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글로벌 주요 게임사에 밀려든 사우디 오일머니가 국내에도 유입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 인베스트먼트 펀드(이하 PIF)가 있다. PIF는 작년부터 액티비전블리자드, EA, 테이크투 등 주요 게임사 주식을 사들였고, 올해 1월에는 글로벌 e스포츠 리그 다수를 보유한 ESL 게이밍을 인수했다.
2022년,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단초는 코스닥 상장사 SNK 인수다. 작년 12월에 SNK는 자사 최대주주 일렉트로닉 게이밍 디벨롭먼트 컴퍼니에 완전자회사로 편입되며 자진 상장폐지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일렉트로닉 게이밍 디벨롭먼트 컴퍼니는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설립한 미스크재단의 100% 자회사다. 이에 작년 12월부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가 시작됐고, 당일 SNK는 상한가를 기록한 바 있다.
SNK는 4월 14일, 자진 상장폐지에 관련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같은 날 한국거래소에 상장폐지를 신청한다. 이에 대해 SNK는 공시를 통해 ‘한국거래소 심사결과에 따라 상장폐지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 시점에 소액주주가 남아 있는 경우 최대주주는 당사 주주 전원에게 보통주 전부를 매도하도록 청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주식매도 청구는 오는 6월 중 통지된다.
앞서 이야기한 SNK는 코스닥에 상장됐으나 회사 자체는 일본법인이기에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국내 주요 게임사에 대한 투자도 시작됐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엔씨소프트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는 지난 2월 8일부터 16일까지 장내매수로 엔씨소프트 지분을 여러 차례에 걸쳐 매입했다. 현재 지분율은 9.26%이며, 이를 토대로 PIF는 현재 엔씨소프트 2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PIF 측은 매수목적에 대해 단순투자라 밝혔고, 보유한 주식 수에 관계 없이 의결권, 신주인수권, 배당 등 국내 상법에 보장되는 권리만 행사할 것이라 밝혔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지난 3월에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PIF가 2대 주주로 자리한 가운데 지분율을 더 높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액션을 취할 것이라 답변한 바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넥슨에도 PIF가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관련 내용은 PIF가 지난 13일, 일본 전자공시 시스템(EDINET)에 공시한 내용을 토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PIF는 올해 1월 25일부터 4월 8일까지 꾸준히 넥슨 주식을 매입했고, 총 취득금액은 2,476억 엔, 한화 약 2조 4,161억 원에 달한다. PIF 넥슨 지분율은 9.14%로, 현대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넥슨 주식 매입에 대해 PIF 측이 밝힌 보유목적은 이번에도 단순투자이며, 지분 매입에 관련된 중요 제안 행위도 없다고 공시됐다. 다만 사우디 국부펀드가 넥슨 2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은 일본은 물론 국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소식이 전해진 13일 당일 넥슨 자회사 넷게임즈는 장중 10% 가까이 주가가 치솟은 바 있다. 넥슨지티는 넷게임즈와의 흡수합병으로 지난 3월 29일부터 거래정지 상태이기에 주가 변동 역시 없었다.
사우디 오일머니 유입, 제 2의 텐센트 효과 일으킬까?
사우디 국부펀드인 PIF는 자산규모 5,000억 달러(한화 약 612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투자사다. 아울러 2016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사우디 비전 2030’ 사업 주축이기도 하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이 사업의 목적은 자국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구조를 다각화해 민간부분 경제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 일환이 PIF가 지닌 막대한 자금을 IT, 신재생에너지 등 해외 첨단산업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비전 2030 사업에 투입하는 것이다.
주요 투자 영역에는 게임도 포함된다. PIF는 작년에 게임 및 e스포츠 전문 투자사 ‘사비 게이밍 그룹(Savvy Gaming Group)’을 설립했고, 이 투자사는 앞서 설명한 ESL 게이밍을 인수한 당사자다. 사비 게이밍 그룹은 액티비전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스튜디오 총괄을 역임했던 브라이언 와드(Brian Ward) CEO가 이끌고 있는데, 그는 해외 매체 벤처비트(venturebeat)와의 인터뷰를 통해 투자를 확대할 의지가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게임시장 역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30세 미만 인구 비중이 높고, 이 중 70%는 게임을 즐기며, 현지 대학생 중 상당수가 게임 관련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사례는 2010년대 중반에 국내 게임사 다수의 시가총액을 끌어올린 주 요인으로 지목됐던 텐센트다. 실제로 텐센트는 넷마블,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등에 투자했고, 작년에도 라인게임즈와 썸에이지 자회사 로얄크로우에 투자를 단행했다. 아울러 텐센트가 투자한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치솟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 배경에는 텐센트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규모와 함께, 투자를 발판으로 삼아 대형 시장인 중국에 게임을 입성시키며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국내 게임에 판호를 내주지 않음에 따라 텐센트 효과도 시들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막대한 자금에 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드러낸 사우디 국부펀드에 업계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특히 투자를 토대로 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 게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사실상 수출길이 막혀버린 중국을 대체할 신흥시장이 될 수 있다. 다만 사우디 자본 유입이 국내 게임사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에 이를 경계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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