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 이야기 등 한국 전통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게임 ‘사망여각’은 지난 2016년 처음 공개됐다. 첫 발표 당시 장르는 턴제 RPG였는데,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성료와 스팀 그린라이트 달성 직후 갑작스레 메트로배니아 2D 액션게임으로 선회했다. 후원자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 여기에 인원 교체와 출시 연기까지 더해지며 팬들의 불안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드는 길밖에 없었다. 출시에 앞서 플레이한 사망여각 정식 버전은 한국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낸 유쾌함과 오리나 할로우 나이트 같은 메트로배니아 명작에 버금가는 재미가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개발사 루트리스 스튜디오의 게임 완성도에 대한 ‘강박’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현된 것이다.
미국에는 오리, 한국에는 바리
사망여각의 줄거리는 주인공 소녀 ‘아름’이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찾기 위해 저승을 산채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이 가장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저승으로 가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서 입수하는 장면은 심청전이 떠오른다. 산 자가 저승에 발을 디딘 것은 오래간만의 일인지라 저승 주민들은 아름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다. 다만, 때마침 저승의 권력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꿈틀대고 있기에 아름은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어쨌든 저승사람들의 호의 반, 일 떠넘기기 반으로 계약직 비슷한 저승사자가 된 아름은 저승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게 된다. 그런데 이 저승이란 곳, 생각보다 꽤 매력적이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높고 뾰족하게 솟은 산세는 수려하고, 기와를 얹은 커다란 한옥은 고풍스럽다. 게다가 현대 문물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생활편의 역시 괜찮은 수준. 이것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퓨전’ 아닐까?
아름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왔기에 한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하좌우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저승 곳곳을 탐색해야 한다. 보유한 기술과 각종 오브젝트를 활용해 함정을 돌파하고, 새로운 지역과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기본인데, 사망여각은 이에 충실하다. 첫 방문 시 갈 수 없었던 장소를 벽에 달라붙기, 대시, 이단 점프 등 새 기술을 익힌 뒤 통과하거나, 정말 우연히 숨겨진 방을 발견했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 숨겨진 방에서 강력한 보스가 나왔을 경우는 예외다.
말문이 탁 막히는 난이도, ‘쉬움’ 난이도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전통설화와 현대 문물이 어우러진 사망여각 세계관은 인기 웹툰 ‘신과 함께’를 떠오르게 한다. 그래픽도 웹툰 같아서 익숙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리고 다채로운 배경과 오브젝트 덕분에 메트로배니아 장르 기본인 ‘탐험의 즐거움’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게임 시작 후 수 시간을 내리 플레이했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단, 난이도 측면에서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일단 신입이자 임시 저승사자답지 않은 아름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은 분명 호감이다. 처음에는 탈 쓴 저승사자 ‘설’한테 받은 낫만 휘두를 수 있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칼, 활, 방망이 등 각기 다른 활용법의 무기를 얻게 된다. 여기에 각종 변신 및 이동기까지 조합해야 적들을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다.
초반 적들은 둥근 공처럼 생겨서 구르며 공격하는 녀석 정도만 까다로울 뿐, 공격 받으면 경직돼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지라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진행할수록 전진하며 두 번 칼질 하거나 경직 면역, 광역 공격에 자폭까지 하는 적들이 등장해 공략에 애를 먹게 된다. 적마다 다른 패턴을 익힌 다음 적절한 타이밍에 회피하고, 상황에 맞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관건인데, 모르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그래도 일반 적들이야 파훼법을 찾기까지 1, 2회 정도면 충분하지만, 체력이 많고 공격 패턴도 다양한 보스들은 양손 근육이 아플 정도로 여러 차례 공략해야 한다. 플레이어에게 처음으로 좌절감을 선사하는 보스는 서천꽃밭의 ‘고관대면’이다. 스타크래프트 가시지옥(럴커)처럼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가시로 공격하는 것은 기본이고, 갑작스레 손을 쭉 뻗어 찌르기를 하거나 탄막 공격까지 감행한다. 2페이즈로 넘어가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두 가지 기술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플레이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오리와 도깨비불 같은 기존 메트로배니아 장르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보스와의 추격전도 존재한다. 바로 한국 전통설화에서 최강의 요괴로 꼽히는 ‘불가사리’에게 쫓기는 장면이다. 손 한번 삐끗하면 곧장 불가사리 위장 속으로 직행인데, 긴박한 상황 속에서 무기 교체, 거대 두꺽이 변신 후 오브젝트 밀기, 구르기, 점프, 대시, 벽에 달라붙기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들을 총 동원해야 한다. 게다가 중간 저장 지점도 없으므로 조작에 자신이 없다면 몸이 저절로 반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반복해야 한다.
할로우 나이트, 오리 시리즈 등을 즐겼던 2D 횡스크롤 액션게임 마니아라면 사망여각 역시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세계관이 끌린다거나, 국산 인디게임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망여각을 시작하는 이들은 ‘쉬움’ 난이도를 추천한다. 기자는 사망여각을 플레이하며 키보드를 어찌나 혹사시켰는지 버튼 하나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참고로 고관대면은 1시간 반, 불가사리 술래잡기는 1시간 만에 완수했다. 변명하자면 게임패드(Xbox 엘리트패드 2세대 및 Xbox One 패드 기준) 트리거 버튼 조작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있었고,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았던 키보드로 플레이했다. 이 같은 게임패드 입력 오류는 개선이 필요하다.
‘루트리스(뿌리가 없는)’라는 개발사명과 다른, 근본 있는 게임
메트로배니아 장르는 오랜 역사를 지닌데다가 지금도 인디게임을 중심으로 신작이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오리 시리즈, 할로우 나이트, 블러드 스테인드 등 명작 또는 수작으로 평가 받는 게임을 가까이서 찾을 수 있기에 사망여각을 하는 동안 이 게임들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감상 역시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맵 탐색의 즐거움과 긴장감 있는 액션 같은 메트로배니아 장르 명작들의 매력이 사망여각에도 녹아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국 전통설화와 현대 문물의 적절한 어우러짐은 해외 게임에서는 보기 어려운 사망여각만의 개성이다. 개발사 루트리스 스튜디오는 ‘뿌리가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녔지만, 사망여각은 장르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낸 근본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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