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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메카] 미소녀와 음악, 추리의 앙상블 'G선상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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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몇 년 전 큰 이슈가 된 케이블 방송 ‘더 지니어스’ 기억하시나요? 참가자들이 다양한 게임으로 승부를 겨루며, 최후의 생존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죠. ‘더 지니어스’의 특징이라면 보통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참가자의 추리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된다는 점인데요, 때문에 의도치 않은 돌발 상항이 자주 발생해 큰 재미를 선사했죠.

미소녀게임 역시 이런 추리요소가 들어간 게임이 많은 편인데요. 하지만 의외로 등장인물 간 두뇌대결을 보여주는 작품은 흔치 않고, 그 얼마 안되는 작품마저도 대부분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유저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죠.

그래도 모든 일이 그렇듯, 잡초밖에 없는 땅에서도 활짝 핀 꽃 한 송이는 존재하는 법!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이런 미소녀게임 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치밀한 두뇌대결로 호평을 받은 작품, 바로 ‘G선상의 마왕’입니다.


▲ 'G선상의 마왕' 오프닝 영상 (영상출처: 유튜브)

2차 창작물 동인팀에서 굴지의 개발사로, 아카베소프트

본격적인 게임 소개에 앞서, 제작사에 대한 설명도 빼놓을 수 없겠죠? ‘G선상의 마왕’ 제작사 아카베소프트는 본래 다른 작품의 2차 창작물 만화를 내던 동인팀으로, 그 초기 모습은 게임 제작사보다는 일종의 모임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돌연 아카베소프트는 ‘아카베소프트2’라는 미소녀게임 브랜드를 만들고, 간판 원화가 ‘알파’를 필두로 동인활동과 게임 개발을 동시에 전개합니다. 이렇게 제작된 비주얼노벨 ‘타마유라’는 처녀작치고는 무난한 성적을 거두게 되죠. 그래도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개발사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아카베소프트가 지금과 같은 유명 개발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희대의 명작 ‘차륜의 나라 유구의 소녀’ 덕분입니다. 충격적인 전개와 눈물 펑펑 쏟게 만드는 스토리, 그리고 ‘호우즈키 마사오미’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의 캐릭터가 떠받치는 이 작품은 지금도 역대 미소녀게임 순위를 매길 때도 항상 상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 아카베소프트의 대표작 '차륜의 나라 유구의 소녀'

이때 영입한 시나리오 라이터 ‘루스보이’와 기존 동인시절부터 함께한 원화가 ‘알파’는 이후 아카베소프트를 대표하는 콤비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G선상의 마왕’ 역시 이 둘의 합작 하에 탄생했죠. 이후 아카베소프트는 계열사를 많이 늘리고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작품을 발매했는데, 당시 대표작으로는 아카츠키웍스의 ‘루이토모’, 히비키웍스의 ‘러블리케이션’, 샹그릴라의 ‘새벽의 호위’, 티글의 ‘레미니센스’ 등이 있습니다.


▲ 아카베소프트의 흑역사에 한몫을 더한 '총기사'

물론, 계열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사건사고도 많이 벌어졌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에폴덤소프트에서 개발한 ‘총기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총기사’는 통상적인 미소녀게임의 절반도 안되는 CG 이미지와 상식을 벗어난 스토리로 수많은 유저의 비난을 받았는데, 이 일로 모회사인 아카베소프트가 정식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죠. 이후 논란이 된 에폴덤소프트는 해산되고, 게임 구매자에게는 향후 새롭게 제작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약속하면서 사태가 수습됐습니다.

이번 미소녀메카에서 선택한 'G선상의 마왕’도 나름의 고난을 겪었는데요, 작품을 설명하면서 함께 알려드리겠습니다.


▲ 'G선상의 마왕'에 대해 살펴보러 출발!

당신은 가족을 위해 어디까지 가겠는가... ‘G선상의 마왕’

‘G선상의 마왕’ 공식 장르는 휴먼드라마 어드벤처게임으로, 인간이기에 가진 가능성을 ‘가족’이라는 테마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게임에서 작가는 돈, 폭력이라는 문제 앞에서 과연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가족’과 ‘인간의 본성’에 관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는 전작 ‘차륜의 나라 유구의 소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부분 중 하나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시나리오, 그리고 다양한 질문을 통해 소위 ‘인간찬가’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구성은 아카베소프트 작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가장 최근 작품인 '나의 1인 전쟁’에서도 이런 부분을 볼 수 있죠.


▲ 게임은 '가족'을 통해, 여러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 여러가지 문제를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단면을 보여준다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게임은 주인공 ‘아사히 쿄우스케’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쿄우스케’는 명석한 두뇌와 밝은 성격을 지닌 청년입니다. 비록 ‘야쿠자’인 양아버지 밑에서 조직의 일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활달한 성격으로 학급친구인 ‘미와 츠바키’와 ‘아이자와 에이이치’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집에서는 이복여동생 ‘아사히 카논’과 함께 부족함 없는 평화로운 삶을 보내죠.

그러나, 이런 행복한 삶을 누리던 ‘쿄우스케’에게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쳐옵니다. 동생 ‘카논’은 피겨스케이트 전국대회를 앞두고 살해 협박장을 받고, 친구인 ‘츠바키’는 오랜 시간 지켜온 집을 매각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학교에서는 수수께끼의 집단이 인질을 붙잡아 농성하고, 시내에서는 부유층 자녀들이 차례대로 실종되죠. 이를 혼자서 조사하던 '쿄우스케'는 이 일련의 사건 뒤에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부르는 범죄자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 '마왕'은 어둠의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완가이자, 잔혹한 범죄자다


▲ 이런 그를 명석한 두뇌를 앞세운 소녀 '우사미 하루'가 추격한다

범인에 한발 다가갈수록 궁지에 몰리게 되는 주인공, 그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납니다. 소녀는 뛰어난 추리력을 바탕으로 ‘마왕’의 정체를 밝혀내기 시작하고, 동시에 주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갑니다. ‘쿄우스케’는 그녀가 10년전 불운했던 시절에 자신을 도와준 ‘우사미 하루’라는 걸 알게 되고, 이후 둘은 함께 행동하며 자신들의 삶을 망친 ‘마왕’을 잡기 위한 여정에 나섭니다.

고민을 지닌 히로인, 사건 해결로 진실에 다가선다

‘G선상의 마왕’은 총 5장의 메인 스토리와 여기에 부가적으로 붙은 서브 스토리로 구성됐습니다. 메인 스토리에서는 각 장마다 히로인들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며, 주인공은 여기서 '우사미 하루'와 협력해 자칭 '마왕'이라고 칭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다가서게 됩니다.


▲ 우사미 사루: 스스로를 '용사'라고 칭하는 소녀, 역시 자칭인 '마왕'을 쫓고 있다.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탐정과도 같은 성격으로, 상황 분석력이 매우 우수해 웬만해서는 당황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런 성격과는 달리, 평소에는 멍한 표정에 자신을 '오사마 빈라덴'이라고 소개하는 등 어딘가 이상한 성격으로 돌변한다. 


▲ 미와 츠바키: 가난하지만 정이 많고 따뜻한 소녀로, 주인공과는 반 친구다. 뒷 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평범한 소녀지만,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말려들게 된다. 


▲ 아사히 하루: 주인공 이복여동생으로 일본 전체를 대표할정도로 유망한 피겨스케이트 선수다. 높은 인기와 뛰어난 실력,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대중과 주위 사람의 사랑을 받지만, 그 내면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격을 감추고 있다.


▲ 시라토리 미즈하: 거대 재벌가의 외동딸로, 주인공이 야쿠자의 아들이라는 걸 반에서 유일하게 아는 인물. 평소에는 타인을 거부하며, 항상 혼자 있고 싶어하는 성격으로 학교에서도 겉돌고 있다


▲ 토키타 유키: 우사미 하루의 옛 친구이자, 파트너와도 같은 존재. 경찰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취조술과 심리학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소녀다. 그 능력 덕분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길 수 없는 벽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 마왕: 스스로를 '마왕'이라고 부르는 뒷 세계 범죄자. 주인공의 삶을 망쳐버린 원흉으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신중하고 치밀해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우사미 하루가 쫓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그 역량을 다양한 사건으로 시험해보고 있다

철학적 의미, 빠져드는 추리대결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비록 좋은 주제와 시나리오지만, 단순히 ‘인간찬가’만을 내세운다면 그 작품은 철학적인 작품이 될 뿐, 상업적인 흥행을 이끌어내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G선상의 마왕’은 이를 ‘마왕’이라는 불리는 정체불명의 범죄자와 주인공을 돕는 ‘우사미 하루’라는 소녀의 두뇌대결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청소년을 치밀하게 이용하는 ‘마왕’과 스스로를 용사라 칭하는 소녀의 대결, 생각만해도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 점차 진실에 근접해가는 스토리는 마치 한편의 추리소설과도 같다

다만, 이 대결은 단순히 둘만의 구도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마왕’과 마찬가지로 뒷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주인공의 양아버지 ‘아사히 곤조’도 엮이기 시작하면서, 주인공 ‘쿄우스케’에게도 ‘마왕’을 찾아야 할 목적이 생기죠. 이 과정에서 접점이 생긴 ‘우사미 하루’와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 구도는 마치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것처럼 시나리오 막판까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로 이어져 시나리오에 큰 재미를 더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흥미진진한 시나리오의 재미 외에도, ‘G선상의 마왕’은 미려한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특히 제목의 모티브를 ‘G선상의 아리아’에서 따올 정도로, 클래식 음악과도 관련이 깊죠. 실제로 대부분의 배경음악은 기존 유명 클래식 음악들을 재구성한 곡이며, 그 퀄리티 자체도 훌륭한 편입니다.


▲ 2인 체제의 추리는 게임을 더욱 몰입감 넘치게 그려낸다


▲ 클래식 음악을 재구성한 배경음악도 일품!

출시 직전까지 다사다난, 마무리가 아쉬웠던 비운의 작품

이처럼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게임인 ‘G선상의 마왕’입니다만,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이 게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다사다난했습니다. 실제로 최초 공개한 발매일자보다 무려 1년 가까이 연기가 되고, 중간에 시나리오도 대부분 다시 쓰는 등 위기도 많았죠. 이런 모습 때문에 ‘G선상의 마왕’을 기대하던 수많은 팬들은 아예 게임 개발이 중단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했는데, 다행히 2008년 5월 무사히 발매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 걱정과는 달리, 출시는 무사히 이루어졌다

다만, 시나리오를 다시 쓴 여파 때문인지 ‘G선상의 마왕’은 게임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시나리오와 설정의 개연성이 다소 부족했는데요, 이는 명작으로 불리던 ‘차륜의 나라 유구의 소녀’와 비교가 되에 일부 유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종합하자면, 이번 ‘G선상의 마왕’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인간찬가’의 메시지와 두뇌대결의 묘미를 모두 담아내는데 성공했음에도, 회사와 제작진의 사정으로 마무리에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나름 흥행도 했고, 평가 자체도 좋았지만 이렇게 ‘비운의 작품’으로 불려서 그런지, 더욱 더 유저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게임이 담긴 메시지와 추리는 모두 훌륭한 편이다


▲ 다사다난한 명작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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