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거슬러 올라온 페르시아의 왕자PC게임 중 가장 인상 깊게 즐겼던 게임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페르시아의 왕자에 몰표를 던지겠다고 장담한다. 구닥다리 터번을 쓴 왕자가 달랑 칼 하나만을 들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벌이는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그 당시(1989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드러운 움직임과 치밀한 레벨 디자인은 비디오게임에만 빠져있었던 필자를 PC게임 골수 유저로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페르시아의 왕자가 남겼던 재미는 느리지만 박진감 넘치던 칼싸움과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가던 트랩의 구성방식이었다. 지겹도록 가시에 찔리고 톱니바퀴에 허리가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수없이 반복했던 그 짜릿한 재미는 이후 어나더월드, 플래쉬백, 툼레이더와 같은 액션/어드벤처 장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PC액션게임의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특징이 됐다(이 게임 역시 미야모토 시게루의 ‘마리오’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이후 레드 오브 엔터테인먼트(Red Orb Entertainment)로 라이센스가 옮겨지고 약 6년여만에 3D로 새롭게 태어난 ‘페르시아의 왕자 3D’는 많은 기대 속에 출시됐지만 저조한 판매실적을 남기고 말았다. 툼레이더 시리즈가 2편에서 3로 이어지면서 게이머들이 식상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유행일변도에 따라 어설프게 제작되어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 3D버전은 인디아나 존스 인퍼널 머신과 함께 ‘구관이 명관’이라는 명언을 뼈저리게 느끼게끔 만든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매력적인 게임요소가 그대로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던 팬들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Ubi 몬트리올 스튜디오는 게임 라이센스와 함께 원작자인 조던 매크너를 영입, 페르시아의 왕자를 부활시키기 위한 작업을 3D버전이 망하는 순간(?)부터 시작했다. 2년간 비밀리에 제작되어온 이 작품은 3D버전에 실망을 느꼈던 게이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각오라도 한 듯 2003년 E3쇼에서 엄청나게 성장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그곳에서 ‘가장 기대되는 3인칭 시점 액션 게임’이라는 칭호를 얻어내기에 이른다. 11월 출시를 앞두고 제작이 막바지에 이른 ‘페르시아의 왕자: 샌드 오브 타임(이하 POP:ST)’. 과연 이 작품이 잃어버린 과거의 명성을 다시 찾아줄 수 있을 것인지 미리 살펴보도록 하자.
E3에서 이 게임을 주목한 이유
POP:ST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스플린터 셀과 레인보우식스 3: 레이븐실드 등 잇단 액션게임
화제작을 만들어내며 주가를 높이고 있는 Ubi소프트의 몬트리올 프로덕션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있다. 게다가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한 원작자 조던 매크너가 각본 작가로
참여, 개발 시작부터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고 스토리의 극적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Ubi 몬트리올 스튜디오 측은 페르시아 왕자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현재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신세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이들은 성공작이라고 불리었던 페르시아의 왕자 1, 2편을 눈감고도 플레이 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발자들을 선별, ‘고품질의 액션’을 모토로 이 게임이 보여준 장점을 최대한 추출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게임은 페르시안의 황제와 그의 아들이 인디안 황궁을 침공, 전리품을 찾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래시계와 보석단검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이상한 전리품을 한 왕가에 선물하는데 이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악한 조언가가 왕자로 하여금 보석단검을 이용, 모래시계의 잠겨진 문을 열게 만들어 세상에 거대한 혼란을 야기시킨다. 모래시계가 열리자 주민들은 모조리 모래괴물로 변해버렸으며 페르시아의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며 파멸의 길로 치닫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왕자는 이 끔찍한 음모를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폭군을 찾아내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고 모래괴물로 변한 주민들과 사투를 벌여나가며 대장정의 길을 떠난다. 과거의 작품에서 취했던 공주를 구한다는 컨셉자체가 슈퍼마리오에 대한 오마쥬라는 한계를 못 벗어났다는 평 때문인지 꽤나 고리타분한 스토리라인을 고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대로 동기부여가 된다는 느낌을 들지 않는가.
무엇이 바뀌었다는 건가?
이번
작품에서도 왕자의 주무기로 쓰이는 검은 이 게임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곡선형으로
만들어진 시미터다. 과거의 작품과 다른 점은 시미터가 게이머의 레벨을 대표하는
무기로 점차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 주인공은 주 무기인 시미터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는 특수공격옵션이 붙어있는 단검을 지니게 된다. 이 단검은 넘어진 적을 찔러
확인사살하는 단순 공격기능 외에도 마치 퇴마록에서 등장하는 ‘월향’과 같은 신비한
기능을 소유하고 있다.
이 단검이 가진 특수능력은 일명 매트릭스 효과라고 불리우는 슬로우타임 모드(딜레이)와 시간을 몇초 정도 과거로 돌리는 리바이벌, 전투 중 적을 순간적으로 얼려버리는 리스트레인트, 게이머를 빛의 속도로 만들어주는 헤이스트, 플레이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다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주는 데스티니까지 매우 독특한 기능을 보여준다. 게이머는 일명 ‘월향(?)’단검의 특수능력을 이용, 보다 전략적이고도 액션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자를 이번 E3쇼에서 주목했던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게이머는 매우 간단한 조작으로도 아크로배틱 체조선수처럼 왕자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 주인공은 가시함정을 피하기 위해 무협영화처럼 벽을 타고 달릴 수 있으며 적의 등 뒤를 밟고 점프를 할 수도, 장애물을 뛰어 넘기 위해 존재하는 로프를 그냥 손으로 세게 잡고 던져서 버튼을 당기는 기묘한 상호작용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트랩을 피하고, 적을 처치한 뒤 바닥에 놓인 포션을 마시고 체력을 채워나가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는 게임구성은 1, 2편과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다양한 특수기능과 수십 배 이상 늘어난 조작방법으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제작사 측의 설명이다. 또한 이 작품에 Ubi가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게임에 접목된 기술적인 발전이다. POP:ST는 소니가 제작한 PS2용 어드벤처 게임인 ‘이코(ICO)’에서 보여준 것처럼 광대한 스케일의 건축물과 지역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신기술을 적용했다. 따라서 게이머는 고도가 매우 높은 건물에서 등을 기대고 살금살금 걷는 것만으로도 고소공포증이 느껴질 정도의 아찔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인디아나 존스 최신작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던 시야문제에도 제작사 측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보다 쉬운 조작감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POP:ST는 11월 출시를 목표로 PC를 비롯, PS2, X박스, 게임큐브 버전이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 E3에 공개된 체험판과 동영상만으로 게임을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올 하반기를 달궈 줄 액션게임이라는 기대만큼은 여느 화제작에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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