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신 게임들은 그래픽이 날로 좋아지고 묘사력도 뛰어나다. 누구나 개발자가 전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작용으로 상상력이 개입할 곳이 마땅치 않다. 반면, 과거에는 그래픽적인 한계를 연출과 상상력으로 커버하다 보니 오히려 최신 게임보다 몰입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픽 발전이 반드시 높은 몰입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특히 공포게임 분야에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 돋보인다. 낮은 수준의 그래픽 묘사를 '불쾌한 골짜기' 효과로 이용한다던가, 일부러 시야를 제한시켜 극한의 공포를 이끌어내고, 실사를 채용한 이미지가 깜짝 등장해 '이거 게임 속 시스템 맞아?'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신 게임들도 일부러 과거 풍 그래픽을 채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오늘은 그래픽이 안 좋아서 더 무서운 공포게임을 한데 모아 보았다. 참고로 이들은 그래픽이 좋아지자 오히려 공포가 희석되기도 한다.
TOP 5. 사혼곡: 사이렌
PS2 최고의 공포게임으로 손꼽히는 '사혼곡: 사이렌'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실사풍 그래픽을 추구한 작품이다. 실사 캡쳐와 그래픽을 적절히 섞어 만든 그래픽은 지금 봐도 상당한 수준이었으나, 하드웨어적 한계로 인해 어느 정도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체적으로 흐릿하고 안개가 낀 듯한 필터를 씌웠는데, 이러한 효과가 게임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현실감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쾌함과 심리적 압박은 점프 스케어가 거의 없는 이 게임의 최고 공포 포인트다.
이러한 매력은 PS2로 나온 사이렌 2까지 이어졌지만, PS3로 나온 리메이크작인 사이렌: 뉴 트랜스레이션에서는 그래픽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이런 흐릿함이 걷혀버렸다. 덕분에 공포감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혹평과 함께 시리즈 중 가장 혹평을 받는 상황이다.
TOP 4. 나이트 오브 더 컨슈머
2020년 출시된 나이트 오브 더 컨슈머는 이번 기사에 오른 다섯 게임 중 가장 최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그래픽을 보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구성이다. 투박함을 넘어 기괴함까지 느껴지는 이 그래픽으로 묘사된 마트 점장과 손님들의 모습은 현세에 강림한 괴물 같기도 하다.
사실, 실제 게임은 공포라기 보다는 진상과 갑질에 시달리는 블랙 유머에 가깝다. 물건을 아무데나 흩어놓거나 이상한 질문을 마구 해대고 화를 내는 손님들, 제한 시간 내에 일을 다 못 했다는 이유로 악마처럼 나타나 포효를 지르는 매니저... 그들의 모습은 특유의 기괴한 그래픽과 만나 훌륭한 공포게임으로 거듭난다. 만약 사실적 그래픽으로 묘사됐으면, 그저 짜증나는 마트 직원 시뮬레이터에서 끝났을 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 거친 그래픽의 위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TOP 3. 프레디의 피자가게
귀신들린 인형들이 밤중에 사람을 습격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프레디의 피자가게 시리즈. 그 주역이 되는 인형 '애니메트로닉스'들의 기괴한 모습이 게임의 핵심 공포를 담당한다. 단순한 인형일 뿐인데 왜 이렇게 무서운가 생각해 보면,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크게 작용하지 않나 싶다. 실제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듯한 어설픈 모습과 동작의 애니메트로닉스들을 보면, 정말 악마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래픽이 발전하자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더 이상 예전처럼 무섭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게임성이나 연출적 측면도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래픽 발전으로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사라져 버린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심지어 최근에는 실사 영화까지 발표됐는데, 트레일러에 나온 애니메트로닉스는 게임 1편의 그것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그래픽이 좋아졌음에도 공포감은 100배 정도 희석된 느낌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TOP 2. 화이트데이
2001년, 국내 게임업계를 떠들썩하게 달군 공포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손노리의 화이트데이다. 당시 기준으로도 그래픽이 아주 좋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어두운 학교 내부를 배경으로해 이러한 약점을 상당히 상쇄시켰다. 게다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플레이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는 수위 아저씨의 모습은 당시 많은 게이머들이 밤중에 비명을 지르다 부모님에게 등짝을 맞게 하는 주범이기도 했다. 절대 경험담이 아니다.
어쨌든, 화이트데이의 무서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거친 3D 그래픽 속에서 갑자기 실사형 '머리귀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귀신은 당시 화이트데이를 개발했던 이은석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심령사진을 게임에 삽입해 놓았던 것인데, 혼자 따로 노는 그래픽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무서움은 훗날 출시된 리메이크나 후속작인 화이트데이 2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을 샀다.
TOP 1. 카마이타치의 밤
1994년 슈퍼패미컴으로 발매된 카마이타치의 밤은 무려 '사운드 노벨'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게임이다. 기본은 추리 장르의 비주얼 노벨이지만, 비주얼을 최소화하고 대신에 텍스트와 사운드에 집중한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그림자 느낌 실루엣만으로 비춰지고, 대신에 장소와 현장만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에 당시 게임답지 않게 사실적이고 다양한 사운드를 동원해, 상상력을 극대화한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실사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러한 매력은 그래픽을 입혀낸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실종됐다. 애니메이션 풍 일러스트로 캐릭터들을 그려냈으나, 진지하고 어두운 원작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잇따랐다. 사실 작화 문제라기 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했던 게임에 억지로 이미지를 끼워넣은 기획 자체가 문제였지만, 어쨌든 원작 특유의 느낌은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후 등장한 실사 기반 사운드 노벨들도 카마이타치의 밤 이상 가는 게임이 없다는 것을 보자면, 당시 시스템을 십분 이용해 최고의 공포를 구현한 명작이라고밖에 칭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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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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