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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약탈자→전사→학살자, ‘호드’ 과거 세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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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되기 무섭게 불타오르고 있는 ‘실바나스’ 스토리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 공개되기 무섭게 불타오르고 있는 ‘실바나스’ 스토리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최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신규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 발매로 관련 커뮤니티가 뜨겁다. 단순히 신규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기엔, 화제가 되는 이슈가 조금 특이하다. 게임 캐릭터 ‘실바나스’와 ‘호드’ 진영에 대한 논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하지 않는 게이머도 ‘실바나스’ 이슈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다.

논쟁의 쟁점은 이렇다. ‘호드’의 수장 ‘실바나스’가 ‘나이트 엘프’ 종족의 도시를 불태우고 민간인을 대량학살 하는데, 이러한 행보가 대체 ‘호드’라는 조직에 걸맞냐는 것이다. 즉 힘과 명예를 숭상하는 전사 집단이 ‘호드’인데, 최근 ‘실바나스’로 대표되는 ‘호드’의 활동은 설정 붕괴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 논쟁이 어찌나 뜨거운지 지난 10일에는 아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디렉터가 직접 나서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에 있는 ‘워크래프트’ 진영 ‘호드’는 어떤 집단이길래 이 정도로 논란이 되는 걸까? 이번 주에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호드’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간단히 짚어본다.

외계에서 온 녹색 악마들, 첫 번째 ‘호드’

명예로운 전사보다는 광기 어린 도살자에 가까웠던 과거의 ‘호드’ (사진출처: Scribd)
▲ 명예로운 전사보다는 광기 어린 도살자에 가까웠던 과거의 ‘호드’ (사진출처: Scribd)

‘호드’는 ‘워크래프트’ 시리즈 첫 작품부터 등장했다. 다만 당시 ‘호드’는 오늘날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호드’는 힘과 명예를 숭상하는 야만 종족 연맹체로 묘사되지만, 본래 ‘호드’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오크’ 무리처럼 피에 미친 약탈자 무리였다. 따지고 보면 ‘실바나스’의 악행은 원조 ‘호드’에 걸맞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워크래프트’ 설명서 설정에 따르면, 본디 ‘호드’는 선천적으로 사악한 본능을 지닌 ‘오크’ 종족으로 이루어진 무리다. 늪지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가는 곳마다 고통과 불러오며 토착민을 정복했다. 그렇게 고향 세계를 정복한 ‘오크’는 흉포한 본능을 못 이겨 서로 싸우기에 이르렀는데, 이 내전이 어찌나 심각했던지 ‘오크’는 멸종의 위기에 처할 정도였다.

‘워크래프트’에 등장한 ‘호드’의 수장 ‘블랙핸드’ (사진: 게임 내 영상 갈무리)
▲ ‘워크래프트’에 등장한 ‘호드’의 수장 ‘블랙핸드’ (사진: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결국 종족이 멸종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오크’ 흑마술사들은 다른 세계를 찾기 시작했다. 함께 정복할 다른 세계를 찾으면 내전도 자연스럽게 끝날 거라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 ‘오크’들은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아 이 계획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제로스’라는 다른 세계의 미친 마법사 ‘메디브’가 자기 고향을 침략해달라며 차원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아제로스’를 침공한 ‘호드’는 결국 ‘린 왕’과 그 후계자인 아들 ‘레인 왕’을 모두 죽이고 인간들을 몰아내기에 이른다. 여기까지만 봐도 ‘호드’가 얼마나 잔악한 무리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가학적 본성을 억제 못하고 동족끼리 전쟁을 벌인 끝에 멸종할 위기에 처했고,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차원이동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호드’가 단순히 외계에서 온 침략자로만 묘사된 것은, 사실 당시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스토리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 아직 작은 개발업체에 불과했던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로 처음 RTS 장르에 도전한 것이었고, 게임 시스템과 프로그래밍을 감당하는 것만 해도 꽤나 버거운 상황이었다. 향후 세계관 확장에 대해서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블리자드는 기존 판타지 게임에서 ‘오크’ 이미지를 따와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호드’를 만들어냈다. ‘워크래프트’ 개발자 패트릭 와이어트의 회고에 따르면 ‘워크래프트’는 아트 디자인에 있어 ‘워해머 판타지’를 비롯한 기존의 다른 게임을 많이 참고했고, 그에 따라 ‘호드’도 당시 게임업계에서 묘사한 ‘오크’ 표준에 따라 광기 어린 약탈자로 묘사됐던 것이다.

세기말 폭주족 식인종처럼 묘사된 ‘워크래프트 2’ 오크들 (사진출처: Scribd)
▲ 세기말 폭주족 식인종처럼 묘사된 ‘워크래프트 2’ 오크들 (사진출처: Scribd)

‘호드’ 설정에 조금 더 살이 붙은 것은 ‘워크래프트’ 콘셉트 아트와 설명서 일러스트 담당이었던 크리스 멧젠에 의해서였다. 그는 취미 삼아 스스로 ‘워크래프트’ 스토리와 설정을 써서 블리자드 사내 동료들에게 공개했는데, 이에 흥미를 느낀 개발자들이 멧젠의 이야기를 게임에 실제로 반영하자고 한 것이다. 덕분에 ‘워크래프트 2’는 멧젠이 스토리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참가, 전작보다 한층 상세하고 흥미로워진 스토리와 설정을 덧붙이게 됐다.

다만 스토리 전담 디자이너가 추가 됐다고 해서 ‘호드’의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워크래프트 2’는 전작보다 ‘호드’의 비열함과 추악함을 보다 자세히 묘사했다. ‘워크래프트 2’에서 ‘호드’는 승기를 잡고도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서로를 배신하는 등 내전을 일삼다 인간 연합군에 패배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며, 확장팩 ‘어둠의 문 너머’에서는 고향 세계에 남아있던 부족들이 서로 배신하고 속이며 앞다퉈 다른 세계로 도주하는 것으로 나왔다. 여기서도 명예와는 거리가 먼 종족이었던 셈이다.

‘어둠의 문 너머’에서 동포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오크’ (사진: 게임 내 영상 갈무리)
▲ ‘어둠의 문 너머’에서 동포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오크’ (사진: 게임 내 영상 갈무리)

이렇듯 ‘워크래프트’ 시리즈 초기 ‘호드’는 힘과 명예와는 거리가 먼 족속이었다. ‘호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악한 약탈자로, 자기들 사이에도 배신과 모략을 일삼는 추악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2’ 이후 블리자드는 자사 브랜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발전시키기로 결정했고,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호드’의 이미지 세탁이 시작된 것이었다.

‘호드’가 특별해야 ‘워크래프트’ 브랜드 가치가 오른다?

‘호드’ 이미지 세탁의 시발점이 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사진출처: HG101)
▲ ‘호드’ 이미지 세탁의 시발점이 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사진출처: HG101)

‘워크래프트 2’는 특유의 빠르고 스릴 넘치는 구성으로 1996년 미국에서만 83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고, 3,400만 달러 수익이라는 큰 쾌거를 이루었다. 이러한 성공에 자극 받은 블리자드는 같은 해 하반기 블리자드 창립자이자 ‘워크래프트’ 시리즈 프로듀서인 앨런 애덤을 통해 ‘워크래프트’ 브랜드를 RTS를 넘어선 영역까지 확대하겠다 발표했다. 그러니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오크’라는 소재가 식상하다는 점이었다.

‘워크래프트’는 인간과 ‘오크’라는 두 종족 사이의 갈등을 다룬 게임이었다. 그런데 당시 ‘오크’는 이미 여러 판타지 게임에 비슷한 모습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었다. 단순히 인간과 ‘오크’가 싸우는 내용만으로는 다른 판타지와 차별화될 수 없을 게 뻔했고, 이래서는 ‘워크래프트’ 브랜드를 지금 이상으로 키울 수 있을 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에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호드’를 다른 ’오크’와 차별화할 고유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워크래프트 오크는 다른 오크와 다르다’고 언급된 빌 로퍼 인터뷰 (사진출처: 게임스팟)
▲ ‘워크래프트 오크는 다른 오크와 다르다’고 언급된 빌 로퍼 인터뷰 (사진출처: 게임스팟)

이처럼 ‘오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착수된 프로젝트가 바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로드 오브 더 클랜즈’였다. 고전적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워크래프트’를 RTS 장르 너머로 확장시킨 시도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주목할 부분은 바로 ‘오크’와 ‘호드’의 문화를 조명한 첫 번째 시도였다는 점이다.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프로듀서를 맡았던 빌 로퍼는 게임전문매체 게임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재미가 ‘오크’의 문화를 보는 데 있다고 언급했다. 톨킨 세계관을 비롯한 많은 판타지에서 ‘오크’가 생각 없는 악의 졸개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블리자드의 ‘오크’는 고유한 문화가 있고, 이 문화를 ‘워크래프트 어드벤처’에서 볼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였다.

‘오크’가 패전 후 좌절해 술에 빠진 것으로 설정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사진출처: HG101)
▲ ‘오크’가 패전 후 좌절해 술에 빠진 것으로 설정된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사진출처: HG101)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는 ‘워크래프트 2’ 이후 인간의 노예나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호드’가 인간 손아귀에서 도망친 젊은 ‘오크’ 검투사 ‘스랄’의 지도로 다시 한 번 규합된다는 내용을 다뤘다. 여기서도 ‘호드’는 잔인하고 흉포한 성정을 지니고 있지만, 이전의 비열한 모습과 달리 나름대로 명예와 자긍심을 중시하는 무리로 묘사됐다. 사실상 ‘호드’ 이미지가 전환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워크래프트 어드벤처’는 빛을 보지 못했다. 발매 몇 개월을 남긴 채 계속 출시가 지연되다 1998년 갑자기 개발이 취소된 것이다. 로퍼에 따르면 취소 이유는 플레이 방식이 기존의 어드벤처 게임들과 너무 비슷했고, 참신하고 색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로퍼는 ‘오크’ 문화를 보여주는 시도는 ‘워크래프트 어드벤처’가 아니어도 계속될 것이라 언급했다. ‘워크래프트’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전히 ‘호드’를 특별하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용감하고 명예로운 오크’를 그린 첫 ‘워크래프트’ 소설 ‘피와 명예로’ (사진출처: 아마존)
▲ ‘용감하고 명예로운 오크’를 그린 첫 ‘워크래프트’ 소설 ‘피와 명예로’ (사진출처: 아마존)

그렇게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취소로 잠시 중단됐던 블리자드의 ‘오크 특별하게 만들기’ 계획은 2001년 재개됐다. 이번에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첫 번째는 인간 성기사 ‘티리온 폴드링’과 오크 전사 ‘아이트리그’가 용기와 명예라는 공통의 미덕을 통해 연을 맺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 ‘피와 명예로’였다. 멧젠이 직접 집필한 이 소설은 단순히 사악하고 야만적인 줄만 알았던 ‘오크’에게도 사실 선하고 의로운 면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오크’도 알고 보면 사연 있는 종족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블리자드는 이어서 세 권의 소설을 추가로 출간했다. 그 중 크리스티 골든이 쓴 ‘로드 오브 더 클랜’은 보다 특기할 만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실은 ‘오크’가 처음부터 악한 종족은 아니었다는 설정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오크’는 자연의 영들과 소통하는 주술사와 유목민 종족이었으나, 일부 사악한 ‘오크’들이 악마와 계약 맺고 힘을 탐한 탓에 피에 굶주린 괴물로 타락했다는 설정이 급히 추가됐다.

‘워크래프트 3’의 실질적 주인공이었던 ‘오크’ 영웅 ‘스랄’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 ‘워크래프트 3’의 실질적 주인공이었던 ‘오크’ 영웅 ‘스랄’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워크래프트 어드벤처’ 정보를 여러 게임 행사에서 공개하고 이를 뒷받침할 여러 소설을 출간한 덕에, 팬들이 ‘호드’에 갖는 인식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호드’를 단순한 약탈자 무리가 아닌 나름의 기구한 사연이 있는 집단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호드’는 2002년에 출시된 ‘워크래프트 3’에서 비로소 완전한 변신을 이룰 수 있었다.

‘워크래프트 3’에서 ‘호드’는 전작 ‘워크래프트 2’와 달리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로 등장하지 않았다. 이제 ‘호드’는 길들여지지 않는 힘, 거칠고 자유로운 본능을 지닌 ‘고귀한 야만족’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부여 받았다. 캠페인에서도 ‘호드’는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을 구속했던 악마 ‘불타는 군단’의 구속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투사로 묘사됐다. 나름 선량한 면이 있는 주인공 종족으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블리자드 의도대로 ‘호드’는 흔해빠진 ‘피에 굶주린 오크 약탈자 무리’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야만족’이라는 정체성을 바로 세웠다. 이 새롭고 특별한 콘셉트는 확실히 기존 다른 판타지 세계관의 ‘오크’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었다. 덕분에 ‘워크래프트’는 ‘호드’ 고유의 독특한 이미지로 크게 화제가 됐고, 게임업계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에 브랜드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온갖 난민 받아준 ‘호드’, 다음 정체성은 무엇?

갑작스레 ‘호드’ 수장이 되어버린 ‘실바나스’ (사진: 블리자드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 갑작스레 ‘호드’ 수장이 되어버린 ‘실바나스’ (사진: 블리자드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처럼 ‘워크래프트 3’를 거치며 ‘호드’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며 고유 영역을 구축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워크래프트’ 세계관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함께 짧았던 신생 ‘호드’의 정체성은 다시 한 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종족의 다양성과 비율을 맞추기 위해 언데드 ‘포세이큰’을 ‘호드’에 합류 시키며 ‘워크래프트 3’의 ‘자유로운 야만족’ 이미지에 금이 간 것이다.

사실 ‘포세이큰’이 ‘호드’에 가입한 이유는 다소 궁색했다. ‘포세이큰’은 ‘호드’에 속한 종족들과 이렇다 할 유대가 전무했지만, 인간에게 인정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호드’와 동맹을 맺었다는 설정이었다. 그렇다고 ‘포세이큰’이 ‘자유로운 야만족’이라는 콘셉트를 다른 ‘호드’ 종족과 공유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소 따로 노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존 종족들과 접점이 없었음에도 ‘호드’에 합류하게 된 ‘포세이큰’ (사진출처: WoW wiki)
▲ 기존 종족들과 접점이 없었음에도 ‘호드’에 합류하게 된 ‘포세이큰’ (사진출처: WoW wiki)

문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역사가 계속되고 확장팩이 출시되면서 새로운 종족들이 하나 둘 ‘호드’에 가입하게 됐는데, 이들 중 ‘포세이큰’처럼 ‘오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종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부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에 추가된 ‘블러드 엘프’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에 추가된 ‘나이트본’은 고고하고 도회적인 엘프들로, 야만적인 ‘오크’와는 한 눈에 봐도 큰 거리가 느껴지는 종족이다.

이렇듯 ‘고귀한 야만인’ 콘셉트의 종족과 ‘음험한 문명인’ 콘셉트의 종족이 한 진영에 섞여 있으니 스토리를 풀어낼 때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크’가 힘과 명예를 부르짖을 때 ‘포세이큰’과 ‘블러드 엘프’는 할 말이 없고, 반대로 ‘포세이큰’과 ‘블러드 엘프’가 음모를 꾸밀 때는 ‘오크’, ‘트롤’, ‘타우렌’이 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호드’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특정 종족이 스토리에서 소외되는 것 같다는 불만이 자주 표출돼 왔다.

‘포세이큰’의 뒤를 이어 ‘호드’에 합류한 ‘블러드 엘프’ (사진출처: WoW wiki)
▲ ‘포세이큰’의 뒤를 이어 ‘호드’에 합류한 ‘블러드 엘프’ (사진출처: WoW wiki)

이러한 불만은 지난 8월 14일 출시된 새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심하게 불붙었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전장에 역병을 퍼뜨리고 민간인 학살도 서슴지 않는 ‘포세이큰’ 수장 ‘실바나스’와, 나름 명예와 정의를 추구하는 ‘오크’ 영웅 ‘바로크 사울팽’이 대비되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워크래프트’ 팬덤도 ‘실바나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과, 명예를 모르는 잔악한 방식은 ‘호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블리자드 답변은 다소 묘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 디렉터를 맡고 있는 이언 해지코스타스는 게임전문매체 PC게이머와 인터뷰 중 “호드는 극과 극의 동기를 지닌 여러 종족들의 모임”이라며, 다양한 관점과 사상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언급했다. ‘실바나스’와 ‘사울팽’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도 ‘호드’의 특징으로 보고 즐겨 달라는 것이다. 또한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게임 내러티브가 문제 없이 잘 작성되고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이제는 ‘포세이큰’의 냉혹한 광기도 ‘호드’의 일부라고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포럼)
▲ 이제는 ‘포세이큰’의 냉혹한 광기도 ‘호드’의 일부라고 (사진출처: 블리자드 공식 포럼)

이와 같은 해지코스타스의 답변은 ‘호드’가 ‘워크래프트 1’ 시절 피에 굶주린 파괴자도, 그렇다고 ‘워크래프트 3’의 자유로운 야만족도 아니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보다는 지금 ‘호드’의 정체성은 다양한 종족의 집합체라는 데 있으며, 그들 사이에 새로운 공통분모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향후 다루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는 ‘호드’는 ‘하나의 행동이나 한 명의 인물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보다 거대한 것’이라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해달라고 덧붙였다.

다만 해지코스타스의 이야기가 어떤 뜻이건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워크래프트’ 팬덤의 많은 유저들이 대체 ‘호드’가 뭐 하는 집단인지 헷갈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게임 설정을 적절히 수정하는 것은 기존에도 있어온 관행이고, 실질적으로도 기업과 게이머 양방에게 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게임을 즐기는 팬덤이 게임 내 주요 집단 정체성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해 혼란을 느낀다면, 이를 긍정적인 상황으로는 볼 수 없지 싶다.

변화는 나쁘지 않으나, 유저 이해 도울 필요는 있어

‘호드’ 정체성 문제로 혼란에 빠진 ‘워크래프트’ 팬들 (사진출처: 게임메카)
▲ ‘호드’ 정체성 문제로 혼란에 빠진 ‘워크래프트’ 팬들 (사진출처: 게임메카)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호드’는 광기 어린 ‘오크’ 약탈자 무리로 시작하여 몇 번의 이미지 변신을 거친 끝에 오늘날에 이르렀다. 오늘날 많은 팬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호드’의 덕목인 힘과 명예 또한 초기 ‘워크래프트’ 시리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브랜드 확장과 갱신을 위한 블리자드의 지속적인 시도를 통해 나중에 구축된 설정이다. ‘호드’의 이미지는 끊임 없는 변화를 통해서 점점 개선되고 발전돼 왔다.

최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보여지는 ‘호드’의 모습도 마냥 부정할 것만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 게임 콘텐츠도 변해야 하고, 이는 스토리와 설정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달라지는 내용을 유저가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충분한 도움이 제공되었는가 하는 데 있다. 블리자드는 과거 ‘워크래프트 3’에서 ‘호드’ 설정을 바꾸기에 앞서 충분한 준비를 했고, 이를 팬덤에 명확히 인식시킨 바 있다. 그랬기에 팬덤 또한 ‘호드’의 변화에 우호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블리자드는 이번에도 ‘호드’가 무엇인지, 어떤 집단인지 게이머들에게 명확히 전달해줄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도 정식 출간된 ‘폭풍의 아제로스’ 프리퀄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폭풍전야’나 트레일러 공개에 따른 개발진의 피드백 등을 보면 게이머를 이해시키기 위한 시도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 그 시도가 성과를 거두고 ‘호드’에 대한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보여줄지, 혹은 실패한 스토리텔링 사례로 남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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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는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7번째 확장팩으로,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서 벌어진 거대한 전쟁을 다룬다. 전쟁의 구도에 따라 지도 일부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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