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을 만들고 싶다” 신생 업체 EPP소프트는 게임제작을 꿈꿔왔던 최재영 대표와 배문수 실장을 비롯한 핵심 멤버 몇 명이 설립한 회사다. 처녀작을 위해 그 밑거름이 되는 엔진부터 제작하게 됐는데, 의외로 성과가 좋아 엔진 개발사로 먼저 이름을 알리게 됐다. 상용엔진으로 발돋움한 E++엔진은 현재까지 7개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 그러나 EPP소프트는 엔진제작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애초에 ‘게임제작’을 위해 뭉친 만큼 손이 근질근질했던 것. 엔진판매로 어느 정도 자금도 확보했겠다, 이들은 바로 처녀작 생산에 나섰고 현재 테스트 빌드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발 참여인원은 9명, 제작 기간은 8개월, 게다가 장르는 논타겟팅을 기반으로 하는 MMORPG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론이다. 그 게임은 ‘진짜’로 존재했으니까. 열정과 실력의 앙상블이 이뤄낸 결과다. 최재영 대표는 게임을 얼마나 소개하고 싶었는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게임 명을 언급하기도 전에 무작정 시스템부터 소개하며 열변을 토했다. 급하시다 이분. 게임명은 ‘더 프리딕션(예언의 날)’이다.
▲ EPP소프트의 신작 게임 `더 프리딕션`
- “밤이 되면 몬스터도 졸리지 않을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EPP소프트는
MMORPG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판에 장르의 핵심요소인 상호작용(인터랙션)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아니, 이걸 아예 게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밀기로 마음먹었다. 월드를 낮과
밤으로 구분해 늦은 시간이 되면 몬스터가 잠드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차별화를 두어 몬스터와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으나, 체감 상 느껴지는
변화는 생각보다 덜 했다. 그래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바꿨다. 몬스터에게 액티브
시간을 부여한 것. 해당 시스템이 접목된 이후 모든 몬스터는 성향과 특징에 따라
잠드는 시간이 모두 다르게 설계됐고, 선공 형태의 몬스터라도 자다 깬 이후에도
바로 공격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자다 깨서는 바로 깽판 부리지
않잖아요.” 최재영 대표의 말이다. 이것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몬스터 외에
일부 NPC에게도 액티브 타임을 부여했다. 덕분에 진귀한 물건을 파는 희귀상인이
늦은 시간에만 등장하고, NPC들이 모여 야시장을 이뤄내는 연출도 가능하게 됐다.
맞다. 이렇게 센티멘털한 시각으로 접근한 게임이 바로 ‘더 프리딕션’이다.
-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 쑥스럽지만 시스템과 비주얼은 자신 있습니다” 엔진 자랑이다. 초기에 엔진 작업에 집중했던 회사인 만큼 ‘더 프리딕션’은 감히 9명이 8개월 만에 만든 게임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비주얼을 자랑했다. 특히 배경 디자인은 어느 게임과 맞붙어도 경쟁해볼만한 수준이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갈대숲이 바람에 갈리는 연출은 절로 감탄을 내뱉게 했다. 생소한 엔진이라 그런지 확실히 고유의 색깔이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캐릭터 디자인이나 전투 장면 등이 아직 부실해 보인다는 점. “이거 전투는 아직 완성이 안 된 거죠?” 절로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 스샷과 영상을 직접 판단해보자.
▲ 엔진의 성능을 볼 수 있는 게임의 그래픽
▲ 더 프리딕션 플레이 영상
- “콘텐츠로 승부 보려는 게임은 아닙니다” 변명처럼 들린다. 사실 변명이 맞을
지도 모른다. 개발진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수천, 수만 명이 몇 년이고
플레이해야 하는 장르를 단 8개월 만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게 ‘상호작용’이다. 몬스터와 NPC에 액티브 타임을 부여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국내 유저들의 정서나 게임문화를 모를 리도 없을 텐데, 이들은 ‘다 됐고,
일단 만렙부터’ 방식에 대해 릴렉스를 외치며 여럿이 모여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방향을 잡겠단다. 아니, 이런 시도를 했다가 안 된 게임이 한둘인가? 최재영 대표는
걱정을 하면서도 상호작용, 그러니까 유저 여럿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생활 콘텐츠’를
시스템적으로 잘 구현하면 즐거움이 더 클 것이라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체
이 ‘생활형 콘텐츠’의 정체가 뭘까? 생각보다 컸다. 바로 논타겟팅 전투와 금융
시스템, 그리고 ‘미니게임’처럼 설계된 전장 시스템이었으니까.
- “논타겟팅 전투는 액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고, 또 이상한 말이다. 논타겟팅 방식이 타겟팅 방식보다 우위에 있는 점은 리얼리티가 강화돼 액션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액션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란다. 일단 이 게임의 논타겟팅 방식은 후처리 타격 판정 시스템을 기반으로 마우스를 통한 타겟팅 방식과 결합된 형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쉽게 말해 ‘스타크래프트’에서 임요환의 마린이 럴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며 공격을 퍼붓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리니지2’처럼 마우스로 캐릭터를 이동시켜 적을 선택하고 때려잡는 방식인데, 논타겟팅 시스템은 모두 포용하고 있는 그런 형태랄까? 실제로 늑대 한 마리와 전투하는 광경을 봤는데, 플레이어가 몽둥이로 한 대치고 살짝 뒤로 빠지니까 늑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더라. 아니, 이런 깜찍한 전투를 보았나. 감기는 맛은 없지만 몰이사냥도 충분히 가능했다. 액션보다는, 몬스터와 전투를 하며 상호작용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시스템으로 보면 된다. 깨알 같지만 확실히 논타겟팅 전투도 맞다.
▲ 논타겟팅의 판정 시스템을 모두 흡수한 타겟팅 전투 방식이라고
- “사행성을 조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금융 시스템을 설명하며 최재영 대표가
걱정된다는 듯 뱉은 말이다. 금융 시스템은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렵지
않다. 실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저축, 보험, 리스, 주식, 할부, 대출 등의 금융상품을
게임 내에 구현한 것뿐. 부동산 시스템도 있다. 집을 직접 짓는 건 아니고, 국가에서
특정 지역에 “다리를 건설하시오”란 메시지를 간혹 띄우는데, 이때 입찰에 참여하면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다. 이후 일반 유저들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통행료를 지급하게
되고, 일정 수익 소유주에게 분배된다. 일종의 기능성 건물인 셈. 또 ‘특산품’
시스템이 있는데, 일부 아이템은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에 고렙이 된 유저라도
저렙 지역을 다시 밟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기능성 건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동산 시스템의 활용 폭이 넓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게임머니’ 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은행놀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저 아이템이 너무 사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된다. 제때 갚지 못하면 아이템을 강탈당하니 주의하자. 당신이 너무
가난하다고? 그렇다면 적금을 들고 서서히 자산을 불려가며 된다. 바로 이런 소소한
재미를 구현한 것이 금융 시스템이며,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적용을 앞두고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가 안 떴으면 AOS란 용어를 쓰지도 않았을 텐데” 전장 시스템을 소개하며 최재영 대표가 한 말이다. ‘더 프리딕션’의 전장은 대규모 인원이 어울려 싸우는 형태는 아니고, ‘와우’의 아라시전장처럼 인스턴스 존 내에서 진행된다. 대신 AOS 룰처럼 아군 병사들과 함께 특정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싸우는 등 다양한 모드를 지원한다. 때문에 전장 자체를 일종의 ‘미니게임’으로 볼 수 있고, 역시 상호작용이 주요 목적이다.
▲ EPP소프트 최재영 대표
- “최종 콘텐츠는 UCC 콘텐츠” 게임의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엔진에 있다.
시스템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고 지원도 빠르기 때문. 때문에 최재영
대표는 엔드 콘텐츠로 유저들이 직접 (인스턴스) 스테이지를 만들면서 스스로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언급했다. 금융 시스템과 전장은 물론 UCC 콘텐츠까지
지원되면 ‘생활형 콘텐츠’, 그러니까 상호작용하는 세계가 완벽하게 구출될 수
있다는 거다. 유저가 맵을 만들고 의견을 공유하면서 커뮤니티를 일궈 나가고, 세스코
같은 방범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본인 소유 건물에 적용해 둘 수도 있다. 구현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일단 그림 자체는 확실히 좋다.
방향만 보면 ‘울티마 온라인’이나 ‘아키에이지’가 절로 떠오를 정도니까.
- “우리를 이해해줄 수 있는 퍼블리셔를 찾습니다” 최재영 대표는 앞서 언급한데로 하루빨리 테스트를 하고 싶어 했다. 본인을 포함한 직원들 모두 게임을 너무 만들고 싶었던 만큼, 이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평가받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게임의 방향성을 이해해줄 수 있는 퍼블리셔를 찾고 싶다는 것도 이러한 의지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 정 안 되면, 1차 테스트는 자체 진행할 의향까지 있다고 하니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EPP소프트는 ‘더 프리딕션’의 첫 테스트를 오는 3월에 진행하고, 이후 한 차례의 테스트를 더 거친 뒤 6월 중에 공개 서비스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PC방에서 우리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다” 바로 이게 그들의 지금 목표다.
▲ EPP소프트 직원들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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