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굿맨을 기억하는 자 있는가?
앙상블
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이자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수석 디자이너가 ‘릭 굿맨’이라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이머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에이지…’로
대표되는 시리즈가 브루스 쉘리라는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를
배경으로 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진정한 창조는 릭 굿맨으로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끝으로 앙상블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온 그는 오랜 준비기간 끝에 스테인리스 스틸 스튜디오를 설립, 최초로 3D 그래픽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 역사시뮬레이션 게임인 ‘엠파이어 어스’를 선보여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비록 자신이 만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빛에 밀려 그 가치가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블리자드를 박차고 나와 쓰론 오브 다크니스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씁쓸한 패배와는 비교될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작품으로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팬들을 양산한 릭 굿맨은 엠파이어 어스의 후속타로 날려줄 새로운 3D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수년간 개발해오고 있었으니, 이름하여 ‘엠파이어즈: 돈 오브 모던 월드’였다. 굳이 우리나라 말로 해석하자면 근대시대까지의 여명이라고나 할까?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장르 자체가 식상해져가는 시대이건만 두 눈을 부릅뜨고 역사라는 배경의 끈을 이어나가고 있는 릭 굿맨의 자신감이라는 것. 과연 이 작품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도록 하자.
단순한 엠파이어 어스의 후속편이 아니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시대적 배경은 대략 3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판타지로 대표되는 워크래프트/반지의 제왕 류와 SF를 배경으로한 홈월드/그라운드
컨트롤 류, 그리고 이 작품과 같은 역사적 배경의 작품이 그것이다. 사실상 이 작품의
가장 큰 라이벌을 꼽으라면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그리고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의
확장팩인 타이탄즈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엠파이어즈는 이들 작품과는 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릭 굿맨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엠파이어 어스 팬의 조언을 많이 참고했는데 당시의 데이터를 조사해본결과 전 시대를 아우르고 있는 엠파이어 어스의 배경 중 중세에서 2차세계대전까지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중세, 화약의 시대, 제국의 시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등 950년에서 서기 1950년까지 5종류의 시대적 배경을 다루게 된다. 엠파이어 어스가 출시됐을 당시 게이머들은 기병대의 모습이나 무스탕, 항공모함이 등장하는 것까지는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지만 원시인이 돌을 던지고 나노시대에서 로봇들이 전투를 벌이는 것은 ‘오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서 문명과 같은 심오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릭 굿맨의 욕심과 야심(?)이 과했던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4개의 문명, 그리고 색깔
생김새만
다른 똑같은 캐릭터들이 비슷한 기술을 써오던 것이야말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역사를 배경으로한 시뮬레이션은 특히나
그랬다. 과거 출시된 엠파이어 어스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는데 근래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이 추구하는 방향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문명별로
뚜렷하게 구분된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엠파이어즈에는 미국과 중국, 독일, 그리고 한국이라는 네 가지 문명이 등장한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세계의 문명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선택이 가능한 문명이 아닌, 실제 세계사에서도 그랬듯 찬란한 문명을 뒤로 한 ‘깜짝 출연’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아 가만있자. 한국이 등장한다고? 의외의 사실이 아닌가? 엠파이어즈에서 등장하는 한국이란, 단순히 아이템이나 아티팩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문명 시리즈에서 마지못해 들어간 그런 단순한 개념이 아닌 4개의 문명 속에 녹아들어 있는 완벽한 하나의 진영이라는 것이다. 해외에서 제작된 게임으로는 가장 비중 있는 출연이 아닐 수 없다.
▶ 엠파이어즈에서 그려진 한국문명의 모습 |
게다가 이 게임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대표되는 기존의 작품과 그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 엠파이어 어스는 그다지 호응이 높지 못한 편이었지만, 과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큰 판매량에 고무된 탓인지 릭 굿맨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꽤나 그럴듯한 모습으로 게임 속의 한국을 그려냈다.
문명마다 각각의 색깔이 정해져 있다는 모습은 한국의 특수 유니트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엠파이어즈의 한국은 우선 이순신 장군이라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영웅을 필두로 내세우고 있다. 화랑의 등장은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도 언급된 내용인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거북선과 신기전, 실학자 정약용이 만든 다산의 거중기까지 등장하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게다가 사회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실학운동'을 통해 인구수의 제한을 올린다거나 계림을 이용해 황폐화된 땅을 숲으로 우거지게 만든다는 건 서점의 역사서적을 뒤져보는 수준으로서는 재현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이처럼 각 문명은 10여가지의 특수개념을 통해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게 된다. 한국에서 벗어나 중세시대의 영국을 볼 경우 보일링 오일 가이라는 특수 유니트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지형의 고저차를 이용, 아무리 강력한 장갑을 지니고 있는 유니트라해도 한 번의 공격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끓는 기름 내리붓기(?)라는 특수기를 선보인다. 이 뿐만 아니라 역사상에서도 해양의 황제로 군림했던 영국이었던만큼 전함들의 공격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들은 단순히 공격력이 뛰어난 수준을 벗어나 지휘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영웅 유니트 기함(Flagship)이 영원불멸의 능력을 보여준다. 영국의 기함은 타 국가에게 격침될 경우 그 상징물인 깃발을 게이머 임의로 인근의 전함에 옮겨 전투력을 유지시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있으니 마치 영국이 최강의 국가로 느껴지는가? 한국의 문명에 실학사상까지 도입한 릭 굿맨이 그렇게 멍청한 밸런스를 만들어 낼 리가 없지 않은가.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 게이머라면 세계 1차대전에서 드러난 독일의 괴력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선택가능한 문명으로 등장하는데 연합군을 잠조차 못 이루게 만들었던 타이거탱크, 바다에 발을 담그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U-보트, 그리고 런던야간폭격의 주인공인 V2로켓에서부터 재플린까지 근대문명의 시초를 마련한 그들의 신무기들은 과거 그 큰 영광을 누렸던 영국의 빛을 무색하기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고보니 항상 역사를 배경으로한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크나큰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 문명에 대한 소개가 빠졌다. 아마도 제국주의시대까지만 등장하는 문명이기에 그랬을런지도 모르지(아마 소외받아왔던 게임 속 한국문명에 대한 자부심으로 -_-;). 어쨌든 엠파이어즈에서는 어떤 문명이라도 게이머에게 왕따를 당할만한 밸런스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스테인리스 스틸 스튜디오가 그토록 오랫동안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다.
중국은 많은 인구수 탓인지 값싼 노동력을 이용, 어떤 건물이든지 저비용에 빠른 시간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느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에서도 보여주듯 이들은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저그’와 같은 느낌으로 보다 빨리 자원을 수집하고 보다 많은 유니트 숫자를 자랑한다. 물론 과거 찬란한 문명의 빛을 누렸던 중국만의 특색이 빠졌을 리가 없다(만약 인해전술로만 밀어붙이는 국가로 묘사됐다면 중국의 반발은 가히 짐작이 간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존재하는 다양한 발명품들로 획기적인 공격력을 선보인다. 화약을 최초로 발명한 국가인만큼 적진에 홀로 뛰어들어가 자원을 파괴하는 폭파병이 등장한다거나 황비홍에서나 봤음직한 사람이 매달린 전투연(War Kite), 닌자와 같은 몸놀림을 보이는 정찰병에서 전투 코끼리까지 제국주의시대까지 이들의 가공할만한 위력은 게이머들의 눈길을 충분히 끌어당길만 하다.
릭 굿맨과의 인터뷰 Q: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게임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물론이다. 하지만 개발자로서 새로운 것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나는 게임을 만들 때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만든다. 이는 내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처음 개발했을 때부터 지켜온 철학이다. Q: 게임에 모든 문명이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문명은 특정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그게 보다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잉카문명이 2차 세계대전 시대에 등장하면 이상하지 않은가(웃음). 1~2차 세계대전 시대는 군사열강에 초점을 뒀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 등이 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Q: 게임에서 한국에 대한 고증이 꽤 잘 돼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한국에 대한 자료를 구했나. A: 역사자료를 찾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자료를 ‘사냥’하기 위해 인터넷은 물론 많은 서점과 도서관을 뒤졌다. 심지어는 한국에 관련된 자료를 구하기 위해 한국 친구까지 만들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보내주곤 한다. 이곳(호주)에 왔을 때도 혹시 자료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중심가에 있는 서점에도 다녀왔다. (제공: PC PowerZine) |
발전된 그래픽과 향상된 멀티플레이
엠파이어는
엠파이어 어스의 개량된 엔진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엠파이어 어스 수준의
그래픽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각각의 유니트를 확대해놓은 모습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 이전의 작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텍스처 압축기술과 절벽까지 표현된 지형의
고저차 표현기술, 밤낮의 변화까지 엠파이어 어스의 엔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한 퀄리티를 뽐내고 있다.
▶ 릭 굿맨. 이 정도 퀄리티로 게임이 출시되길 빌어요 |
또한 엠파이어 어스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던 멀티플레이 역시 한국인을 위한 빠른 플레이, ‘문명’과 같은 스타일로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게이머를 위한 느린 종류까지 다양한 모드를 안정된 서버에서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다양한 국가의 등장과 향상된 멀티플레이, 발전된 그래픽만으로 모든 게이머들의 기호를 맞출 순 없다. 엠파이어즈의 싱글플레이는 엠파이어 어스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만큼 다양한 영웅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를 보여줄 예정이다.
글쎄… 릭 굿맨이 공개한 이러한 정보가 단순히 허풍으로만 느껴지는가? 올 가을이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전략시뮬레이션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스테인리스 스틸 스튜디오의 ‘도전’이 말이다. 그동안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를 즐기든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의 확장팩인 타이탄즈를 즐기든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을 사랑하는 게이머에겐 즐거운 기다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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