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국가기술자격검정, 일명 게임 자격증이라 불리는 이 검정은 무려 2003년에 시작되어 17년간 진행됐다. 게임기획, 게임그래픽, 게임프로그래밍 3가지로 나뉘며 매년 시험을 진행해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기간도 오래됐고, 정보처리산업기사와 같은 ‘국가검정자격증’이며 세금도 들어간다. 문제는 인력을 채용하는 국내 게임사에서도, 게임사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무쓸모로 느끼고 있다. 가장 큰 부분은 게임사 채용에 자격증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018년 9월에 발간한 ‘게임국가기술자격제도 발전 방안 연구’에 따르면 게임 자격증은 이와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정보기술 분야, 정보보안 분야, 디자인 분야를 비교하면 법적으로 자격 취득에 대한 우대사항이 매우 적다. 정보기술 분야는 평균 42개, 디자인과 정보보안 분야는 각각 27개, 12개 이상인데 게임은 겨우 5개에 불과하다.
다른 분야 우대사항은 채용시험 응시자격, 수당, 승진 가산점처럼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거나 세제혜택, 인건비 지원, 정부 연구개발 참여시 가점 부여 등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에 이득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이와 달리 게임 자격증은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기업에도 법으로 명시된 혜택이 없기에 양쪽 모두 자격증에 대한 매리트를 못 느낀다.
여기에 그나마 게임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도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연구보고서에는 시험을 본 응시자 10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있는데 이들이 자격증을 따자고 생각한 가장 큰 목적은 학점이다. 게임사 취업이 아니라 학점 때문에 응시했다는 답변이 가장 높았고, 이 경향은 직업학교 학생, 대학원생, 대학생에서 모두 나타났다.
이를 종합하면 인재를 채용하는 게임사도, 취업을 원하는 지망생도 채용에 관련해 게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을 매년 응시자 수에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응시자 현황을 살펴보면 게임기획, 게임그래픽, 게임프로그래밍 모두 응시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 2018년과 2019년을 비교하면 18.2%가 줄었다. 특히 게임프로그래머의 경우 2003년에는 518명이 필기시험에 응시했는데, 2019년에는 응시자가 54명으로 10분의 1로 줄었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 자격증에는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예산 4억 2,000만 원이 배정됐고, 2020년 예산은 8억 2,000만 원으로 약 2배가 늘었다. 응시자는 점점 줄어드는데 예산은 되려 늘어난 셈이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이 자격증을 많이 쓰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학점을 넘어 채용까지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게임사 지망생은 자격증을 딸 분명한 이유가 생기고, 게임사 입장에서도 그나마 고려해볼 여지가 생긴다.
채용 우대기업 확대, 정부의 게임 자격증 개선 계획
정부도 게임 자격증이 가진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문체부가 지난 5월 7일에 발표한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에는 ‘게임 자격증을 이렇게 고쳐보겠다’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인 부분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자격증을 어떻게 고치려 하는지에 대한 큰 줄기는 있다. 목표는 게임 자격증 공신력과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먼저 게임기술자격검정 발전위원회(가칭)을 운영해 중장기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자격증 급수를 나누거나 기획, 그래픽, 프로그래밍 3가지밖에 없는 종목을 더 세분화한다. 같은 게임 그래픽이라도 1급, 2급 혹은 2D, 3D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고 이를 통해 문제 출제위원 및 자격검정 운영기관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격증 취득에 대한 우대사항이다. 채용 과정에서 게임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우대하는 기업을 늘리고, 자격증 취득자에 대한 재교육을 지원한다. 아울러 지금은 필기와 실기시험만 있는 게임 자격증에 ‘과정평가’를 추가한다. 국가직무능력표준(산업현장에서 직무 수행에 요구되는 직무능력을 표준화한 것)을 기반으로 한 교육, 훈련과정을 더해서 현장직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조직적응력도 강화한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이러한 개선 과제를 고용노동부와 협의하여 2021년부터 추진한다. 이번에 발표된 게임 자격증 제도 개선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업계 및 시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관련 내용을 마련했다”라고 답했고, 문체부는 “콘진원과의 협의를 통해 관련 내용을 반영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올해 늘어난 예산 8억 2,000만 원의 경우 제도 개선에 투입되는 부분은 아니다. 이에 대해 콘진원은 게임 자격증 홈페이지 등 관련 시스템 정비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격증 제도 개선의 경우 구체적인 부분이 확정되고, 이를 위한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향후에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고려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지려는 게임 자격증, 게임업계 의견은?
그렇다면 게임 자격증이 앞서 설명한 대로 달라진다면 실효성이 높아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아직 문체부가 대략적인 방향만 제시한 상태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지금으로서는 실효성이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게임 자격증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현재는 의견을 이야기할 수 없는 단계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게임국가기술자격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문체부에서 제도를 개선 방안을 발표했으니, 실제 개선되는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정부에서 먼저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그 내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게임업계에서도 규모가 큰 기업을 중심으로 서류를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어나고 있다. 자격증 역시 채용 과정에서 고려하는 서류에 해당하는데, 서류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 것이 업체가 많아진다면 자격증을 개선해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는 업체에서는 자격증 취득 여부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안 된다.
게임 자격증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업계 의견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기적인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전엔 실효성이 의문이다, 자격검정 제도에 대한 산업 및 업계와의 충분한 협의가 진행된 후 구직자, 기업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문체부는 2021년부터 고용노동부와 협의하여 게임 자격증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게임 자격증은 세금이 투입되는 국가사업이며, 최우선 과제인 고용 창출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취득한 다음 장롱에서 잠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임새 있는 자격증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정부가 업계에서도 실효성이 있다고 느낄 정도로 게임 자격증을 잘 고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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