 것이다.
SF는 한국과 인연이 없는걸까?
▲국가대표 '먹튀' 영화
‘천사몽’ 38억원, ‘예스터데이’ 48억원, ‘내추럴시티’ 56억원, 그리고 110억원을 들여 처참하게 실패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SF라는 소재는 돈만 날리고 성공한 전례가 없는 저주받은 소재다. 온라인게임도 마찬가지다. SF를 소재로 하여 성공한 게임이 아예 없다. ‘RF 온라인’, ‘엑스틸’, ‘네오스팀’ ‘바우트’ 등이 SF를 소재로 사용한 게임들이다. 그런데 이들 게임은 이상하게 인기가 없다. 왜?
▲한때 유저들 사이에서는 '광부 온라인' 이라고 불리웠다.
CCR의 ‘RF 온라인’은 상용화 초기에 32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광산 시스템은 이 게임에서 유저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광산에서 싸워 이기나 지나 엄청난 양의 광물을 필요로 하는 관계로, 모든 유저가 광물을 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 ‘RF 온라인’은 부분 유료화와 족장에게 월급을 주는 등의 조치를 통해 어떻게든 유저를 끌어모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빠져나갈 유저가 있는 ‘RF 온라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다른 SF 온라인게임은 사람이 없다보니 빠져나갈 유저도, 돌아올 유저도 없다. NC소프트에서 런칭한 ‘엑스틸’은 FPS와 메카닉의 조합이라는 생소한 컨셉에, 초반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아 신규 유저를 많이 모으지 못했다. 이후 2년만에 재런칭에 가까울 정도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단행했지만 이 역시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스팀 펑크’(산업혁명시대를 배경으로 한 SF)를 내세운 한빛소프트의 ‘네오스팀’은 최적화의 부재로 있던 유저마저 스팀(증기)처럼 사라졌고, 변신로봇이라는 컨셉을 내세운 한게임의 ‘바우트’는 08년 8월, 아예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뿐만인가. 리차드 개리엇이 참여하여 화제를 모은 SF MMORPG '타뷸라 라사'(NC소프트)는 북미에서 1달러에 판매되는 굴욕(!)을 자랑하며 09년 2월 29일 서비스를 종료한다.
▲우주여행 잘 다녀오셨습니까?
SF 온라인 게임의 실패도 그 게임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까? 국내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RF 온라인’ 과 ‘엑스틸’은 해외에서는 선방하고 있다. RF 온라인은 필리핀에서 웹 어워드(게임부문)을 수상했고, 엑스틸은 대만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실패를 게임성의 문제로 볼 수는 없는것이다. 그것보다는, SF라는 장르가 한국에서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한국 온라인 게이머의 정서와 맞지 않는 SF는 국내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
무협게임은 언제쯤 성공할 수 있을까?
▲판타지에
톨킨이 있다면, 무협에는 김용이 있다.
‘무협’이라 함은 동양적 사고방식과 설화 및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관으로,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게드 전기’로 구체화된 서양 판타지와 그 맥을 달리한다. 즉 무협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만든 게임은 우리에게 익숙한 검과 마법, 드래곤이 등장하는 세계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위 문단에서 정의한 대로 무협을 분류하면, ‘바람의 나라’(넥슨)도 무협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의는 ‘무협게임은 실패한다’라는 징크스에 ‘바람의 나라’ 라는 예외를 부여해줬을 뿐이다. ‘창천 온라인’, ‘십이지천’, ‘디오 온라인’, ‘수 온라인’, ‘묵향 온라인’, ‘구룡쟁패’, ‘천상비’ 등등 국내에서 서비스된 무협게임의 수는 많지만 그중 성공한 게임은 ‘바람의 나라’와 ‘조선협객전’ 을 비롯한 몇몇 소수에 한정된다. ‘구룡쟁패’는 무공 간에 차이점이 없고 타격감이 부족해 외면당했고, ‘창천 온라인’은 ‘진 삼국무쌍’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그렇게 무협게임은 한동안 침체기에 시달리다가, ‘십이지천’이 ‘십이지천2’로 화려하게 재기해 무협 게임의 자존심을 겨우 세우고 있다.
▲그나마 '십이지천2'는 중박은 해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무협 게임의 연달은 실패를 이해하려면 우선 무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엘프와 드래곤이 등장하는 서양식 판타지와는 달리, 동양의 판타지(무협)는 그 수요층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지의 제왕’과 ‘의천도룡기’중 어떤 것이 더 대중적일지 생각해보라.) 게다가 소수의 무협 마니아들은 눈높이 또한 높아 그들의 요구사항에 일일이 응해줘야 한다. 타격이나 조작은 물론이고, 고증과 설정까지 지적하는 이들을 맞춰주려면 제작사가 무협지를 달달 외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무협 게임들이 무협과 서양 판타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마니아들의 뭇매를 맞았다.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 무협 게임의 성공은 요원해 보인다.
저주는 깨져야 한다
‘##를 소재로 쓰면 실패한다’ ? 이런 징크스가 생기면 사람은 그것에만 의지하게 된다. 잘 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징크스가 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리고 실패한 사례는 다시 징크스를 강화시켜준다. 예외가 생기면 그것의 세부조건을 따지고 들어, 여전히 그 징크스는 유효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징크스가 여러 사람에게 인식이 되면,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무협게임은 안된다'는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괴물을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징크스는 그를 이겨낸 사례가 많아지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해적영화는 반드시 실패한다’ 는 징크스를 깨고 보기 좋게 성공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어떤가, ‘한국에서 외국 게임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버린 장본인 아닌가. 즉, 게임의 소재는 실패를 결정짓지 않는다.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소재보다는 게임성과 마케팅, 문화적 요인을 꼽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안된다’는 소재를 가지고서도 보란 듯이 징크스를 비웃는 온라인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필자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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