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모험, 그리고 영광
인터플레이가 각 장르별로 담당부서를 분사시킨 것은 꽤 성공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 덕분에 각 장르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전문 장르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여러 수작들이 그들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물론 소위 ‘엽기’ 게임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꽤 출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인터플레이의 분사 중 가장 큰 인기와 실적을 올리는 곳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블랙 아일 스튜디오(이하 블랙 아일)’다. 폴아웃 1, 2 등을 제작했던 블랙 아일은 이후 ‘바이오웨어’와 손을 잡고 발더스 게이트를 출시, AD&D CRPG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많은 사람들이 발더스 게이트가 바이오웨어의 전유물인 것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데 사실 이 시리즈는 블랙 아일과 바이오웨어의 공동작품이다). 물론 이들이 바이오웨어와의 댄스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인피니티 엔진을 이용해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아이스윈드 데일’과 같은 수작을 만들어냈다(이 두 작품은 여전히 인터넷 인기차트 3, 4위를 랭크하고 있다). ‘플레인스케이프’의 경우 뛰어난 게임성과 스토리, 그리고 곳곳의 찬사가 뒤따랐던 게임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큰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한 비운의 작품이다. 그 ‘플레인스케이프’를 제작한 팀이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블랙 아일 스튜디오: 톤(이하 BIT)’이다. 사실 이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알려졌던 사실이다.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블랙 아일이 최초로 완전 3D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블랙 아일 제작자들이 BIT를 위해 선택한 게임 엔진은 ‘노 원 리브즈 포에버’에 사용된 리스텍 엔진의 최신 버전인 리스텍 3.0으로 이는 이후 ‘쇼고 2’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명가의 자존심을 위해
우선 게임 제목을 보면 의문부터 떠오른다. 굳이 ‘톤’이라는 게임 제목 앞에 ‘블랙 아일 스튜디오’라는 것을 쓴 의미가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들의 게임을 여타의 것과 구분짓기 위해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이 게임은 바로 ‘블랙 아일표’이기 때문이다. 폴아웃 2 이후 블랙 아일이 내놓은 게임의 대부분은 바이오웨어와 AD&D의 향취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플레인스케이프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살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이지만 AD&D 룰을 적용한 것과 바이오웨어와의 합작품인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얻지 못했다. 물론 발더스 게이트의 전투만을 따왔다는 비난까지 들었던 아이스윈드 데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이유로 블랙 아일은 그들의 신작에 자신들의 이름을 넣기로 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BIT는 ‘100% 블랙 아일 제작’의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이 게임에 자신들이 쏟아붓는 열정과 기대가 크며 그 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담이지만 블랙 아일 사람들은 BIT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제작할 모든 작품에 ‘블랙 아일 스튜디오’라는 말을 쓸 것이라고 한다.
Agathe, 새로운 세상
톤을 제작하기 앞서 그들이 해야할 일은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동안 포가튼 렐름을 헤집고 다니며 익혔던 판타지 세계관과 폴아웃 시리즈를 제작했던 자신들의 능력이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과언은 아닐듯 했다. 이를 위해 숱한 자료와 설정 자료를 제작해야 했다. 그들이 이런 사서고생을 해가며 제작하고 있는 세계는 바로 ‘아가시(Agathe)’로 BIT는 그 세계 중 ‘오리슬레인(Orislane)’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이곳은 6곳으로 구성된 연합 왕국으로 굳이 규모를 따지자면 폴아웃과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크다. 이 세계의 특징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여타 판타지와는 달리 현세를 보는 듯 하면서 판타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느낌이다. 특히 이것을 날아다니는 마법 비공정이나 쇳소리나는 로봇을 눈으로 보여주는 대신 캐릭터의 느낌만으로 표현해낸다는 점은 크게 매력적이다. 때문에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은 현세와 흡사하며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BIT의 주된 목적은 게이머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혼돈’과 ‘질서’의 역학관계가 도입되고 ‘예언’이 게임에서 중요한 흐름을 차지하는 등 가벼움 속에서도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톤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오는 저주를 받은 주인공이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을 하면서 겪게되는 일을 다루고 있다. 그 저주의 강도가 워낙 강해 주인공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는다. 주인공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어찌되건 특정한 상황이 발생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통을 겪게 된다. 이에 주인공은 정처없는 길을 떠나게 되고 그러던 도중 오리슬레인의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오리슬레인은 낮에는 평화로운 곳처럼 보이지만 저녁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출현해 마을을 습격하는,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고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부대원 중 하나가 되어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곳에서 첫 파트너인 나이든 왕과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은 결국 주인공과 연관된 미스테리를 푸는, 어찌보면 우연성이 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들만의 세계
사실 블랙 아일 아저씨들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비단 세계관만이 아니다. 그들이 이 게임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이상 게임 시스템 역시 뭔가 남달라야 한다. 이에 그들이 사용하기로 한 것은 폴아웃과 플레인스케이프를 혼합한 형식의 시스템이다. 폴아웃에 사용된 시스템인 ‘스페셜 시스템(S.P.E.C.I.A.L. System)’은 TRPG의 겁스(G.U.R.P.S.) 시스템을 응용한 것으로 폴아웃에 등장하는 모든 시스템은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스페셜 시스템은 스킬에 기반을 둔 캐릭터 시스템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다. 처음 생성하는 캐릭터에게는 선천적 능력(Traits)과 후천적 능력(Perks)이 존재한다. 후천적 능력은 대부분 무기에 대한 것이나 기본 능력치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발더스 게이트에서 무기별로 스킬 포인트를 분배하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어떤 무기에 스킬 포인트를 나눠주느냐에 따라 그 무기에 대한 능력치가 달라진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어떤 능력을 더 많이 키웠느냐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능력치는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하게 올려줄 수 있으며 레벨이 아닌 스킬의 숙련도에 따라 그 강약이 좌우된다(디아블로 2의 경우 레벨 개념과 스킬 개념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하고 있다). 후천적 능력은 게임에서 레벨이 올라가거나 특정한 이벤트를 거치게 되면 성장하도록 되어있으며 이 능력치는 캐릭터의 여타 능력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민첩성을 올리게 되면 ‘오더 매직(Order Magic)’에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이렇게 하면 새로운 스페셜 공격, 방어 또는 능력이 생겨나며 체력이 증가하기도한다. 이런 능력은 캐릭터가 임의로 지정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NPC에게 따로 배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NPC가 음악 관련 능력을 전수해주면 이후 마법이 걸린 악기를 사용할 수 있고 운이 높은 캐릭터의 경우 도박 관련 능력치가 높아서 도박을 했을 경우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크고 작은 이벤트를 되도록 많이 겪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천적 능력(Trait)의 특징
선천적 능력은 대부분 캐릭터의 직업이나 종족과 연관이 된다. 예를 들어 캐릭터를 도둑으로 골랐을 경우 기본적으로 자물쇠를 열거나 트랩을 해제하는 등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클래스에게 없는 특별한 어빌리티는 아니다. 다만 그 어빌리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좀더 강하다는 것이다. 선천적 능력은 대부분 캐릭터의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캐릭터의 성격(성질 급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 등)과 이후 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성격(타고난 용병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이와 관련해 능력치에 보너스가 주어지거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대체로 성격이 급하게 묘사되는 워리어에게는 기본적으로 버서크가 준비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선천적으로 타고난 캐릭터의 성격은 양날의 검과 같이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버서크 모드가 공격력은 좋지만 피아구분을 못한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성격은 이벤트로 얻게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는 둘 중 하나의 것으로 얻게 된다. 후천적 성격을 습득하거나 혹은 습득하지 않음으로써 훨씬 개성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S.P.E.C.I.A.L. 시스템 구성요소
스페셜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7가지의 파라미터가 존재하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조합하게 되느냐에 따라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거나 특별 어빌리티를 사용할 수 있다.
*힘(Strength)
캐릭터의 물리적 힘을 말한다. 이 능력치가 높으면 적에게 큰 타격치를 줄 수 있으며 인벤토리에 담을 수 있는 무게의 수치가 늘어나며 더욱 강력한 무기나 갑옷을 장착할 수 있다.
*지각력(Perception)
캐릭터의 직관적인 통찰의 수치를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총이나 화살과 같은 원거리 공격을 좀더 잘 피할 수 있게 된다.
*인내력(Endurance)
캐릭터의 스태미나를 나타낸다. 이 수치가 높으면 적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다른 캐릭터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카리스마(Charisma)
캐릭터의 교섭 능력을 나타낸다. 인간성과 외모에 따라 카리스마가 달라진다(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게임이나 현실이나 다를바가 없는 듯).
*지력(Intelligence)
캐릭터의 지적 능력을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능력을 더 빨리 배울 수 있으며 대화를 할 때도 훨씬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
*민첩성(Agility)
캐릭터의 민첩도를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공격 확률이 높아지고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
*운(Luck)
말 그대로 운이다. 대체로 캐릭터의 모든 능력치에 영향을 준다. 적에게 공격을 받을 때도, 적을 공격 할 때도 운에 따라 회피율이나 명중율이 달라진다. 또한 어둠의 기술로 도박을 할 경우 돈을 딸 확률 역시 이 수치와 관련된다.
폴아웃을 넘어선 시스템
이 부분까지가 폴아웃 시리즈에 사용되었던 스페셜 시스템이다. 물론 BIT는 이것에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시스템이 ‘유형적 개념’이었다면 BIT에는 ‘무형적 개념’이 추가된다. 이것에는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 스타일이 포함된다. 이를 이용하면 똑같은 능력치를 가지더라도 전혀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드워프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 -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짓는 등 - 에 따라 그 성향이 달라질 것이며 오거의 경우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복수’에 두느냐, ‘소중한 누군가’에 두느냐에 따라 그 정당성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또한 캐릭터를 키울 수 있는 옵션 역시 다양하다. 게임 초반 활을 잘 다루는 아처의 형태로 캐릭터를 제작했다고 치자. 이후 매우 쓸만한, 근육과 힘밖에 없는 워리어를 동료로 삼게되었다. 이런 경우 전투에서 대개 아처는 뒤에서 엄호하는 차원의 활공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다. 이럴때 게이머는 캐릭터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키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변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커다란 매력이다.
블랙 아일의 선택, 리스텍 3.0
GDC 2001에서 밝혀진 BIT의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 게임이 3D로 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그래픽 엔진이 바로 모노리스가 GDC 2001에서 함께 공개한 리스텍 3.0(Lithtech 3.0)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그래픽 엔진은 ‘노 원 리브즈 포에버’에 사용된 엔진의 후속작으로 PC 외에도 차세대 콘솔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현재 리스텍 3.0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게임은 모노리스의 차기작인 ‘쇼고 2’가 있다. 블랙 아일이 여타 그래픽 엔진 대신 리스텍 엔진을 선택한 것은 넓은 맵을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개발중인 것이긴 하지만 현재 밝혀진 스크린샷을 보면 최신 기술을 잘 소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리스텍 엔진의 특징인 무시무시한 사양을 고려한다면 섣불리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지기는 힘들다. 또한 2바이트 문자를 사용하는 윈도우들(한글 윈도우와 같은 2바이트형 문자 기반 윈도우)에게 유난히 까탈스럽게 구는 점 등은 왠지 이 게임 엔진을 사용한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새니티’라는 게임의 데모를 받았던 *스필 기자는 이 데모를 하기 위해 윈도우와 몇시간에 이르는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포기해야 했다).
폴아웃 3가 없어도…
블랙 아일이 자신들의 이름을 앞에 내걸 정도로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BIT는 그동안 개성 넘치는 게임만을 개발해왔던 블랙 아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또한 게임의 면모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결코 이 게임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혹자는 이 게임을 바이오웨어의 ‘네버윈터 나이트’와 비교해 ‘가볍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향 때문에 생긴 오해일 소지가 많다. 어찌됐건 폴아웃 3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게이머라면 족히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임에는 분명하다.
인터플레이가 각 장르별로 담당부서를 분사시킨 것은 꽤 성공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 덕분에 각 장르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전문 장르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여러 수작들이 그들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다(물론 소위 ‘엽기’ 게임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꽤 출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인터플레이의 분사 중 가장 큰 인기와 실적을 올리는 곳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블랙 아일 스튜디오(이하 블랙 아일)’다. 폴아웃 1, 2 등을 제작했던 블랙 아일은 이후 ‘바이오웨어’와 손을 잡고 발더스 게이트를 출시, AD&D CRPG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많은 사람들이 발더스 게이트가 바이오웨어의 전유물인 것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데 사실 이 시리즈는 블랙 아일과 바이오웨어의 공동작품이다). 물론 이들이 바이오웨어와의 댄스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인피니티 엔진을 이용해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와 ‘아이스윈드 데일’과 같은 수작을 만들어냈다(이 두 작품은 여전히 인터넷 인기차트 3, 4위를 랭크하고 있다). ‘플레인스케이프’의 경우 뛰어난 게임성과 스토리, 그리고 곳곳의 찬사가 뒤따랐던 게임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큰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한 비운의 작품이다. 그 ‘플레인스케이프’를 제작한 팀이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블랙 아일 스튜디오: 톤(이하 BIT)’이다. 사실 이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알려졌던 사실이다.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블랙 아일이 최초로 완전 3D 게임을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블랙 아일 제작자들이 BIT를 위해 선택한 게임 엔진은 ‘노 원 리브즈 포에버’에 사용된 리스텍 엔진의 최신 버전인 리스텍 3.0으로 이는 이후 ‘쇼고 2’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명가의 자존심을 위해
우선 게임 제목을 보면 의문부터 떠오른다. 굳이 ‘톤’이라는 게임 제목 앞에 ‘블랙 아일 스튜디오’라는 것을 쓴 의미가 무엇일까? 단순히 자신들의 게임을 여타의 것과 구분짓기 위해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이 게임은 바로 ‘블랙 아일표’이기 때문이다. 폴아웃 2 이후 블랙 아일이 내놓은 게임의 대부분은 바이오웨어와 AD&D의 향취가 묻어나는 것이었다. 플레인스케이프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살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이지만 AD&D 룰을 적용한 것과 바이오웨어와의 합작품인 인피니티 엔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얻지 못했다. 물론 발더스 게이트의 전투만을 따왔다는 비난까지 들었던 아이스윈드 데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이유로 블랙 아일은 그들의 신작에 자신들의 이름을 넣기로 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BIT는 ‘100% 블랙 아일 제작’의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이 게임에 자신들이 쏟아붓는 열정과 기대가 크며 그 만큼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담이지만 블랙 아일 사람들은 BIT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제작할 모든 작품에 ‘블랙 아일 스튜디오’라는 말을 쓸 것이라고 한다.
Agathe, 새로운 세상
톤을 제작하기 앞서 그들이 해야할 일은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동안 포가튼 렐름을 헤집고 다니며 익혔던 판타지 세계관과 폴아웃 시리즈를 제작했던 자신들의 능력이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과언은 아닐듯 했다. 이를 위해 숱한 자료와 설정 자료를 제작해야 했다. 그들이 이런 사서고생을 해가며 제작하고 있는 세계는 바로 ‘아가시(Agathe)’로 BIT는 그 세계 중 ‘오리슬레인(Orislane)’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이곳은 6곳으로 구성된 연합 왕국으로 굳이 규모를 따지자면 폴아웃과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크다. 이 세계의 특징은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여타 판타지와는 달리 현세를 보는 듯 하면서 판타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느낌이다. 특히 이것을 날아다니는 마법 비공정이나 쇳소리나는 로봇을 눈으로 보여주는 대신 캐릭터의 느낌만으로 표현해낸다는 점은 크게 매력적이다. 때문에 게임에 등장하는 배경은 현세와 흡사하며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BIT의 주된 목적은 게이머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혼돈’과 ‘질서’의 역학관계가 도입되고 ‘예언’이 게임에서 중요한 흐름을 차지하는 등 가벼움 속에서도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톤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오는 저주를 받은 주인공이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을 하면서 겪게되는 일을 다루고 있다. 그 저주의 강도가 워낙 강해 주인공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는다. 주인공이 오래 머물렀던 곳은 어찌되건 특정한 상황이 발생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통을 겪게 된다. 이에 주인공은 정처없는 길을 떠나게 되고 그러던 도중 오리슬레인의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오리슬레인은 낮에는 평화로운 곳처럼 보이지만 저녁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출현해 마을을 습격하는, 나름대로의 고충을 겪고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부대원 중 하나가 되어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이곳에서 첫 파트너인 나이든 왕과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은 결국 주인공과 연관된 미스테리를 푸는, 어찌보면 우연성이 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들만의 세계
사실 블랙 아일 아저씨들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은 비단 세계관만이 아니다. 그들이 이 게임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이상 게임 시스템 역시 뭔가 남달라야 한다. 이에 그들이 사용하기로 한 것은 폴아웃과 플레인스케이프를 혼합한 형식의 시스템이다. 폴아웃에 사용된 시스템인 ‘스페셜 시스템(S.P.E.C.I.A.L. System)’은 TRPG의 겁스(G.U.R.P.S.) 시스템을 응용한 것으로 폴아웃에 등장하는 모든 시스템은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스페셜 시스템은 스킬에 기반을 둔 캐릭터 시스템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다. 처음 생성하는 캐릭터에게는 선천적 능력(Traits)과 후천적 능력(Perks)이 존재한다. 후천적 능력은 대부분 무기에 대한 것이나 기본 능력치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발더스 게이트에서 무기별로 스킬 포인트를 분배하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어떤 무기에 스킬 포인트를 나눠주느냐에 따라 그 무기에 대한 능력치가 달라진다는 것은 후천적으로 어떤 능력을 더 많이 키웠느냐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능력치는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하게 올려줄 수 있으며 레벨이 아닌 스킬의 숙련도에 따라 그 강약이 좌우된다(디아블로 2의 경우 레벨 개념과 스킬 개념 두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하고 있다). 후천적 능력은 게임에서 레벨이 올라가거나 특정한 이벤트를 거치게 되면 성장하도록 되어있으며 이 능력치는 캐릭터의 여타 능력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민첩성을 올리게 되면 ‘오더 매직(Order Magic)’에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이렇게 하면 새로운 스페셜 공격, 방어 또는 능력이 생겨나며 체력이 증가하기도한다. 이런 능력은 캐릭터가 임의로 지정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NPC에게 따로 배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NPC가 음악 관련 능력을 전수해주면 이후 마법이 걸린 악기를 사용할 수 있고 운이 높은 캐릭터의 경우 도박 관련 능력치가 높아서 도박을 했을 경우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크고 작은 이벤트를 되도록 많이 겪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천적 능력(Trait)의 특징
선천적 능력은 대부분 캐릭터의 직업이나 종족과 연관이 된다. 예를 들어 캐릭터를 도둑으로 골랐을 경우 기본적으로 자물쇠를 열거나 트랩을 해제하는 등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클래스에게 없는 특별한 어빌리티는 아니다. 다만 그 어빌리티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좀더 강하다는 것이다. 선천적 능력은 대부분 캐릭터의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캐릭터의 성격(성질 급하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 등)과 이후 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성격(타고난 용병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이와 관련해 능력치에 보너스가 주어지거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대체로 성격이 급하게 묘사되는 워리어에게는 기본적으로 버서크가 준비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선천적으로 타고난 캐릭터의 성격은 양날의 검과 같이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버서크 모드가 공격력은 좋지만 피아구분을 못한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성격은 이벤트로 얻게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는 둘 중 하나의 것으로 얻게 된다. 후천적 성격을 습득하거나 혹은 습득하지 않음으로써 훨씬 개성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S.P.E.C.I.A.L. 시스템 구성요소
스페셜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7가지의 파라미터가 존재하며 이들이 어떤 식으로 조합하게 되느냐에 따라 보너스 포인트가 주어지거나 특별 어빌리티를 사용할 수 있다.
*힘(Strength)
캐릭터의 물리적 힘을 말한다. 이 능력치가 높으면 적에게 큰 타격치를 줄 수 있으며 인벤토리에 담을 수 있는 무게의 수치가 늘어나며 더욱 강력한 무기나 갑옷을 장착할 수 있다.
*지각력(Perception)
캐릭터의 직관적인 통찰의 수치를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총이나 화살과 같은 원거리 공격을 좀더 잘 피할 수 있게 된다.
*인내력(Endurance)
캐릭터의 스태미나를 나타낸다. 이 수치가 높으면 적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다른 캐릭터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카리스마(Charisma)
캐릭터의 교섭 능력을 나타낸다. 인간성과 외모에 따라 카리스마가 달라진다(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게임이나 현실이나 다를바가 없는 듯).
*지력(Intelligence)
캐릭터의 지적 능력을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능력을 더 빨리 배울 수 있으며 대화를 할 때도 훨씬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
*민첩성(Agility)
캐릭터의 민첩도를 나타낸다. 이것이 높으면 공격 확률이 높아지고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
*운(Luck)
말 그대로 운이다. 대체로 캐릭터의 모든 능력치에 영향을 준다. 적에게 공격을 받을 때도, 적을 공격 할 때도 운에 따라 회피율이나 명중율이 달라진다. 또한 어둠의 기술로 도박을 할 경우 돈을 딸 확률 역시 이 수치와 관련된다.
폴아웃을 넘어선 시스템
이 부분까지가 폴아웃 시리즈에 사용되었던 스페셜 시스템이다. 물론 BIT는 이것에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시스템이 ‘유형적 개념’이었다면 BIT에는 ‘무형적 개념’이 추가된다. 이것에는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 스타일이 포함된다. 이를 이용하면 똑같은 능력치를 가지더라도 전혀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드워프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 -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짓는 등 - 에 따라 그 성향이 달라질 것이며 오거의 경우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복수’에 두느냐, ‘소중한 누군가’에 두느냐에 따라 그 정당성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또한 캐릭터를 키울 수 있는 옵션 역시 다양하다. 게임 초반 활을 잘 다루는 아처의 형태로 캐릭터를 제작했다고 치자. 이후 매우 쓸만한, 근육과 힘밖에 없는 워리어를 동료로 삼게되었다. 이런 경우 전투에서 대개 아처는 뒤에서 엄호하는 차원의 활공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다. 이럴때 게이머는 캐릭터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키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변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커다란 매력이다.
블랙 아일의 선택, 리스텍 3.0
GDC 2001에서 밝혀진 BIT의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 게임이 3D로 제작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그래픽 엔진이 바로 모노리스가 GDC 2001에서 함께 공개한 리스텍 3.0(Lithtech 3.0)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그래픽 엔진은 ‘노 원 리브즈 포에버’에 사용된 엔진의 후속작으로 PC 외에도 차세대 콘솔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현재 리스텍 3.0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게임은 모노리스의 차기작인 ‘쇼고 2’가 있다. 블랙 아일이 여타 그래픽 엔진 대신 리스텍 엔진을 선택한 것은 넓은 맵을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개발중인 것이긴 하지만 현재 밝혀진 스크린샷을 보면 최신 기술을 잘 소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리스텍 엔진의 특징인 무시무시한 사양을 고려한다면 섣불리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지기는 힘들다. 또한 2바이트 문자를 사용하는 윈도우들(한글 윈도우와 같은 2바이트형 문자 기반 윈도우)에게 유난히 까탈스럽게 구는 점 등은 왠지 이 게임 엔진을 사용한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새니티’라는 게임의 데모를 받았던 *스필 기자는 이 데모를 하기 위해 윈도우와 몇시간에 이르는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포기해야 했다).
폴아웃 3가 없어도…
블랙 아일이 자신들의 이름을 앞에 내걸 정도로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BIT는 그동안 개성 넘치는 게임만을 개발해왔던 블랙 아일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또한 게임의 면모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결코 이 게임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혹자는 이 게임을 바이오웨어의 ‘네버윈터 나이트’와 비교해 ‘가볍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향 때문에 생긴 오해일 소지가 많다. 어찌됐건 폴아웃 3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게이머라면 족히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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