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끝났다. 그 후~
"아하핫~ 그래서 그렇게 달려와서는 장승처럼 굳어있던 거예요?"
“그게… 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백마탄 왕자님을 상상했는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난 백마도 없고, 왕자도 아닌 뛰어다니는 성직자다.
"그래도 묵묵히 도와주는 수호천사도 나쁘지 않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어느새 나는 묵묵히 그녀의 수호천사가 돼버렸다. 정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친구등록 해요~ 네?"
“네네~ 친구등록 해요! 친구가 생겼다~”
눈치 빠른 몇몇 분들은 이미 짐작했을 거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그녀와 난 모험단 녀석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바일 때려잡기 데이트(?)를 즐겼다. 그녀는 몸빵, 나는 회복! 뭔가 핀트가 어긋난 데이트였지만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오늘도 모험단 녀석들의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와 심야데이트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어김없이 그녀가 나서면 나는 그 뒤를 받쳐주며 그녀가 안전하게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온갖 보조스킬에 힐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긴장감 한가득한 데이트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기진맥진해 있던 사이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넸다.
“카카님 러브러브~”
헙! 이 메시지는!! 쉴츠에서 유일하게 솔로부대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인 커플신청이 아니던가?! 드디어 나에게도 봄날이~~~~~~~~T.T
그러나 그 즐거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압~! 실수로 커플신청을 해버렸네~ 미안미안”
“허걱~ 역시 그런거였나…”
▲나는
성직자일 수밖에 없었다
10초도 안되는 시간. 짧다면 정말 짧을 수 있는 10초라는 시간에 나는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맛봤다. 실수였다니! 실수였다니!! 실수라니!!!
‘OO님이 커플을 신청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서 내가 ‘YES’를 선택하면 그녀가 저지를 실수라 해도 난 단 몇 초 동안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솔로부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나도 실수라고 하고 눌러버릴까?
누를까? 말까? 아~ 갈등 되는 순간이다.
“뭐해? 승낙 안 할거야?”
“앗~ 그런거야?”
괜한 고민이었나!
OH~YES! 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쉴츠의 한 커플이 됐다. 이제 지긋지긋한 모험단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게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라는 것인가?!
“멀뚱멀뚱 서서 뭐해!!! 빨리빨리 와서 힐 좀 해줘!!”
★내 모험의 시작
▲과거의
쉴츠에 왔다
내가 쉴츠에 온 이유는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와 같다(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거창하게 가자). 처음에는 막대한 사명을 지니고 이곳에 왔지만 지금 내 처지는 -_-. 에휴~ 한숨만 나온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우기에 급급했던 몹시 평화로웠던 어느 날 길에 걸려 있던 시간여행 제안서를 발견했을 때부터 나의 모험은 시작됐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모두 용기 있고 모험과 여행을 즐기시는 분이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막 새로운 여행을 떠나시려는 분이고 지금 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계신 분들일 겁니다. 그런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합니다. 이것은 또한 나 쉴츠 재상 조안 아하스나트의 의뢰이기도 합니다. ?이하 중략-”
내가 살고 있는 쉴츠에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힘들다. 다툼, 싸움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예전에는 인간과 다른 종족과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재상은 바로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 듯하다. 어째서 과거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타 종족과의 전쟁이 끝나고, 인간만이 남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의문이다. 재상의 의뢰란 것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왜 인간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뤘던 바일이라는 종족이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한 것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의뢰에는 조건이 있었으니 그 조건이란 바로 손에 한 점의 피도 묻히지 않은 사람만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소환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생판 초보자들만이 자격이 된다는 것인데….
“그럼 나잖아!?”
집에서 늘 빈둥거리며 논다고 구박을 받아왔던 터였는데 뭐 어떠랴! 어쩌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것이 내게 새로운 기회를 줄지도 모르는데! 구미가 당겼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 의뢰를 직접 부탁한 것 같은 느낌같았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쉴츠 재상의 시간여행 제안서를 받아들고 바로 신청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아무 제재 없이 과거로의 쉴츠 여행을 승인 받을 수 있었고 과거로 돌아가 바일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조사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고 소환장치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주위에는
비까번쩍한 사람들도 보이고…
내가 지급받은 것이라곤 달랑 옷과 가방 뿐…! 그 외에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다. 완전 거지꼴로 난 과거의 쉴츠로 이동한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라임 마을. 앗~! 그런데 이게 왠일이야! 라임 마을에는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가방을 멘 사람들이 한 둘도 아니고 몇 십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수행하는 임무가 아니었단 말이야?”
아~~ 실망! 실망! 대실망~~~~!
집에 있을 때 애독했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심심할 때 즐겼던 RPG의 주인공처럼 낯선 곳에 떨어져 발생하는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점차 성장해 나가는 나. 어둠의 세력을 나를 견제하고 나는 고난과 역경의 끝에 전설에 다가가 최강의 검을 얻고 마침내 악의 세력을 무찌르는 것이 바로 이 의뢰의 본 목적인 줄 알았건만!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로 나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선착순이 되는건가?! 밝은 내 미래의 청사진은 어디로?
“절대 질 수 없다!”
내가 이래뵈도 한 승부욕 하지. 내가 가장 먼저 임무를 완수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재상에게 표창을 받고 말리라.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멀뚱멀뚱 서서 뭐해!!! 빨리 와서 힐 좀 해주란 말이야!!”
“죽을 뻔 했잖아요!!!!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국물도 없어요!?”
“아악 ~ 프로텍트! 프로텍트! 저 죽으면 책임질 거예요? 빨리빨리~”
흑 ㅜ.ㅜ 내 꿈을 돌리도~~~~~~~!!!!!!!!
★첫 싸움~
▲공놀이?
아니야 이건 전투야!!!
현실에서도 백수신세였는데 과거까지 와서 백수신세라니…. 여비마련도 좋지만 일단 대충 백수티를 벗기 위해서라도 돈 좀 벌어야 할 텐데….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벌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딱히 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분주하기만 하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헛된 자존심은 점점 사라지고 빨리 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내 머리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결국 낯선 땅의 낯선 사람에게 들을 수 있었던 돈을 버는 방법이란 것은 꽤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일이라고 불리는 종족과 싸워 전리품을 얻은 뒤 그것을 상점이나 다른 사람에게 팔던가 아니면 전리품으로 낚시를 해서 재테크(?)를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왜…왠지 깡패 같은 짓이다. 뭐 나 같은 이방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인가! 여태까지 주먹다짐 한번 해보지 못했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 위해 두 주먹 불끈 쥐고 마을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역시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힘을 발휘하게 된다.
- 마을 밖-
여기저기서 ‘삐약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닭장인가? 하지만 병아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 시야에는 노란 색의 공들이 이리 저리 튀어 다니고 있는 광경만 있을 뿐이다. 신기한 공들이다. 아주 작게 팔도 달렸고 눈도 있으며 코까지 있다! 탄력도 좋게 보인다. 이 녀석으로 축구하면 재미있을까?
나는 처음 보는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노란 공같이 생긴 물체에 접근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내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를 챘는지 노란공 생물이 내게 통~ 통~ 거리는 소리를 내며 함께 다가오고 잇었다. 무슨 일일까?
“팡~~~~~~~~!”
▲어쭈구리?
푹신(?)거리는 느낌과 함께 내게 자그마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뭐지? 어안이 벙벙하다. 마냥 통통거리다가 내게 부딪힌 건가? 나를 공격한건가? 왜? 무슨 이유로?
“파~~~~~앙~~~!”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도중 또 한 번 충격이 전해졌다. 적당한 충격은 화를 돋우기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아는지??? 녀석의 의도대로 난 화가 났다. 그리고 졸지에 노란공과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누런 공 녀석이 나를 먼저 쳤기 때문에 나도 주먹으로 녀석에게 한 방 먹인 것 뿐이다.
“퍽~ 팡~ 퍽퍽~ 팡팡~”
병아리 소리를 낸 것인 바로 이 녀석이었던 것이다. 내 주먹이 많이 아팠는지 연신 ‘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얻어맞은 상처는 나의 이성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 10년 간 맞아본 일이 없는데 네 녀석이 그걸 깨버리다니!
“삐~~~~~이이이이이~~~”
내 주먹을 받은 누런 녀석은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쪼그라들기 시작하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사라진 자리에는 ‘제라늄’이라는 알 수 없는 물체만 남아있었다.
이것이 내 생애 첫 싸움이었다.
“노란 공 녀석은 죽어서 제라늄을 남긴다. 그리고 이걸 팔면 돈이 된다. 과거 쉴츠에서의 첫 경제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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