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퓰러스’, ‘블랙 앤 화이트’ 등을 개발하였고 시드 마이어, 리차드 개리엇과 함께 무려 세계 3대 게임개발자로 불린 피터 몰리뉴의 최신작 ‘페이블 3’ 가 지난 10월 26일 Xbox360으로 한글화되어 정식 발매되었다.
예전에도 늘 그랬듯이, 피터 몰리뉴는 이번에도 발매 이전부터 수많은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페이블 3 는 대단한 게임이야. 이러이러한 신기능이 있는데 매우 신선한 시스템이지’ 라는 발언을 해왔다. 물론 ‘페이블’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고, 그 신작에 대해서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자랑스럽게 언급한 많은 기능들이 실제로는 별로 재밌지 않거나 제대로 구현되지도 않았을 경우 시리즈의 명성을 심각하게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과연 ‘페이블 3’ 는 피터 몰리뉴가 늘 언급하던 대로 이제껏 없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줄 대작 게임일까? 아니면 유저들의 기대를 배신한 그저 그런 평작 수준일까?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페이블 3’ 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폭정을 일삼는 왕의 동생이 왕궁을 나와서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산 후 왕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뒤, 세계를 덮쳐 오는 어둠에 맞서 왕국을 통치하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무법자 용병 무리를 퇴치하거나, 조난을 당해 깊은 유적을 탐험하는 등 다양한 모험을 겪게 된다. 초반에는 ‘혁명’ 이라는 주제가 크게 와닿지 않지만, 중후반으로 달려갈수록 피부로 와닿는 혁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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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혹은 공주로 시작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왕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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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에 오르는 것이 1차적 스토리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적게는 길 가던 사람에게 악수를 청해서 친밀도를 올리거나 모욕감을 줘서 친밀도를 낮추는 행위부터, 부상당한 동료를 버리고 갈 것인지, 끝까지 데리고 갈 것인지 하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왕이 된 후에는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인해 마을의 모습이 변하기도 하며, 주민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빈민가 주민들과 맹세한 복지 내용을 지킬 수도, 약속을 어겨서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마치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라는 말을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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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일으키면서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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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정책을 결정할 때인데... 구호소 대신 매춘굴로 만들면 돈이 들어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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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신뢰와 인기는 잃지만 돈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들이 이후 스토리 전개나 엔딩 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만이다. 대부분의 선택은 단순히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로 구분되며, 주인공의 성향과 마을 사람들 모습 일부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심지어는 다친 동료를 버리고 가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메인 스토리 진행에는 변화가 없다. 죽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죽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 산다. 단순히 선택에 따른 선과 악의 성향 변화만 있을 뿐이다. 후반에 가면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조차 않고, 성향에 맞게 선의 경우엔 ‘A’ 버튼, ‘악의 경우엔 ‘X’ 버튼을 기계적으로 누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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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이 될 것인가, 악당이 될 것인가
참고로 악당으로 사는 것이 성군으로 사는
것 보다 훨씬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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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를 버리고 가건, 끝까지 함께 하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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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한 길로 진행된다
특정 메인 퀘스트 몇몇을 제외하면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얼마든지 서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서브 퀘스트는 대부분 마을의 잡다한 일을 대신 맡아 해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통 특정 물건을 찾거나 배달하기, 누군가와의 관계 올리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보드게임 속으로 들어가거나 연극 대본 속으로 들어가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도 존재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재밌는 것도 한 두번이지, 몇 번씩 반복해서 플레이하면 비슷한 퀘스트 진행에 금새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대부분의 RPG 게임이 그렇겠지만, '페이블 3' 의 퀘스트들은 재도전 동기부여가 특히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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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트를 연주해서 돈을 벌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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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들어가 연극을 해 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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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게임개발 마법사들이 만든 보드게임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독특한 퀘스트보다 단순무식한 XX찾기 퀘스트가 훨씬 많다는 점!
세상에서 전투가 제일 쉬워서… 금방 질리네요
‘페이블 3’ 의 전투 시스템은 상당히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원거리 무기의 경우 라이플과 피스톨은 효과음부터가 달랐고, 두 가지의 마법을 겹쳐서 사용하는 중첩마법, 캐릭터와 함께 성장하는 무기 시스템 등은 확실히 신선한 요소였다.
문제는 전투 자체이다. 전략적 요소나 컨트롤 능력 등은 거의 필요 없고, 몰려오는 적을 향해 마법만 몇 번 난사해주면 그걸로 끝이다. 마법은 두 종류로 사용할 수 있는데, 아날로그 방향키를 사용하여 일정 적을 향해 사용하는 조준형 마법이 있고, 방향키 없이 주인공 주변의 적에게 광범위한 마법을 난사하는 범위형 마법이 있다. 이 중에서 범위형 마법의 경우 다수의 적도 손쉽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전투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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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범위마법
특히 전격 마법의 경우 적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화염 마법이나 영혼의 검 등 파괴력 있는 마법과 섞어서 사용해주면 적은 주인공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 하고 죽는다. 필자의 경우 전격 마법을 배운 이후 힐링 포션 등의 아이템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엔딩을 봤다. 검이나 총 등으로 싸웠다면 이렇게까지 쉽진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시시하다. 전투 난이도가 낮아서 시시하다는 말이 아니고, 전투 자체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아무리 커스터마이징이나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 등으로 포장해 봐도 가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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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마법과 화염이 조합되면 적은 마비된 채 불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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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끝까지 이걸로 해결
정말 즐길거리는 많은데..
‘페이블 3’ 에서는 적을 쓰러뜨리거나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경험치 대신 길드 인장을 받는다. 길드 인장은 주인공만 갈 수 있는 신비의 공간 ‘지배의 길’ 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배의 길’ 에서는 보물 상자를 열어서 각종 스킬이나 마법, 능력 등을 올릴 수 있는데, 이 때 일정량의 길드 인장이 소모된다.
이 때 재미있는 점은 시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소셜 액션 스킬도 ‘지배의 길’ 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반에는 단순한 악수, 방귀 정도밖에 없는 소셜 액션 스킬이 댄스, 포옹, 위협 등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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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길에 있는 스킬 보물 상자는 길드 인장으로 열 수 있다
단지, 소셜 액션은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으르렁대기, 간지럼 태우기, 쎄쎄쎄 등의 모션은 분명 웃기긴 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소셜 액션의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기껏해야 20종 내외), 결국엔 호감도 올리기용 노가다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다.
NPC와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각종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장면 등을 기대한다면, 얼른 그 기대를 접고 차라리 '심즈' 를 하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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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단순한 액션만 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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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고급 액션도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이 액션을 고를 수 없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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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웃음으로 겁을 줄테다
‘페이블 3’ 는 즐길 거리가 많은 게임임은 확실하다. 이성, 혹은 동성과 친구가 되거나 연인이 될 수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만들 수도 있으며, 집이나 상점 등의 부동산을 구입하여 그 곳에서 살 수도,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공공 시설물을 훼손하면 경비원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통해 값을 깎거나, 가게 주인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등의 행위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매춘굴 등에서 집단 성관계를 가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성병에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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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돈만 있으면 정말로 행복해 질 수 있나요? 정말?
게임 중 등장하는 대사나 행동에서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각종 개그와 풍자, 패러디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특히 시리즈 특유의 ‘닭 집착’ 요소는 여전하다. 길가에 있는 닭을 멀리 걷어차거나, 닭 복장을 하고 닭 흉내를 내서 암탉들을 유혹하는 등 코믹한 장면이 꽤나 많이 나온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즐길 거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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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힘으로 되살아난 할로우맨 앞에서 명령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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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닭 드립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너무 많은 요소를 한 게임에 억지로 몰아넣으려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지지 않은 느낌이 든다. 마을 사람과의 일상 대화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오직 1대 1, 그것도 선악의 공식에 따라서만 이루어진다.
피터 몰리뉴가 야심차게 발표했던 수 많은 시스템들은 그저 고개 한두 번 끄덕일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아무리 보기 좋아 보여도 결국엔 사이드 메뉴에 불과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이드 메뉴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메인 메뉴가 빛이 바라는 느낌이다. 파이 1~20개를 만들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등 밸런스도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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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만에 파이 한 개 만들면 4~500원은 기본! 집값은? 4~5천원 정도...
인터페이스도 상당히 불편하다. 얼핏 보면 오픈 월드처럼 보이는 맵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으며, 뛰어넘거나 뛰어내릴 수 있는 곳도 엄청나게 제한적이다. 한 번 본 장면이나 반복되는 장면 등 뛰어넘고 싶은 장면은 스킵도 되지 않을 뿐더러(오히려 한 번쯤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은 이벤트 영상은 스킵이 가능하다), 퀘스트 시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는 ‘빛의 길’ 기능은 사라지거나 이상한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도 많다. ‘빛의 길’ 이 고장나서 미니맵을 보고 길을 찾으려 하니 미니맵 기능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게임이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그 재미를 100%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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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보이는 빛의 길을 따라가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데
이게 없어지면
정말 길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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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있는 농부는 왜 뒤돌아서 있는 걸까?
(삐쳐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단순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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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벤트 장면은 별로 건너뛰고 싶지 않은데..
차라리 지루한 대사나 소셜
액션 장면을 건너뛰게 해 줘!
명작처럼 등장한 평작
‘페이블 3’ 는 분명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게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왠지 TV에서 맛집이라고 소개된 집을 기대하며 찾아갔다가 단골들만 좋아라 하는 무난한 음식을 먹고 온 느낌이다. 메뉴판에 붙어 있는 음식 사진과 꽤나 다른 실물이 나와 실망했다고 할까? 나름대로 맛은 있는데 기대치에 못 미쳐서 실망한 느낌, 바로 그 기분을 ‘페이블 3’ 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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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페이블 3' 에 대한 기대, 오른쪽이 결과물
정확히 이 기분이었다
‘페이블’ 시리즈에 심각하게 애정을 가진 팬이 아니라면,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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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많으니 팬이라면 살 만 하겠다
팬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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