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게임스컴에는 넥슨, 크래프톤, 펄어비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가 총출동해 장기간 준비해 온 자사 신작을 현지 유저에게 선보였다. 그 결과는 예상 밖으로 폭발적이었다. 각 게임사 B2C 부스 모두에 4~5시간이 넘는 긴 대기열이 형성됐으며, 해외 게임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유럽에 눈도장을 제대로 받겠다는 목표가 실현된 셈이다.
이번 게임스컴에 각 게임사는 본격적으로 임했다. 넥슨은 던전앤파이터 IP를 기반으로 한 액션 RPG 신작 ‘퍼스트 버서커: 카잔’, 크래프톤은 심즈 대항마로 조명되는 인조이와 글로벌 출격을 예고한 다크앤다커 모바일, 펄어비스는 꼼꼼히 담금질해 온 붉은사막을 드디어 시연 버전으로 현장에 출품했다.
게임스컴 성향에 딱 맞춘 충실한 시연
신작 체험이 중심인 게임스컴 성격에 맞춰 국내 게임사는 시연 버전을 알차게 준비했다. 퍼스트 버서커: 카잔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반부와 보스 2명을 상대할 수 있는 도전 콘텐츠를 마련했고, 크래프톤은 캐릭터를 만들어볼 수 있는 스튜디오와 함께 집과 도시를 관리하는 전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펄어비스는 시연 시간을 1시간으로 넉넉하게 잡고 격투게임을 연상시키는 콤보 시스템을 갖춘 전투를 4마리 보스를 상대하며 최대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세 게임사를 포함해 올해 게임스컴에 출전한 국내 게임사는 IP적으로는 해외 게임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 참관을 준비하는 참가자 관점에서 사전에 매리트를 느낄 영역이 다소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구름과 같은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게임이 가진 재미를 최대한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충실히 마련한 시연 버전 그 자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내 게임사가 출품한 게임스컴 시연 버전은 내용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충실했다. 게임스컴 기간에 국내는 물론 해외 게임사가 출품한 게임도 다수 즐겨봤으나 시간제한을 두고 전반부를 체험하는 데 그치거나, 핵심 플레이와 동떨어진 부분만 체험할 수 있거나, 시연 자체가 없고 영상을 보며 개발자 설명을 듣는 프레젠테이션에 그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점은 출시 시기를 정해두지 않았거나 내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4개월 남짓 남은 올해 하반기에 출시되는 타이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물론 신작을 장기간 기다려온 팬으로서는 새로운 정보 자체가 반갑게 느껴질 수 있으나, 체험이 기대보다 부실하다면 ‘팥소 없는 찐빵’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올해 게임스컴에 출전한 국내 주요 게임사가 마련한 시연 버전은 그 자체로도 준수한 재미를 선보였고, 앞으로 어떠한 게임으로 완성되어 갈지 가늠하기에도 충분했다. 붉은사막의 경우 시연 버전에도 여러 버튼을 조합해 마치 격투게임처럼 적과 합을 겨뤄가는 전투 스타일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고, 가이드 영상을 마련해 유저들이 실제로 버튼을 눌러보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난이도 자체는 굉장히 높았으나 전투 시스템을 한 단계씩 배워가는 방식으로 전개한다면 전투적으로 파고들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고 내다볼 수 있었다. 여기에 영상으로 봤던 전투가 실제 게임에도 그대로 돌아간다는 점을, 실물을 통해 보여준 부분도 큰 임팩트를 남겼다.
인조이 역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집에서 생활하는 대목과 여러 가구 디자인을 바꿔보는 재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성 AI로 벽지나 포스트 등을 만들어보는 영역, 도시에 나가서 캐릭터들과 소통하거나 환경을 직접 바꿔보는 부분까지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또 다른 심즈 대항마로 조명된 라이프 바이 유가 개발이 중단된 시점, 인조이는 현지 유저에게 ‘새로운 심즈’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크래프톤의 경우 김창한 대표가 국내에서 직원 150명을 이끌고 현장을 방문해 전시를 지휘할 정도로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퍼스트 버서커: 카잔 역시 기본적인 액션을 배우는 초반부와 함께 여러 장비와 스킬을 갖춘 보스 챌린지까지 마련해 초반부 느낌과 중반 이후에 크게 달라지는 플레이 스타일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갖췄다. 이를 토대로 다소 묵직한 소울라이크 느낌에서, 던파 특유의 콤보를 기반으로 한 화려함을 강조한 액션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단시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이 매체 등을 통해 전해지며 현지에서 사전 인지도가 낮은 신작임에도 행사 막바지로 갈수록 더 많은 유저들이 한국 게임을 조명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사 입장에서는 게임스컴이라는 무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경로를 드디어 찾아냈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준비한다면 반드시 성과를 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부분은 국내 게임사에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현지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여 제대로만 준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게임으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국내 게임사 역시 모바일과 아시아권에 집중됐던 흐름을 벗어나 PC와 콘솔로 서양권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기에 게임스컴은 성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올해는 개발 자회사를 중심으로 출전한 카카오게임즈는 내년에는 아키에이지 2 등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게임스컴에 출전한다. 카카오게임즈 한상우 대표는 게임스컴 현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카카오게임즈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콘솔·PC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좋은 게임들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준비 중인 대작들을 비롯해 순차적으로 잘 준비해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 기대해달라”라고 밝혔다.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게임스컴은 B2C도 글로벌 게임쇼 선두를 달리는 규모를 자랑하지만, 유럽의 금융허브로 통하는 독일이라는 개최지 이점을 활용해 예전부터 B2B가 강하기로 유명했다. 즉,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만한 해외 신작을 발굴하는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엔씨소프트 박병무 대표가 사업 담당자들과 함께 게임스컴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병무 대표는 “엔씨소프트가 많은 변화를 준비하는 만큼 게임스컴을 통해 글로벌 시장 동향을 파악하려 찾아왔다”라며 “유럽 시장에 진출할 다양한 기회를 모색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을 토대로 내년 게임스컴에도 새로운 분야 개척에 방점을 찍은 국내 게임사가 다수 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출전을 통해 확실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으니, 내년에도 비슷한 성과를 기대하며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를 넘어 유럽에서도 한국 대표 게임사가 서로 맞붙는 경합의 장이 펼쳐지게 된다. 그 광경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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