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맥월드 엑스포(MacWorld Expo)에서 스티브 잡스의 기조강연 중 최초 공개됐던 ‘헤일로: 전쟁의 서막 (이하 헤일로)’은 이듬해인 2000년, 개발을 맡은 번지 스튜디오(Bungie Studios)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이하 MS)에 매각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초 PC와 매킨토시용으로 발매될 예정이던 ‘헤일로’는 루킹 글래스 테크놀러지스와 드림웍스를 거쳐 1999년 MS에 입사한 게임업계의 풍운아, 조나단 블랙클리(Jonathan Blackley)를 필두로 차세대 가정용 비디오게임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해오던 MS의 H&ED(홈&엔터테인먼트 디비전) 소속의 MS 게임스튜디오에 의해서 Xbox의 런칭 타이틀로 돌연 탈바꿈하게 됐다.
그 덕에 ‘헤일로’는 한배에서 자라고 있던 이란성 쌍둥이 격 게임인 ‘오니(Oni)’보다 10개월 늦게 세상의 빛을 본 늦둥이가 됐다. 하지만 발매와 동시에 X박스의 견인차 역할을 능히 해냈다는 증권 애널리스트들의 평가와 더불어 현존하는 동종게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게임이라는 호평을 관련 언론으로부터 수여받았다.
발매전부터 예상됐던 일이지만 ‘헤일로’ PC버전은 스토리나 진행 방식 등, 기본적인 외관은 기존에 발매된 X박스 버전과 큰 차이점을 갖고 있지 않다. 게이머는 여전히 인류가 외계인과의 전쟁을 위해 양산한 스파르탄-II 프로젝트의 마지막 생존자인 마스터 치프가 되어 다양한 성능을 갖춘 첨단 무기를 활용해 호전적인 외계종족 코베넌트를 물리치고 신비의 무기 ‘헤일로’를 사수해야 한다.
‘헤일로’는 기존의 동종 게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행방식을 갖추고 있다. 이야기의 큰 줄기가 진행되고 그 속에서 플레이어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을 움직여 현 위치에서 완수해야 할 임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완수하는 식이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으로 섣불리 ‘헤일로’의 면모를 평가하고 동종 게임의 장점만을 추출해 온 클론으로 봐서도 안된다. 이미 X박스 버전을 통해 입증됐다시피 ‘헤일로’는 지금까지 동종 게임들이 어설프게나마 구현했거나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삽입, 게임의 일부분으로 활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핵심은 다름 아닌 그간 부분적으로나마 일부 게임에서 구현됐던 소분대별 전투 시스템의 가닥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기실 기존까지 1인칭 액션 게임들은 ‘람보’ 내지 ‘코만도’ 식의 게임 진행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개발사들은 새로운 게임 방식을 창조해내기 보다는 기술 개발에 치중, 볼거리는 많지만 정작 게이머가 직접 몸과 마음으로 느낄만한 게임은 제작하는데는 실패했다.
‘헤일로’는 각기 다른 성능을 무기를 장착한 컴퓨터가 조종하는 아군 플레이어를 임무 곳곳에 삽입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게임이 진행되게끔 연출했다. 아울러 ‘헤일로’의 원제작사인 번지 스튜디오는 게이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적재량을 대폭 감소시키고 공격용 무기가 장착된 탑승 가능한 병기 및 엄청난 규모의 전장(戰場)을 삽입, 이 삼두마차로 하여금 소분대별 전투 시스템을 지탱하는 축으로 활용했다.
대체적으로 그간의 동종 게임들이 다양한 종류의 무기와 아이템을 한꺼번에 소지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방식을 채택했던 반면, ‘헤일로’는 단 2종의 무기와 제한된 탄약만을 소지하고 게임을 진행하게끔 조율되어 있다. 덕분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대로 적을 공격했다간 실탄이 동나는 것은 시간문제. 게다가 게임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인공지능(AI)은 변화무쌍하면서도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공격 및 방어 전술을 선보이기 때문에 치밀한 전략이 없다면 한발짝 내딛기도 버겁다.
대신에 상황에 따라서 아군 수송기로 탄약을 보급받거나 외계인이 사용한 레이저 계열의 무기를 노획해서 사용하게끔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게이머는 현재 수행중이거나 앞으로 수행할 임무 성격에 맞게 보유중인 무기를 활용하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추가로 병기를 확보하고 행동을 함께하는 아군들과 함께 임무를 진행해야 한다.
무기와 아이템 체계와 더불어 소분대별 전투 시스템을 받들고 있는 양대 산맥으로 평가할만한 요소는 공격용 무기가 장착된 탑승 가능한 병기의 도입이다. 정식 발매전부터 게임 관련 언론들이 극찬해 마지 않았던 백미 중에 백미답게 ‘헤일로’에서 시종일관 육해공을 넘나들며 탄력 넘치는 운동성과 박진감 있는 액션을 선사하는 병기를 보자면 MS가 어째서 ‘헤일로’를 X박스의 런칭 타이틀로 간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게임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병기들은 게이머가 먼거리를 손쉽게 이동하고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외계인을 제압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게임에 등장하는 병기가 마냥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M12 워소그 LRV의 경우, 게이머 혼자만으로 병기의 성능을 100% 끌어낼 수도, 적을 쉽게 공격할 수도 없다.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는 뜻인데 ‘헤일로’의 소분대별 시스템이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아군과 동행해야지만 후미에 장착된 M41 LAAG로 적을 실시간으로 이동하면서도 공격할 수 있다.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M808B 스콜피온 MBT의 경우도 마찬가지. 게이머는 운전과 주포 및 기관총을 이용해 적을 공격할 수 있지만 게릴라 식으로 흩어져 공격해오는 적에게는 속수무책이다. 만약에 탱크 주변에 아군이 있다면 이들은 탱크에 올라타 근접 공격을 시도하는 적을 막아준다.
게임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배경은 우주선부터 지상, 건물 등 다양한 지역 특성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헤일로’는 그간 흔히 볼 수 있었던 배경과는 달리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커다란 링 모양의 ‘헤일로’를 감상할 수도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폭포수를 내려다 보는 등의 거대한 규모의 배경을 담고 있다. 이처럼 게임의 공간이 크게 구성된 덕분에 게이머는 발로 뛰거나 탑승 가능한 병기를 이용해서 종횡무진 게임 세계를 누빌 수 있다.
게임의 배경이 광범위한 관계로 기존의 한정된 공간에서 다소 제한적인 전술과 무기를 사용해 게임을 진행했던 단점이 보완됐다. 일부 굳이 없어도 될만한 지역이 존재함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현재까지 최고의 레벨 디자인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는 루카스아츠의 1997년작 ‘스타워즈: 제다이 나이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최근 MS가 게임 사업 관련 부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멀티플레이다. 통칭 X박스 라이브로 대변되는 이러한 MS의 정책은 ‘헤일로’ PC버전에도 그대로 전이됐다. ‘헤일로’의 멀티플레이 모드는 최대 16명까지 지원하며 복수 이상의 무기와 탑승 가능한 전용 병기가 추가됐다. 데스매치부터 깃발 뺏기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임 방식을 지원함은 물론이다. 인터넷 접속시 핑(Ping)이 100 이상이거나 고성능의 PC 사양을 갖추지 않은 게이머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특별하게 흠 잡을데 없는 게임성을 갖춘 ‘헤일로’는 그간 막후에서 꾸준하게 한글화 정책을 고수해 온 한국MS의 정성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을 만 하다. 모든 게임내 음성 및 글자가 한글화 됐으며 익숙한 목소리의 한국내 전문 성우를 고용해 게임의 재미와 게이머가 자칫 놓칠 수 있는 ‘헤일로’ 관련 정보를 가감없이 습득할 수 있다. 웹사이트마저도 해외를 기준으로 완벽하게 한글화 되어 있어 게임과 관련된 외적 정보나 추후 공개되는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습득하는데도 어려움이 없다.
실제로 ‘헤일로’ PC버전은 최대 1600x1200 해상도를 지원하고 랜과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멀티플레이 모드 탑재 및 마우스와 키보드에 조작법이 최적화됐으며 멀티플레이 모드용 맵을 비롯한 무기가 추가됐다는 점 외에는 X박스 버전과 별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X박스버전 역시 X박스 라이브를 통해 ‘헤일로’의 추가 컨텐츠를 무리없이 내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X박스로 ‘헤일로’를 접해봤던 게이머들에게 PC버전은 큰 메리트로 다가서지 못할 공산이 크다.
또한 게임 및 멀티플레이 모드 구동시 터무니없이 높은 PC사양을 요구하는 점은 ‘헤일로’ PC버전의 심각한 난제로 규정지을만 하다. 실제로 ‘헤일로’ PC버전의 이식 작업을 수행한 개발사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로 최근 ‘카운터 스트라이크: 컨디션 제로’의 제작을 밸브와 함께 수행하다 이유없이 도중에 하차하는 좋지않은 모양새를 보인 바 있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하프 라이프: 어포징 포스’와 ‘토니호크 프로 스케이터 3’에서 뛰어난 제작 능력을 보여줬다지만 최근 ‘카운터 스트라이크: 컨디션 제로’부터 ‘헤일로’ PC버전까지 개발 및 이식 부분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연이어 노출한만큼 고사양의 PC를 요구하는 문제점에 대해 현 시점에선 책임을 물을 수 밖엔 없을 듯 싶다.
아울러 최근 개스 파워드 게임즈 역시 ‘던전시즈 2’의 제작을 위해 매드덕 소프트웨어에게 ‘던전 시즈’ 확장팩의 제작을 맡겼지만 신통찮은 반응을 얻어냈던 최근의 사례를 돌아보면 MS가 자사의 인기 프랜차이즈 게임의 이식 작업이나 확장팩 제작을 외주 개발사에 일임하는 다소 무성의하게 보일 수 있는 정책을 꾸준히 고수한다면 이는 앞으로 게이머가 MS에서 발매되는 PC게임 구입시 경계할만한 사항이라고 보여진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마치 MS가 ‘헤일로2’가 발매되기 전에 ‘헤일로’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를 재차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PC버전의 제작을 종용한 것이 아니냐는 다소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어쨌든 그간 ‘헤일로’에 대한 소문과 명성만 들어왔거나 X박스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게이머라면 ‘헤일로’ PC버전의 구입을 고려해볼만 하다. 비록 ‘하프 라이프’나 ‘노 원 리브스 포에버’와 같은 혁신적인 게임 방식을 도입한 게임들의 아성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게임이 전달해야 하는 기본 사항인 재미를 잘 살려낸 게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보유중인 PC와 통신망이 어느 한 부분씩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거나 그래픽 정밀도에서 약간의 손해라도 감수할 의지가 없다면 해당 문제점이 해결될 때까지 구입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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