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다사다난했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어갑니다. 연말에는 잠시 숨을 고르고 지난 날을 되돌아보시길. 해마다 이즈음 열리는 각종 시상식도, 한 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표창한다는 의미가 있답니다. 게임계 또한 개인 혹은 단체가 저마다 ‘올해의 게임(GOTY)’을 선정하느라 바쁩니다.
그런데 한 해를 평가하는 방식이 꼭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니죠. 최고가 있으면 최저도 있기 마련이므로, 특별히 유감스러운 사례를 선별해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이미 많이들 꼽은 ‘올해의 게임’ 말고, 실망만을 안긴 실패작을 모아봤습니다. 내년에는 잘 좀 했으면 좋겠네요.
5위 삼국지 13, 미완성품으로 전락해버린 30주년 기념작
▲ 그래도 30주년작이니 기대했는데… '삼국지 13'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한때 ‘시드마이어의 문명’과 어깨를 견주던 코에이테크모 ‘삼국지’는 근 몇 년간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일본 내 전략게임의 인기가 사그라짐에 따라 판매량이 곤두박질쳤고, 태블릿 대응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얄팍한 게임성 때문에 되려 혹평만 받았죠. 이 여파로 1~2년 주기로 나오던 신작이 4년이나 늦어져 시리즈가 버려진 것 아니냐는 소문도 흘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등장한 ‘삼국지 13’은 시리즈 30주년 기념작이자, 10년만의 한국어화 성사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소싯적 ‘삼국지’를 붙들고 밤을 지새운 많은 게이머가 한 마음으로 쾌재를 불렀죠. 그러나 정말 ‘힘주어’ 개발했다는 코에이테크모의 호언과 달리, 정보가 공개될수록 지켜보는 모두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겉모습부터 콘텐츠까지 너무… 별로였거든요.
▲ KBS 역사스페셜 자료화면 보는 듯한 그래픽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아닐거야’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받아본 게임은 우려하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10년 전으로 회귀한 열악한 그래픽과 ‘삼국지 12’가 떠오르는 부실한 콘텐츠, 최적화 실패와 온갖 오류까지. 패치를 거듭하며 차츰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결함이 눈에 띕니다. 혹자는 ‘파워업키트’가 나오면 달라질 거라는데, 확장팩이 있어야 제 구실을 하는 게임이 정상은 아니겠죠.
4위 노 맨즈 스카이, 비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 결과물
▲ 설마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니? '노 맨즈 스카이'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E3 2014에서 첫 선을 보인 ‘노 맨즈 스카이’는 우주선이 실시간으로 대기권을 돌파해 행성에 착륙하는 영상 하나로 그 해 최고의 기대작이 됐습니다. 절차적 생성을 통해 구현된 무한한 우주를 어떠한 로딩도 없이 탐험한다는 콘셉트는 정말 비범했죠. 모두가 소규모 개발사인 헬로게임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놀라운 기술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천재 개발자로 포장된 디렉터 숀 머레이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비전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에 따르면 ‘노 맨즈 스카이’에는 이론상 수천’경’에 달하는 다채로운 행성이 있으며 이곳을 무대로 활동하는 여러 종족과 세력, 그리고 순환하는 생태계가 존재한답니다. 드넓은 우주를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여행하거나 경쟁할 수도 있고 말이죠.
▲ 광활하긴 한데 그다지 할 것도 없는 심심한 우주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허나 오랜 기다림 끝에 게이머 손에 들려진 콘텐츠는 듣던 것과 딴판이었습니다. 절차적 생성된 행성은 숫자만 많을 뿐 조잡하고 공허하고, 우주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세력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어요. 무엇보다 황당한 점은 제대로 된 멀티플레이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겁니다. 뒤늦게 무료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이제와 이 게임을 돌아볼 사람은 없겠죠.
3위 서든어택 2, 전작을 답습하는데 그친 후속작
▲ 전작을 답습하는데 그친 '서든어택 2'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서든어택 2’는 흥행공식만을 좇는 국내게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국내 최고 FPS라는 ‘서든어택’의 이름을 이어받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대신 전작을 답습하는데 그쳤어요. 최대한 똑같은 작품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뤄내겠다는 계획이었겠죠. 만약 성공했다면 기존 ‘서든어택’ 유저와 넥슨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헌데 조심스레 출시 시기를 재던 ‘서든어택 2’ 앞에 혜성처럼 ‘오버워치’가 등장했습니다. 진일보한 게임성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앞세워 고착화된 국내 게임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서든어택’을 왕좌에서 끌어내렸죠. 전작 꽁무니만 쫓으면 성공이 보장됐던 ‘서든어택 2’는 갑자기 입장이 애매해졌습니다. 부랴부랴 출격했지만 게이머의 반응은 싸늘했죠.
▲ 호보다 불호가 많았던 전장의 아이돌 그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답보 상태인 게임성에 비판이 이어졌지만, 어쨌든 출시 후 각종 지표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문제는 ‘서든어택’이 아직 건재한 상황에서 형제끼리 파이를 갈라먹는 곤란한 형세가 됐다는 거죠. 이것도 모자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여성 캐릭터가 성상품화 추문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대내외적으로 흔들리던 넥슨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론칭 23일만에 게임을 포기하고야 맙니다.
2위 마이티 넘버 9, 난립하는 정신적 계승작의 씁쓸한 말로
▲ 해보면 캡콤을 옹호하고 싶어지는 '마이티 넘버 9'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오늘의 슬픔 가운데 가장 비참한 것은 어제의 기쁨에 대한 추억’이라고 했죠. 명맥이 끊긴 게임 시리즈의 팬덤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어릴 적 즐긴 게임을 지금 다시 하더라도 여전히 재미있으리라 믿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엽니다. 덕분에 소위 ‘정신적 계승작’이 난립하는데, ‘마이티 넘버 9’도 그 중 하나죠.
명작 횡스크롤 액션게임 ‘록맨’를 만든 이나후네 케이지는 캡콤에서 독립한 후 신작 개발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개시했습니다. 자신의 대표작 ‘록맨’을 계승할 적통을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만들겠다는 것이죠. 고전 IP를 홀대하는 캡콤에 반감을 품고 있던 팬덤은 흔쾌히 투자금을 쾌척했어요. 패미컴으로 ‘록맨’을 즐기던 꼬마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엄청난 화력을 뿜어냈습니다.
▲ 아무리 봐도 불길이 아니라 페페로니인데…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몇몇 콘셉아트 외에 결과물을 보장할만한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최종적으로 거금 400만 달러(한화 약 48억)가 모였습니다. 그러나 신형엔진에 대한 무지는 볼품없는 외관을 낳았고, 펀딩 목표로 제시한 과도한 멀티플랫폼은 수 차례 발매지연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나마 믿었던 레벨 디자인조차 기대 이하로 드러나며 ‘마이티 넘버 9’은 씁쓸한 말로를 맞이했죠.
1위 창세기전 4, 귀환해서는 안됐던 전설의 빠른 몰락
▲ 그래도 일러스트북은 내줬으면, '창세기전 4'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오래 전부터 게임계에 전설처럼 떠도는 ‘떡밥’이 있습니다. ‘나오기만 하면 시장을 평정한다’라거나 ‘개발사의 명운이 다할 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는 뭐 그런 작품들이요. 구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4’도 이러한 ‘전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몰락한 국내 패키지게임 시장의 상징이자 국산RPG의 자부심 ‘창세기전’이 오랜 침묵을 깨고 부활하는 것이죠.
사실 ‘회사 망할 때 되면 나온다’는 얘기는 반쯤 농담에 가까운데, ‘창세기전 4’는 실제로 그런 경우입니다. 2009년 제작 발표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사세가 유지됐지만, 이후 수년간 추가 매출원 확보에 실패하며 서서히 말라갔죠. 어떻게든 마지막 힘을 짜내어 ‘창세기전 4’ 프로젝트는 유지했지만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장의 요구치를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 어쩌면 어떤 게임이 나왔더라도 기대에 못 미쳤을지도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시간여행을 테마로 기존 시리즈의 서사와 캐릭터를 아우른다는 콘셉트는 썩 괜찮았지만, 시대착오적 그래픽과 투박하고 불편한 시스템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온라인게임에 치명적인 서버문제도 연이어 터져 나왔죠.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군진’ 등도 신선함보다 불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전설’은 빠르게 몰락했고, 소프트맥스는 사명까지 바뀌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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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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