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은 미소녀게임계에 있어,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바로 29년을 이어온 앨리스소프트 간판 미소녀게임 ‘란스’의 완결에 해당하는 10편이 발매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란스 10 -결전-(이하, 란스 10)’은 2014년 처음 제작이 발표됐을 때부터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모은 바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작진은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에, 금전적, 시간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장대한 포부까지 밝혀, 팬들 기대감도 한없이 높였죠.
하지만 이런 호언이 너무 과한 부담이었을까요? 2016년에 발매될 예정이었던 ‘란스 10’은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발매가 미루어지고 맙니다. 결국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2년이 지난 시점인 2018년에 개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지난 2월 23일 발매됐죠.
보통 이렇게 질질 끄는 작품은 기대에 비해 아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만듦새를 보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리즈 대미를 장식할 ‘란스 10’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란스 10'... 과연 이야기의 완결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세계관-음악-게임성, 3박자야말로 ‘란스’ 시리즈의 핵심
‘란스 10’을 설명하기에 앞서, 간략하게 ‘란스’ 시리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란스’는 일본 개발사 앨리스소프트가 1989년 처음 발매한 미소녀 RPG로, 주인공 ‘란스’와 그 노예 ‘실 프라인’의 모험을 다룹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팔콤 ‘이스’에 나오는 붉은 머리 전사 ‘아돌’이 주인공 '란스'의 모티브라는 것이죠.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29년이라는 긴 세월을 흐르고, 그 사이 수많은 작품이 나오면서 점차 개발사를 대표하는 간판 타이틀로 성장하게 됩니다. 출시된 ‘란스’ 작품 수만 따져봐도 외전, 스핀오프까지 포함해 무려 17개나 달하는데요. 이런 부분 때문에 미소녀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들어온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죠.
‘란스’를 지탱하는 핵심 특징은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바로 세계관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RPG에서 차용한 캐릭터가 등장하여 엉망진창 뒤섞인 느낌이었지만, 여러 작품을 거치며 점차 자신만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설정이 급변하거나, 구멍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원래 작품이 유쾌한 분위기라서 그런지, 이제는 팬들도 그냥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 이제는 별도의 설명문이 필요할 정도로, 세계관이 장대해졌다 (사진: 필자 촬영)
두 번째는 지금은 퇴사한 작곡가 쉐이드(Shade)를 필두로 한 음악입니다. 대표적인 곡으로 주인공 ‘란스’를 상징하는 ‘나의 영광’과 마군의 테마곡 ‘온톨로지(ontology)’, 그리고 리메이크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리버스 엣지(Rebirth Edge)’ 등이 있죠. 특히 ‘귀축왕 란스’는 8bit 곡임에도 지금 들어도 세련된 느낌입니다. 이런 면모 때문에, 란스는 미소녀게임 사이에서 좋은 음악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지막은 게임성입니다. 게임성 좋은 작품을 만드는 미소녀게임 개발사가 한 두 곳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앨리스소프트는 어디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입니다. 이런 앨리스소프트가 노하우를 집약한 게임이 바로 ‘란스’입니다. ‘전국란스’만해도 지역을 점령하는 전략게임 재미 하나만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죠. 더군다나,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요소를 집어넣고, 전작의 단점도 개선하며 매번 좋은 평가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처럼, 3가지 특징을 탄탄하게 다져온 ‘란스’는 오랜 시간 많은 팬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란스 10’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 그 탄탄함, 이번 10편에 그대로 이어졌다 (사진: 필자 촬영)
인류 멸망이 코 앞으로! 최종 결전 ‘란스 10’
이번 ‘란스 10’의 스토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란스’가 중심이 됩니다. 다만, 제목에 ‘결전’이 붙은 만큼, 인간과 마족의 전면전을 다루죠. 수많은 국가들이 마족에 대항하지만, 막강한 ‘마인’ 군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죠. 이에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지만, 인류 멸망이 도래했다며 점차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 인류는 마족의 와일드카드 '마인'의 강대한 힘 앞에 무력했다 (사진: 필자 촬영)
이때, 주인공 ‘란스’가 회의장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자신을 인류의 리더로 꼽으라고 주장합니다. 다소 엉뚱하지만, 그나마 유일하게 마족에 대항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각국의 정상은 이에 동의하고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플레이어는 이런 ‘란스’가 되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듭니다.
▲ 대책 회의를 열지만 절망만 한 가득...(사진: 필자 촬영)
▲ 이에 인류는 마지막 희망을 '란스'에게 건다 (사진: 필자 촬영)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결말, 내실 탄탄한 RPG... 게임성 확실하다!
이번 작품의 소재가 ‘란스’ 개인의 모험이 아닌, 커다란 전쟁을 다루고 있기에 팬들은 전작 ‘귀축왕 란스’와 ‘전국란스’처럼 전략 시뮬레이션이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앨리스소프트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비록 주제는 전쟁이지만 ‘란스’ 시리즈 기원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에서 RPG를 택한 것입니다.
우선, 플레이어는 주인공 ‘란스’가 되어, 침공 받은 왕국들을 지원합니다. 바로 특공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게임은 준비, 작전, 거점 페이즈 3단계로 나뉘며, 각 단계마다 새로운 동료를 등용하거나, 마인을 무찌르러 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행동마다 일정 턴이 소모되어, 그만큼 전황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 어떤 왕국을 지원하고...(사진: 필자 촬영)
▲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지, 모두 플레이어 손에 달렸다 (사진: 필자 촬영)
예를들어, 한 국가를 구하는데 너무 시간을 오래 지체하면, 반대로 다른 국가가 그 사이에 멸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단순한 분기 외에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는 동료 캐릭터가 사망하는 일도 발생하죠. 그야말로 수많은 분기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엔딩도 다양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즐겨도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다루는 게임답게, 기존 RPG와는 구성이 달라 보입니다. 가령, 동료 캐릭터는 단일 인물이 아니라 부대를, 전체 체력은 현재 남은 병력 수를 나타내죠. 분명 화면은 익숙한 1인칭 시점의 RPG지만, 그 안에는 주인공이 마족과 벌이는 ‘전쟁’이 담긴 셈이죠. 어떤 의미로, 개발사가 게임을 처음 선보일 때 내걸은 ‘대전쟁 RPG’라는 장르명에 부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 그냥 평범한 RPG 같지만, 알고 보면 부대 간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 필자 촬영)
이런 참신한 디자인 안에 담아낸 전투 시스템도 탄탄합니다. RPG 특유의 속성에 따른 상성 시스템은 물론, 캐릭터마다 다른 역할로 구분하여 적절히 파티를 구성하도록 만들었죠. 여기에 날씨와 지형에 따라서 다양한 효과를 받기 때문에, 전투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은 편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동료인데요. 게임에 나오는 동료 캐릭터 수만해도 수백 명에 달하고, 각 캐릭터마다 고유한 스킬을 갖고 있기에 다양한 전략이 가능합니다. 또한, 말도 안될 정도로 좋은 오버 스킬부터, 그냥 아무런 효과도 없는 개그성 스킬도 뒤섞였기 때문에 본래 ‘란스’ 시리즈가 보여주던 가벼우면서도 엉뚱한 분위기까지 전투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압도적으로 많은 동료와 다채로운 기술, 그리고 전투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덕분에 장르는 RPG라도 전작에서 선보인 전략 시뮬레이션에 버금가는 전투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 수많은 동료가 있기에...(사진: 필자 촬영)
▲ 전투에서 매번 색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사진: 필자 촬영)
추억 자극으로는 최고, 하지만 처음 접한다면 주의
이처럼, 게임 자체 완성도만 놓고 보면 훌륭한 ‘란스 10’입니다만,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입문자가 접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29년을 이어온 시리즈고, 작품마다 볼륨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앨리스소프트는 축적된 캐릭터와 설정을 설명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이번 ‘란스 10’은 완결작이라 그런지, 캐릭터 하나당 긴 설명문을 집어넣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캐릭터 소개를 전담하는 캐릭터까지 만들었을 정도죠.
▲ 세계관 설명부터, 캐릭터 소개까지... 방대하다! (사진: 필자 촬영)
하지만, 워낙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규 유저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본래 게임을 잘 알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신규 유저 공감을 사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래서 굳이 이번 ‘란스 10’으로 처음 ‘란스’ 시리즈를 접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검색을 통해 시리즈 내 작품의 연관성을 미리 파악한 후에 플레이하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29년이라는 정말 긴 시간 변치않고 항상 큰 즐거움을 주었던 ‘란스’ 시리즈. 작별의 인사를 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아쉽지만, 그래도 그 동안 많은 재미를 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방탕한 '란스'여... 이제는 안녕! (사진: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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