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예나 지금이나, 만화는 게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두 분야에 관심을 갖는 팬층이 상당수 겹치기도 하거니와, 인기 만화들의 매력 넘치고 대중성을 검증받은 캐릭터를 이용하면 0부터 시작하는 신규 IP 게임보다 훨씬 쉽게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두 분야 간 콜라보레이션은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특히나 국내 게임산업이 발돋움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에는 더욱 더 그랬죠.
만화 원작 게임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모범사례를 몇 개 뽑자면 만화가 이명진의 데뷔작인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하 어쩐지 저녁)’이 순위권에 들어갈 겁니다. 원작은 1992년 소년 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100만 부가 넘는 단행본 판매부수를 기록한 인기 만화로, 주인공 남궁 건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전학을 오며 겪는 사건들을 다룹니다. 그 와중에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고, 때로는 싸움을, 때로는 우정을 나누게 되죠. 특히나 지면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액션씬이 강점이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받은 액션 게임이 1998년 출시됐습니다.
위 광고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11월호에 최초로 실린 어쩐지 저녁 게임 광고입니다. 게임명은 원작의 그것을 그대로 살렸으며, 여타 만화 원작 게임이 그러하듯 큼지막한 일러스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다만 이 광고의 경우 게임 내 그래픽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지 왼쪽 아래에 조그맣게 스크린샷을 실어 놓았네요. 많은 게임들이 스크린샷 한 장 없이 원작 유명세에만 묻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름 이례적입니다.
게임 발매 전 처음 싣는 광고다 보니, 아무래도 인기 만화가 게임화 된다는 사실과 함께 구체적인 게임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300프레임이 넘는 동작들로 구성된 주인공 건의 70가지가 넘는 배틀 액션’이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광고 내용대로 실제 게임에서도 굉장히 부드러운 액션을 구현했습니다. 심지어 2D 도트 그래픽으로 말이죠. 2000년대 발매된 네오플 ‘던전앤파이터’ 역시 이러한 부드러운 도트 액션 벨트스크롤 장르로서 인기를 얻었는데, 이런 국산게임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당시엔 97년 가을 발매를 암시하는 멘트가 있군요.
다음 광고는 두 달 후, 제우미디어 PC챔프 1998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 1월호라고는 하지만 발간일이 전달 21일 전후이므로 사실상 12월달에 실린 광고라 볼 수 있죠. 광고 이미지가 대폭 바뀌었는데, 여기는 ‘97년 12월 발매 결정’ 이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도트를 하나하나 찍어 가며 타격감이나 밸런스 요소까지 맞추려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일러스트는 이명진 작가가 그린 새로운 장면으로 구현됐는데, 어째 주인공 머리 색이 바뀌었습니다. 전 광고나 인게임에서나 주인공 머리색은 흑빛인데, 여기선 빨간색으로 칠해졌군요. 아무래도 당시 만화들은 간혹 컬러 페이지가 들어가는 흑백 잡지에 연재됐었고 국내 환경 상 애니메이션화도 먼 얘기였기에 이런 색 배분에 있어서 다소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위 광고는 2월호에도 거의 그대로 실렸는데, ‘12월 발매 결정’ 멘트가 은근슬쩍 ‘발매 임박!’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뭐, 당시 게이머들은 발매 연기 두 번까지는 봐 줄만큼 나름 통이 컸었죠.
그렇게 발매를 미뤄 오던 어쩐지 저녁이 출시된 것은 1998년 2월이었습니다. 이후에는 광고 방식을 조금 바꿔서 만화로 풀어냈습니다. 이명진 작가가 직접 그린 것으로 보이는 광고는 게임 에피소드 3-1 ‘건의 과거편’에 나오는 신의욱과의 대결이 다뤄집니다. 주인공 남궁 건의 표정이 다소 광기에 차 보이는데, 실제로도 전학 오기 전 과거의 건은 싸움에 미쳐 있던 철부지였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장면에서 끝난 만화는 다음 장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장에서는 꽤나 독특한 방식의 전개가 진행되는데, 실제 게임 내 콤보가 만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적의 공격을 상체를 숙여 대쉬하며 피하고, 펀치 네 방을 연달아 먹인 후 어퍼컷+썸머 쏠트 킥으로 이어지는 공중 콤보까지. 게임 화면이 조금 작아서 자세히 봐야 알아볼 수 있지만, 게임 장면이 그만큼 만화와 잘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해낸 좋은 광고입니다. 저도 당시 “아니, 이 정도로 재현도가 뛰어나다고?” 라며 게임을 사러 동네 게임샵에 간 적이 있을 정도니까요.
참고로 만화 맨 마지막에는 머리띠를 하고 목도를 든 세라복 소녀가 나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하진’으로, 건은 그녀와의 대결로 인해 싸움에 미쳐 살던 과거를 청산하게 됩니다. 참고로 이 에피소드는 만화에는 나오지 않는 게임만의 오리지널인데, 원작 세계관과 굉장히 잘 어우러집니다. 이러한 오리지널 스토리 존재 역시 광고에서 잘 드러나 있군요.
이러한 원작과의 연관성 및 높은 게임성을 필두로 게임 어쩐지 저녁은 만화 원작 패키지게임 가운데서 손에 꼽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발매 연기가 너그러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완성도도 높았습니다. 다만 후속작으로 나온 ‘스톰’은 원작과의 관계가 애매모호해지고 그래픽이나 게임성도 애매모호해져 혹평을 받았고, 결국 시리즈의 대가 끊어져버렸습니다. 이 게임을 기반으로 TG 엔터테인먼트가 2D 도트 벨트스크롤 게임 명가로 발돋움했다면 던파 신화는 다른 곳에서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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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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