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독특한 게임이 하나 공개됐다. 분명 중간이 가라앉아 있는 다리였는데, 카메라 시점을 돌리자 마법처럼 다리 중간이 놓인다. 가끔은 눈 깜짝할 사이에 거울 안쪽으로 이동해 있기도 한다. 매 장면이 눈을 의심케 하는, 마치 ‘모뉴먼트 밸리’를 보는 듯 한 착시 게임. 바로 국내 인디 개발팀 지원이네 오락실이 개발 중인 ‘트릭아트 던전’이다.
뚜렷한 개성 덕분일까, 이 게임은 공개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작년 9월 제 7회 게임창조오디션 1위를 기록하며 세상에 알려진 후, 올해 4월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Top 3에 오르고, 5월에는 유니티에서 개최한 MWU 코리아에서도 상을 받았다. 유저들도 많은 기대감을 보였다. 국내 인디 게임 개발사 작품, 특히 유료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6만 사전예약자가 몰렸다.
▲ '트릭아트 던전' 게임 소개 영상 (영상출처: 유튜브 지원이네 오락실 공식 채널)
그런 ‘트릭아트 던전’이 드디어 내년 3월 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작년 3월 1인 개발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정확히 24개월 만의 성과다. 과연 어떤 게임이기에 이만한 관심을 모았는지, 소규모 개발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게임메카는 ‘트릭아트 던전’ 개발사인 지원이네 오락실 한상빈 대표를 만나 게임 소개와 개발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들어 보았다.
‘착시 퍼즐’ 모뉴먼트 밸리와는 다르다, ‘착시 어드벤처’ 게임
사실 착시를 소재로 삼은 게임은 이전에도 몇 개 있었다. PSP 시절 출시된 ‘무한회랑’을 비롯해, 2014년 모바일에서 붐을 일으킨 ‘모뉴먼트 밸리’도 착시 현상을 이용해 게임을 풀어나가는 공간 퍼즐 게임이었다. 시점이나 원근감 등을 변화시켜 실제 공간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마법 같은 일들을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착시 게임의 매력이다.
위에서 예로 든 ‘무한회랑’이나 ‘모뉴먼트 밸리’는 착시를 이용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인 이른바 ‘착시 퍼즐’ 장르였다. 반면 ‘트릭아트 던전’은 ‘착시 어드벤처’ 장르다. 길찾기에서 끝나지 않고, 장애물을 헤쳐 나가며 스토리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의 공포와 상상력이 결합된 스토리 (사진제공: 지원이네 오락실)
주인공은 고고학자가 꿈인 어린아이로,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에 왔다가 미아가 된다. 패닉에 빠진 아이는 특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고정돼 있는 사자 박제가 자신을 쫒아온다거나, 이집트 아누비스 괴물이 자신을 노리는 등의 상상 속 말이다. 아이는 여러 전시장을 거치면서 현실과 상상을 오가고, 부모님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특히 2회차 플레이에서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숨어 있다고.
이 같은 설정은 한상빈 대표 가족에게서 탄생했다. 게임 개발을 시작하기 전, 회사에 다니며 야근을 할 때 '집에 아이들이 홀로 남겨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주말에 아이들과 트릭아트 전시센터에 갔을 때 '아이들과 트릭아트를 결합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들을 했는데, 이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트릭아트 던전’의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게임 내에는 다양한 트릭아트들이 등장한다. 카메라 각도가 바뀌어서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긴다던지, 원근감이 달라져서 바로 옆에 있던 괴물을 저 멀리로 보낼 수도 있다. 앞에 있는 공간이 빙글 돌아가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뒤바뀐 공간 탓에 기존에 없던 괴물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가끔은 ‘저게 어떻게 저렇게 됐지?’라며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들도 나온다. 게임 후반부에는 그림자, 확대/축소 등 다양한 기믹을 이용한 착시 효과도 등장할 예정이라고.
▲ 개가 쫒아오는 도중, 레버를 당기면.... (사진제공: 지원이네 오락실)
▲ 카메라 각도가 바뀌면서 다리 중간에 틈이 생긴다 (사진제공: 지원이네 오락실)
조작은 가상패드가 아닌 터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한 대표의 두 딸처럼, 트릭아트를 좋아하지만 게임을 잘 모르는 어린이 등도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이다. 레벨 디자인 역시 세밀한 조작이 없이도 진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도록 구성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대상이 된 한 대표 자녀들은 이 게임을 이해하기엔 아직 조금 어리다는 것. 향후 콘솔과 PC 버전에서는 패드와 방향키를 이용한 적극적 조작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게임의 볼륨은 두 시간 가량. 유료 게임 치고는 짧아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상빈 대표는 “’모뉴먼트 밸리’의 경우에도 플레이 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타임이 아니고 매 순간 ‘신기하다’, ‘새롭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억지로 타임을 늘리기보다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이 목표였다. 향후 DLC 형태의 추가 콘텐츠도 기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 게임 후반부에는 거대 거미도 등장한다. 어떤 트릭아트 기법을 사용하는도 관전 포인트 (사진제공: 지원이네 오락실)
1인 개발에서 4인 팀까지, 잘 만든 프로토타입 덕에 해냈다
지금은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트릭아트 던전’이지만, 사실 여기까지 오기에는 운도 많이 작용했다. 사실 한상빈 대표는 과거 넷마블에서 사업 PM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회사에 사표를 냈고, 게임 개발을 독학으로 공부해 무작정 1인 개발사를 차렸다.
돈을 많이 벌겠다고 시작한 게임 개발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쉽게 해결하기 힘들었다. 개발을 시작한 지 반 년쯤 지나자 통장 잔고가 ‘0원’이 됐다.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못할 지경이 되자 개발을 접고 재취직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했다.
그러나 작년 9월, ‘트릭아트 던전’ 프로토타입이 경기콘텐츠진흥원과 경기창조혁신센터 등이 주관하는 ‘게임창조 오디션’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조금씩 일이 풀려나갔다. 이를 통해 얻은 상금과 개발 지원금으로 같은 처지에 놓인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하나둘씩 모집했다. 그렇게 발전한 퀄리티로 구글과 유니티 등에서 또 다시 상을 수상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 지난해 9월, 제 7회 게임창조오디션에서 대상을 수상한 '트릭아트 던전' (사진 왼쪽 아래) (사진제공: 경기콘텐츠진흥원)
한상빈 대표는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1인 개발을 하고 싶어 퇴사를 생각하신다면,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최소한 프로토타입이라도 만드시길 바란다. 이를 냉정히 평가받은 후 반응이 좋을 때 퇴사를 고려해 보라”라고 소회를 밝혔다.
실제로 한 대표가 1인 개발로 시작해 팀원을 모을 수 있었던 데도 잘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의 역할이 컸다. 계기가 된 ‘게임창조 오디션’ 대상을 수상한 원동력이었음은 물론, 하나하나가 ‘일당백’인 1인 개발자 출신 팀원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잘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지막으로 한 대표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는 것 보다는, 우리나라 인디게임 업계에서도 글로벌에서 통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라며 “특히 모바일 뿐 아니라 스팀에서 해외 유저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최근 루키가 많이 줄어든 인디게임 업계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 스팀을 통해 해외 유저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표라는 한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트릭아트 던전’은 모바일, PC(스팀), 콘솔(스위치)의 세 가지 버전으로 출시 예정이다. 이 중 모바일 버전이 3월 초 3.99달러 유료 게임으로 선공개되며, PC와 콘솔 버전의 경우 5월 출시를 예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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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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