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팀에서 판매 중인 선정적인 게임, 소위 ‘야겜’의 국내 접속이 차단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올해 6월에는 오크 마사지 등이 차단됐고, 지난 14일에는 한국어를 공식 지원하던 멜티즈 퀘스트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스팀 성인 게임 차단이 급증한 직접적 이유는 관련 민원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크 마사지에 대해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는 민원 접수 후 모니터링을 한 결과 국내에 출시할 수 없는 등급 거부 수준이라 판단되어 밸브 측에 차단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멜티즈 퀘스트를 비롯한 '야겜' 역시 비슷한 경우다.
모니터링 인력 부족, 회색지대에 놓인 글로벌 ESD
과거 게임위 출범 당시, 게임위는 국내 유통되는 모든 게임에 대해 연령등급을 매겼다. 그러나 산업 발전에 맞춰 과거 PC온라인게임에 비해 개발 진입장벽이 낮았던 모바일게임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게임 수가 급증했고, 모든 게임을 심사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특정 자격을 갖춘 유통사가 스스로 게임을 심의할 수 있는 자율심의를 도입했다. 이후 게임위는 사후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전과 같은 모니터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범위는 바다이야기 이후 지속적으로 단속 중인 불법 사행성 게임과 청소년을 포함한 대중에 많이 노출되는 모바일게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스팀은 회색지대로 남아 있었다.
사실 게임위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2021 게임 등급분류 및 사후관리 연감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등급분류 건수는 98만 4,843개에 달했다. 이 기간에 게임위 모니터링 인력은 200명에 불과했다. 100만 개에 달하는 게임을 100% 인력으로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해 상반기에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한 자동화 검색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이것으로 모두 커버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그 와중 자율심의 사업자 자격을 획득하지 않고 하루에만 게임 수십 개가 출시되는 스팀에 대한 게임위 입장은 상당히 모호했다. 게이머 여론을 감안해 국내 접속을 전면 차단할 수는 없고, 강제로 법 안으로 끌어들이자니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팀은 앞서 이야기한 회색지대처럼 방치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모자이크나 가림막도 없는 게임도 포함돼 있었다. 스팀 내에서 성인 콘텐츠를 구분하긴 하지만, 사용자가 입력한 생년월일 정보만으로 별도 인증 없이 제공하기에 사실상 미성년자에게도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팀 ‘야겜’에 대한 민원이 접수됐고, 공공기관인 게임위는 이에 대응한 것이다.
오크 마사지 사태 후 4달이 지난 현재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블루 아카이브 등급재분류와 결을 같이 한다. 블루 아카이브 김용하 총괄 PD는 지난 4일, 공식 커뮤니티를 통해 게임위로부터 내용을 수정하거나 연령등급을 높이라는 권고를 받았고, 이에 원래 버전에서 수정한 ‘틴 버전’을 별도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후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 모바일게임 다수에서 연령등급 조정 관련 공지가 게시되며 관련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고, 급기야 국정감사 사안으로까지 올라갔다.
이에 대해 게임위 측은 블루 아카이브 틴 버전 관련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에 수 천 건에 달하는 중복 민원이 접수되어, 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취지를 충분히 이해했으니 중복 민원을 넣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가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이상헌 의원이 게임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관련 민원은 블루 아카이브 1만 4,628건, 앙상블 스타즈 2,892건, 명일방주 888건, 페이트 그랜드 오더 393건 순이었고, 게임위 김규철 위원장은 지난 13일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10년치 민원이 1주일에 몰렸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기간에 민원이 집중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불거진 유저 간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민원은 앞서 언급한 멜티즈 퀘스트 등 스팀에 출시된 ‘야겜’ 접속 차단으로도 이어졌다.
차단 범위가 스팀 전체로 확대된다면?
사실 원인이 어찌됐건 현행 국내법과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 볼 때 '야겜' 차단 자체는 옳은 일이다. 그간 인력부족으로 스팀을 샅샅이 살펴보지 못한 게임위 정보망을 국민 제보가 보조해준 구도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팀에서 서비스되는 '야겜'들을 살펴보면 국내법 한계를 아득히 초과하는 경우가 많기에, 지금처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하는 것이 차선책일지도 모른다.
다만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대처할 수는 없다. 이번에 발생한 민원 급등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며, 가장 큰 부분은 민원 범위가 ‘야겜’을 넘어서 차단될 요소가 없는 일반 스팀 게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팀에 출시된 게임 중 대다수는 국내 심의를 받지 않은 타이틀인데, 이에 대한 민원이 발생할 경우 게임위는 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 최악의 경우 스팀 전체에 대한 국내 접속 차단도 검토될 수 있다. 실제로 게임위 김규철 위원장은 13일 국정감사에서 "스팀은 골칫거리"라고 발언한 바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이 스팀과 같은 글로벌 ESD(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지고, 개정됐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되는 게임을 기반으로 제정된 법이기에, 게임 국경이 사라진 지금은 맞지 않는 측면이 여럿 존재한다. 법을 전면 개정하지 않는다면, 현재 가장 빨리 도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밸브가 구글, 애플과 같은 자율심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오크 마사지 차단과 관련해 게임위는 본지를 통해 “(밸브는)개별 게임에 대한 요청에 대해서는 협조적이지만, (자율심의 사업자 관련해서는) 답변이 없다”라며 “스팀의 경우 국제등급분류연합인 IARC에도 가입되지 않은 독립적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심의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게임의 다양성 측면에서 스팀이 갖는 강점일 수 있다. 다만 그 빈틈을 파고 드는 타이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스팀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고 직접적인 성행위를 모사한 게임도 적지 않고, 일부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선정적 요소가 없지만, 우회적으로 후속패치를 배포해 이 같은 콘텐츠를 넣기도 한다. 혹자는 ‘성인이 성인 게임을 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 있으나, 앞서 설명했듯 스팀은 청소년도 많이 이용하며 연령인증은 유저 스스로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것이 전부다.
밸브가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엔 ‘국내에 출시되는 게임은 모두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임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게임업계는 특정 국가기관이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했음을 인정하고,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의 역차별이 없도록 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을 논의할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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