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게임업계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이하 WHO)가 5월 총회를 통해 게임 장애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안이 통과되면 게임은 순식간에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취급받게 된다.
여기서 검증해야 할 부분은 정말로 ‘게임’ 그 자체가 병을 일으키느냐다. 게임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많지만 이에 대한 증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에서 게임 이용자를 5년 간 연구해 게임이 정말로 ‘게임 과몰입’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게임은 게임 과몰입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요인으로 인해 게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4월 6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제 4차 게임문화포럼을 열었다. 현장에서는 두 가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하나는 한국 청소년 게이머 2,000명을 조사해 게임이 정말로 게임 과몰입을 일으키는 원인인지를 5년 간 연구한 결과, 또 하나는 5년 동안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것이다.
우선 이용자 패널 조사는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정의준 교수가 맡았다. 그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2,000명을 추적 조사하며 왜 청소년이 게임 과몰입에 빠지게 되는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청소년이 게임 과몰입에 빠지는 이유는 게임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 게임 과몰입도 마찬가지다
정의준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게임 과몰입에 한 번도 속하지 않은 그룹과 5번 모두 게임 과몰입에 속했던 그룹을 비교하면 학업 스트레스와 자기 통제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라며 “그 외에도 5번 모두 게임 과몰입에 속했던 청소년은 고독함과 공격성이 높게 나오고, 행복도가 많이 떨어진다. 아울러 교사와 친구로부터 지지를 받는 부분이 낮고, 부모의 과한 통제과 지나친 기대가 있다. 또한, 부모와의 대화 시간은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 중 강조된 두 가지 요인은 자기통제력과 학업 스트레스다. 정 교수는 “게임을 하는 시간과 자기 통제력, 학업 스트레스의 상관 관계를 비교해보면 게임을 하는 시간 자체보다 학업 스트레스와 자기 통제력이 게임 과몰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학업 스트레스와 자기 통제력도 연결되어 있다. 학업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본인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업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의준 교수는 “5년 간의 결과를 보면 부모의 지나친 통제와 간섭, 과한 기대, 그리고 교사와의 관계가 학업 스트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학업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며 게임 과몰입에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의 정신 상태가 자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 교수는 “부모가 많이 고독할수록 자녀도 함께 고독하고, 부모가 우울하면 자녀도 우울하다. 부모가 자기 통제력이 떨어질수록 자녀도 그러하며, 공격성과 불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한 점은 청소년 시기에 ‘게임 과몰입’은 아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정의준 교수는 “5년 동안 조사한 결과 ‘게임 과몰입’ 그룹에 있던 청소년이 1년 사이에 아무런 조치 없이 ‘일반군’으로 이동한 비중이 50~60%다. 본인 및 주변 상황에 따라 게임에 과몰입했다가 일반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DHD, 우울증 등 다른 질환과의 연관성 염두에 두어야
이어서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는 800건에 달하는 뇌 MRI 촬영을 토대로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한 교수는 “5년 동안의 조사를 통해 2~3년 이상 추적 조사를 한 사례가 많았다”라며 “일반적인 게임 연구가 한 사람을 몇 년간 조사하는 종적 연구가 아니라 단면적인 연구가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라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가 주목한 것은 공존 질환이다. 게임에 지나치게 빠진 것과 함께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번에 조명한 것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하 ADHD)다. 한덕현 교수는 “게임 과몰입으로 병원에 온 사람들의 경우 뇌가 뒤쪽보다는 양옆으로 연결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는 ADHD의 특징이기도 하다.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면 주위 도움을 안 받아도 스스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부위 도움을 받다 보니 옆으로 연결이 늘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게임을 하지 않는 ADHD와 ADHD가 아닌 게임 과몰입, ADHD와 게임 과몰입을 같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를 비교 분석한 결과도 공개했다. 그는 “3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ADHD가 없는 게임 과몰입은 전두엽 사이의 연결이 증가하고 뒤로 가는 연결은 떨어진다. ADHD와 게임 과몰입을 같이 가지고 있는 쪽은 더 강한 연결성을 보이고, 게임을 하지 않는 ADHD는 연결성이 떨어진다”라며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게임에서 오는 자극을 어떻게든 처리해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보인다. 아마도 ADHD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게임을 뇌의 먹이로 사용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전했다.
한덕현 교수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때 ADHD나 우울증과 같은 다른 질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덕현 교수는 “공존 질환을 배제하지 않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게임 과몰입의 경우 우울증이나 ADHD와 같은 다른 질환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으며, 특히 뇌 기능적인 변화는 ADHD와 변화 추이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게임에 대한 편견보다 자녀에 대한 인정이 우선
미국 플로리다 스테트슨 대학교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역시 게임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완성도 높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이 실제 폭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의미한 증거는 없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장애라기보다 문제 현상을 보여주는 증상에 더 가깝다”라며 “궁극적인 해결책은 훌륭한 연구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연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는 공개하여 외부에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울러 게임처럼 새로운 기술이 갖는 임팩트에 대해 대중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게임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면 될까?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환갑의 나이에 ‘배틀그라운드’를 시작했다는 대구부모교육연구소 김상도 소장은 ‘이해’를 강조했다. 그는 “작년 여름에 장남을 데려온 어머님이 있었다. 어머님이 이혼과 재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동생이 태어나며 장남이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장남은 학업 동력을 상실하고 학교를 자퇴한 후 집에서 게임만 한다. 아들이 너무 걱정된 어머님이 연구소에 자식을 데려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학생이 완전히 학업을 놓을 수는 없기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적을 두고 있더라. 힘든 상황에서도 본분을 다하려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지 않은가. 그래서 무슨 게임을 하냐고 물었더니 ‘배틀그라운드’를 하고 싶은데 PC 사양이 안 돼서 ‘오버워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아들에게는 문제가 없으며 PC 업그레이드를 권했다. 그랬더니 아이 표정이 너무 환해진 것이다,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본인을 알아주니까 너무 기쁜 것이다. 나중에 어머님에게 후일담을 들으니 아이가 너무 밝아지고 자기 할 일도 잘하고 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렇게 게임과 게임 과몰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심리학, 정신의학, 문화콘텐츠 등 학계와 실제 학생과 부모를 대면하는 교육계 입장에서 봤을 때 게임 과몰입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다. 청소년의 경우 게임 자체보다는 게임에 빠져들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인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요인에 대한 해결이 없이는 근본적인 뿌리를 뽑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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