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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블리자드, 애플을 닮아가다

‘와우 정액요금 사용자에게는 스타2가 공짜’

지난 26일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한정원 북아시아 대표가 한 말입니다. 굳이 시장 논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진리는 애벌레에서 갓 나온 드론도 아는 사실인데 게임업계의 글로벌 리더가 이런 말을 하다니 히드라가 팔짝 뛸 노릇입니다. 한정원 대표는 이날 행사에서 블리자드 게임을 사랑해주시는 한국인을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지만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기에는 미심쩍인 부분이 많습니다. 바닥에 깔린 패가 너무나 노골적인 까닭이겠죠.

블리자드의 경쟁 상대는 EA가 아닌 애플

블리자드가 슬쩍 꺼낸 첫 번째 패는 바로 ‘애플’의 벤치마킹입니다. 이 얘기를 꺼내기 앞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례가 있습니다. 의류스포츠 부동의 1위 ‘나이키’는 성장률이 둔화하는 기미를 보이자 곧바로 경영혁신에 돌입하고 이같이 선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아디다스나 리복이 아니라 소니, 닌텐도, 애플이다.” 의류업체가 경쟁상대를 IT업체로 삼았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나이키는 체계적인 업무 분석을 통해 수익의 주 타겟층인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에 운동을 하지 않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이유를 소니나 닌텐도의 ‘게임’을 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게임’이 여유 시간에 즐기는 개인 ‘놀이’에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요컨대 현재 시장을 선도하는 보수기업이 무서워하는 것은 경쟁사 신제품의 뛰어난 스펙이 아니라 그 제품이 안고 갈 문화적 파급력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죠.

다시 블리자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블리자드는 ‘스타2’ 만으로 문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한 번 써먹은 패를 다시 꺼낼 만큼 아둔한 회사는 아니죠. ‘스타2’가 첫 패이긴 하지만 명민한 블리자드는 밑장에 ‘배틀넷 2.0’이라는 카드를 숨겨놓았습니다. 아이폰의 장점이 스펙이 아닌 앱스토어인 것처럼 ‘스타2’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게임 유저층 확대가 아니라 배틀넷 2.0을 통해 게임 생태계 조성을 노린 것이죠.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아니 배틀넷이 뭐길래? 그저 온라인 대전 시스템 아니었나요?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1,200만명의 배틀넷 회원, 블리자드식 생태계 완성

지난해 11월 배틀넷 제작 총괄 책임자인 그렉 카네사는 “배틀넷 이용자가 1,200만명(09년 1월 기준)으로 집계돼 와우 유료 가입자 수를 뛰어넘었다.”고 밝혔습니다. 아시다시피 배틀넷은 현재 돈이 되지 않은 시장입니다. 블리자드가 배틀넷은 통해 직접적으로 벌어드리는 수익은 1원도 없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익이 아니라 1,200만 명이라는 수치 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는 마케팅 업계의 논리처럼 이제 블리자드가 해야 하는 일은 돈이 돌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죠.


▲배틀넷2.0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프로젝트 디렉터 그렉 카네사(좌)

여기서 블리자드의 두 번째 패인 ‘스타2 맵에디터’가 나옵니다. 그렉 카네사는 일찍이 “스타2 맵에디터를 애플 앱스토어처럼 ‘마켓 플레이스’ 형태로 구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용자가 맵을 제작하고 올렸던 1세대 배틀넷에서 한 단계 진화해 이제 자신이 만든 맵을 현물로 가치를 매겨 배틀넷에 등록할 수 있는 것이죠. 앱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유료 콘텐츠 판매로 인한 수익은 블리자드와 제작자가 나눠 갖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블리자드가 꼭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플 역시 앱스토어를 통해 큰 돈을 벌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료 어플을 통해 얻은 수익은 개발자와 제작사가 7:3비율로 얻게 됩니다. 언뜻 보면 꽤 괜찮은 수익구조이지만 실상은 앱스토어 유지비용 및 카드사 수수료가 빠지고 나면 정작 제대로 된 돈을 만지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앱스토어에서 얻은 수익은 애플 총 수입의 1%도 안 된다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도 나온바 있습니다.

‘스타2’ 마켓플레이스는 ‘게임’과 ‘스타2’ 기반의 에디터라는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앱스토어 만큼 성장하기 힘든 구조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블리자드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가지는 애플이 앱스토어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를 창조했던 것처럼 블리자드 역시 맵에디터로 게임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입니다. 게임 생태계의 변화. 게임업계가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일을 블리자드가 벌이고 있는 것이죠.


블리자드, 생태계 변화의 주도권 먼저 잡나

사실 생태계라는 것은 조금 위험한 말입니다. 물웅덩이에 개구리 한 마리를 던져 놓았다고 해서 생태계라고 부를 수 없듯 생태계라는 단어 하나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개구리가 살기 위해선 먹이가 되는 곤충이 필요하고 곤충이 살기 위해선 그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곤충과 개구리가 사는 곳엔 이를 먹이로 하는 포식자들이 찾아오고 비로서 환경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블리자드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게임 생태계라고 한다면 그 첫 번째 토양은 배틀넷 2.0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블리자드에서 나오는 모든 게임들은 배틀넷 2.0으로 연결되며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통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겠죠. 애플이 ‘아이’시리즈로 모바일 생태계를 이룩했던 것처럼 말이죠. ‘스타2’ 베타테스트 당시 맵에디터를 통해 온갖 장르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그리 억지스러운 추측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출시될 모든 블리자드은 배틀넷2.0으로 연결된다

블리자드가 구상한 로드맵이 애플이 걸었던 길과 완벽하게 일치하리라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 말 그대로 성공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시장은 계속 변해가고 트랜드도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타2가 발매되고 대격변이 업데이트 되며 디아블로3가 나올 때쯤엔 유저들이 배틀넷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대부분 적응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 주는 본연의 재미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이 싫증나도 그 안에서 엮인 인간관계 때문에 게임을 접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죠. 이제 와우가 아닌 배틀넷에서 이런 커뮤니티가 형성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블리자드식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사태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갈라파고스 현상을 언급할 때쯤엔 블리자드가 도태되어 있을지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들이 짐을 싸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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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PC
장르
RTS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정식 후속작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세 종족 중 '테란'의 이야기를 담은 패키지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이후 이야기를 담았...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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