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64.8%, 세탁기 98.9%, 냉장고 98.1%, 청소기 97.6%. 몇 년 전, 일본경제신문이 조사한 일본의 가전제품 보급률은 위와 같았다. 이 같은 시장의 포화는 필연적인 수요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수요의 감소는 동일 영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여러 기업에게 치명타로 작용한다.
그런데, 특정 카테고리의 제품을 대다수 소비자들이 보유한다고 해서 그 시장이 줄어들기만 할까? 어떤 기업은 이런 상황에서 때아닌 호재를 맞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시장 대부분은 몇몇 기업의 전유물이 되고야 마는 예를 우리는 꽤나 여러 차례 목도해왔다.
삼성과 LG의 점령으로 대변되는 TV시장이 그러했고, 손목시계, 위스키 시장 역시 그렇게 정리됐다. 결과적으로 이긴 기업은 돈방석에 올랐고, 뒤쳐진 기업은 내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핵심 키워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마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핵심은 ‘다름’일 것이다. 누구나 가진 제품이라면, 예전과 동일한 패러다임을 쫒는 제품에 소비자들이 다시 눈길을 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시장엔 독특한 시각과 각종 기술적 혁신을 과감히 접목한 제품들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그것이 엄청난 가격의 제품이 되더라도 말이다. 이 때문에 이런 시장은 아주 저렴한 제품과 아주 비싼 제품으로 양분화되는 재미있는 양극화를 겪기도 한다.
■ 성숙 단계에 접어든 PC 시장, 고부가가치 상품만이 답이다
게이밍 기어 시장을 논하는 마지막 기사에서 뜬금없이 무슨 얘긴가 하겠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PC시장 역시 이런 안정화 단계를 지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쪽에선 스마트폰·태블릿이 무섭게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고, 지난 몇년간 사용해오던 PC는 아직도 쌩쌩하게 구동되는 환경에서 소비자가 새 PC를 구매할 계획을 세우는 건 기실 매우 어렵다.
얼마 전, 모 전자기업이 출시한 최대용량의 프리미엄 냉장고가 날개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는 기사를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PC시장 역시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종래에 PC시장은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새 PC로 교체하려는 수요와, 최고를 가지려는 수요로 극명하게 양분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결과적으로 아주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거나, 차라리 매우 비싸도 타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온갖 장점과 특징을 담은 기기를 내놓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 스카이디지탈 nKEYBOARD 메카닉 로봇 ]
게이밍 기어 시장은 그래서 PC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PC만큼 화려한 그래픽과 현란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디바이스는 결단코 없다. 그러므로 게이머들은 고사양 시스템만큼이나 이에 어울리는 각종 주변기기를 원하게 될 테고, 이를 충족시켜줄 다양한 하드웨어는 결국 게이밍 기어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침체일로의 PC시장에서도 유독 게이밍 기어 시장만큼은 성장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 시장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최근 국내 시장에도 고가의 게이밍 기어 제품 출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는 새로운 시장 환경을 그대로 증명하는 가장 적확한 방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현상이다. 지금껏 7편의 기획기사를 통해 둘러본 제품 전반이 기존의 주변기기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고가의 상품인 이유 역시 이런 시장 상황에 있다.
게이밍 기어 시리즈를 모두 읽어온 독자라면, 소개되는 제품이 하나같이 가격보다 품질과 독특한 매력,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는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제품이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안정화 시기에 접어든 PC시장은 결국 이렇게 고부가 가치상품 위주로 재편될 수밖에 없고, 게이밍 기어는 이런 고부가가치 상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 커세어 벤젼스 시리즈 ]
양극화 일로에 있는 PC시장은 향후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욕구를 자극하는 제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력적인 보석으로 장식된 하드웨어, 최고급 재질을 아낌없이 사용한 키보드. 심지어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온갖 화려하고 독특한 장식을 가미한 키보드라고 출시되지 못할 이유가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 게이밍 기어, 마니아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게이밍 기어는 이런 흐름 속에 마니아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성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이 극단으로 성장하면, 결국 말초적인 부분에 시선이 집중된다고 한다. 미용산업이 최고조에 달하자 네일아트, 헤어 등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것과 같이, PC 시장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 화려한 외형과 더욱 많은 기능, 그리고 더욱 가치 있는 주변기기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 로켓 KONE XTD ]
향후 PC시장은 이런 프리미엄 제품과, 아주 저렴한 시장으로 양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프리미엄 PC를 완성하는 마지막 아이템이 바로 게이밍 기어가 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은 상황이다. 그것이 어려운 PC시장에서도 게이밍 기어만이 유독 성장세를 구가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이다.
현재 토종 브랜드 스카이디지탈부터 커세어, 로켓, 스틸, 매드캣츠, 해커, 레이저와 입출력 디바이스의 명가 로지텍,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이 시장을 손에 넣기 위해 뛰고 있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정체기에 다다른 시장을 나누기에 브랜드가 다소 많은 느낌이다.
게이밍 기어 시장은 더욱 성장하겠지만, 종래엔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몇몇 브랜드로 재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연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 이 험난한 경쟁을 이겨낼 것인가?", "어떤 브랜드가 최고의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것인가?"와 일맥상통할 이 질문을 게이밍 기어 업체들에게 던져볼 때다.
게이밍 기어 기업들은 이제 출발선에 선 입장이다. 그리고 시작과 함께 전력질주 해야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요소는 가격이 아니다. 가격에 민감한 시장은 따로 있다. 게이밍 기어는 독특해야 한다. 우수해야 한다. 정형화된 패러다임을 넘어야 한다. 자, 이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오국환 기자 sadcafe@it.co.kr
- 관련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