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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정도를 걷는 아날로그 개발자’ 김태곤 이사와 남한산성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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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똑 같은 사람, 똑 같은 질문, 똑 같은 장소,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새로움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기자도 사람이기에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이 정도인데, 독자들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라도 있지만, 매번 비슷한 사무실 벽지와 로고를 배경으로 똑 같은 얼굴을 보는 것도 고문이 아닐까?

기자, 김태곤 이사와 ‘남한산성 땡땡이’ 치다

기자는 인터뷰를 핑계 삼아 이른바 ‘땡땡이’를 치러 나갔다. 송파구에 위치한 엔도어즈를 방문해 김태곤 개발이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자마자 근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게임업계에서 ‘역사’와 ‘장인개발자’라는 소리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김태곤 이사이기에 인터뷰 장소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남한산성: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그러나 그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였다. (백과사전 발췌)

“김 이사님, 솔직히 남한산성 처음 가봅니다.”

“저는 가끔 옵니다. 혹시 남한산성, 자주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네…자주… 들어본 것 같습니다. 맞아요, 김훈씨 소설로 유명하죠!”

“맞습니다. 김훈씨 소설 유명하죠. 그런데 저는 김훈씨 소설이 좀 무겁더라고요”

“네, 전체적으로 문체가 좀 비장하죠. 사실 아직 남한산성 못 읽어봤습니다.”

“하하, 저도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요즘은 서유기를 읽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에 대해 좀 이해해보고 싶어서요. 10권짜리 완역본이에요. 재미는 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잔인하더라고요. 내장을 파헤치고 굽고...(이하 생략)”

7월 7일, 장마의 끝자락에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구비구비 올라가는 길을 따라 짧은 시간에 자동차는 어느새 깜짝 놀랄 만큼 높이 올라와 있었다. 습기 많은 날씨 탓에 산허리까지 내려온 구름이 저 아래 도시의 풍경도 흐릿하게 만들어놓았다. 순식간에 어느 높은 산 정상에 올라온 기분이 들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지금쯤 원고 마감해야 하는데, 내려가면 일거리가 쌓였겠구나. 현실감각도 아득해졌다.

▲ 남한산성은 긴 세월동안 자연의 일부가 됐다.

잡스러운 생각을 애써 지우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깊은 심산유곡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마다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구나”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른바 내가 ‘서울촌뜨기’라고 할만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러자 “서울이 아닙니다.”라고 김태곤 이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동네 토박이로 자라났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김태곤 이사답게 남한산성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남한산성이 우리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자리죠. 인조가 여기서 치욕을 당했지만, 산 자체가 험준해서 직접적으로 공격하기에도 마땅찮은 곳이에요.”

“음, 이른바 문 닫고 농성하기 좋은 곳이군요.”

“네, 그러니까 청군이 와서도 바로 공격하지 못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버틴 거죠. 심지어 강화조약에도 더 이상 성을 증축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고, 매년 사신이 와서 그걸 확인하고 갔다고 해요.”

“그 정도였군요.”

“네, 그런데 전쟁을 치를 힘 자체는 없으니까 항복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죠. ”

잘 키운 `아틀란티카`를 NHN에 퍼블리싱하는 속사정

얼마 전 엔도어즈는 NHN과 ‘아틀란티카’ 퍼블리싱 서비스에 합의했다. 이미 1월부터 자체적으로 정식서비스를 실시중인 대형게임의 (단순 채널링도 아닌) 퍼블리싱 결정은 이례적인 뉴스에 해당했다. 이 계약으로 오는 3분기부터 ‘아틀란티카’는 한게임을 통해 서비스될 예정이다.

“이번에 NHN이랑 계약 맺으셨잖아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생각보다 게임이 성공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은 시선도 있던데.”

“실제로 게임 버리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면 ‘아틀란티카’ 개발자만 110명이나 뽑았을 리가 없죠. 진작에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겠죠. 대규모 업데이트인 ‘아틀란티카 2.0’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요.”

“아틀란티카 서비스가 반년 정도 됐는데, 결과에 만족하세요?”

▲ 2.0 업데이트로 대규모 콘텐츠가 추가된다.

“예, 저는 만족해요.”

“점수로 주신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 정도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80점 정도 주고 싶어요. 처음에 턴제 RPG를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런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겠느냐 라고 생각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도 큰 성공이죠.”

실제로 ‘아틀란티카’는 정식서비스를 시작하고 계속해서 개발자 숫자를 늘려갔다. 개발팀이 업데이트팀이 되면서 핵심 개발인력은 차기작으로 이동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렇다면, 잘 키운 ‘아틀란티카’를 남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끼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신선놀음하고 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질문도 갈수록 ‘독하게’ 변했다.

“NHN이 서비스하게 될 거면 왜 진작에 계약하지 않았나요?”

“NHN과의 퍼블리싱은 아틀란티카 서비스 이전부터 논의되던 사항이었어요. 당시에는 우리는 ‘이 게임은 리니지만큼 대박 날 거다’라고 생각했고(웃음), NHN 쪽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상황이었죠. 서로 온도 차가 너무 달랐어요. 게임이 실제로 서비스되고 나서,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었구나’였고, NHN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서로 적절하게 온도 차가 맞춰진 거죠.”

김태곤 이사는 단순히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아틀란티카’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 아니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세계 무대였다. 앞서 선보였던 ‘군주’는 좋은 게임이었지만, 게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짙은 한국적 색깔은 서구 시장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웠다.

▲ 엔도어즈 김테곤 개발 이사. 거상, 군주, 아틀란티카 그의 게임은 늘 뚜렷한 `색깔`이 있다.

서양버전으로 만들어진 ‘군주 스페셜’이 전위부대였다면, ‘아틀란티카’는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직접 공략하려면 100명이 넘는 개발자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국내 운영은 한게임에 맡겼다. 이미 북미에 직접 설립된 엔도어즈 엔터테인먼트의 전문 운영인력이 ‘아틀란티카’의 서버 테스트 및 본격적인 서비스 준비를 마쳤다.

‘아틀란티카’가 한게임에 서비스되는 이유에는 NHN의 QA시스템의 영향도 컸다. NHN의 QA시스템은 ‘YES’가 나올 때까지 철저하게 테스트를 진행한다. 엔도어즈는 ‘군주 스페셜’ 서비스를 통해 배운 것은 철저하게 적용했다. “아틀란티카는 서비스 6개월 동안 한번도 점검시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습니다. 공지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연 적은 있어도, 연장된 적은 없죠.” 그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트’에 가서 컴퓨터를 사는 아날로그 게임 개발자

졸졸 맑은 물이 흘러가는 개울가에 앉아있으니, 인터뷰도 게임이야기가 아니라 신변잡기적으로 흘러갔다. 시간 날 때 뭐하느냐는 식상한 질문부터,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무어냐는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땡땡이’에 어울리는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다. 다소 의외의 이야기도 들었다.

“제가 반도체를 연구하는 전자공학과를 나왔어요. 그런데 컴퓨터에 손 뗀 건 대학 때부터 에요. 일찍부터 너무 많이 다뤄서 질렸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회사 내 잘 아는 친구들한테 대충 뭐가 괜찮다고 물어본 다음에 홈*** 같은 대형마트에 가서 사요. 본체는 이거 주시고 모니터 좋은 걸로 맞춰주세요(웃음). 전자제품도 다 마트에서 사요.”

게임업체, 그것도 전자공학을 전공한 개발이사의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면모였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김 이사님은 회사를 안 차리세요? 비슷한 시기에 개발 시작하셨던 분들은 다 회사를 차리시고 대표이사가 됐잖아요.”

“왜 아직도 월급쟁이 노릇을 하냐고요(웃음). 맞아요, 이원술, 김학규 대표님 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게임을 개발했죠. 그런데, 돈 많이 못 벌어도 저는 월급쟁이 노릇이 좋은데요. 저도 작은 회사를 꾸린 적이 있지만, 역시 개발자가 좋습니다. 하기 싫은 일 안 해도 되고, 사업 때문에 가기 싫은 자리에 안 가도 되잖아요.”

▲ `땡땡이`가 `인터뷰산책`이 된 발상의 전환

“지금 대표님하고 잘 맞으시나 봐요.”

“제가 전에 사장님 휴대폰을 보니 주소록에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등록되어있는 거에요. 저는 보니까 서른 명밖에 없어서, 아이고, 어떡하나 싶었죠. 저보고 따라 해보라면 못 할 일이에요. 개발이사는 이렇게 가끔 사장님 눈 피해 몰래 땡땡이도 칠 수 있고, ‘꽃보직’입니다(웃음).”

하나라도 충분해. 총력을 기울인 게임 아니면 성공 못해

가끔 ‘완전범죄’를 위해 사장님까지 끌어들여, 땡땡이를 친다는 김 이사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걸은 회사보다 자신이 직접 개발하는 게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도 ‘아틀란티카’만 하루에 4시간을 플레이한다. “국내 시장에서 ‘아틀란티카’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유저가 있을 거에요. 이제 세계 시장에서 ‘아틀란티카’의 이름을 아는 유저를 만들고 싶어요.” 아틀란티카 2.0 업데이트도 신규 대륙 추가, 국가전 등 정직하다 싶을 정도로 고레벨 유저를 위한 콘텐츠 위주로 준비했다.

“블리자드 같은 초대형 게임업체도 게임 타이틀 자체만 꼽아보면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정도밖에 가진 게 없어요. 우리나라는 중소 규모의 회사가 십수 개의 타이틀을 내놓고, 그 중에 하나만 떠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요. 이제는 총력을 기울인 콘텐츠가 아니면 안됩니다. 엔도어즈의 정체성이 들어간 타이틀이라면 한 두 개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태곤 이사와 긴 인터뷰를 마칠 즈음이 되자, 흐릿했던 날씨도 몰라보게 맑아졌다. 남한산성을 휘감았던 물안개도 자취를 감추고 밝은 햇살이 나무 사이로 반짝거렸다. 산 아래로 향하는 김 이사의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 보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멀리 나온 값어치가 있었을까? 앞서가는 그 뒷모습이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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