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문명
문명
시리즈는 일련의 연대표로나 가늠할 수 있었던 인류문명의 유구함을 인터랙티브하게
옮겨 놓은 일종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한 문명을 경영한다는 다소 벅찬소재,
시드 마이어식 디자인 특유의 복잡다단한 인터페이스와 패러미터에도 불구하고 참된
게이머라면 그 열린 자유도와 치밀한 짜임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으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혁신적인 진화를 했던 탓에 10여년이 지난 오늘의 문명 3: 플레이 더
월드(이하 PTW)까지 발매될 수 있었다.
왕건과 화차의 화려한 등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새로운 여덟 개의 문명과 특수유닛의 추가, 그간 한국 문명팬들이
갈구해마지 않았던 한국 문명도 공식적으로 추가됐다. 한국 문명의 대표 아바타는
지난해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태조 왕건으로 과거 공개된 베타 스크린샷에서 불심으로
대동단결하자고 온몸으로 외쳤던 그(매뉴얼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몇 가지 수정을
거쳐 제왕의 풍모를 갖추고 등장했다. 여기에 한국 문명의 특수유닛인 화차도 추가됐다.
사거리가 1이라 다른 포격유닛보다 그 효용성이 떨어지지만 왜구의 조총 앞에서 나라를
지켰던 자랑스런 호국의 방패 아니었던가? 견훤의 탈을 쓴 왕건과 존재감 제로의
화차라지만 한국에서의 미미했던 패키지 판매실적과 과도했던 불법복제의 실적을
생각하면 미스터 마이어의 과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노멀유닛은 아쉽게도 중세 보병과 게릴라만이 추가됐다. 문명 3에 시대별, 용도별로 많은 유닛이 등장해 그 빈자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던 게이머들이 있었기에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 컬렉터즈 에디션에만 술록하겠다던 특별 시나리오는 고사하고 사이즈별 세계맵 2가지만 준비해 많은 원성을 샀던 시나리오 부분도 100MB나 채워주었다. 팬들이 만들어 놓은 MOD인지라 일부 시나리오는 로딩조차 안되며 게임 자체가 영문 버전으로 뒤바뀌기도 해 아쉬웠지만…
멀티플레이로 퇴보하는가?
전통적인
턴 베이스 전략 시뮬레이션과 멀티플레이 옵션을 조합할 때 심각히 고민해야할 한가지.
그것은 턴을 주고받으면서 늘어지는 지루한 플레이 타임이다. pTW는 여러 새로운
승리조건을 내걸어 플레이 타임을 줄이고 턴은 동시 턴부터 핫시트 모드까지 여러
플레이 옵션을 두는 문명 시리즈다운 드넓은 선택의 여지로 이를 해결했다. 승리조건에
전멸 이외에 각 문명의 대표를 하나의 유닛으로 처리한 왕 죽이기, 왕 여럿 죽이기(어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게임에 나오는 그대로 쓴 것이다), 게임 점수제, 고지
점령, 공주 뺏기 등을 준비해 나름대로 짧은 플레이 시간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모든 유닛과 건물, 기술개발 시간 등을 전발으로 줄일 수 있는 생산가속 옵션도 준비돼
있어 비교적 빠른 플레이 타임을 가진 왕죽이기와 생산가속을 믹스하편 1~2시간 내에
승부를 볼 수도 있다.
일단 피락시스는 선택권을 플레이어에게 넘기고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 모드를 찾아주길 바랬던 것 같다(아쉽게도 PTW가 처음 공개됐을 때의 모습에선 이상적인 모드란 찾을 수가 없었다). 메뉴 하나를 클릭해도 생겨나는 살인적인 랙과 쉴 새 없는 다운현상과 튕김, 대화채널의 부재, 방장의 킥 기능조차 없는 진부한 인터페이스와 불안정함이라니…. 패치를 통해 많은 부분이 수정되고 개선됐지만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불안한 네트워킹은 여전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문명 3에 대한 정보가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멀티플레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식 발매되자 패치를 약속하며 이를 제외해버렸고 결국 다른 몇가지 추가요소와 더불어 확장팩으로 묶여 나오게 됐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PTW의 추가 요소와 멀티플레이 옵션은 가볍고 엉성하다. 피락시스와 인포그램즈의 탐욕스런 유료 패치라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문명 시리즈는 그간 끊임없이 진화해 왔으며 또 다른 진화를 꾀했다는 건 분명히 인정해주자. 다음의 진화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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