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7년. 세가새턴으로 극강 2D 액션게임이 출시되었다. 그 게임은 배경, 캐릭터, 연출 등이 마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듯이 멋지고 화려해, 한 편의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까지도 줬다. 이후 그 게임은 세가새턴을 대표하는 명작이자 개발사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는데, 그 게임의 이름이 바로 ‘프린세스 크라운’이다.
‘오보로무라마사(朧村正)’는 앞서 잠깐 언급한 ‘프린세스 크라운’을 포함해 ‘오딘 스피어’, ‘쿠마탄치’ 등 장인의 손길로 2D 그래픽만을 고수해온 바닐라웨어가 2009년 Wii로 발매했던 작품을 PS비타로 이식한 것이다.
“네? 이 회사 게임은 원래 이래요”
▲ 국내에도 정식발매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바닐라웨어 게임들
(왼쪽부터 '프린세스 크라운', '오딘 스피어', '그랜드 나이츠 히스토리)
‘오보로무라마사’는 겐로쿠(元禄)의 쇼군 도쿠카와 츠나요시(綱吉施政) 시대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과 요도(腰刀)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로 판타지와 중세시대 이야기를 담아내던 바닐라웨어지만 ‘오보로무라마사’에서 처음으로 과거 일본을 주제로 게임을 제작했는데, 세계관은 바뀌어도 진행과 시스템은 제작사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이야기인 즉, PS비타로 ‘오보로무라마사’를 처음 접한 게이머라면 바닐라웨어 특유의 ‘비슷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프린세스 크라운’부터 즐겨본 게이머라면 그 ‘비슷함’이 눈에 보인다. 그것은 여타 다른 횡스크롤 액션게임들과 다르게 게임진행이 칸에서 칸으로 이어지는 것 때문이다.
▲ 이렇게 비교하면 Wii 버전과 PS비타 버전의 차이를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위: Wii 버전, 아래: PS비타 버전)
보통 횡스크롤 액션게임은 한 시나리오(혹은 스테이지)에 맞춰 장소를 길게 이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바닐라웨어표 게임들은 퍼즐을 짜맞추듯이 작은 칸과 칸을 이동하며 전투를 하거나, 혹은 NPC와 대화를 나누고 숨겨진 장소를 찾는 구조로 되어있다. 마치 책이나 컷 씬을 넘기듯이 말이다. 칸과 칸을 이동하는 방식은 게임진행의 흐름을 끊어 산만해질 수 있지만 적, 숨겨진 장소, 이벤트 등을 무작위로 등장시켜 이러한 문제를 해소시키게 된다.
바닐라웨어를 상징하는 2D 그래픽도 게임들의 ‘비슷함’에 한 몫 거들고 있다. 캐릭터가 비슷하다거나 세계관이 흡사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작사 특유의 그래픽 기술 덕분에 전체적으로 그렇게 느껴진다. 2D 그래픽이지만 도트를 찍어서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3D 그래픽 기술력을 활용해 2D 그래픽을 구성하는 방식이라 훨씬 깔끔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바닐라웨어표 게임에 비해서 아쉽다는 것이지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정말 부드럽고 화려하다
하지만, 세가새턴의 ‘프린세스 크라운’, PS2의 ‘오딘 스피어’ 모두 ‘시대를 넘는 최고의 2D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에 반해 ‘오보로무라마사’는 Wii라는 조금은 제한적인 콘솔로 발매되면서 해상도나 연출 등이 축소되는 불운을 맞게 된다. 물론 PS비타로 이식되면서 HD 해상도와 색감은 많이 수정되었지만, 연출은 그대로 이식되면서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게 된다.
‘현란회권화풍 액션RPG’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 모모히메와 키스케의 이야기를 선택하여 진행할 수 있다
‘오보로무라마사’는 ‘오보로검 백귀야행편’ 모모히메(百姫), ‘요도 무라마사 인법첩편’ 키스케(鬼助) 두 명의 남녀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두 주인공은 성별과 진행 스토리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전투, 무기 획득 시스템은 동일하다.
주인공이 보유한 태도(太刀), 대태도(大太刀)에는 ‘영력’ 게이지가 존재하는데, 공격을 당하거나 방어를 할 경우 ‘영력’ 게이지가 소멸되면서 부러지게 된다. 무기에 ‘영석’ 게이지가 존재하는 만큼 한 번에 세 개씩 들고 다닐 수 있는데, 상황이나 ‘영력’ 게이지 상태에 맞춰 교체를 하면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검에는 ‘영력’ 게이지와 함께 ‘스킬(오의)’이 존재하여 360도 회전하거나, 전자 구(球)를 발생시키는 등 패턴을 활용해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 숨겨진 장소나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것은 게임 속 또 다른 재미다
게임에는 콘텐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108개의 검이 등장한다. 이 검은 단순하게 이야기 진행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적을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는 ‘혼’과 요리나 아이템으로 수집할 수 있는 ‘생기’를 이용해 ‘단야鍛治)’ 메뉴에서 제작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제작을 통해 얻는 검은 일반 공격모션이 동일하나 ‘오의’가 다르며, 수집자체가 엔딩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꾸준히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 게임의 핵심 콘텐츠 '108개의 검'
물론 앞서 언급한 태도, 대태도에 따라 공격 속도와 공격력, 방어 시 소모되는 ‘영력’ 게이지가 감소되는 수치 등이 달라 무기 수집과 사용에 따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오의’는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사용 중에는 무적 시간이 존재하지만 ‘영력’ 게이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밸런스 붕괴(?)를 막아준다.
‘오보로무라마사’는 과거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소설책이나 전래동화에서 볼법한 보스나 적들이 등장한다. 2D 그래픽으로 제작되어 문제가 있을 것 같지만, 화면을 가득 채우거나 다양한 공격 패턴을 가진 적들은 말 그대로 ‘싸울 맛’을 느끼게 해주는데 충분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보스들이 등장한다는 점인데, 과거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니 외국 전래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넘기는 것도 좋을 듯싶다.
▲ 음식 먹는 장면은 모든 팬들이 찬사를 보낼 정도로 잘 만들어져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먹방게임'
다만, Wii용 ‘오보로무라마사’에서도 단점으로 지목되던 점이 고쳐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이야기도 좋고 짜임새도 좋지만 분량이 너무 짧다는 점이었다. PS비타용 ‘오보로무라마사’ 역시 별다른 추가사항 없이 이식되어 이야기에 차이점이 없으며, 이후 DLC 추가 시나리오도 Wii용 ‘오보로무라마사’에서 출시된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현란회권화풍(絢爛絵巻和風): 현란한 두루마리식 일본풍 그림책
‘드래곤즈 크라운’을 기다리며…
▲ 스토리도 좋고, 진행도 매끄럽다. 다만 일본어에 고(古)어체라 알아먹기 힘들다는 게 문제
기자는 개인적으로 제작사 바닐라웨어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보로무라마사’를 플레이 중인 동료기자에게서 빼앗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게임을 같이 즐겨보거나 구경을 해본 이들은 ‘왜색이 너무 짙다’며 거부감을 표하곤 하는데, 그러한 이유로 플레이를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작품이다. 비록 한글화는 되지 않았지만 짜임새 있는 스토리, 화려한 연출과 그래픽 등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오보로무라마사’다. 일본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라도 해외 전통문화나 전래동화를 접하는 기분으로 게임을 플레이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 7월 출시 예정인 '드래곤즈 크라운'을 기다리며 '오보로무라마사'를 즐겨보자
콘솔기기가 진화하면서 HD 해상도는 물론 블루레이급 화질에 용량까지 담을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때문에 개발사들은 효율적인 게임 제작의 문제로 도트나 이미지를 활용한 2D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슬픔(?)속에서 바닐라웨어와 같은 회사가 있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PS비타가 없다면 Wii로, Wii가 없다면 PS2 ‘오딘 스피어’를, PS2가 없다면 PSP ‘그랜드 나이츠 히스토리’나 ‘프린세스 크라운’을, PSP가 없다면 NDS ‘쿠마탄치’를 찾아서라도 즐겨보자. 바닐라웨어는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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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포지션은 모바일, [앱숀가면] '레드'이자 '아버지(?)'. 2D 여자를 더 사랑하고, 피규어와 콘솔게임을 사기 위해 전재산을 투자한다. 필자시절 필명은 김전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멀록으로 바뀜.geo@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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