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세계는 미디어 영향력이 절대적인 사회다. 도시 곳곳엔 수많은 기업 광고판들이 시민들을 현혹하며, 엘레베이터나 차 안, 길거리, 심지어 사이버웨어 각막 안쪽에까지 각종 미디어가 침투해 있다. 가히 광해(光害)라고 여겨질 만한 풍경이지만, 규제 따윈 없어 보인다.
이미 사람들은 이런 넘치는 미디어 노출에 익숙해져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중산층과 빈민들일수록 이런 미디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말초적 재미를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에 탐닉한다. TV, 음악, 브레인댄스, 개인 방송 등 자극적인 채널에 빠진 사람들은 책이나 텍스트를 읽지 않고,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사이버펑크 2077 공식 설정집 내용을 취재한 가상 매체 '나이트 시티 인콰이어러'가 서문을 통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피더(브레인댄스 중계기)를 쓴다면 눈엣가시 같은 광고와 고압적인 사기성 선전의 표적이 되기를 자처하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비꼴 정도다.
아무튼, 사람들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탐닉하는 세상이니, 연예인도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탑스타들이 벌이는 라이브 콘서트는 세계 수천만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자연히 막대한 돈을 번다. 연예인들은 외지인이 발도 못 붙이는 호화 주택가 노스 오크의 저택에서 전용기와 리무진, 호화 요트를 수시로 갈아치우며 꿈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이런 연예인들은 주로 예능 관련 기업들의 철저한 기획에 의해 탄생한다. 대표적인 그룹이 바로 '어스 크랙스'다. 노골적이고 때로는 저열하다는 평가까지 듣는 기업 마케팅으로 꾸며진 3인조 걸그룹이지만, 콘서트에 매번 수십만 관객이 몰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 얼핏 보면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는 개조된 외모지만, 계속되는 마케팅으로 인해 이는 최신 유행으로 대접받는다.
이 같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기획사에 몸도 영혼도 팔아야 한다. 예를 들면 기획사에서 올해 유행 포인트로 전신 황금빛 메탈 스킨을 민다면, 소속 연예인은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 시술을 받아야 한다. 거부권은 없다. 빈곤층부터 중산층까지 그 찬란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렇게 스타가 되저라도 팬들의 변덕에 금방 버림받기도 하니 약간은 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연예인 중에는 놀라운 재능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이처럼 철저한 기획 하에 탄생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연예인으로서 조니 실버핸드(키아누 리브스 분)는 어떤 존재일까. 일단 그가 결성한 밴드 '사무라이'가 2003년에 데뷔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현실 기준으로도 더 크로스, 에픽하이, 동방신기 등과 같이 데뷔한 그룹인데, 2077년 기준으로는 정말 까마득한 과거 인물이다. 대충 2020년 기준으로 1960년대 활동한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비치 보이스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된다.
사무라이는 시대에 반하는 음악을 연주했다. 전쟁에서 잃어버린 팔을 기계로 대체한 조니 실버핸드는 멤버들과 함께 강렬하고 혁명적인 음반을 연달아 냈고,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비록 사무라이는 2008년 해체됐지만, 조니 실버핸드는 솔로 활동을 통해 정부와 기업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음악을 계속 내며 모두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 와중 조니의 여자친구가 아라사카 측에 납치당해 정신을 넷 상에 갇혀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윽고 조니는 4차 기업전쟁을 끝내고 여자친구를 되찾기 위해 나이트 시티 아라사카 본부를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조니는 사망했다고 전해지지만, 신원불명의 용병단이 터뜨린 전술핵으로 인해 본부 전체가 증발하며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극적이고 반항적인 삶과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최후 때문일까. 조니 실버핸드는 실종 50년이 지난 2077년에도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다. 나이트 시티 곳곳에는 'Where's Johnny?'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으며, 그가 언젠가 지옥에서 돌아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게임의 주인공 V 역시 자신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사망한 조니를 우상으로 여기고 성장한 청년이다. 살아있었다면 100세는 가뿐히 넘을 나이임에도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전성기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데, 그의 정체가 넷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디지털 유령'임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조니 실버핸드의 위치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비틀즈나 퀸 급 인기를 모으던 전설적 락 그룹의 리더이자, 무하마드 알리나 밥 딜런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고,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생존설이 끊이지 않을 뿐더러, 최후마저도 영웅적인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매스 미디어에 편승해 유행만 따라가는 2077년 아이돌들이 따라가지 못 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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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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