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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게임광고] 도스게임 모음집 "저작권? 그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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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게임 모음집 서적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9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게임 모음집 서적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9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유독 저작권이 경시당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나마 서비스 주체가 명확한 온라인이나 모바일 분야에서는 조금 낫지만, 패키지로 발매된 게임. 특히 고전게임들은 사실상 무법지대에 놓여 있죠. 오죽하면 TV 프로그램이나 웹툰 등에서도 불법 에뮬레이터 롬을 가득 담은 게임기, 일명 ‘월광보합’류가 합법적 제품처럼 당당히 소개되곤 할 정도입니다. 발매된 지 오래 된 게임에는 저작권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죠.

이 같은 세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게임 뿐 아니라 영화나 만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저작권 인식이 희박하던 1990년대에는 훨씬 더 했죠. 아래에 소개할 90년대 게임잡지에 실린 광고들도 그런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게임 모음집 도서들인데, 얼핏 봐도 정품 같지 않은 게임들을 모아서 책 부록으로 넣고, 서점에 진열한 후 광고까지 하는 모습입니다.

불법복제 게임 81종을 모아 놓은 게임 모음집 서적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불법복제 게임 81종을 모아 놓은 게임 모음집 서적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위 이미지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7년 9월호에 실린 ‘윈도우 95에서 도스게임 이상없다’ 광고입니다. 얼핏 보면 무슨 제품인가 싶은데, 일단은 책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시 물가로 1만 8,000원이었는데요, 당시 만화 단행본 가격이 2,500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입니다. 서적 설명에는 부분 컬러, 하드웨어 및 게임 설정법, 인터넷 통신망을 통한 최신 게임 정보 등이 쓰여 있긴 한데, 이 책의 정체는 바로 아래에 소개된 부록 CD입니다.

이 책은 무려 4장이나 되는 부록 CD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이텔 이용권까지 부록으로 주니, 사실상 부록 CD가 본체고 책은 사용 설명서나 다름없죠. 부록 CD 내용물을 보면, 도스용 게임, 도스용 3D 게임, 윈도우95용 게임, 그리고 C&C 레드얼럿과 워크래프트 미션 모음으로 각각 분류됩니다. 총 게임 수는 81개로, 게임 하나 당 가격을 계산해보면 대략 200원 꼴이네요.

이렇게 많은 게임을 1만 8,000원에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이 CD가 저작권을 무시한 불법복제물이기 때문입니다. 광고가 실린 1997년 기준으로 최신작인 툼 레이더 2부터, 발매 2년이 채 안 된 듀크 뉴켐 3D, 투신전 PC판, 더 니드 포 스피드 등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유통사에서 출하가 끝난 제품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게임들을 편당 200원 꼴에 풀 리가 없죠. 실제로 이 광고가 실린 당시 게임잡지들에서 정품 게임을 부록으로 제공하기 위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 사용료를 지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 안의 게임들이 불법복제물임은 명확합니다.

오락실 게임을 메인 콘셉트로 잡은 또 다른 게임 모음집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오락실 게임을 메인 콘셉트로 잡은 또 다른 게임 모음집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같은 호 잡지에 실린 또 다른 게임 모음집 광고입니다. ‘이젠, 오락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라는 문구와 함께 오락실용 게임들이 다수 담겨 있음을 강조합니다. 정확한 라인업은 없지만, 이미지를 모아하면 버추어 파이터 2, 소닉 & 너클즈, 스트리트 파이터, 엑스맨, 버추어 캅, 뿌요뿌요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위 출판사는 책 한 권만 낸 것이 아닙니다. 오른쪽 위에는 격투 게임 스페셜, 왼쪽 밑에는 인터넷 선정 최고 게임이라며 소닉 3 & 너클즈, 블러드 등이 담겨 있는 책을 각각 냈습니다. 각 책의 정가는 1만 5,000원으로, 게임 타이틀 하나 가격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당연히 불법복제물이죠.

사실 이러한 불법복제 게임들은 게임산업 초창기부터 용산과 청계천, 동네 게임샵 등에서 암암리에 디스켓이나 공CD에 복사되어 판매되곤 했습니다만, 1997년에는 위 광고처럼 양지로 나와 서점에 진열되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책들은 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싹 사라졌는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입니다. 인터넷에서 몇 분만 투자하면 수많은 불법복제 게임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되면서, 서점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이러한 책들이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죠.

아무튼, 당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게임에 대한 저작권 인식은 2020년 지금도 게임업계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임은 셰어웨어로 풀린 무료 게임이 아닌 이상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 기간은 대한민국의 경우 50년, 미국의 경우 95년입니다. 게임산업 역사가 짧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난 게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20년 전에는 시대 탓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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