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패밀리 컴퓨터의 등장
여러분은 게임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게임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첨병으로 타 산업, 문화로 그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미국에서의 비즈니스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춘 접근으로 ‘과연 한국에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게임이 싫던, 좋던,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던, 재미있던, 지루하던 간에) 진지한 물음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봅니다.
지난 시간에 미즈노 다다쿠니와 메이지 신정부의 대정관, 업계의 사활을 걸고 일해 온 완구 업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이 업계가 얼마나 전통이 있고 동업자 의식이 강한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완구 업계가 게임을 만난 것은 지금부터 약 10년 전입니다.
70년대의 완구는 하이테크화를 지향했습니다. 당시의 업계 용어로 말하자면 '일렉트로닉 토이'라는 것인데, 이중에서 히트 상품이 몇 가지 나왔습니다.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를 응용한 궁합 진단 완구 <러브 테스터>를 들어보셨는지요? 광선이 닿으면 어흥하고 사자가 울부짖는 <광선총 SP>는? 이 두 가지 게임은 모두 70년대 전반에 나온 닌텐도 상품입니다. 또한 이때부터 무선조종 자동차나 어린이용 휴대용 무전기 등이 완구 메이커의 주요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기계장치 완구라고 하면 태엽이나 모터 등 공학적인 기술을 응용한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트랜지스터 등 전자부품을 이용한 완구가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70년대 후반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타리 VCS>가, 일본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붐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은 게임이 갑자기 주목받는 존재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 소프트 내장형 게임기는 벌써 여러 개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에는 <퐁>의 아류 게임만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요가 금방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찾아온 게임 붐은 시장이 무진장하게 넓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완구 업계에 준 것입니다.
기기를 보는 눈은 날카로웠습니다. 1980년에 닌텐도는 아주 재미있는 상품을 개발합니다. 액정화면식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입니다. 이것은 당시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낮아진 전자식 탁상계산기용 IC를 응용한 것이었습니다. <게임&워치>는 1천만 개나 팔려 게임 시장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했습니다. 81년에는 일본 게임기로는 처음으로 소프트의 카트리지 교환을 가능케 한 게임기 <카세트 비전>이 에폭 사를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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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반다이, 도미공업 등 완구 메이커도 게임기 시장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3년에 패밀리 컴퓨터가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완구 산업은 80년대 전반에 미국 태생의 새로운 문화인 게임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일본 고유의 완구와 게임은 상품 특성이 180도 다른 것을 과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에는 누구나 게임은 완구점에서 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게임은 매우 잘 팔리는 일렉트로닉 토이였던 것입니다.
2.
패밀리 '제곱' 게임
83년 7월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 발매는 완구 유통 업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패미컴 붐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발매 초기의 패미컴 본체 판매 대수는 83년 45만 대, 84년 165만 대, 85년 374만대로 실로 경이적이었습니다. 엄청난 확산속도에 '제곱' 게임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이 관용구는 불과 2년 반 만에 약 6백만 대가 판매된 당시의 패미컴을 위해서 있었습니다. 패미컴은 그만큼 잘 팔리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완구 도매상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남아도는 돈을 어떻게 쓸까? 아닙니다. 그들은 태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견실경영을 제일로 삼는 그들은 패미컴 붐이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해 걱정했던 것입니다. 완구라는 것은 영고성쇠가 아주 심한 상품입니다. '놀이'는 항상 유저의 '싫증'과 함께합니다. 완구 도매상은 한창 패미컴 붐이 일 때 그 붐의 종막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패미컴은 <초심회>라고 불리는 닌텐도 직속의 조직을 통해서 판매됩니다. 이 조직은 종종 거대한 유통 파워를 갖고 있어 강권적인 단체처럼 보도되는 일이 많습니다.그러나 초심회의 실태는 닌텐도와 직거래하는 도매상의 친목단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트럼프를 문방구점에 도매하는 업자도, 일본출판판매처럼 서점에 화투를 도매하는 다른 분야의 업자도 가입해 있습니다. 그들이 전부 완구나 게임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또한 이 모임에는 많은 기업이 가입해 있지만 대부분이 영세기업입니다. 종업원 수가 4명 내지 5명인 초심회 가맹 기업도 많았습니다.
창고 등의 물류기능도 영업기능도 갖지 않고 다만 장부상으로만 거래에 관여하고 수십억 엔이나 되는 매출액을 벌어들인다. 그런 1차 도매상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 완구 도매상들에게 '붐'을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들떠 재고를 안게 되지 않을까 오랜 습성 때문에 극단적으로 두려워한 것입니다. 패미컴 10대의 재고가 생기면 1백 대의 판매 이익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패미컴 때문에 초심회의 지배가 강해졌다"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83년부터 85년에 걸쳐 패미컴은 맹위를 떨칩니다. 거리의 완구점에 '패미컴이 입하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으면 소비자들은 줄지어 그것을 사려고 했습니다. 완구 업계는 전무후무한 호황을 구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완구 업계의 업계지는 '패미컴 붐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라고 게임에 대해서 회의적인 특집만을 계속해서 다루었습니다.
당시에는 '패미컴 붐 후에 다시 무선 조종기 붐이 찾아온다'고 진지하게 논해졌다.
이처럼 완구 도매상과 완구점에게 있어 초기의 패미컴은 언젠가는 끝나고 사라질 붐이었습니다.
3.
패미컴 붐에 대한 예측 착오
83년부터 85년에 걸쳐 완구 도매상에게 패미컴은 광선총과 같은 일렉트로닉 토이로, 한번 반짝거리고 마는 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전 일본을 강타한 패미컴 열기가 언젠가는 식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거기에는 묘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완구 도매상의 예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빗나간 이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먼저 빗나간 부분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패미컴 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기는 변함없이 순조롭게 판매되었습니다. 86년에 패미컴 본체는 연간 380만 대나 팔려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패미컴 붐은 확실히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85년 말경부터 소프트 1개당 매출은 급속하게 하락하여 완구 유통은 종종 재고 소프트를 안게 됩니다. 이미 이때부터 패미컴 소프트는 '내놓으면 팔리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원인은 소프트 타이틀의 수가 증가했고 개발 노하우가 빈약한 신규참여 메이커의 증가로 게임 소프트의 품질에 차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붐의 쇠퇴라는 업계 최대의 위기는 조금씩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장의 기세는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모양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하드웨어는 팔립니다. 재미있는 소프트도 팔립니다. 하지만 유저의 선택은 엄격해져 재미없는 소프트는 철저하게 팔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패미컴 붐 초기의 하드/소프트/참여회사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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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판매수 |
소프트웨어 판매수 |
참여 소프트 메이커 |
83년 |
45만대 |
10 타이틀 |
1곳 |
84년 |
165만대 |
19 타이틀 |
3곳 |
85년 |
374만대 |
66 타이틀 |
19곳 |
86년 |
383만대 |
115 타이틀 |
37곳 |
87년 |
168만대 |
189 타이틀 |
52곳 |
이것은 완구 업계에서 드문 케이스입니다. 이 업계에서 생활하는 유통업자는 훌라후프처럼 단번에 시장이 쇠퇴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또한 단오절에 올리는 잉어 장식처럼 정례화 된 상품을 취급하는 것에도 익숙합니다. 그러나 게임은 급격하게 쇠퇴하지도 않고 모든 것이 안정되게 팔리지도 않습니다. 당시의 패미컴은 완구 유통에 있어서는 이익을 가져다준 반면, 곤혹하게 만드는 상품이기도 했습니다.
게임을 하드와 소프트의 시스템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비디오 플레이어와 비디오 타이틀, CD 플레이어와 음악용 CD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하드웨어는 순조롭게 팔려도 품질이나 기호의 격차가 큰 소프트웨어의 세일즈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완구 업계는 하드도, 좋은 소프트도, 나쁜 소프트도 일괄적으로 패미컴 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예측 착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측이 빗나간 완구 도매상에는 당연히 불량 재고가 남았습니다.
그들은 이 시점에서 새로운 가치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이 사태는 좋은 소프트만을 사들이고 나쁜 소프트를 매입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최악의 방법이었습니다.
4.
악명 높은 끼워 팔기
패미컴 본체와 우수한 소프트는 여전히 잘 팔리는데도 인기 없는 소프트는 판매가 부진하자 완구 유통은 최악의 수단을 선택해 이 사태에 대처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악명 높은 '끼워 팔기'입니다.
84년~85년경 완구점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곤 했습니다. '저희 점포에서는 패미컴 본체만도 판매합니다'
본체만을 판매하는 것을 일부러 자랑할 정도로 끼워 팔기가 만연되었던 것입니다. 패미컴 본체를 살 때 소비자는 적으면 1개, 많게는 5개의 소프트를 구입해야 합니다.
업계 용어로 '1대5'
소프트는 임의대로 고를 수 있는 경우와 강제로 패키지로 묶인 소프트를 떠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불량 재고를 처리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독점금지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나중에 공정거래위원회의 배제 권고를 받게 됩니다(제19조 '불공정거래 금지' 위반. 90년 10월에 마츠바야, 후지다야, 마루이나상사, 고요우, 잇세, 월드아오야마 등 6개 사에 권고되었다).
90년 10월, 고발된 계기는 인기 소프트 <드래곤 퀘스트 IV>와 인기 없는 소프트의 끼워 팔기였다.
인기 없는 소프트는 남아도는데도 인기 소프트는 품절되는 이 완구 유통의 이상한 현상은 패미컴이 발매되고 얼마 되지 않아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완구 유통 업계가 안고 있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좋은 소프트만 매입하고 나쁜 소프트를 매입하지 않으면 됩니다. 요는 완구 도매상이 메이커로부터 게임 소프트를 매입할 때 정확한 상품 선별안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완구 유통의 미덕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했습니다. 완구를 판다는 것에는 유통과 메이커의 공동운명체적인 리스크 헤지(주가 인하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해 신용거래로 매매를 계속하는 것)가 따라다녔습니다.
또한 훌라후프를 예로 들었지만 완구는 언제, 어떤 메이커가 히트 상품을 낼지 아무도 모릅니다. 히트 상품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히트 상품을 확보하고 싶은 완구도매상은 평소 꾸준한 매입 실적을 쌓지 않으면 정작 히트 상품이 나왔을 때 매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역으로 메이커가 그러한 도매상의 은정적인 매입에 의존하여 운전자금을 버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완구 업계에서 살아가려면 교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초심회의 일원들은 왜 패미컴을 팔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닌텐도와 오랫동안 거래 실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소프트임을 알아도 '언젠가 히트 상품이 나올 것이다'라는 작은 기대, 혹은 보장성 보험을 드는 기분으로 부지런히 발주서의 기입란에 수자를 적었던 것입니다.
끼워 팔기를 한 완구 유통은 호되게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동정해야 할, 완구 유통이 버리려고 해도 버리지 못하는 오래 된 상습관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5.
과거를 보는 유통
게임 소프트 유통업자는 대체로 인기 소프트는 품절되고 인기 없는 소프트는 재고로 남기는 그러한 바보 같은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완구 유통의 세계에는 거래 실적을 중시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정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동정해야 할 점에 대해 한마디 더한다면 상품 지식이 빈약한 도매상에게 대체로 재미없는 상품을 밀어 넣은 게임 메이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완구 유통은 현찰매입이 원칙이며 반품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래서 완구 도매상에는 재고가 쌓이게 됩니다.
1. 발매 약 4~6개월 전-신제품 안내
2.
발매 약 3개월 전-매입 개수 발주
3. 발매 약 3개월 전-제조 개수 발매
4.
발매 직전-완성, 납품
5. 2차 도매상. 소매상 경유 시장
그리고 닌텐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게임 메이커는 패미컴 소프트를 닌텐도에 제조 위탁할 때 카트리지 생산 개수를 정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각 메이커는 신제품이 발매되기 3~6개월 전에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관습이 정착되었습니다. 그 주문 수의 합계를 이번에는 메이커가 발주자가 되어 닌텐도에 제조 위탁하기 때문입니다. 즉, 패미컴 소프트의 제조 시스템 자체가 실제의 발매일보다 이른 시기의(실제로 상품을 보지 않고 기획서 한 통만으로도 거래가 성사됨) 잘못된 상관행을 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폐해를 제조기간이 짧은 CD-ROM이라면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였다.
이 방식에는 고객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패미컴 소프트 유통은 완구 도매상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닌텐도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는 업계 전체가 부지불식간에 잘못되어간 것입니다.
어쨌든 불량 재고로 괴로워하던 완구 도매상은 독자적인 상품 선택 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것은 실적이라는 기준입니다. 많이 팔린 게임을 만든 메이커일수록 신뢰하고 지명도가 높은 게임의 시리즈 작품일수록 안심하고 매입합니다. 그들은 '과거를 보는 유통'이 된 것입니다. 이 경향은 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패미컴 소프트의 타이틀 수가 처음으로 세 자리가 된 86년 경부터 싹트기 시작해 그 후에도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자 게임 디자인의 보존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도매상의 참신한 게임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의 실적을 중시하게 되자 게임 메이커는 부지런히 시리즈 리메이크 작품 제작에 주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임 소프트의 타이틀에는 II, III, VI, 94년판, 수퍼라는 단어가 마구 붙게 된 것입니다.
닌텐도 64가 나오면서 '~64'라는 명칭의 속편이 빈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게임 디자인의 보수화라는 문맥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아케이드나 퍼스널 컴퓨터로의 이식이 아니라 게임 고유의 타이틀로 승부한다'라는 닌텐도의 '의지'가 발로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실적 중시라는 기준을 사용하면서부터 끼워 팔기처럼 유저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면에 이 기준은 게임 메이커에게서 야심을 빼앗고 게임 디자인이 진보를 방해하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업계에 막대한 폐해를 끼치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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