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쇼 로망'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를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얼핏 보면 과거를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될까 싶지만, 당시 일본이 제국주의를 앞세워 주변 나라들을 식민 지배하고 물자를 수탈하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일본 본토만 호황을 누렸기에 당시를 '로망'이라며 미화하는 것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그러다 보니, 서양 문물과 일본 전통이 뒤섞인 '화양절충'형 복장이나 당대 문화를 다룬 콘텐츠는 항상 '다이쇼 로망'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2019년에는 파이널 판타지 14의 중국 서버에서 '동방학생복'이라는 이름으로 다이쇼 풍 코스튬을 출시했다 논란을 샀고, 이와 관련된 진통을 겪은 끝에 해당 아이템은 국내 서버에 출시되지 않았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최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 하츠네 미쿠'에서 다이쇼 풍 의상이 공개된 것이다. 정확히는 25일 일본 서비스 공식 방송에서 진행한 의상 콘테스트의 '레트로' 주제 당선작이 화양절충형 콘셉트였고, 해당 의상을 향후 공식 판매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그러자 일각에서 다이쇼 로망 의상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으며, 26일 국내 서비스사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향후 한국 서버에서 해당 의상을 판매하거나 지급하지 않을 계획입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단순히 보면 국내 정서에 맞지 않는 일부 아이템에 대한 유저 항의가 일어나고, 그에 맞춰 게임 서비스사가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다이쇼 로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의문 제기와 함께 '선택형 항의'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이쇼 로망이라며 논란이 된 일부 게임과 비교해 봤을 때 훨씬 더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왜 논란을 제기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귀멸의 칼날은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화양절충'형 의상을 입고 다이쇼 풍 도시를 누빈다. 사쿠라 대전 시리즈 역시 내용상으로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대체역사 게임이지만, 게임 내에서는 아름다운 다이쇼 시대 문물과 풍경이 그려진다. '선택형 항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위 작품들은 아무 문제 없이 국내에 출시됐는데 왜 일부 게임에만 트집을 잡느냐'라며 무분별한 반대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가 옳은지에 대한 정답은 쉽게 내리기 어렵다. 당대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 게이머 입장에서는 다이쇼 로망이 떠오르는 아이템이나 게임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우익주의자들이 다이쇼 시대와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엄중 경고하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불매운동을 펼치는 것은 가장 쉬운 동참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어디까지가 다이쇼 로망이고 어디까지가 과거에 대한 재해석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과거를 다룬 게임이나 콘텐츠라고 해서 무조건 다이쇼 로망인 것도 아니며, 얼핏 아닌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도 혐한이나 과거 미화의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넓게 보면 의복, 주거, 식문화, 정치 상황 등 다분야에 걸쳐 있는 역사적 시대 하나를 통째로 없는 셈 쳐야 하며, 좁게 본다면 해당 콘텐츠에 '로망'의 의도가 포함됐는지 아닌지를 하나하나 따져 봐야 한다. 후자의 경우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기가 어렵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이 논란의 뿌리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교육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다. 일본에게는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배를 하고, 타국의 부를 수탈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른 과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70년 넘게 일본 정부는 이를 부정하거나 덮고 넘어가려 하며, 역사교육 역시 왜곡하거나 축소시켜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다이쇼 로망 관련 논란이 지금처럼 거세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는 국내 게임사들이 제각기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다이쇼 로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디까지 허용 범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기준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논란에 휩싸인 국내 게임사 다수는 논란이 일어나면 고개를 숙이고, 논란이 없으면 그대로 진행하는 줏대 없는 기준으로 또 하나의 논란을 낳고 있다. 어떤 기준을 선택하든 반발에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기준만이라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 리스크 최소화만 시야에 둔 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대응하다간, '귀에 걸어라', '코에 걸어라' 라는 외부 의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불명확한 게이머들이 싸우게 내버려두지 말고, 다소의 반발이 있더라도 뚜렷한 기준을 내세우는 편이 훗날을 위해서는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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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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