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제도가 시행된 이후, 기존에 게임사들이 확률을 잘못 고지했던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자율규제 하에서는 게임사가 이벤트 내용이나 유료 아이템 확률을 잘못 고지하더라도, 게임사가 직접 인정하지 않으면 이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정보들이 지금까지 게임회사의 '영업비밀'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잘못된 확률 고지 등으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고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게임사가 발표하지 않는 한 관련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제도 시행 전까지는 일반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확률 오고지 등을 이유로 민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적으로 고소를 하더라도 모두 인정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형사고소 단계에서 게임사 확률이 잘못됐음을 이유로 고소하는 경우, 실무상 수사단계에서 대부분 증거불충분으로 처리되어 소송단계까지 이른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에 이번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가 잘못된 확률을 고지하거나, 게임 정보를 실제와 다르게 공개했다는 점을 이유로 게임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만약 일반 이용자들이 확률을 비롯해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진행될 수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컴투스 프로야구 포 매니저 환불 사건
가장 먼저 살펴볼 사건은, 컴투스 프로야구 포 매니저(이하 컴프매라고 합니다) 환불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남부지방방법원 2018가단234942호 사건입니다.
이 사건 원고였던 게임 이용자는 가장 높은 등급의 유격수 에이스 카드를 뽑기 위해 3,000만 원 이상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는 획득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이용자들도 모두 유격수 에이스 카드를 얻을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고, 커뮤니티에서는 ‘확률 조작’ 의혹이 확산됐습니다. 논란이 발생한지 3개월이 지나서야 컴투스 측에서는 "프로그래밍 코드에 오류가 있어 유격수 에이스 카드 대신 외야수 에이스 카드가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라며 게임 캐시로 일부 보상을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프로그램 오류가 있어 유격수 에이스 카드 대신 외야수 에이스 카드가 나오는 일이 발생한 사실은 인정된다"라면서도, "피고들(컴투스 측)이 고의로 등장 확률을 조작했다거나 오류를 방치했다고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이 부분과 관련된 원고 주장을 모두 배척했습니다.
만약, 이 사건에서 미리 모든 카드 확률이 제대로 고지되어 있었거나, 유저들이 직접 게임에서 판매 중인 아이템 확률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당시 확률을 고지할 법적인 의무가 있었다면, 게임사 측에서는 실제 게임에서 적용되는 확률이 고지된 확률과 일치하는지 대해서 확인해야만 합니다. 이를 소홀히 했다면 민사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격수 에이스 카드에 대한 정확한 확률이 고지되어 있었다면 유저들은 3.000만 원이 아닌 훨씬 적은 금액의 구매로도 게임사에서 고지된 확률과 실제 결과가 크게 차이가 있음을 조기에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게임사에게 환불 내지는 손해배상을 훨씬 쉽게 요구했을 것입니다.
리니지2 레볼루션 강화 오류 사건
다음으로, 리니지2 레볼루션 강화 오류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38129호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한 유저가 강화도가 2단계 이하인 경우 성공확률이 100%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오류가 발생했고, 강화도가 3단계 이상의 장비 강화 성공률 수치의 표기에도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게임사 측의 강화 성공률 조작이 의심된다'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고(게임사)의 항변을 받아들여 "확률 조작이 아닌 네트워크 문제로 인한 표시상의 오류에 불과하다"라고 보아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첫 번째 사안과는 달리, 게임사가 확률과 관련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강화 확률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게임사 주장과 같이 단순한 네트워크 문제로 인한 표시상의 오류에 불과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민사사건에서 적용되는 법리 중 '입증 책임의 원칙'에 따라 주장하는 사람이 본인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강화 확률의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원고가 증거를 통해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면 결국 패소하게 되는 구조라는 것인데요.
앞서 살펴보았듯 일반 이용자들은 게임 내에 적용되는 확률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임사 측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확률 오고지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더킹오브파이터즈 98 UM 온라인 가짜 랭커 의혹 사건
위의 확률 공개와는 조금 결을 달리하지만, 게임사와 유저간의 정보 비대칭성(게임사가 정보를 독점하고, 유저는 이에 대해 접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민사소송까지 진행된 사건도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016가합513185호 판결이 내려진 더킹오브파이터즈 98 UM 온라인 이벤트 과정에서 불거진 가짜 랭커 의혹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게임사 측은 이벤트 기간 중 게임 내에서 이벤트 점수를 구매할 수 있고, 이용자가 점수를 구매하면 누적 점수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고 밝혔습니다. 종료 시점에 순위가 30위 안에 드는 이용자들에게 순위에 따라 보상 아이템을 지급하는 이벤트였죠.
이 사건 원고들은 게임사 측에서 가짜 이용자들을 상위 랭킹에 등장시키고, 점수 경쟁을 시켜서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지출을 유도하는 기망행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이벤트 기간 동안 사용한 돈에 해당하는 금원(돈의 액수)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원고였던 유저들이, 게임사 측이 정말로 가짜 이용자들을 이용하였는지를 밝히지 못해, 위에서 살펴본 입증책임의 법리에 따라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원고들이 정말로 착각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만약 원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원고가 이를 입증할 방법이 지금까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점입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제도 시행 후 어떻게 될까?
지난 3월 22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제도 시행 이후 많은 점이 바뀌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게임사에게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확률 고지 의무를 부과하게 되어 게임사 책임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확률이 공개되어 있기에 관련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대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 확률 정보 공개 제도에서는 공개 의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형사적 절차를 토대로 확률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이를 기반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면 승소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제도 시행 후 게임사들은 자발적으로 고지된 확률이 실제 게임에서 적용되는 확률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교차 검증하는 절차를 구축하고, 심지어 게임 개발 단계에서부터 유저들이 확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 또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로서 이러한 변화가 매우 반갑습니다. 투명한 확률 공개와 게임 내 정보가 이용자에게 많이 공개될수록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아직은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러운 단계입니다만, 점차 게임 이용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들이 늘어나, 위에서 살펴본 사건과 같은 의혹이 생겨 유저들이 법원의 문턱을 밟는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게임사와 대등하게 진실을 가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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