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1995년은 전세계에서 대전격투게임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여전히 인기작이었고, 여기에 아랑전설, 용호의 권으로 무장한 SNK가 KOF 시리즈까지 출격시키며 맞섰습니다. 3D 분야에서는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와 남코의 철권, 타카라의 투신전까지 쟁쟁한 게임들이 접전을 벌였고요. 오락실에서도 1코인에 십수 분은 플레이 할 수 있는 다른 게임들보다 짧으면 1분 이내에 승부가 나는 대전격투 게임을 더욱 선호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붐을 타고 다양한 게임사들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에는 그야말로 대전격투게임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문제는 대전격투 제작 노하우가 없던 회사들이 다짜고짜 만든 게임들인지라 완성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노린 시도는 이어졌고, 1995년도 게임잡지에서는 이런 게임들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삼성전자에서 유통한 '대혈전'이라는 게임입니다. 개발사는 시그마텍이라는 곳으로 처음 들어보는데, 택견에 필살기를 가미했다는 말 등을 보면 국내 개발사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름이 다수 등장하고요. 5.25인치 디스크 7장에 담겨 유통됐다는 것과 몇 장의 스크린샷이 보입니다.
게임 내용은 둘째 치고, 광고만 보면 도저히 게임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멋있는 주인공이 아니라 무슨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중년 샐러리맨과 무섭게 생긴(?) 여성 캐릭터, 그리고 왠지 만화 엑스트라로 나올 것 같은 캐릭터 몇 명이 전면에 나와 있는 모습이 놀랄 정도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게임 내에서도 나름 스토리를 강조한다고 했지만 딱히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모뎀을 통한 멀티대전을 지원하긴 했지만 당시 모뎀 속도를 감안하면 효용성은 거의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두 번째 게임은 '최후의 바디블로우(Body Blow)'라고만 쓰여 있는 의문의 게임입니다. 게임 제목이 어디 있는지 한참 찾았는데, 알고보니 저 문장이 게임 제목이었습니다. 일단 이 게임은 바디블로우라는 전작이 있다는데, '게임기를 능가하는 PC 최고의 격투게임'이라는 말이 인상적이군요.
일단 게임 소개를 보면 당시로서는 꽤나 많았던 22명의 캐릭터와 100여가지의 필살기를 구현했다고 합니다. 좌/우측을 보면 게임 내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략적으로 보이는데, 나름 개성 뚜력한 이 캐릭터들을 제쳐놓고 중앙에는 도저히 매력적이라 볼 수 없는 중년 마초 아저씨 네 명이 서 있습니다. 도저히 국내에서 먹힐 만한 감성이 아닌 것 같아 조사해보니 웜즈 시리즈를 개발한 영국 업체 TEAM 17에서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시리즈도 '최후'라는 제목처럼 이 게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으니 잠시 묵념하죠.
위 게임은 국내에 '브루탈 슈퍼 애니멀 파이터'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작품입니다. 해외에서는 '브루탈 포즈 오브 퓨리(Brutal: Paws of Fury)'라는 제목으로 발매됐는데, 동물들이 치고받는 '동물철권'의 원조격 작품입니다. 일단 광고만 보면 꽤나 사실적이고 어두운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플래시 게임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만화풍 2D 그래픽이 특징인 대전격투 게임입니다. 원래는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콤으로 1994년 나온 콘솔 게임이었지만, 1995년 PC 버전으로 이식됐네요. CD는 3만 5,000원, 플로피 디스크는 2만 9,700원이라는 가격 책정이 눈에 띕니다.
다음 게임은 삼국지 무장쟁패 2입니다. 아마 여기 소개된 게임 중에서 그나마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대만 게임사 팬더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작품으로, 삼국지 캐릭터를 내세운 대전격투게임으로서는 가장 유명합닏. 전작도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2편도 한국어화 되어 국내 발매됐네요. 특히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대륙 영토를 차지하는 모드를 삽입해 단순한 대전격투를 넘어 삼국을 통일하는 느낌을 줘 호평을 받았습니다. B급 기사에 묶어 소개하기엔 약간 아쉬운 게임이네요.
이번 게임은 어째 게임명이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대체 이게 뭔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낯익은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로 호혈사일족입니다. 나름 시리즈가 쭉 이어지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확연한 B급 게임이었는데, 게임 캐릭터 다수를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 베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콩가루 가문의 당주를 놓고 벌이는 결전이라는 콘셉트와 괴기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의 묘한 매력 등이 호응을 얻어 나름 2009년까지 후속작이 발매됐습니다.
다음 게임은 프라이멀 레이지입니다. 국내 유통사는 대우였는데, 은근히 LG나 삼성, 대우 같은 대기업들이 이런 B급 게임을 잘 가져왔습니다. 이 게임은 공룡들이 살아나 격투를 벌인다는 독특한 콘셉트의 대전격투게임인데요, 일반적인 공룡 외에도 거대 유인원 같은 괴기한 생명체들이 등장합니다. 참고로 이 게임은 모탈 컴뱃 시리즈처럼 실사 촬영을 통해 제작됐는데요, 조작성이 매우 좋지 않아 당대 게이머들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앞서 프라이멀 레이지가 나름 부러웠는지, LG에서도 이를 노린 듯한 게임을 내놨습니다. 배틀 비스트라는 게임으로, 모탈 컴뱃과 스트리트 파이터, 프라이멀 레이지를 능가한다는 멘트가 붙어 있습니다. 프라이멀 레이지가 '똥겜' 튀급을 받지만, 이 게임 역시 프라이멀 레이지와 비슷한 수준의 흑역사입니다. 100가지 이상의 액션은 1~2개 프레임으로만 묘사되어 동작이 툭툭 끊기고, 플래시 게임을 보는 듯한 2D 그래픽도 광고와는 달리 유치한 수준이었기에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묻혔습니다.
마지막 게임은 전투(SENTO) 입니다. 무려 3D 게임인데요, 아무리 당시 시대가 1995년이라고는 해도 저렇게 폴리곤 형태가 뚜렷한 게임은 외면받을 시기였습니다. 이 광고는 게임챔프 1995년 7월호에 실렸는데, 버추어 파이터 2가 그보다 8개월 전에 출시됐거든요. 전반적으로 PC에서도 가동할 수 있는 신개념 버추어 파이터를 꿈꾼 듯 하지만, 당시에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원시적 3D 그래픽 때문에 외면받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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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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