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14년 전, 리니지2 묘비가 광고에 실렸다

리니지 2는 여전히 게임메카 인기게임 순위 중상위권에 있으며, 최근 나온 리니지2M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형 리니지M을 몰아내고 구글 매출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출시 직후인 2000년대 중반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리니지 2가 공인한 라이벌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뿐이었죠. 그런데 당시 이런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향해 도발적인 도전장을 던진 게임이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제우미디어 PC챔프 2005년 3월호에 실린 아크로드 광고입니다. 지면 한가운데 큰 칼과 갑주로 중무장한 기사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다음 세상을 지배할 절대카리스마’라는 다소 손발이 오글거리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까진 지금도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광고지만, 핵심은 배경에 있는 비석처럼 생긴 조형물입니다.

두 비석을 자세히 보면 매우 낯익은 형태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부분 눈치채셨을 텐데요, 왼쪽 비석은 리니지 2, 오른쪽 비석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의미합니다. 즉,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버리고 PC MMORPG의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당찬 포부입니다.

다음 광고 지면은 두 비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례식 추도문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혈맹의 군주’와 ‘얼라이언스의 영웅’ 즉,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가리키면서 ‘앞선 세상 그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위대한 경험을…’이라는 송별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본 잡지가 나온 2월 하순을 기준으로 리니지 2는 출시된 지 1년 4개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정식 서비스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에 벌써 고인 취급을 받고 있네요.

흔히 말하는 ‘고인드립’까지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당시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치열한 신경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공개 테스트 모집인원수 발표에 있어 타사 게임을 의식하는 것은 물론, 자사 게임과 라이벌 게임을 비교하는 광고와 실명을 언급한 원색적인 비난까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아크로드 광고는 매우 점잖은 수준입니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감한 출사표를 던진 아크로드는 NHN이 자체 개발한 게임입니다. 개발비로 100억 원, 초기 마케팅 비용에 30억 원이 투입됐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특히 OST는 스타워즈, 타이타닉, 미션임파서블 등 유명 영화음악 OST를 연주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들어 화제를 모았죠. 정식 출시 이후 각종 버그와 아쉬운 완성도로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넘어서는데 실패했지만, 동시접속자수 7만 명 달성과 북미, 유럽 및 일본 진출, 그리고 게임을 원작으로 한 만화와 영화가 나올 만큼 상당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크로드는 2014년 2월, 서비스 종료를 선언합니다. 2010년을 전후로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아키에이지 등 다양한 신작과의 경쟁, 황혼기에 접어든 PC MMORPG 인기 등이 겹치며 유저 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죠. NHN으로부터 아크로드를 이어 받은 웹젠이 2013년에 ‘아크로드 2’를 내면서 반전을 노렸지만, 이 역시 2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2017년 나온 모바일 MMORPG 아크로드 어웨이크도 올해 5월 문을 닫으면서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아크로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