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매년 새로운 프로세서를 시장에 선보여왔다. 재미있게도, 인텔이 새로 선보이는 프로세서는 새로운 것이기도 하고, 아닌 것이기도 했다. 어딘가는 달라졌지만, 어딘가는 기존 프로세서의 특징을 이어받는 그들의 이런 전략은 지금껏 ‘틱-톡(Tic-Toc)’으로 알려져 왔다.
더 좋은 프로세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술적 진보가 요구된다. 하나는 우수한 성능을 발휘할 프로세서의 구조, 즉 ‘아키텍처’이며, 두 번째는 이런 구조의 프로세서를 동일한 웨이퍼에서 더욱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반도체의 '생산공정'이다.
■ 틱-톡 전략, 매해 새로운 프로세서를 선보이다
이 두 가지 기술 모두 짧은 시간 내에 급격히 발전시키기엔 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인텔은 이를 해결할 아주 매력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더구나 이 방식을 따르면, 매년 새로운 프로세서를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
반도체의 생산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두 가지 요소를 매년 하나씩 교체하는 방식이 인텔이 유지하고 있는 틱-톡 전략의 핵심이다. 프로세서의 구조를 변경할 때는 기존 공정에 이를 적용해 초기부터 높은 수율을 달성하고, 반대로 동일한 구조의 프로세서가 시중에 판매되는 동안 공정이 개선되면 이번엔 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공정을 개선한다(Die Shrink).
예컨대, 45nm 공정으로 생산된 ‘네할렘’은 이후 구조를 유지한 채 32nm 공정의 ‘웨스트미어’로 발전했다. 32nm 공정이 무르익자 인텔은 같은 공정에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해 ‘샌디브릿지’를 만들어냈다. 이후 샌디브릿지는 다시 구조를 유지한 채 22nm 공정인 ‘아이비브릿지’로 발전했다.
살펴보면, 두 번에 한 번 꼴로 구조가 변경됐고, 역시 두 번에 한 번 꼴로 공정이 발전했다. 결과적으로 2년에 한 번 구조가 개선되고, 동일하게 2년에 한번 공정이 개선되는 셈. 이 두 요소를 매 1년 사이로 배치해 인텔은 매년 새로운 프로세서를 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순서는? 당연히 22nm의 공정을 유지하며 아키텍처를 개선한 새로운 프로세서가 등장해 줄 시점이다. 시장의 기대가 뜨거운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공정이 바뀔 때에는 기실 소비자보다 제조사에게 더 큰 이득이 돌아간다. 동일한 구조의 프로세서를 더 미세화된 공정에서 생산하게 됨에 따라, 그만큼 생산량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물론, 공정개선에 따르는 전력소모의 감소 등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이라 할 수 있지만, 아키텍처의 변화만큼 드라마틱한 프로세서의 진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구조가 개선될 때에는 시장의 반응이 뜨거워진다. 새롭게 설계된 아키텍처가 과거의 프로세서와 얼마나 다를지에 온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바로 ‘하스웰’처럼 말이다.
하스웰은 전작인 아이비브릿지와 다른 아키텍처를 가진 프로세서다. 인텔의 틱-톡 전략에 따르면, ‘톡’의 순서가 되는 이 프로세서는 특히, 압도적인 수준으로 개선된 내장 그래픽의 성능,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된 전력관리 기능 등이 주목받고 있다.
■ 우수한 아키텍처, 개선된 전력효율
프로세서 시장을 손아귀에 넣고 있는 인텔도 한때 어려움에 처한 일이 있다. 경쟁사인 AMD에 시장의 절반을 빼앗긴 인텔이 절차탁마(切磋琢磨, 학문이나 덕행 등을 배우고 닦음) 끝에 내놓은 프로세서가 바로 인텔 코어 시리즈이다.
이 새로운 - 그러나 기실 아주 오래된 인텔 프로세서의 구조를 다시 뜯어 고친 - 프로세서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성능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를 기대감에 들뜨게 만들고 있는 하스웰까지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전작인 아이비브릿지와 출시 예정인 하스웰을 완전히 다른 구조의 프로세서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 그것이 하스웰과 아이비브릿지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하스웰의 프로세서 부분은 전작인 아이비브릿지에 비해 약 10% 내외의 성능 향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IT 미디어 등을 통해 서서히 그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만, 인텔은 아직까지 프로세서에 관련한 구체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DDR3/DDR3L 지원, 더 효율적인 전력관리를 위한 가변 TDP와 DDR 파워 게이팅, 파워 옵티마이저(Power Optimizer) 등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효과적인 파워 옵티마이저의 구성은 결국 전력을 공급하는 VRM(Voltage Regulator Module)을 프로세서 내부에 집적하는 과감함으로 나타났다. 메인보드에 VRM을 장착하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IVR(Integrated Voltage Regulator)은 보다 빠르고 정확한 전력의 공급, 더욱 효율적인 전력관리 등의 장점을 수반하게 된다. 비록 이를 프로세서 내부에 집적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다소 상승할 여지가 발생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 인텔은 극단적으로 낮은 전력만으로 최소한의 정보를 유지하는 새로운 레벨의 C-State를 추가했다. 새로 추가된 C8, C9, C10 기능이 동작하면, 프로세서는 고작 24MHz의 속도로 동작하며 배터리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다. 데스크톱 버전의 경우 C7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효율적인 전력관리를 위한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인텔 하스웰은 데스크톱보다 모바일에 더욱 어울리는 프로세서로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모바일 듀얼코어 프로세서는 11.5W(i5-4200Y), 15W와 28W(U 시리즈), 쿼드코어의 경우 47~57W의 TDP를 갖지만, 시스템이 하이버네이션 모드로 진입할 경우 전작인 아이비브릿지에 비해 1/6의 전력만을 소모하게 된다.
■ 하스웰의 핵심은 역시 ‘그래픽’
하스웰은 그 동안 얇고 가벼운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했던 ‘게이밍 퍼포먼스’를 만족시킬 것이란 주목을 받고 있다. 기실 그간의 울트라북은 이동성이 뛰어났지만, 사용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그래픽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별도의 GPU를 장착할라 치면, 이번엔 높은 전력소모가 발목을 잡았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웰은 아이비 브릿지에 비해 전력소모가 상당 수준 감소했다. 여기에 그래픽 성능까지 더욱 향상된다면, 전체적으로 배터리를 통한 사용 시간을 크게 늘이면서도 성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별도의 GPU를 장착하지 않아도 일반적인 수준의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때문일까? 인텔은 얼마 전, 하스웰에 탑재될 새로운 내장 그래픽에 '인텔 아이리스(IRIS)'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붙였다. 프로세서와 마지막 레벨의 캐시를 공유하는 구조를 가진 이 새로운 그래픽은 기존의 아이비브릿지에 비해 적어도 두배 이상 성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 동안 공개된 자료를 종합해 보면, i7-4650U에는 HD 5000(GT3/15W) 그래픽이, i7-4558U(GT3/28W)에는 아이리스(IRIS) 5100이 탑재되는 것으로 보인다. IRIS 5100의 경우 AMD의 라데온(RADEON) HD8570M 수준으로 파악되며, HD 5000은 지포스(GeForce) GT 435M 수준의 성능을 가진 것으로 예상된다.
하스웰 세대의 그래픽은 최상위 버전인 IRIS 5200이 더 존재한다. 이 모델은 대개 쿼드코어 모바일 프로세서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별도의 EDRAM을 프로세서와 MCM(Multi Chip Module)으로 묶은 방식이다. 이의 강력한 성능을 유추할 때, 세간에 알려진 GT 650M급 성능이란 소문이 뜬소문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인텔은 쿼드코어 모바일 프로세서에도 동일하게 최대 두 배의 성능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샌가 프로세서 시장도 모바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데스크톱은 아직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고, 또 거대하다.
인텔은 프로세서에 내장된 그래픽과 외장 그래픽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루시드 버추(Lucid Virtu) 기술을 이미 제공하고 있다. 하스웰에 이르러 3개의 독립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거나, 4K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등 활용 방식과 지원도 크게 강화됐다.
현재까지는 인텔이 공개한 데이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3배 가량의 획기적인 성능의 향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며칠만 기다리면…
하스웰은 6월 초 타이페이에서 개최되는 컴퓨텍스를 통해 시장에 데뷔할 예정이다. 정작 프로세서 부분은 그다지 알려진 바 없지만, 전반적으로 전 세대 아이비브릿지와 차별성을 나타낼 만큼의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고 있다.
시장의 중심이 급격히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고, 이에 적합한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선 과거 데스크톱 시절처럼 TDP가 얼마가 되어도 좋으니 성능만 최고로 올리자는 방식으론 더 이상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때문에 인텔은 프로세서의 성능을 유지하고, 그래픽 성능을 대폭 끌어올려 하나의 프로세서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솔루션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전력관리를 최적화하는 옵티마이저의 집적, 보다 빠른 그래픽 코어의 탑재 등은 하스웰이 변화한 시장 환경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제품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그것이 비록 데스크톱 영역에서 마니아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인텔은 하스웰과 실버몬트를 통해 아주 작은 스마트폰부터 초대형 메인프레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펙트럼을 커버하는 매력적인 라인업을 구축하게 됐다.
궁금하기는 필자도 마찬가지. 6월 3일이면 하스웰의 가려져 있던 나머지 베일들이 모두 벗겨진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오국환 기자 sadcafe@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