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몇몇 파워서플라이를 소개하는 기사나 브로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하프브릿지(Half-Bridge)’와 ‘더블포워드(Double Forward)’란 용어입니다. 두 어휘는 한 문장에 같이 사용되는 예가 많고, 대개 더블포워드 방식으로 회로를 설계해 효율이 높고 안정성이 우수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하프브릿지보다 더블포워드 방식이 좀 더 우수한 구조를 가졌다는 의미일 텐데, 소비자들로서는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파워서플라이의 외관만으로는 이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요. 설혹 이 용어들을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전기분야에 정통한 소비자가 아니라면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런 문제로 각종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하프브릿지와 더블포워드란 용어는 그저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는 수준의 전문용어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필자는 이것이 궁금해 전문가에게 두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기술적 특징을 알려달라 요청했다 면박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기본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하루 8시간씩, 적어도 일주일은 가르쳐야 이해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적 문제를 십분 만에 가르쳐 달라고 보채는 꼴이라고 하더군요.
◆ 하프브릿지와 더블포워드
PC의 파워서플라이는 SMPS(Switching Mode Power Supply) 방식의 파워서플라이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됐건 전력용 MOSFET 등 반도체 소자를 스위치로 사용해 직류전기를 구형파 형태의 전기로 변환하고, 필터를 통해 이를 직류전기로 바꾸는 장치입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기존 리니어 방식에 비해 내구성이 높고, 소형화와 경량화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이런 SMPS는 회로의 방식에 따라 비절전형, 절연형 등으로 다시 나뉘는데, 하프브릿지와 더블포워드는 풀브릿지, 푸시풀, 포워드, 플라이백 등과 함께 절연형 방식으로 구분됩니다. 이 중 PC의 파워서플라이에 두 가지 방식이 흔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 좌:하프브릿지, 우:포워드 ]
하프브릿지 방식(좌)은 일반적으로 과거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사용하는 부품 숫자가 많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불량이나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포워드 방식(우)는 개발된 지 50여 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첨단 반도체 기술 등을 적용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포워드 방식은 안정성이 뛰어나 고신뢰성이 요구되는 통신용 전원 등에 폭 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포워드방식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대개 이 방식은 500W급의 중전력의 파워서플라이에 적합하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더블포워드 방식입니다. 포워드 컨버터 두 개를 연결시켜 어느 쪽으로 전류가 흐르던 지속적으로 동작할 수 있게 만들어 출력의 대용량화를 꾀하고, 포워드 방식의 장점인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만든 것이지요.
[위:하프브릿지, 아래:포워드]
이를 파워서플라이 전체로 확대해보면 위와 같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조의 하프브릿지 방식과, 상대적으로 간단한 구조인 포워드 방식의 차이를 한 눈에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류부의 다이오드, SMPS 콘트롤러 등 최신의 반도체 기술이 접목된 칩셋을 제어에 활용하며 그 구조를 단순화 시킬 수 있던 것이지요. 구조가 단순해진 만큼 신뢰성과 고장의 위험 등이 줄어들었습니다. 재미있게도 고품질의 부품을 사용하는 탓에 가격은 상대적으로 고가에 형성될 수밖에 없게 됐지만요.
그렇다고 더블포워드가 하프브릿지를 밀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파워서플라이라 보기도 애매한 점이 많습니다. 과거부터 ‘품질’을 중시하는 마니아들은 그에 합당한 수준의 파워서플라이를 사용해 왔는데, 비교적 고품질, 고가격으로 인정받고 있는 파워서플라이 대부분이 더블포워드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하프브릿지가 나쁜 방식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작은 전기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하프브릿지는 구조적으로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사용하는 부품의 숫자가 많은 만큼 고장이나 불량의 위험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블포워드 방식이 80% 이상의 고효율 파워서플라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반면 하프브릿지 방식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회로가 간단하고, 정밀한 반도체 등으로 제어되므로 더블포워드 방식은 전반적인 전력의 손실 역시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하프브릿지 방식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도 있습니다.이를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하면 좋았을 것을, 하프브릿지 방식에 사용하는 콘덴서, 각종 권선과 코일, 저항 등을 저급 부품으로 사용해 높은 출력 대비 낮은 가격을 구현하는 방식이 결국 문제의 발단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출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랄 만큼 낮은 가격에 파워서플라이를 제공하려면 결국 어디선가 타협점을 찾아야 하고, 출력대비 제조원가를 낮출 여지가 있는 하프브릿지 방식이 이런 시장에 선호되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 그래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는 소비자들 대부분이 이 두 방식의 차이점과 구조를 숙지하고, 제품의 내부 이미지만으로 어떤 방식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런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걸까요?
이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비싸고, 무겁고, 효율이 높은 파워서플라이를 구매하면 더블포워드 방식일 확률이 99% 이상이라 보셔도 좋습니다.
고품질의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 탓에 간단한 내부구조에도 불구하고 더블포워드 방식의 파워서플라이는 가격이 다소 고가에 형성돼 있습니다. 최근 관련 부품시장이 확대됐고, 다양한 제조사들이 이 방식을 기반으로 파워서플라이를 제조하고 있어 원가의 하락이 뒤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블포워드 방식의 파워서플라이는 동급모델 중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해있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역시 효율의 문제입니다. 80% 이상의 높은 효율을 달성한 파워서플라이를 선택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고효율의 파워서플라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사용하는 부품 하나하나가 고효율의 제품이어야 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높은 출력을 보장한다는 파워서플라이가 이에 해당할 리 없겠지요?
◆ 조금만 신경 쓰고, 조금만 더 투자합시다
파워서플라이는 CPU나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과 같이 성능의 지표가 눈으로 확연히 보이지 않는 제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소비자들의 인식도 매우 낮은 편입니다. 동급용량이면 가장 저렴한 제품이 아직도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제품일 정도로 파워서플라이의 절대적 선택기준은 아직도 ‘가격’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파워서플라이는 시스템 전반에 전력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기기입니다. 첨단의 디지털기기인 PC에 전력을 공급하는, 아날로그의 잔재가 남아있는 기기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반도체와 달리 제조자의 정성과 질 좋은 부품의 선별 등으로부터 커다란 차이가 만들어지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예기치 않은 순간 미처 손 쓸 겨를 없이 벌어지는 불의의 사태를 당하고 보면, 파워서플라이가 시스템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관련기업들에게만 화살을 돌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제품을 선택했다면, 일명 ‘묻지마’파워 시장이 성장했을 리 없겠지요. 물론, 저와 같이 미디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미흡했던 점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좋은 시스템만큼 충분한 신뢰를 보내도 좋을 파워서플라이를 선택하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약간의 비용이 더 소요되더라도 말이지요.
지난 십여 년 이상 국내시장에 양질의 파워서플라이를 공급해온 한미마이크로닉스의 박정수 과장은 “하프브릿지 방식이 위험한 게 아니라, 이를 악용하는 파워서플라이 제조/수입업자들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구조적으로 500W 이상의 출력을 달성하기 어려운 하프브릿지 방식의 제품에 그보다 높은 용량이 표기돼 판매되는 예가 많고, 이런 제품들이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미마이크로닉스는 보급형 1종을 제외하고 모든 파워서플라이 제품군을 더블포워드방식으로 구성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피해를 막고 올바른 파워서플라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아울러 “파워서플라이 시장의 가격이 이미 하향평준화 돼 있으므로 너무 저가제품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품질과 브랜드가 확립된 제품을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