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e스포츠협회는 큰 부침을 겪었다. 이 부분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작년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처음으로 시범 종목으로 선정된 기쁜 소식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대한체육회 회원 자격을 상실해 막판까지 선수를 내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두고 마음을 졸였다. 여기에 협회장 공석도 길었고 인력도 축소된 상태였다.
아시안게임 이후 e스포츠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는 말은 많지만 한국e스포츠협회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작년에 취임한 김영만 협회장이 올해 목표를 협회 힘 키우기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회가 힘이 있어야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에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올리는 등 중요 과제를 수행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 협회장이 생각 중인 올해 계획은 세 가지다. 대한체육회 가맹, 선수 등록제, e스포츠 인재 육성을 위한 아카데미 설립이다. 우선 대한체육회 가맹에 대해 그는 “현재 대전, 부산, 경남, 전남까지 4곳이 시도체육회에 가맹됐다. 이를 바탕으로 상반기 안에 대한체육회에 인정단체로 가맹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준가맹단체가 되기 위한 노력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도체육회 가맹에 속도가 붙은 것에 대해 그는 작년 아시안게임으로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문체부에서 시행하는 e스포츠 상설경기장 구축 사업과 연계된 점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체육회 인정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시도체육회 3개 이상에 가입되어야 한다. 지금 기준으로도 인정단체 조건은 충족한 셈이다. 인정단체 가맹을 시작으로, 시도체육회 가입을 점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목표다. 다음 목표는 준가맹단체다.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시도체육회에 가맹된 시도지회를 9개까지 확보해야 한다. 김영만 협회장은 “올해 안에 1, 2곳이 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2022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대비해 대한체육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김 협회장의 뜻이다.
'선수 등록제'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국내 e스포츠 선수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협회장은 “선수 권익보호를 위해서 선수들의 전적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를 자산으로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선수들에게 어떤 혜택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출전을 대비한 국가대표 선발이나 등록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세제혜택 등을 고려 중이다. 이와 함께 등록 선수에게 프로팀 입단 기회를 제공하거나, 은퇴 이후에도 다음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가맹과 선수 등록제가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면 색다른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병역특례다. 김영만 회장은 “대한체육회 가맹단체가 되고, 선수들이 메달을 손에 넣는다면 그 기준을 바탕으로 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선수 등록제도 그 일환이다. 선수 활동 경력이 명확하게 증명되어야 병역특례와 같은 것도 신청할 수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군 부대와는 '군 e스포츠 대회 개최' 등도 함께 논의 중이다.
이를 위한 인프라는 충분하다는 것이 김 협회장의 생각이다. 올해 부산, 대전, 광주에 e스포츠 상설경기장이 새로 열리고, 한국e스포츠협회가 지정한 아마추어 e스포츠 경기장 PC클럽도 66곳이 마련되어 있다. 김 협회장은 “문체부 및 시도지회와 협력해 경기장을 부트캠프나 아카데미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라며 “PC클럽을 바탕으로 동호회에서 시작한 사람이 준프로가 되고, 프로가 되어가는 구조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및 부트캠프'는 협회의 재정 자립도와 연결되어 있다. 이를 수익사업으로 삼아서 협회가 좀 더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주무부처라 할 수 있는 문체부가 있지만 언제까지나 정부에만 손을 벌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아카데미에 대해 김 협회장은 “협회가 준비 중인 것은 민간 아카데미에서 하기 어려운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이다. 민간의 경우 프로게이머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데, 협회는 심판이나 e스포츠 행정가, 방송 관련 인력에 대한 교육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부트캠프는 해외 e스포츠 협단체에 노하우를 전해주는 연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존에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태국 e스포츠 협단체에 도움을 제공한 바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부트캠프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는 무료로 외부 자문에 진행했으나 앞으로는 해외 또는 국내에서 e스포츠에 대한 자문 요청이 온다면 이에 대한 수수료를 책정해 협회의 기본적인 운영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만 협회장은 "전통 스포츠와 달리 온라인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는 e스포츠 특성을 살려서 온라인 매치 플랫폼을 만드는 파트너십도 검토 중이다. 한국에서 우선 사용한 후 협회와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된 해외 협단체로 확대하여 이를 수익화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언급했다.
e스포츠 국제 표준, 한국이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나?
앞서 이야기한 부트캠프는 수익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이와 함께 e스포츠에 대한 국제적인 교류를 확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영만 협회장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e스포츠에 대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글로벌을 아우르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 스포츠의 경우 종목과 선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는데 e스포츠는 무엇이 종목인지, 누구를 선수라 부르는지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국제 표준을 한국이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야기한 대한체육회 가맹과 선수 등록제, 부트캠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1차 목표는 아시안게임이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 정식 종목 채택을 앞두고 한국e스포츠협회를 중심으로 아시아 관련 단체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다. 김영만 협회장은 “각국 협단체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e스포츠 국제 표준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IOC 위원으로 활동 중인 유승민 위원 등 체육계 인사와도 교류를 이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요구된다. 협회에서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를 밀어줄 제도가 있어야 제대로 된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문체부와는 게임 5개년 중장기 발전 계획에 e스포츠 관련 정책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라 전했다. 아울러 국회에 대해서도 김영만 협회장은 “e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차세대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가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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