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인공을 거부한다!
머리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 고기라도 썰어 버릴듯한 날카로운 턱선, 마돈나도 울고 갈 환상의 S라인은 이제 ‘주인공의 공식’이다. 월매보다 춘향이가 낫다고, 못생긴 주인공보다 예쁘장하게 생긴 주인공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유저의 본능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는 듯한 샤방한 미소년 캐릭터는 이제 지겹다! 이럴 땐 빛나는 엘프보다 먼지 푹푹 쌓인 오크를 골라보는 것이 유저의 심정이다.
▲ 인간은 가끔 미친 척을 해야 인간답다
그러나 오크로 부족했던 필자는 한술 더 떠 일반적인 게임에선 차마 볼 수 없는 엽기적인 주인공이 출연하는 게임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주인공인 게임이 있을까? 눈에 핏줄 세우고 찾아보니 그런 게임들은 의외로 많았다. 그 엽기적인 게임들 중에서 잘 만들어진 4개의 게임을 골라보았다.
사람 잡아먹는 좀비가 되자! 스텁스 더 좀비
‘좀비’하면 역시 ‘바이오하자드’, ‘하우스 오브 더 데드’가 생각난다. 시리즈로 몇 년 동안 무참히 쓰러지는 좀비들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마련된 좀비의 리벤지매치! 바로 코미디 좀비게임 ‘스텁스 더 좀비’다.
▲ 사랑과 자유를 찾는~ 나는야 좀비~
‘스텁스 더 좀비’는 맵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적들을 처치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방식의 액션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특징은 주인공이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로맨틱한 좀비라는 것이다. 좀비답게 사람을 잡아먹는 능력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을 통해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 하나의 좀비군대(?)를 양성시키는 좀비 보스가 될 수도 있다. 이 능력 외에도 자신의 내장을 폭탄으로 쓰거나, 뜯어낸 자신의 손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는 등의 엽기적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 ‘스텁스 더 좀비’ 트레일러 영상
보통 ‘좀비’하면 무섭거나 진지한 분위기의 공포가 느껴진다. 하지만 ‘스텁스 더 좀비’는 코미디 좀비 게임답게 게임 곳곳에 웃음을 삽입하여 가볍고 유머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호러게임을 싫어하는 유저라도 부담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잔인성은 여느 좀비게임 못지않게 높기 때문에 잔인함을 싫어하는 유저라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스텁스 더 좀비’는 발상과 플레이의 독특함 덕분인지 초반에 강인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전투와 맵, 답답한 AI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함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 이제 좀비는 더이상 만만한 놈이 아니다
당신의 인생은 이미 바퀴벌레, 배드 모조
폭주기관차같이 빠르게 놀려대는 3쌍의 다리, 핵폭발이 일어나도 살아남는다는 질긴 생명력, 거기다 ‘날개’라는 진화의 옵션까지 달아버린 곤충인 바퀴벌레는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넘버원이다. 그래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바퀴벌레 박멸 백전백승.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교육(?)용 게임이 있으니, 바로 ‘배드 모조’다.
▲ 꺄악~ 바퀴벌레!! 세X코 불러!
‘배드 모조’의 장르는 요즘 그 인기가 많이 줄어든 전통 어드벤처 게임이다. 돈가방을 훔친 아이가 그 안에 있던 저주의 부적을 만져 바퀴벌레(모조=Mojo)가 되고,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모험을 한다는 약간 아스트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전통 어드벤처 게임답게 액션은 없지만, 대신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퍼즐이 마련되어 있다.
‘배드 모조’는 왠지 ‘3류 게임’의 냄새가 풍기는 게임이지만, 독창적인 설정과 퍼즐로 어드벤처 매니아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명작 중의 명작이다. 해외 유명잡지 ‘PC 게이머’에서 2004년 최고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선정된 경력도 있다.
▲ 바퀴벌레로 변하는 저주를 받은 주인공. 말그대로 '바퀴벌레 같은 자식'이다
‘배드 모조’의 실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2D 그래픽은 그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고퀄리티의 그래픽은 이 게임의 단점 아닌 단점이다. 바퀴벌레가 다니는 곳이 그렇듯 쓰레기장, 지하실 구석 등 더럽고 역겨운 배경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이 배경과 고퀄리티의 그래픽이 맞물려 역겨움이 더 강해진다. 만약 비위가 약한 유저,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유저라면 플레이 하기 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 역겨운 느낌이 날 정도로 고퀄리티
GTA 죠스 버전? 죠스 언리쉬드
‘빠~밤 빠~밤’, 무겁고 조용하게 들려오는 영화 ‘죠스’의 배경음악은 아직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다. 사람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배를 파괴하는 ‘죠스’의 파괴력을 보고 있자면 무서움을 넘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 무지막지한 괴물을 직접 움직일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필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필자만이 아닌 것 같다. 바로 ‘죠스 언리쉬드’라는 게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죠스의 세계로 WA~ WA~
영화 ‘죠스’ 30주년 기념에 맞춰 만들어진 ‘죠스 언리쉬드’는 나약한 인간이 아닌 한 마리의 외로운 포식자 ‘죠스’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죠스’가 된 유저는 유유히 섬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고, 배를 파괴하는 등 각종 파괴행위(?)’를 즐길 수 있다.
▲ '죠스 언리쉬드' 트레일러 영상
‘죠스 언리쉬드’는 높은 자유도로 유명한 ‘GTA’의 게임방식과 많이 닮아있다. 게임의 배경인 아미티 섬 안에서 ‘죠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파괴플레이를 즐기고 자신이 원할 때 스토리와 관련된 메인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또 메인 미션과는 관계없는 보조 미션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다양하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X됐다
하지만 ‘죠스 언리쉬드’는 독특한 소재에 비해 조작감, 그래픽 등 기본적인 요소가 부족한 게임이다. 상어를 움직이는 생소한 조작도 문제지만, 카메라 시점변환이 되지 않아 시야 확보가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2006년에 나온 게임에 비해 낮은 퀄리티의 그래픽과 사운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특히 대화이벤트에서 라디오 소음을 듣는듯한 배우들의 목소리는 재빨리 스킵을 누르고 싶을 정도다.
지구는 내가 접수한다!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
SF하면 ‘외계인’을 빼놓을 수 없다. UFO를 타고 지구를 침공하여 인류를 실험재료로 쓰는 외계인들의 모습은 영화나 TV에서 끊임없이 보아왔다. 그 풍경에 분노하여 외계인을 처치하기 위해 용감히 나서는 인간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젠 하품이 나올 정도다. 이 하품을 딱 그치게 해주는 게임이 있으니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라는 세계정복(?) 게임이다.
▲ 모든 인류를 말살시켜라!!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쓰레기를 우주에 투척하여 환경오염을 유발시키는 인간들에게 분노한 외계인 ‘크립토’가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들은 ‘우주의 악당’이고, ‘크립토’가 ‘우주의 정의’인 것이다. ‘크립토’는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인류 말살’을 목표로 지구를 침공한다.
▲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의 트레일러 영상
외계인 ‘크립토’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구를 침공한다. 레이저총을 사용해서 인간들을 직접 처리할 수 있고, 초능력을 이용해 최면을 걸 수도 있다. 아니면 UFO로 조종하여 마을을 폭격할 수도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내어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인간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는 존재는 아니기에 경찰, 탱크, 특수요원 등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
▲ 우주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라! 나쁜 인류놈들!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GTA’의 게임플레이 방식과 비슷하다. 하나의 맵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적을 학살하거나 메인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메인 미션에 관계없이 보조 미션을 플레이할 수 있지만, 그 수나 다양함이 적어 재미가 부족하다.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외계인을 조작하여 지구를 침공한다는 설정이 꽤 독특한 게임이다. 하지만 정작 설정에 비해 게임플레이는 다른 액션게임의 플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독창성이나 개성이 부족하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디스트로이 올 휴먼즈!’는 PC버전이 없고 콘솔용만 존재하기 때문에 PS2나 Xbox같은 비디오게임기가 없는 유저라면 게임을 즐길 수 없다.
골 때리는 엽기주인공 게임의 세계
위의 게임들을 소개하고 나니 여자 오크 한 번 골라보려다 좀비, 바퀴벌레 원산폭격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런 엽기적인 주인공들이 나오는 게임을 플레이 해보면 단지 겉모습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엽기적인 주인공 얼굴답게 속내용도 독창성과 개성으로 꽉꽉 들어찬 게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판타지와 SF, 미소년과 미소녀가 난무하는 요즘 게임세상, 일말의 지루함이 느껴진다면 잠시 그 껍질을 벗어 던지고 엽기주인공 게임의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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