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RPG 마니아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바로 그 작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이오웨어의 뒤를 이어 디비니티 시리즈의 라리안 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발더스 게이트 3'로, 마지막 넘버링 작품이었던 2편 이후 무려 20년 만에 출시되는 신작이기에 게이머들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런데, 올드 게이머가 아니라면 발더스 게이트라는 게임 자체가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자체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약 3~4년 간 짧고 굵게 인기를 끈 작품인지라 당시를 직접 겪지 못 한 젊은 게이머들은 '얘기는 들어 봤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1998년 발더스 게이트 1편이 처음 발매될 때의 게임잡지를 펼쳐보겠습니다. 대형 마케팅을 해야만 실을 수 있다는 잡지 제일 앞쪽에서 그 존재감을 빛냈던, '전설의 시작' 발더스 게이트 광고들입니다.
위 광고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8년 12월호에 실린 발더스 게이트 광고입니다. 해외 발매일이 1998년 12월이고 국내 발매일이 1999년 1월이니 동시발매까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비슷하게 국내 게이머들에게 인사를 한 셈입니다. 당시 발더스 게이트는 이미 예전부터 해외에서 기대작으로 손꼽혀 온 게임이었고 국내 게임잡지에도 기사가 여러 번 나갔기에 신규 IP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값만으로도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광고 첫 면에는 별다른 수식어 없이 사레복의 3D 일러스트 한 장과 인터플레이, 바이오웨어, 그리고 게임 세계관 기반이 된 'AD&D' 로고가 보입니다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가 있네요.
아무리 이름이 미리 알려진 게임이라고 해도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도 많기에, 광고 2면에는 보다 본격적인 게임 설명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게임 로고 및 이름과 함께, '98년 E3쇼 올해의 기대작 선정' 이라는 멘트가 보이네요. 지금이야 E3 자체 시상식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 게임쇼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소재였습니다. 아래쪽에도 뭔가 글이 많은데, 잘 보이질 않네요. 확대해 보겠습니다.
게임 소개 문구 위쪽은 세계관입니다. 비문투성이에 직역투 글입니다만, 전염병과 암투, 마약 등으로 얼룩진 암울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는 포가튼 렐름 세계관에서 벌어진 사건 중 하나인 '타임 오브 트러블'을 주요 소재로 삼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발더스 게이트 세계관 정리 기사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아래를 보면 시스템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CD 5장의 스케일이 눈에 띕니다. 물론 제일 위 잡지 표지에 나온 템페스트(CD 4장)처럼 고용량을 자랑하는 게임은 당시에도 종종 있었으나, 발더스 게이트는 동영상이나 음성, 음악 등으로 용량을 채운 것이 아닌 순수 게임 콘텐츠로 용량 대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대단한 게임입니다. 그 아래에는 '일본식(파이날 환타지)+미국식(디아블로) RPG 복합화로 신개념 RPG 창조' 라는 멘트가 있는데요, 동감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발더스 게이트는 당시까지 나온 기존 서양 RPG와는 약간 다른 게임이긴 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는 1998년 12월부터 쭉 같은 내용의 광고를 실었습니다. 다만, 광고에 한글화라고 쓰여진 것과 달리 당시 버전은 영문판이었죠. 지금 기준으로도 대사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게임인지라 발매와 동시에 한국어화가 쉽지 않았기에, 국내 배급사였던 삼성전자는 일단 영문판을 풀고 이후에 한국어판을 유상으로 배포하겠다 라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패치 CD만으로 기존 게임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게끔 하는 기술적 타협점을 찾았는지 1999년 5월에는 기존 구매자들에게 한국어판 CD를 무료 제공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5월자 광고에는 이러한 내용이 추가돼 있는데요, 지금 같으면 온라인 패치 한 번으로 끝날 것이었지만 당시는 CD를 직접 전해줘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5~6월 중 구매처로 고객번호와 1번 CD를 가져오거나, 인터넷 쇼핑몰에 고객번호 입력 후 배송료를 입금하는 방식으로 한국어 CD를 배포했었네요. 당시 착불 시스템을 사용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그렇게 대망의 한국어화가 끝나자, 광고 내용도 바뀌었습니다. 6월 광고를 보면 번역진의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이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규모: 4,000여 장의 대사 한글화!' 라는 메인 멘트부터, 왼쪽에는 '6개월 10여 명 인력 투입의 결과', '3개국 5개 회사가 함께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 '아시아권 최초 자국어 발매' 등이 명시돼 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어렵고 문법조차도 배배 꼬여 있는 대형 게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광고만 봐도 느껴집니다.
이러한 노고는 헛되지 않아, 국내 게이머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북미 RPG가 한국어로 발매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발더스 게이트의 한국어판 발매는 그만큼 뜻깊었죠. 해외 발매보다 6개월 가량 늦었지만, 이를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게이머들은 발더스 게이트 신화에 손쉽게 탑승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발더스 게이트가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판매량을 거두자, 확장팩과 외전도 속속 국내에 발매됐습니다. 위에 소개된 테일즈 오브 더 소드 코스트 확장팩이나, 아래에 있는 발더스 게이트 외전 - 아이스윈드 데일도......?? 어라? 이게 왜 발더스 게이트 외전으로 소개돼 있는거죠?
사실 아이스윈드 데일 시리즈는 발더스 게이트와는 별개의 게임입니다. 비록 바이오웨어 인피니티 엔진이 사용됐고 발더스 게이트처럼 AD&D 포가튼 렐름 세계관을 사용했지만, 일단 제작사 부터 바이오웨어가 아닌 블랙 아일 스튜디오인데다 게임성 등을 보면 그냥 별개의 게임입니다. 여기에 발더스게이트 외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은 순전히 유통사의 마케팅 수단인데요, 어쨌든 전체적인 그래픽이나 세계관, 클래스 등이 비슷하다 보니 아직도 이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외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게이머 스스로 '외전격 게임'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몰라도 공식적으로 광고에 외전 게임이라고 표기하는 건 잘못된 것임은 확실합니다.
아무튼, 발더스 게이트는 당시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몰고 온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식 RPG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저를 비롯한 많은 게이머들에게 북미 RPG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 게임이기도 했죠. 그로부터 약 20년 만에 돌아오는 신작, 발더스 게이트 3는 과연 어떤 충격을 안겨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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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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