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주변 친구나 후배들에게 놀림받는 일이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니 그렇다쳐도 변화보다는 안정을 우선시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충실히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필자 또래의 많은 사람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단지 게을러져서 그러는 건 아니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더 슬픈 게 있는데, 1년에 클리어하게 되는 게임이 계속 줄어드는 바로 그것이다. 사실 몇 년 전, 필자는 이렇게 해서 게임에서 멀어지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다.
올해 들어 유일하게 클리어한 게임이 하나 있다. 「파이어 엠블렘 봉인의 검」이다. 패밀리 시절, 처음으로 접한 비디오 게임이 ‘파이어 엠블렘 외전’이다보니 필자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에 대한 애착은 각별하다. 게임은 발매된지 이미 2년이나 지났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아직 즐겨보지 못한 게임이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플레이를 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E3 2004 출장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E3 행사는 미국 L.A.에서 열린다. 인천에서 L.A.까지 비행에 걸리는 시간은 왕복 22시간. 그 지루한 시간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한 필자는 이 기회를 이용해 「봉인의 검」을 플레이하겠다고 결심, 출장 열흘 전에 게임을 구입했다. 출장 전까지 조금씩 즐기다보니 어느새 11장까지 진행되어 있던 게 아닌가. 비행기 내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장 당일. 필자는 비행기 내에서 열심히 봉인의 검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E3 기간 중 차를 타고 이동할 때나 식사 후 짬이 날 때마다 플레이했다. 그리고 귀국길에 비행기 내에서도 열심히 봉인의 검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확인을 했더니 아직도 11장을 진행중이었다. 어찌된 이유일까? 공략에 고생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으로 가는 길에 필자는 11장을 클리어 직전까지 진행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 발매된지 2년 만에 플레이하게 된 봉인의 검. 그 동안 필자의 진열장에 '봉인'되어 있었다(--;) |
시리즈를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파이어 엠블렘」은 동료가 죽으면 기본적으로 두 번 다시 부활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은 곧장 리셋을 의미한다. 물론 죽건말건 진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파이어 엠블렘」은 이렇게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거나 이렇게 「파이어 엠블렘」을 플레이하면 게임의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제 11장을 클리어 직전까지 진행시킨 필자는 어느 사이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맵 오른쪽 위에서는 보스를 포위한 동료들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계속해서 공격을 되풀이하고 있다. 보스는 턴이 시작할 때마다 체력을 회복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 방법을 통해 경험치를 계속해서 벌 수 있다. 물론 보스의 무기는 이미 내구도가 다해서 반격의 위험이 없다. 한편 맵 왼쪽 위에서는 페가서스에 탄 샤니가 적에게 포위되어 있다. 그녀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사방이 포위된 적들이 그녀를 공격하지만 그녀의 능력치가 높기 때문에 공격이 맞을 확률은 0. 그녀는 적의 공격을 피할 때마다 경험치를 1씩 얻는다. 즉, 필자는 캐릭터가 죽을 위험 없이 경험치를 얻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비행시간과 미국에서 짬짬히 플레이하는 시간 내내 말이다.
그리고 정신없었던 출장 기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플레이를 재개했을 때 필자는 엄청난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티트를 동료로 만드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11장을 클리어한 상황. 앞서 말한 「파이어 엠블렘」의 전통에 충실한 필자에게 티트를 포기한 채 이대로 진행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동료 전원과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하는 것이 최소한 필자에게 있어 「파이어 엠블렘」의 엔딩이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길은 다시 플레이할 것인, 아니면 게임을 그만 둘 것인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곧장 같은 작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출장 기간을 포함해 수십 시간 동안에 걸쳐 반복했던 바보 같은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지금 보니 필자는 제 11장을 클리어하는데 10시간 54분이 걸렸다. 출장 기간에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클리어 직전에 리셋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단순히 생각해도 나는 25시간 가까이 11장에 투자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의미가 없다. 그렇게까지 캐릭터를 키우지 않아도 게임의 클리어는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는 최종장을 불과 5턴만에 클리어했다. 11장에 그렇게까지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필자는 불필요하게 레벨을 올렸던 것일까?
▲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전개야말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인기의 원동력이 아닐까? |
재미있기 때문이다. 언제 캐릭터가 죽을지 몰라 두근두근하는 게임에서 죽을 걱정없이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는 상관없다. 플레이하면서 어디서 재미를 찾아내는지는 플레이하는 본인이 결정할 부분이지 남들이 그렇게 플레이한다고 해서 나 또한 재미를 느낀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클리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다. 나는 내 즐거움을 내 게임에서 찾길 원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25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게임을 클리어한지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필자는 다음 게임을 곧장 시작하지 못했다. 요즘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는 책을 읽고 있다. 아마 나이를 먹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뭔가에 굶주린 듯이 다음에 클리어할 게임을 찾는 걸 필자는 그다지 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필자는 한편으로 안도했다. 몇 년 전 필자는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에 불안해했던 적이 있다. 의미도 없이 레벨을 올려가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불필요한 25시간을 쓰는 걸 내가 주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 클리어 시간, 남들에 대한 체면, 게임에 쏟는 과도한 시간 등은 문제가 아니다. 필요한 건 재미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쇠퇴한다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건 기우였다. 필자는 고민하지 않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은 기껏 숫자로 표현되는 나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고 다시 플레이를 선택한 나 자신의 반사적인 행동으로부터 필자는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아, 그랬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다시 플레이하기로 결심했다.
1년 동안 클리어하는 게임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게임 하나하나를 접할 때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필자 자신이 어른스럽지 않다고 생각할 때마저 있다. 플레이하면서 필자는 긴장하고 초조해하며 때로는 소리지르고 가끔은 눈물마저 흘리며 탄식을 내뱉기도, 활짝 웃음짓기도 한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게임의 수가 줄어들긴 해도 정말 재미있게 즐긴 게임 하나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것은 바람이 아니라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게임과 함께 살아오면서 생긴 확신이다. 그리고 이런 생활에 지금 필자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대한 플레이어의 몰입감은 파이어 엠블렘을 따라올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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