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되는 인기 인디게임을 살펴보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보다 인기있는 장르, 혹은 시스템이 안정화된 기존 장르를 조합하는 인기작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육성과 경영, 사냥 및 낚시가 조합된 데이브 더 다이버, 경영과 개척, 로그라이크 액션을 조합한 컬트 오브 더 램, 리듬게임과 로그라이크를 조합한 크립트 오브 더 네크로댄서 등이 그 예시다.
물론 이런 게임들이 반드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개발 단계에서 역량 및 할당된 리소스의 문제로 다소 아쉬운 평을 받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개발자가 직접 모든 부분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임도 존재한다. 그러나 인디게임계에서 이런 결과가 꼭 배드엔딩은 아니다. 하나의 게임을 완성해내고, 유저들의 평을 통해 어떤 장르를 어떻게 조합해야 더 나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이터나이츠도 그런 게임이다. 이터나이츠는 1인 개발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독특한 게임성과 완성도 높은 아트로 이목을 끌었다. "차기작에선 비슷한 아쉬움을 되풀이 하지 않고 플레이어 분들을 만족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1인 개발사 스튜디오 사이의 유재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1인개발+액션+연애 시뮬레이션=이터나이츠
이터나이츠는 데이팅 시뮬레이션과 액션 장르를 혼합한 게임으로, 종말을 앞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캐릭터들과 서로의 유대를 쌓아 싸워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날짜 안에 임무를 완수하고, 동료들과 협력해 세상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대는 연애 시뮬레이션의 콘텐츠를, 세상을 구하는 과정은 액션게임의 요소를 담았다.
이터나이츠는 2019년 여름 초기 프로토타입을 인터넷에 공유하기 시작하며 유저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당시 다른 본업이 있던 유 대표는 퇴근 후 이것저것 만들며 온라인 커뮤니티 속 사람들과 공유하고 반응과 피드백을 받는 것이 나름의 취미이자 낙이었는데, 프로토타입의 가능성을 본 투자자가 나타나며 퇴사와 함께 개발에 뛰어들게 됐다. 그렇게 2020년 5월부터 정식 개발을 시작해 약 3년간의 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이터나이츠다.
개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은 '페르소나 시리즈'라는 것이 유 대표의 말이다. 2019년, 친구가 추천해준 페르소나 5에서 카츠라 하시노 디렉터가 연출한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나, 달력 시스템 등의 요소에서 큰 감동을 느낀 것이다. 이에 이전부터 캐릭터 중심의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유 대표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유대를 만들기에 적합한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와 플레이어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면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액션을 섞은 이터나이츠를 만들게 됐다.
여기서 눈길을 끈 요소가 있다. 얼핏 남성향에 가까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임에도 불구, 공략 캐릭터에 남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에 거주 중인 유 대표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때 가족이민을 온 유 대표는 성인이 되고 미국사회로 나와 다양한 모습의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 경험을 통해 주변에 여러 커플이 있다고 상상하면 '그 중 한 커플 정도는 동성관계라 해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략 캐릭터에 남성 캐릭터를 넣게 됐다고.
아울러 "원래 여섯 명의 공략 캐릭터가 있었지만 프로듀싱 과정에서 두 캐릭터가 빠졌는데, 캐릭터 선정 기준은 성별과 무관하게 게임에 더 필요한 캐릭터를 선정했다"며, "아무래도 이건 개인적인 경험과 배경이 작용해서 국내 플레이어에게는 공감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또 다른 핵심 파트인 액션은 라이팅과 적의 비주얼로 무거운 분위기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다만 암울한 세계관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할 필요성과는 달리, 실제 전투는 세 단계로 난이도 조절이 가능해 누구나 자신의 실력에 맞게 가볍게 즐길 수 있. 전투의 기본은 약점 속성 공격을 통한 패턴의 파훼가 핵심으로, 동료들과 친밀도를 높여 얻는 액티브 스킬과 상성을 노리는 엘리멘탈 스킬 등 다양한 기술이 준비돼 있다. 외에도 스토리 내에서 레이싱, 리듬 액션, 추적 등 다양한 미니게임 콘텐츠를 제공해 스토리의 몰입감과 연출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장르와 장르적 문법이 극과 극을 오가는 만큼, 개연성과 감정선 유지를 위해 특별히 음악에 신경썼다. 무서운 상황에 있다가도 비교적 분위기가 가벼운 대사가 나오기 전 펑키한 음악으로 톤을 가볍게 바꿔준 후 농담을 던지거나, 스릴을 느껴야 하는 구간에서는 음악에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분위기가 전환될 때마다 어색함이 없게끔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캐릭터와 사람 사이의 이야기 담는 '스튜디오 사이'
이터나이츠를 개발한 스튜디오 사이는 단어 '사이'에서 따왔다. 유 대표는 스튜디오의 이름처럼 캐릭터와 유저의 '사이'에 대한 게임을 고민하고 제작 중이라 밝혔다. 스튜디오 사이 설립 전 유 대표는 영화 시각효과로 커리어를 시작해 소니 픽쳐스, 디즈니 등에서 FX 애니메이터로 작업을 해오다 라이엇게임즈(리그 오브 레전드), 댓게임 컴퍼니(저니, Sky), 애플(Vision Pro) 등을 거쳐 개발자로 자리를 잡게 됐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행복한 요소만 있지는 않았다. 앞선 경력이 있기는 했지만, 게임 개발 자체에서는 경험과 노하우가 다소 부족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유 대표는 "게임 개발의 시작부터 발매, 발매 이후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를 대차게 박차고 나올 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다"며, "소규모 개발사로서 한정된 자본을 가지고 개발을 하다보니, 이러한 실수가 반복되면 굉장히 치명적인 것 같다.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반성목록이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소회를 밝혔다.
유 대표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막상 이 일 저 일 해온 것 같지만, 차근히 돌이켜보면 제가 하고 싶은 어떤 것을 찾아 계속 방황 중이었던 것 같다"며, "직접 이터나이츠를 개발하는 동안에는 모든걸 쏟아 붓는 동안 역량이 부족함을 느낌과 동시에 직접 창작물 속 세계를 하나씩 구축해 나간다는 뿌듯함에 모든 순간이 행복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터나이츠에 담긴 다양한 콘텐츠를 살펴보고 있자면, 유 대표가 표현한 ‘방황’ 또한 출시를 위한 노력처럼 느껴진다.
물론 첫 작품인 만큼 못내 아쉬운 요소도 많다. 유 대표는 "메인 스토리에서도 그렇고 각 캐릭터마다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많았지만, 못 담아낸 부분이 많아 아쉬운 마음이 정말 크다. 프로덕션에 주어진 한정된 시간, 비용에 맞춰 게임의 스케일을 정하고 구현하는 부분에서 디렉터의 능력과 경험이 정말 큰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부분들은 미처 큰 그림을 다 보지 못한 제 역량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작품에는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차기작은 이터나이츠와 세계관 공유, DLC는 고려 중
많은 유저들이 원하던 DLC는 준비돼 있지 않지만, 차후 이터나이츠의 후일담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유 대표의 말이다. 아울러 "준비 중인 차기작은 이터나이츠와 세계관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터나이츠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며, “차기작은 이터나이츠와 비슷하게 어번판타지를 배경으로 로맨스, 액션 등을 강조한 게임”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의 이런 의견에 따르면 차기작 또한 스튜디오 이름에 걸맞게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사이'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터나이츠는 깊이 측면에서는 다소 얕을 수도 있는 게임이죠. 플레이 경험이나 집중할 요소가 완전히 다른 두 장르를 엮어냈다 보니, 진득하게 파고드는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1인 개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영상미와 섬세한 현지화로 통해 플레이어와 캐릭터 ‘사이’의 감정을 잘 이끌어낸 점은 게임의 기획 의도와 맞물려 충분히 호평할만한 요소다. 스튜디오 사이의 주요 기조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첫 작품인 셈이다.
유 대표는 인터뷰 마무리에서 "부족한 점도 많고, 주류의 메이저 게임이 아닌데도 한국인 개발자가 개발한 게임이라는 이유로 많은 분들이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신 것도 알고 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이터나이츠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플레이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피드백은 제게 큰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잊지 않고 플레이어께 만족을 드릴 수 있는 차기작으로 돌아오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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