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리뷰를 쓰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가만 세어보니 지난 번 4시간 체험기가 나간 게 6월 25일이었으니, 정확히 166일 만이다. 그 새 게임은 많은 것이 변했다. 공사 현장처럼 느껴졌던 게임 속 세계에는 생동감이 부여됐으며, 한국어 더빙으로 인해 몰입감도 정확히 2,077배 높아졌다. 튜토리얼을 넘어 왓슨 외 지역이 풀림에 따라 나이트 시티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게 됐고, CD 프로젝트 레드(이하 CDPR)가 꼭꼭 감춰 놓았던 다양한 반전 요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꽤 많다. 스토리적 반전, 알려지지 않았던 캐릭터들의 뒷모습, 등장인물들의 생사 여부 및 로맨스 스토리, 선택지에 따른 결과 변화, 엔딩까지… 그러나 여기서 이런 부분을 얘기하는 것은 상도의에 맞지 않다. 이번에는 오로지 게임성. 그 가운데에서도 오픈월드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사이버펑크 2077의 오픈월드에 대해 평하려면,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단연 GTA 5 외에 떠올릴 수가 없다. 물론 오픈월드 게임 중에서는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레드 데드 리뎀션 2, 심지어 CD 프로젝트 레드 전작인 위쳐 3 등 다양한 비교 대상이 있지만, 굳이 GTA 5를 꺼내든 이유는 게임의 배경이나 분위기, 할 수 있는 행위 등이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GTA 5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무려 7년 전 게임이기에 단순 비교할 경우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그 면에서는 온라인에 취해 그 동안 차기작을 내지 않은 락스타게임즈를 탓하도록 하고, 일단 우리는 GTA 5와 비교해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가 어떤 느낌인지 그려 보도록 하자. 어느쪽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현재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현실 배경 오픈월드 게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설명했다고 봐주길 바란다.
1. 마천루 속 입체적인 세계
2018년, E3 현장에서 CDPR 제작진에게 사이버펑크 2077 맵 크기가 위쳐 3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들은 답은 “모르겠다”였다. 대지 면적 자체는 위쳐 3에 비해 작지만, 나이트 시티는 고층 빌딩과 지하 등이 얽혀 있고 건물 내부에서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기에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 본 사이버펑크 2077은 꽤나 입체적이다. 특히 도시 중심가 지역으로 올수록 건물들의 높이가 치솟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같은 맵 상에서도 상하 활용도가 매우 크다. 대형 건물의 경우 층 별로 입점해 있는 가게나 시설들이 각기 다르고, 지하 상가나 공중정원, 고가도로, 공중 이동수단 등 굉장히 맵을 다채롭게 사용한다. 물론 게임 내 모든 건물에 다 들어갈 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꽤 많은 건물들이 안쪽까지 구현돼 있다.
물론 GTA도 5편쯤 되면 전작들에 비해 꽤나 입체적으로 맵을 사용하긴 한다. 그러나 사이버펑크 2077을 플레이 하고 나면 상당히 평면적이라는 인상이 든다. 물론 GTA 6가 나오면 팽팽한 경쟁이 가능하겠지만, 아직 소식이 없으므로 제외하자. 어쨌든, 단순히 높은 건물들이 길 양옆을 막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구현해 냈다는 점은 확실히 마천루형 미래도시를 그려낸 사이버펑크 2077만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2. 초인적 이동 등 신체능력에 비례해 자유도 ↑
이렇게 입체적인 맵을 그냥 걷거나 차량으로 평범하게 돌아다니기만 해서야 재미가 없다. 모름지기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날아다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데, 사이버펑크 2077은 이를 신체 강화로 해결했다.
게임 내에서는 다리와 팔 등을 개조해 이동성과 자유도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다리 개조는 더블 점프나 슈퍼 점프 등을 가능케 해 평소에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도 쉽게 갈 수 있으며, 팔이나 해킹 개조를 통해 잠긴 문을 뜯어내거나 풀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GTA의 경우 비행기를 타고 넓은 맵을 누비는 것은 가능하지만, 도시 내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려면 치트를 쓰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3. NPC를 엿보고 대화하는 즐거움
GTA 시리즈는 시작부터 액션 게임이었고, 현재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반면, 사이버펑크 2077은 위쳐 시리즈부터 이어져 온 RPG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애매하긴 하지만 나름 크다. 캐릭터 성장 뿐 아니라, NPC를 다루는 자세에서도 두 게임은 서로 다르다. GTA의 경우 주요 NPC가 아닌 일반적인 엑스트라 캐릭터는 과거엔 배경에 가까웠다. 총소리가 들리면 무서워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도망치고, 차나 돈을 갖다 바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5편에 이르러서는 플레이어 곁을 지나갈 때 잡담 등을 하기 시작했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그게 다다.
GTA 5로부터 7년 후 나온 사이버펑크 2077은 RPG 요소를 받아들여 한층 더 진화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게임 내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 99%와는 상호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엑스트라 캐릭터의 경우 대화 수준의 인사나 시비 걸기 정도에서 끝나긴 하지만, 나름 얻을 만한 정보가 있는 경우도 많다. 몇몇 캐릭터는 말 잘못 걸면 싸움을 걸기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RPG 내 일반 NPC들과 대화를 나눌 때 즐거움을 오픈월드에서 느낄 수 있다고 표현 가능하겠다.
여기에 플레이어가 장착한 사이버웨어 안구를 통해 길을 가는 사람들의 대략적인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흡사 와치독: 리전처럼 말이다. 확인 가능한 정보는 이름이나 직업, 신분, 소속 갱단, 범죄 사실 등인데, 이를 통해 NPC들이 조금 더 사람처럼 느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4. 한국어 음성 더빙으로 생동감 업
이런 NPC와의 대화나 일상생활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한국어 음성 더빙이다. 지난 6월 체험판 때는 영어 음성+한국어 자막으로 플레이 했는데, 주요 이벤트가 아닌 스쳐 지나가는 대화의 경우 캐릭터 머리 위에 오버레이 된 자막을 하나하나 읽어야 해서 다소 불편했다. 물론 GTA 5의 경우 이런 일상 대화는 아예 번역도 안 돼 있기에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대화들이 한국어 음성 더빙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 굳이 목 아프게 사람 머리 위를 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대화를 귀로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단연 국내 출시된 오픈월드 게임 사상 최고 수준의 이해도를 자랑하는데, 직접 게임 내에서 조작하며 듣고 느껴봐야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멕시코, 중국, 일본 등에서 막 건너와서 현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말은 음성 번역이 되지 않는다. 나름 디테일이 살아 있는 부분인데, 일본이나 남미, 중국 게이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5.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송과 간판들
GTA 시리즈는 실제 존재하는 미국 내 도시들을 게임 내에 재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확실히 완성도 높은 오픈월드임은 분명하지만, 간혹 도시 전체에 생기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유는 시선을 끄는 광고나 그로 인한 소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범죄 액션이 주가 되는 GTA에서 이러한 점은 엄밀히 불필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굳이 구현하려면 인력과 예산이 쓸데없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사이버펑크 2077은 이러한 광고가 게임의 핵심 요소다. 소비자의 권리 따위 무시한 채, 다소 폭력적으로 노출되는 기업의 광고들은 도시 곳곳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살려줄 뿐 아니라, 게임 내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실제로 CDPR에는 게임 내 광고만 전문으로 만드는 팀이 따로 존재하는데, 인원도 10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광고는 게임 곳곳에서 분위기 연출 뿐 아니라 2077년 가상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간혹 실제 도시에 관광을 온 느낌까지 준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각종 방송이다. 엘리베이터 내 전광판, 노점이나 식당 내 TV 등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방송을 틀어준다. 내용도 토크쇼에서 리뷰, 예능, 중간광고, 정규광고, 추가광고, 광고 사이 광고 등 다양하다. 이 역시 전면 한국어 더빙이 이루어져 있어, 이것만 쳐다봐도 시간이 후딱 간다. 물론 게임을 오래 즐기다 보면 한 번 나온 광고나 방송이 반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요소들은 배경에 자연스럽게 존재하기만 해도 플러스 요소다. GTA 5의 경우 라디오 방송이 이를 대체하기는 하지만,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 무슨 소린지 통 알아듣기 힘들 뿐이다.
6.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
사이버펑크 2077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대화 도중 어떤 대답을 고르느냐, 미션 도중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일상 생활을 보내는 도중 누구와 어떻게 연락을 하느냐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죽기도, 살기도, 적대적 관계가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직 2, 3회차 플레이에 접어들지는 못했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세계에 크든 작든 영향이 가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 부분은 GTA 보다는 위쳐나 스카이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등과 비교해야 맞을 것이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젤다가 아닐까 싶은데, 아직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그처럼 극적인 변화까진 만나지 못했다. 장르나 콘셉트, 배경 자체가 워낙 다르니 젤다 수준의 세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근미래 대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는 것은 확실히 GTA에선 별로 경험하지 못 한 일이다.
7. 대놓고 멋지게 만들어 놓은 경치
풍경 또한 비교 불가다. 그래픽 수준 차이를 제외하면, GTA 5와 사이버펑크 2077의 미적 방향은 추구하는 목표가 조금 다르다. GTA의 경우 현실에 존재하는 각종 랜드마크와 도시 모습을 사실에 기반해 약간 축소시켜서 구현했다. 즉, 포인트는 스케일과 재현도다. GTA 6에선 어떤 도시를 그릴 것인지가 벌써부터 대중의 관심사인 이유다.
반면, 사이버펑크 2077의 무대인 나이트 시티는 현실에 없는 도시다. 따라서 재현이라고 할 건 없으며, 스케일 역시 도시 하나만을 다뤘기에 대도시 세 개와 그 사이의 황무지, 소규모 마을과 시설들까지 다룬 GTA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세상에 없는 미래 도시를 3차원 공간에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현실 기반인 GTA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행위다.
그렇게 그려낸 풍경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도심에서는 어딜 바라봐도 장관이 연출되며, 그런 도시 한복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진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미래 도시에 관광을 온 느낌이 난다. 오죽하면 자동차를 타고 외곽을 돌다가 경치 감상하러 잠시 내려 사진 찍고 가는 현실 속 관광 행위를 실제로 하게 될 정도다.
8. 사펑에는 키아누 리브스가 있다, GTA는 누가 있나?
마지막은 다소 우스갯소리지만, 키아누 리브스의 존재다. 물론 GTA 5 트레버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뽐내긴 했지만, 그래도 키아누 리브스에겐 역부족인 듯 싶다. 이를 제압하려면, GTA 6에선 대체 누가 나와야 할까? 라이언 레이놀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호아킨 피닉스? 어찌됐든 키아누의 존재감을 능가할 만한 배역은 찾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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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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