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e스포츠 선수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조성주 (사진제공: 한국e스포츠협회)
올해만큼 e스포츠가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지난 8월 열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처음으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고, SBS 등 공중파에서 e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며 국민적인 관심이 몰렸다. ‘스타 2’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e스포츠 선수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마루’ 조성주도 빛이 났다.
아시안게임 e스포츠 입성은 체육계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e스포츠 올림픽 입성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해결할 문제가 있지만 전통 체육계에서도 신흥주자로 떠오른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체육계에서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포인트는 전통 스포츠 부럽지 않은 관중 동원력이다.
지난 8월 골드막삭스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e스포츠 월간 평균 시청자 수는 1억 6,700만 명으로 집계된다. 이는 1억 1,400만 명으로 집계된 미국 메이저리그를 능가한 수치다. 메이저리그보다 e스포츠를 보는 시청자가 더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e스포츠 시청자는 꾸준히 증가해 2022년에는 2억 7,600만 명에 달하리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손꼽히는 NFL이 2억 7,000만 명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 2022년에는 e스포츠 월간 시청자가 슈퍼볼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하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자료출처: 골드만삭스 공식 홈페이지)
주요 결승전만 놓고 비교해도 e스포츠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올해 롤드컵 시청자는 작년보다 24.5% 증가한 9,960만 명에 달한다. 거의 1억 명이 롤드컵 결승전을 지켜본 것이다. 이는 작년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3,800만 명), NBA 파이널(3,200만 명)보다 높다. 롤드컵보다 많은 시청자를 기록한 경기는 30초에 광고단가 500만 달러(한화로 약 55억 원)를 자랑하는 NFL 결승전 ‘슈퍼볼(1억 2,400만 명)’ 뿐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관중 동원력에 전통 스포츠에 비해 청소년 시청자 비중이 높다는 것이 체육계에서 바라본 e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주요 연령층이 젊다는 것은 성장동력도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치를 바탕으로 e스포츠 산업도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이리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4일에 발간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e스포츠 산업은 작년보다 38.2% 성장한 9억 600만 달러(한화로 약 1조 100억 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27.4%에 달하며 2021년에는 16억 5,000만 달러(한화로 약 1조 8,500억 원)에 달한다는 예상이 제기됐다.
▲ 올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작년보다 38.2% 성장한 9억 6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료제공: 한국콘텐츠진흥원)
내년 예산 대폭 증가, 정부에서도 e스포츠 밀어준다
이처럼 e스포츠 시장 성장세가 두각을 드러내고,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e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부에서도 시장 움직임에 탄력을 받고 내년 e스포츠 육성 예산을 대폭 늘렸다. 내년 e스포츠 활성화 지원 예산은 66억 원으로 올해보다 252% 늘어났다. 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e스포츠 상설경기장이다. 2019년까지 수도권 외 지역에 e스포츠 경기장 3곳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체부가 목표로 하는 것은 경기장을 발판으로 한 e스포츠 산업 성장과 함께 해외 관광객을 끌어 모을 자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4일에는 사무관 시절부터 게임과 e스포츠 관련 업무를 맡으며 업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겸비한 김용삼 문체부 1차관이 임명되며 e스포츠 업계에도 훈풍이 불어오리라는 기대감이 감지되고 있다.
다만 체육계에는 아직 벽이 있다. 지난 10월에 진행된 국정감사 현장에서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e스포츠가 게임인지, 스포츠인지에 대해 묻는 이동섭 의원의 질문에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이라 생각한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정식체육화를 중요한 목표로 세운 e스포츠 업계 입장에서는 체육계의 벽을 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자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1년 7개월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 협회장이 드디어 선임되었다는 것이다. 초대 협회장을 맡았던 김영만 협회장이 지난 17일 선임됐다. 김영만 협회장은 “김용삼 차관이 사무관 때 e스포츠협회를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육계에는 인프라가 없지만 김용삼 차관은 저만큼이나 e스포츠나 게임에 열정이 있기에 많이 도와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 한국e스포츠협회 협회장으로 선임된 김영만 협회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한국e스포츠협회는 올해도 행정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아시안게임도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막판까지 e스포츠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내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전전긍긍했다. 새로운 협회장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좀 더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협회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볼 부분이다.
여기에 신흥종목이 등장하며 시장은 더욱 더 풍성해질 전망이다. e스포츠 첫 지역연고제 대회 ‘오버워치 리그’를 앞세운 ‘오버워치’ 글로벌 및 국내 프로 리그를 출범한 ‘배틀그라운드’, 총 상금 1,000억 원을 앞세우며 e스포츠에 시동을 건 ‘포트나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중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인 것은 ‘오버워치 리그’다. 11월에 열린 그랜드 파이널 전세계 1분당 평균 시청자 수는 86만 1,205명으로 집계됐으며, 참가팀 역시 첫 시즌에 12팀으로 시작해 2019 시즌을 눈앞에 둔 현재 20팀까지 늘어났다. 미국 ESPN 보도에 따르면 ‘오버워치 리그’ 시즌 2 시드권은 3,000만 달러(한화로 약 338억 원)에서 6,000만 달러(한화로 약 67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팀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오버워치 리그' 그랜드파이널 현장 (사진제공: 블리자드)
반면 ‘배틀그라운드’는 게임 흥행을 바탕으로 호기롭게 e스포츠 리그를 출범시켰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큰 아쉬움으로 지목되는 것은 ‘배틀그라운드’의 보는 재미가 e스포츠에는 아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수 80명이 격돌하는 대회를 어떻게 재미있고, 보기 쉽게 전달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 이는 펍지는 물론 내년부터 LCK 방송 제작을 라이엇게임즈가 맡으며 새 먹거리로 ‘배틀그라운드’를 선택한 OGN 등 e스포츠 방송사에도 고민거리로 남았다.
다만 아쉬운 소식도 전해졌다. 블리자드는 지난 13일 e스포츠 팀과 선수들에 대한 사전 공유 없이 ‘히어로즈 글로벌 챔피언십’을 접는다고 밝혔다. 선수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뛸 무대가 없어진 것이다. 종목사 이해관계에 따라 하루 아침에 리그가 없어질 수 있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다. ‘히어로즈’ e스포츠에 대한 블리자드의 결정이 e스포츠 시장에 미칠 파장도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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