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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축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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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계의 시리즈물⑫피파 축구 시리즈

2002년 6월 전국토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의 열기가 지나간지도 반년이 다 되어간다. 다른 스포츠에 밀려 급전직하하던 축구의 인기는 월드컵을 계기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최고 인기 스포츠로 거듭났다. 월드컵의 열기가 예상외로 빨리 식어 지금 축구장에는 각팀의 서포터즈들만이 남아 썰렁한 경기장을 지키고 있지만 축구의 인기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PC게임 속에서의 축구다. 예전부터 많은 축구게임이 있어왔지만 PC용 축구게임 중에서 EA의 피파 시리즈를 빼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EA의 피파시리즈다.

 

① 피파 이전의 PC 축구게임들

90년대 이후 흑백 허큘리스 그래픽카드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컬러 그래픽카드가 시장을 주름잡으며 애드립과 사블 등 사운드카드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자 개인용 PC는 게임기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각종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스포츠게임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CPU 성능과 그래픽카드 성능으로는 만족할만한 스포츠게임을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나온 축구게임들은 ‘이탈리아 90 사커’, ‘유러피언 챔피언스리그’ ‘인터내셔널 사커 챌린지’, ‘센시블 사커’ 등 이었는데 지금 회상해보면 고색창연한 그래픽과 현장과 따로 노는 사운드, 초파리의 인공지능을 가진 게임들이었다. 지금처럼 포메이션 변화라든가 공격, 수비 모드 전환이라든가 킥전담 플레이어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단지 ‘패스&러쉬’, ‘킥&런’, ‘런&슛’으로 이어진 간단한 게임들이었다. 딱히 할만한 축구게임이 없어서 나름대로 롱런할 가능성이 비치던 이 게임들은 94년 EA의 피파 시리즈가 나오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② 최초의 피파 - 피파 94

90년대 이후 흑백 허큘리스 그래픽카드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컬러 그래픽카드가 시장을 주름잡으며 애드립과 사블 등 사운드카드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자 개인용 PC는 게임기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각종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스포츠게임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의 CPU 성능과 그래픽카드 성능으로는 만족할만한 스포츠게임을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나온 축구게임들은 ‘이탈리아 90 사커’, ‘유러피언 챔피언스리그’ ‘인터내셔널 사커 챌린지’, ‘센시블 사커’ 등 이었는데 지금 회상해보면 고색창연한 그래픽과 현장과 따로 노는 사운드, 초파리의 인공지능을 가진 게임들이었다. 지금처럼 포메이션 변화라든가 공격, 수비 모드 전환이라든가 킥전담 플레이어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단지 ‘패스&러쉬’, ‘킥&런’, ‘런&슛’으로 이어진 간단한 게임들이었다. 딱히 할만한 축구게임이 없어서 나름대로 롱런할 가능성이 비치던 이 게임들은 94년 EA의 피파 시리즈가 나오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③ 고해상도 그래픽과 멀티플레이 지원 - 피파 96

피파 94에 열광했던 게이머들은 피파 96이 출시되자마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성급하게 3D 축구게임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피파 96은 진정한 3D 게임은 아니다. 부두의 글라이드나 D3D모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선수들과 경기장의 모습은 3D의 모습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3D를 2D로 렌더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워크래프트 2와 디아블로의 그래픽이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하지만 피파 96의 640*480 고해상도 그래픽은 경기장을 넓게 볼 수 있어 패스할 선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키 조합을 이용한 개인기(당시 피파 고수들의 Ctrl-A키를 이용한 페인트 모션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_-;;)를 남발할 수 있어서 똘똘한 놈 셋이면(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상대방 진영을 맘대로 유린할 수 있었다. 피파 96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다양한 카메라 모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축구 게임은 모두 탑뷰면 탑뷰, 쿼터뷰면 쿼터뷰 한가지 시점만을 제공하지만 피파 96은 마치 경기장의 여러 곳에 카메라를 장치해놓고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 시점을 골라서 플레이할 수 있는 듯한 카메라 시점 모드를 제공했다. 또 상대팀에 따라 달라지는 관중의 응원 소리, 유명한 해설가 존 못슨(John Motson)의 실감 넘치는 중계 등 지금 보면 축구 게임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용산 등지의 컴퓨터 상가에서는 하루종일 피파 데모를 보여주는 상가도 많았었다. 하지만 그래픽이나 카메라 모드는 피파 96에서 지원하기 시작한 멀티플레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하는 축구 게임은 골이 들어가는 공격 루트만 알면 계속 그 길만 따라가 대량 득점을 할 수 있다. 30:0의 스코어는 문제도 아니다(필자는 피파 96을 하면서 20~30초에 한골씩 뽑아냈다. 그것도 중거리슛과 사포를 쓰지 않고도). 하지만 사람:사람의 경기라면 이런 스코어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피파 96의 최고의 재미는 그래픽도 사운드도 아닌 바로 멀티플레이 지원이었다.


깔끔한 고해상도 그래픽과 멀티플레이 지원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피파 96


④ 난이도 변화와 트레이드 모드를 추가시킨 피파 97

피파 97은 피파 96의 그래픽을 더욱 향상시키고 모션 블렌딩을 이용해서 더욱 부드러운 선수들의 움직임을 재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피파 96에 비교해 조금 더 3D에 모습에 가까운 그래픽을 선보였고 돌비 서라운드 사운드를 지원해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관중의 함성이 좀더 실감나게 바뀌었다. 피파 97은 게이머의 실력에 따라 아케이드, 액션, 시뮬레이션 등 3개의 난이도를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축구 게임을 처음 해보는 초보 게이머들은 아케이드 모드를 선택해 부담없이 다득점(이건 말이 다득점이지 잠시 한눈팔다보면(?) 30:0 40:0의 폭득점도 금방 나오게 된다)을 얻을 수 있고 피파 시리즈를 오랜 기간 즐겨온 고급 게이머는 시뮬레이션 모드(이 모드를 선택하면 상대편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잠시라도 얼쩡거리다보면 2중, 3중으로 달려드는 수비수들에게 바로 공을 빼앗기게 된다)를 선택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피파 97에서는 전세계 255개 팀 4,200명의 선수를 플레이할 수 있었는데 선수들의 트레이드를 지원해 포지션 별로 우수한 선수들로 최강의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선수들의 데이터가 별로 정확하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선수 에디터가 없어서 선수를 만들어내거나 능력치를 고칠 수 없도록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는 프랜차이즈가 지금처럼 세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⑤ 월드컵 98 때문에 사장된 피파 98

피파 98부터는 선수들의 동작을 모션 캡처를 이용해서 제작하게 된다. 모션 캡처를 이용함으로써 선수들의 다양한 개인기를 게임에 넣을 수 있었고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모습, 경고를 먹거나 퇴장을 당하는 모습, 골을 넣고 골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 등 경기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많은 장면들을 고스란히 게임에 담을 수 있었다. 피파 98은 피파 97보다 향상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얼마 후에 발표된 EA의 월드컵 98 때문이었다. 필자는 아직도 왜 EA 스포츠가 피파 98과 월드컵 98을 같은 해에 내놓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쉬운 예를 들자면 핑클이 3집을 내고 인기를 얻으려 할 즈음에 바로 4집을 나온거나 마찬가지다)

피파 98: 월드컵으로 가는 길(FIFA: Road to Worldcup 98)과 월드컵 98은 엄연히 다른 게임이지만 상당부분이 비슷하다. 어찌 보면 피파 98에 월드컵 98 확장팩을 입힌 것이 월드컵 98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파 98은 피파 시리즈 최초로 3D 가속카드를 지원한 게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전까지의 피파 축구는 3D라고는 하지만 가속카드를 지원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렌더링만 지원했기 때문에 속도와 화질에서 완전 3D게임에는 한참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피파 98에서는 당시 부두의 글라이드 모드를 지원했지만 부두카드가 아닌 D3D에 대한 지원은 너무나도 열악해 다른 가속카드를 사용하는 게이머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아직도 EA의 스포츠게임들은 유독 부두에서는 훨훨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얼마 후에 나온 월드컵 98은 D3D에 대한 완벽한 지원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들과 선수들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검정을 마쳐 피파 98보다 월등히 나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이 피파 98보다는 월드컵 98로 몰려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드컵 98은 ‘We'll be singing when we're winning...’ 으로 시작하는 첨바왐바의 신나는 주제곡(Tubthumping)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맨처음 IGM을 도입해 순간적으로 공격과 수비를 전환하며 포메이션을 변환할 수 있는 모드를 제공해 보다 손쉬운 공수전환을 하도록 했다(한국 축구... 보고 배우자). 어찌되었든 간에 피파 98은 월드컵 98 때문에 인기나 판매도에서 많이 손해본 게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D3D 지원 피파 시리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월드컵 98ss


⑥ 게임방의 절대 강자 피파 99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파의 그래픽과 사운드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부두 계열에서 월등한 화질과 속도를 보이는 것은 여전하지만 i740이나 새비지3D같은 초저가형 그래픽카드를 가진 사용자들도 D3D를 이용해서 엄청난 화질로 피파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피파 99가 이전 버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수비수들의 인공지능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중앙으로 볼을 몰고 들어가면 어느새 수비수의 스탠딩 태클에 볼을 빼앗기기 일쑤고 사이드로 치고 들어가면 역시 스탠딩 태클과 슬라이딩 태클로 넘어지기 일쑤였다(물론 초보자에 한한 이야기다. 현란한 사포와 호나우도 드리블, 허들 등을 익힌 게이머라면 여전히 20:0은 기본 스코어다. 전후반 90분 경기가 아니라 8분 경기를 말하는 거다).

1998년에 우리나라 게임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니 바로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게임방의 열풍이다. 게임방은 이전까지 특수한 계층(?)만 즐기던 게임을 전국민이 즐기는 것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게임방을 주름잡는 게임이 딱 세 개가 있었다. 하나는 스타크래프트, 하나는 레인보우식스, 마지막 하나가 피파 99였다. 당시 필자도 최고 난이도로 여유있게 컴퓨터를 뭉개버렸던 실력이라 거만하게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하고 간 게임방에서 동네 꼬마 얍삽이에게 무참하게 깨진 이후 겸손한 자세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_-). 피파 99부터 이곳 저곳에서 피파 99 대회를 열기 시작했고 상금에 눈이 먼 그런 동네 꼬마 얍삽이들이 프로 게이머로 나서기도 했다. 그 꼬마 얍삽이(?)들이 지금은 WCG를 재패하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다.



게임방을 주름잡던 피파99


⑦ 올림픽 종목(?)으로 간 피파 2000

피파 2000이 나오기 전에 피파 2000에 드디어 한국의 K-리그가 포함된다는 소식이 전해져 피파 시리즈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게이머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본 피파 2000에는 K-리그는 없었다. 그리고 선수들의 모습이 마치 마른 강시같이 뻣뻣한 모습으로 돌아와 피파 2000을 기다리던 많은 게이머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그래픽이 좋아서 5년동안 해먹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피파 2000은 더욱더 다양한 개인기와 함께 선수들의 다양한 모션 캡처로 게임에 재미를 더해주었고 특히 게임 진행이 대단히 빨라져 멀티플레이를 할 때 대단한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 방송국에서는 거의 매일 저녁 피파 2000 대결을 내보내 인기몰이를 더 했고 전국에서 크고 작은 대회가 끊이지 않고 열렸다. 급기야는 게임 올림픽인 월드 사이버 챌린지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른다. 물론 한국 선수가 월등한 기량을 뽐내며 1~3위를 휩쓸어 버렸다. 피파 프로 게이머인 이지훈은 프로대회에서 무패의 기록을 자랑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이기석이나 신주영 못지않은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피파 2000의 특징이라면 멀티플레이를 무지막지하게 활성화시킨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프로게임리그 주관사였던 KIGL같은 곳에서는 자체적인 룰까지 정해놓고 피파게임을 하나의 스포츠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강시여? 강시같은 그래픽이었지만 멀티플레이를 활성화시킨 장본인이다


⑧ 완벽한 한글화의 피파 시리즈의 집대성 피파 2001

피파 2001은 지금까지 피파 시리즈를 만들어온 EA의 노하우가 모두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강시같은 선수들의 모습도 근사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물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의 모션을 그대로 캡처해서 더욱더 실감나는 게임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전까지는 지원하지 않았던 TCP/IP 멀티플레이 모드와 EA.COM 서버를 이용해서 전세계 어떤 피파 게이머와도 손쉽게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새발의 피다. 바로 손꼽아 기다렸던 K-리그의 등장과 함께 완벽한 한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 이영표를 이용표라고 표기한 것 이외에는 오류가 없는데다가 구단과 선수들의 데이터가 비교적 정확해서 K-리그를 사랑하는 많은 게이머들을 만족시켰다. 또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주는 해설도 우리나라 말로 등장했다. “꼴꼴꼴이에여~~~~”로 유명한 신문선 해설위원과 박찬호 중계에서 곧잘 본분을 잊어버리고 흥분하던 정지원 캐스터의 경기 중계는 가끔 상황에 안 맞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는 했지만 “저런 선수는 축구 선수 자격이 의심스럽습니다” 라든가 “골키퍼 손에 접착제를 바르면 반칙인데요” 등 재미있는 중계를 이끌어냈다(개인적으로는 차기 피파 시리즈에서는 송재익씨가 캐스터로 등장해 특유의 코믹중계를 했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물론 피파 2001도 제 1회 사이버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피파시리즈 중 최초로 한글화가 되었던 피파 2001


⑨ 나도 시뮬레이션이라는 소리 한번 들어볼란다. 피파 2002

이 시기는 특히 PC와 플스의 축구게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피파와 위닝에 대한 열띤 토론(?)이 게임게시판에서 심심하면 일어나던 때이기도 하다. 위닝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니들이 축구를 알어?’라면서 피파의 그 말도 안되는 아케이드성을 비난했고 피파게이머들은 ‘남 비난하지 말고 너네 하던 거나 계속하라’며 맞섰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피파 2002는 될 수 있는 한 실제 축구와 비슷하게 만들자는 EA스포츠의 제작자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게임이기도 했다.

첫 번째 변화는 패스의 난이도가 조금 올라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코너킥 부근으로 열심히 달려가다가 그냥 센터링 키만 눌러도 바로 멋진 크로스가 올라갔었지만 피파 2002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백날 차봐야 맨날 골킥만 나오게 됐다. 두 번째는 파워게이지가 생겨서 슛과 패스를 할 때 힘조절을 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이 힘조절 시스템은 보다 세밀한 패스와 슛을 가능하게 해서 일명 ‘따닥이 축구’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시스템이기도 하다. 또 쓰루 패스와 1:1 패스의 중요성이 돋보여 예전처럼 우격다짐으로 개인기를 남발해서 골이 많이 나는 것을 방지했지만 수비측의 난이도도 함께 높아져 버려 우리측 패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활보하는 적의 공격수 하나를 막지 못해 골을 먹는 비율이 높은 게임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현실성을 높인다고 집중강화 수비키를 없앤 탓도 크다. 피파 2002도 피파 98과 마찬가지로 4년에 한번씩 나오는 월드컵 시리즈에 막혀 고전한 타이틀이기도 했다.


스루 패스라인을 지원한 피파 2002


⑩ 오 필승 코리아! 월드컵 2002

온국민을 빨갱이(?)로 만들었던 6월 축제기간이 시작될 무렵 월드컵 2002가 발매된다. 피파월드컵 공식 지정 게임이기도 한 월드컵 2002는 피파 2002의 엔진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시스템 면에서도 그다지 개선된 점은 없었던 게임이었다. 사이드라인으로 흘러나가는 볼을 선수들이 슬라이드로 살려내는 동작이라든지 몇가지 세세한 부분은 추가가 되었지만 게임 자체는 완벽하게 ‘피파 2002의 엔진+피파 월드컵 스킨’이었던 게임이다.

공식 라이센스 게임인 만큼 월드컵 2002에는 우리가 익히 보아온 세계의 축구 수퍼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지단, 앙리, 라울, 히바우두, 나카타 등 월드컵 이전에도 유명했던 선수들의 모습은 마치 선수들이 직접 게임에 들어간 것처럼 매우 정교했다(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을 비롯한 세계시장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은 그다지 닮지 않았다 -_-). 여기에 덧붙여 전용준 캐스터와 강신우 해설위원의 중계는 월드컵에 관련된 내용이 대폭 추가되었고 때로는 썰렁한 유머까지 곁들이면서 전작보다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 상암, 대전, 요코하마, 고베 등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경기장 모습도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라든지 월드컵 전경기가 조별예선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실제 시간표에 맞도록 잘 구성된 것도 공식 라이센스 게임으로서의 가치를 잘 나타내 주었다. 그러나, 공식 지정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데이터라든지 경기장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몇가지 옥의 티가 있었던 게임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있었던 선수 에디터 툴도 없어서 원하는 선수를 만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팀의 선전과 월드컵 열기에 맞물려서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게임이기도 했다.


월드컵 열기와 맞물려 많은 인기를 모은 월드컵 2002


⑪ 현실감, 현실감, 현실감 부족을 극복하라. 피파 2003

피파 시리즈가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EA스포츠의 제작진들은 피파 시리즈에서 과감하게 아케이드를 버리고 좀더 현실감이 있는 축구게임이 되기 위한 도박을 한 것이 바로 피파 2003이다. 일단 월드컵 2003에 비해서 프랜차이즈 모드가 더욱 정확해져서 세계 유명 클럽팀 선수들은 물론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도 그대로 게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게임 내부적으로는 일단 게임에서 패스가 차단되는 경우가 상당히 높아졌다. 무턱대고 패스를 하는 경우는 거의 100% 상대선수의 발에 걸린다. 상대 수비수들도 무턱대고 공을 빼앗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격수들의 이동선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상대편 선수의 압박이 따라 붙지 않는 우리편 선수에게 패스를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아날로그 패스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패스키만 누르면 알아서 우리편 선수에게 볼이 가는 시스템을 변화해서 자유로운 방향전환과 힘조절을 통해 좀더 세밀하고 다양한 방향과 거리로 패스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축구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허리 싸움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프리킥 시에 공을 날려 보낼 방향뿐만 아니라 공의 밑둥을 얼마나 깎아 찰지 결정해주는 모드가 생겨서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모드도 생겼다. 그리고 블리자드의 배틀넷처럼 피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게임을 하고 자신의 전적을 관리해주는 매치 서버가 생긴 것도 큰 변화다. 이 매치 서버에 들어가면 전세계의 피파 게이머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자신이 어느 정도 레벨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피파 시리즈의 고질병의 하나인 AI는 피파 2003에서도 그다지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특히 수비수들의 멍청한 움직임은 허리싸움을 강화한 피파 2003의 장점을 상쇄시킬만큼 개선되지가 않아서 많은 피파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다 현실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피파 게임을 뒤집는 피파 제작팀의 노력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게임이 바로 피파 2003이다.


매치업 서버를 지원한 피파 2003

자료출처 : PC POWER 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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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PC
장르
스포츠
제작사
EA스포츠
게임소개
피파 2003은 보다 향상된 인공지능과 실제 선수들의 능력과 팀전술에 중점을 두어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 슈팅, 드리블, 패스와 루스 볼 상황 등 볼컨트롤도 아주 실제적으로 바뀌게 된다. 또 코너킥과 프리킥 모드...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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