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전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인앱결제 강제금지법이 시행됐다. 작년 9월 국회 통과에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기준 마련 후 드디어 궤도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해당 법의 혜택 대상이 되어야 할 국내 게임사들은 정작 기뻐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 지켜보는 분위기다.
이번 법의 규제 대상은 구글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 등이다. 이 중 원스토어는 법이 마련되기 전에도 외부 결제수단을 허용해왔다. 구글플레이는 작년 11월에 외부결제 수단을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외부결제 시에도 수수료는 인앱결제에 비해 고작 4%p 낮춘 수준이기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애플의 경우 구글과 마찬가지로 외부 결제수단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방통위에 세부 이행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황이다.
방통위 고시에 따르면, 구글과 애플은 개발사에 특정 결제수단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인앱결제 외에 다른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객관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것도 위법이다. 아울러 외부 결제수단을 활용하는 개발사에 불힙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을 걸어서도 안 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기존 구글, 애플이 제공하는 수단 외 자체 결제수단을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메카가 국내 주요 게임사 다수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이 외부 결제수단 도입에 대해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대형 게임사인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크래프톤, 펄어비스, 웹젠, 조이시티 등은 자체 결제수단 도입에 대해 ‘결정된 부분이 없다’, ‘도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네오위즈는 자체 결제수단 도입을 ‘검토 중’이며, 카카오게임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유일하게 적극적 자세를 취한 곳은 라인게임즈로, PC와 모바일로 제공되는 멀티플랫폼 게임에 대해 자체 플랫폼 플로어(FLOOR)를 통한 자체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인앱결제 강제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작년 9월로, 전세계 최초로 앱마켓 인앱결제를 규제한다는 취지 덕에 사전 인지도가 높았다. 따라서 국내 게임사에서도 자체 결제수단을 마련하거나 관련 계획을 세울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대다수 국내 게임사에서는 자체 결제수단 마련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것은 자체 결제수단을 도입해도 수수료가 크게 낮아지지 않기에 매리트가 낮다는 것이다. 네오위즈는 “모바일 환경에서 자체 결제수단을 활용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수수료적인 측면에서 직접적인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다만 향후 다양한 결제수단을 제공하며 BM 다각화가 가능해져서 다양한 프로모션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답변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체 결제수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는 하나, 수수료 측면에서 메리트가 크지 않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구글플레이 기준으로 보면 자체 결제수단을 도입해도 수수료는 4%p만 낮아진다. 게임의 경우 매출 30%를 수수료로 지급하는데, 자체 결제수단을 써도 수수료를 26% 내야 한다. 여기에 자체 결제수단 유지관리를 위한 관련 인력과 비용이 추가로 투입되기에, 개발사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이득이 없거나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 역시 “수수료 인하 효용과 인앱결제 도입 비용이 큰 차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내부 리소스가 많이 투입되어 장점 대비 리소스 효율이 좋지 않다”라고 전했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부분은, 인앱결제 강제금지법 자체에 최대 수수료나 수수료율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제방식에 대해 법에 담긴 부분은 ‘특정 결제방식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수수료율을 얼마나 낮추도록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는 그 하위에 있는 시행령, 시행규칙도 마찬가지다.
구글 입장에서 보면 개발사에 결제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줬고, 법에는 수수료나 수수료율에 대한 제한이 없기에 법을 준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수료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을 마련하지 못한 이 부분을 노린 것으로,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식 준수다.
결국 쟁점은 앱 마켓 사업자의 지불수수료를 국가에서 법적으로 ‘몇 퍼센트만 받으라’는 식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다. 법 제정 당시부터 ‘수수료율’을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지, 다른 법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수수료를 제한하면 다른 법으로 보장되는 권한을 침해하지는 않는지 등을 심도 깊게 살펴보고, 가능한 선에서 개발사가 실효성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법 내용을 마련했어야 했다.
법을 만들던 당시에는 구글, 애플이 자체 결제수단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면 기존과 같은 외부결제를 쓰며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고, 특히 기존부터 30% 수수료를 지불해오던 게임사 대부분은 자체 결제수단 도입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입법기관이 현안에 대응하는 법을 빠르게 마련한 것은 좋으나, 세부적인 부분을 챙기지 못해 법이 실효성을 잃어버린 것은 다소 안일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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