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름포지스튜디오 ‘던전스 2’ 한국어판이 지난 4일(월) 정식 발매됐다. 이번 작품은 ‘던전 키퍼 2’ 정신적 후계작을 내세우며, 출시 이전부터 많은 게이머의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던전스 2’는 공개 당시, 전작의 디펜스 방식과는 확연히 달라진 게임 플레이, 깔끔한 그래픽을 선보였다. 여기에 영웅을 막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지상으로 악의 무리를 이끌어 정복 활동을 펼치는 모습과 추가된 신규 진영 ‘데몬’의 등장은 ‘던전 키퍼’의 부활을 기다려온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출시된 게임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던전 관리에 초점을 맞춘 ‘던전 키퍼 2’와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 던전은 단순히 생산 시설일 뿐, 무리를 이끌고 지상을 침공하는 RTS 플레이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인구 제한에 걸려, 타 RTS처럼 병력을 많이 뽑기도 힘들뿐더러, 세세한 조작을 하기에도 불편해, 전략 없이 떼 싸움만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던전 키퍼 2’ 시스템도 일부만 계승해, 던전 관리에서 느끼는 재미도 불완전했다. ‘던전 키퍼 2’에서처럼 영웅을 고문해서 아군으로 만들거나, 크리쳐의 행복도를 관리하는 재미도 사라지고, 함정이나 문 등의 방어시설 활용도는 이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크리쳐 종류도 강화 버전을 제외한다면 진영별로 4종 밖에 없었다. 이처럼 ‘던전스 2’는 던전 시뮬레이션의 재미도, RTS 특유의 전략성도 부재한 이도 저도 않은 게임이 됐다.
▲ '던전스 2'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던전 관리 재미, ‘던전 키퍼 2’ 후계작 수준은 아니다
‘던전스 2’가 처음 기대를 모은 데는 전작 ‘던전스’에서 보여준 타워 디펜스 방식에서 벗어나, ‘던전 키퍼 2’처럼 던전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이유가 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던전스 2’는 ‘던전 키퍼 2’ 시스템을 일부만 계승했다. 대표적으로 몬스터 행복도를 관리하거나, 침입해온 적을 포획하는 등 ‘던전 키퍼 2’ 특징적인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던전스 2’에서 던전을 성장시키는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최종 목표가 지상 침공이라 그런지 ‘던전 키퍼 2’보다는 던전 관리는 단순히 유닛 생산 시설 관리에 가깝다. 실제로 게임 내에 몬스터 ‘행복도’ 시스템 대신 월급과 술만 제공하면 되기 때문에, 몬스터를 기쁘게 하기 위한 ‘카지노’나, 영웅을 가둘 수 있는 ‘감옥’ 같은 특수 시설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는 ‘던전 키퍼 2’와 같이 몬스터들의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볼 수 없었다.
▲ 전작에 비해 확실히 바뀌긴 했다
▲ 단지 '던전 키퍼 2'의 후계작 치고는 관리하는 재미가 적다
다양한 몬스터의 부재도 아쉬운 점 중 하나다. ‘던전스 2’에는 ‘데몬’과 ‘호드’ 두 진영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종류는 하수인을 제외하면 진영별로 4종뿐이다. 나중에 던전 내에 지은 ‘결투장’에서 각 몬스터를 강화하면 모습과 능력이 바뀌지만, 결국 ‘오크’는 ‘오크 족장’, ‘강철 오크’처럼 강화판에 지날 뿐, 큰 차이를 체감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던전스 2’는 애초에 내세운 ‘던전 키퍼 2’의 후계작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던전스’보다는 낫지만 ‘던전 키퍼 2’와 비교했을 때는 오히려 한발 퇴보했다는 느낌이다
▲ 상단 메뉴에 보면 알겠지만, 몬스터가 하수인을 포함해 5종밖에 없다
▲ 골렘인줄 알았는데, 이놈도 그냥 '오크' 강화판입니다
침공의 재미는 있는데, 전략성이 없으니 갈수록 지루해
‘던전스 2’에는 여태까지
던전 관리 게임에는 없던 지상 침공을 선보였다. 생산한 몬스터를 던전 입구 쪽에 옮겨놓으면, 본격적으로 인간들이 거주하는 지상에 진출할 수 있다. 이 때, 지상에서의 조작은 RTS처럼 마우스로 끌어서 부대를 선택하고, 우 클릭으로 공격과 이동이 이루어진다.
일단 지상에 올라가면, 곳곳에 있는 소규모 인간 병력과 동물들을 처치해
조금씩 플레이어 영역을 늘리게 된다. 특히 플레이어가 한 지역 내 적을 모두 처치하면, 주위 배경이 악에 물들면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지상을
침공하면서 주위 동식물이 시들고, 용암이 흐르는 모습을 보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다. 이렇게 야금야금 지상을 점령하다가, 최종적으로 인간 세력의 대도시나
성을 점령하면 게임이 끝난다.
▲ 지상 침략, 하나씩 악으로 물들여보자!
▲ 이미 전략은 필요없다, 많이 모아서 돌격만 하면 땡
지상 침공은 던전 관리와는 다르게 확실히 보는 재미는 있다. 단지, RTS 특유의 전략적으로 싸우는 맛은 없다. 실제 지상에서의 전투는
유닛 간 상성이나, 지형을 이용한 전략적인 플레이가 필요 없다. 단지
유닛 종류와 상관 없이, 무작정 일정 수 이상 병력을 보내 한 명씩 적 병력을 처치하다보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식으로 반복적인 전투가 계속되다 보면, 자연스레
후반에는 보는 즐거움보다는 전투의 지루함이 앞선다.
이렇게 전투를 지루하게 만드는 이유에는 조작의 불편함도 한몫한다. 게임
내에서 인간 세력들은 대도시나 성 근처에 갈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작이 필요하다. 다만, ‘던전스 2’ 조작은 정말 기초적인 부대지정 등만 이루어질 뿐, 무빙 샷을 날릴 정도로의 세밀한 조작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일일이 유닛을 조작하려다가 가만히 내버려뒀을 때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한 적도 많다. 조작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결국 지루한 전투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나레이터’만 빼면 패러디 요소 가득한 스토리 모드는 합격점
‘던전스 2’ 스토리
모드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나레이터’가 주인공인
‘절대 악’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토리 모드 내내, ‘나레이터’는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비아냥과 유머를 섞어가면서 ‘절대 악’의
행동을 들려준다. 가끔은 ‘나레이터’가 갑자기 다른 대본을 읽고 미안하다고 하거나, 칼립소미디어의 다른
게임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초반부에 해당한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가끔 풀리지 않는 구간에서는 플레이어를 조롱하거나, 짜증 섞인 말투를 던지면서 진행을 강요하기도 한다. 여기에 후반부에는
대사가 반복되면서,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대사를 끄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스토리 모드를 진행하는 동안
‘나레이터’에게 시달릴 수 밖에 없다.
▲ '나레이터'의 대화에 따라 게임이 진행된다
▲ 해결 안하면 저 대사를 계속해서 틀어준다
‘나레이터’를 뺀다면, 게임 스토리 진행은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특히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봉인한 8 영웅을 처치한다는 설정이나, 갑작스러운 제 2진영의 개입은 플레이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스테이지마다 ‘고블린 암살자’로 영웅을 암살하거나, 다른 종족을 탐험을 하는 등 다양한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제약이 없는 ‘스커미시’보다 클리어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스토리 모드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패러디 요소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거대한 얼음벽이 스테이지에 나오거나, 언데드 왕이 ‘서리간이 굶주렸다’라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리치왕’을 패러디한 대사를 외치는 등 스테이지마다 다양한 패러디를 볼 수 있어, 이를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존 스노우'가 근무하는 추억의 그 장소
▲ '서리간'이 굶주렸도다!
그나마 있던 장점까지 버린 지루한 멀티플레이
‘던전스 2’는 던전 시뮬레이션 게임 치고는 특이하게도 멀티플레이를 지원한다. 멀티플레이에서 플레이어는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 3’같은 RTS처럼 다른 플레이어와 매칭을 해, ‘데스매치’와 ‘정복전’ 방식으로 대전을 펼친다.
‘던전스 2’의 멀티플레이는 ‘빠른 게임’을 눌러 자동 매칭을 하거나, 인터넷과 랜을 이용해 방을 생성해 친구를 초대해서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아직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유저가 적어서 그런지 매칭도 거의 잡히지 않았을뿐더러, 서버 상태도 불안정해 접속과 동시에 연결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실제로 멀티플레이는 가까운 친구와 한 두 판 즐기는 용도로 밖에 쓰이지 못했다.
‘멀티플레이’의 맵으로는 두 던전이 마주보고 있는 ‘투기장’, 긴 강줄기가 중간을 가로지르는 ‘솟아오르는 강줄기’, 가운데 마을 두고 펼치는 ‘도시 공성’, 중앙의 길목을 두고 싸우는 ‘최후의 대학살’, 4개 세력이 중앙 언덕을 두고 싸우는 ‘사각문제’ 총 5종이 있다. 각 맵은 서로 다른 승리조건을 지녔지만, 실제로는 게임 방식은 이름만 살짝 다르지, 대부분 상대 던전을 심장부를 파괴하는 ‘데스매치’와 거점을 점령해 점수를 모으는 ‘정복전’ 방식으로 진행됐다.
▲ '멀티플레이'에서는 총 5개의 맵을 즐길 수 있다
▲ '빠른 게임'에서는 진영만 고르면 바로 게임에 입장한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면, 상대 던전 위치가 이미 밝혀진 상태라 굳이 유닛을 풀어 정찰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점령 거점이 특별히 지리적인 이점을 지닌 것도 아니라, 특별한 특성을 가진 유닛을 활용하기보다는 여전히 ‘스커미시’에서 보여준 전략성 없는 전투가 멀티플레이에서도 이어진다. 즉, 멀티플레이에서 승패를 가르는 건 유저가 얼마나 유닛을 빨리, 그리고 많이 뽑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던전에 존재하는 함정은 멀티플레이에선 완전히 무용지물로 작용한다. 플레이어가 유닛을 직접 조종하다보니, 열심히 설치를 해놔도 다 피해가거나 해체해버린다. 또한, 유닛이 워낙 빠른 속도로 소모되다 보니, 굳이 크리쳐가 중간 마시러 오는 술도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 사실 던전 시뮬레이션의 요소를 조금이라도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멀티플레이에서는 그런 재미를 전혀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