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고증을 지키는 것은 몰입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대놓고 코믹물이나 파격적 픽션을 내세우지 않은 이상, 고증이 깨지면 분위기도 같이 깨질 뿐더러 심한 경우 반발까지 생긴다. 얼마 전 조기 종영한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 기생집 가옥과 음식을 중국식으로 묘사해 고증을 해침은 물론 역사왜곡 논란까지 샀으니, 당분간은 고증 관련 최악의 사례로 기억될 듯 하다.
게임업계에서도 고증은 필수적이다. 역사적 사료는 물론, 영화나 만화 기반인 경우 원작 요소를 얼마나 제대로 살렸는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실제 지역을 배경으로 할 경우 얼만큼이나 완성도 높게 묘사했는지, 실제 총기나 차량 등의 특징을 잘 살렸는지 등도 게이머들의 매서운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일부 게임 제작사는 이러한 고증에 상당수 공을 쏟는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독이 된 사례도 있다. 오늘은 고증을 너무 꼼꼼히 챙긴 나머지,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게임 TOP 5를 소개한다.
TOP 5. 프레데터가 왜 이리 약해요? 프레데터: 헌팅 그라운드
인간을 능가하는 신체 능력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계인 프레데터. 어마어마한 맷집과 완력, 순발력은 물론이고, 열감지 시야와 클로킹 기술, 기습에 특화된 다양한 첨단 무기까지 사용하기에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프레데터는 4 대 1 대전 게임인 프레데터: 헌팅 그라운드에서 최약체로 등장한다. 오죽하면 프레데터가 헌팅 당하는 그라운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니, 얼핏 원작 파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원작 고증의 일환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무대마저도 자신에게 유리한 정글이었던 1편을 제외하면, 영화 속 프레데터는 은근히 허당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영화 2편에서는 형사반장에게 패배한다거나, 3편인 프레데터스에는 인간과 1 대 1 정면 대결을 하다 칼에 맞아 죽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대놓고 프레데터 사냥을 위해 준비하고 온 4인의 특공대가 프레데터를 농락하는 게임은 원작 고증에 가깝다. 물론 이 때문에 게임 자체가 망해버린 건 별개지만.
TOP 4. 쓰는 총기만 쓴다고?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슈팅 게임에서 총기 밸런스는 참 어려운 문제다. 밸런스를 고려하자니 일부 총기가 현실보다 좋거나 나쁘게 묘사되고, 현실을 100% 반영하자니 밸런스가 무너진다. 대다수 게임사들은 전자를 선택한다. 총기 고증을 조금 비틀더라도 게임성을 지키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후자를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이가 러시아 게임 개발사 배틀스테이트게임즈에서 제작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다.
이 게임은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대미지를 총기가 아닌 탄약에 귀속시켰다. 그러다 보니 같은 탄환을 사용한다면 분당 발사수(RPM)이 높은 총기들이 유독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게임 자체가 대부분의 전투를 근~중거리에서 진행하다 보니 더욱 고RPM 총기의 위력이 강조된다. 때문에 볼트액션 총기 등 중~장거리 명중률에 특화된 총기는 말 그대로 사장되는 판국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저런 세계에 살다 보면 다양한 총을 골고루 쓰는 것이 더 어려울 것임을 감안하면 나름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TOP 3. 한-중-일 모두 반발한 제독의 결단
동북아 3국의 근현대사는 상당히 민감하다. 특히 일본 제국 시절은 식민지화와 전쟁, 학살, 수탈 등이 수없이 이루어졌고, 이를 직접 겪은 이들이 생존해 있는 경우도 있어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물론 한편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를 묘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의견도 팽팽히 맞부딪히고 있다. 때문에 이 시기를 묘사한 많은 작품들은 크건 작건 논란에 휩싸이곤 한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다룬 코에이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제독의 결단’ 역시 이 같은 역사 고증으로 곤혹을 겪었다. 이 게임은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에서 해당 시기를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강제징용, 강제징집이나 위안부 동원 등 민감한 내용까지 구현해 한국에서는 발매되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군국주의 미화 및 일본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고 발매가 취소된 전적이 있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당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과 이를 통한 삽질을 노골적으로 그려내 우익 세력의 항의에 시달렸으니, 고증 지키려다 3국에서 모두 돌을 맞은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TOP 2. MS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이 용량 실화인가요?
MS는 옛날부터 비행 시뮬레이터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다. 실제와 같은 비행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꿈은 장대했으나, 아쉽게도 하드웨어 성능이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 MS는 1982년부터 320x320 해상도 흑백 게임으로 시작해 수 년 단위로 사실성을 더욱 발전시킨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차근차근 내놨다. 이윽고 그들은 실제 지구를 게임 내에 담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기술 발전과 하드웨어 보급이 이를 뒤쫒아가지 못했다.
실제로 2006년 출시된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X는 당시 일반 게이머 기준으로 쉽게 넘보지 못할 용량과 사양을 요구했다. 맵을 추가할 때마다 더해지는 저장 데이터만 해도 막대한 투자 없이는 꿈도 못 꿀 정도였다. 이후 발전한 그래픽 기술력으로 더욱 세밀한 맵을 구축하다 보면 저장 단위가 테라바이트(1,024GB)를 넘어 페타바이트(1,024TB)에 이를 정도였기에 도저히 개인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시리즈의 대가 끊길 뻔 하다가, 14년 후 MS 플라이트 시뮬레이터(2020년)에서 2페타바이트(약 200만 GB)의 지형 데이터를 스트리밍 방식을 통해 실시간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방대한 고증의 꿈을 기술의 발전을 통해 30여년 만에 이룬 사례다.
TOP 1. 사무라이나 스파르탄도 총에는 장사 없다, 데들리스트 워리어
과거 미국 스파이크TV에서 방영된 ‘데들리스트 워리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이킹, 사무라이, 아파치, 스파르탄 등 동서고금 다양한 전사와 군인들을 1 대 1로 대결시키는 프로그램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파괴력과 장단점, 지형에 따른 유불리 등을 과학적 고증을 통해 분석한 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것이다. 한때 국내 케이블 방송에서 ‘실전격투대전-전설의 파이터’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바 있어, 이를 기억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전격투게임으로도 제작됐는데, 원작 자체가 고증에 충실하다 보니 게임에서도 고증에 힘을 썼다. 문제는 고증을 지키다 보니 밸런스 측면에서 영 어긋나 버린 것. 예를 들어 아파치나 사무라이 같이 방패가 없는 병종은 멀리서 단검만 던져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게임 내에는 쌍권총을 사용하는 해적 같은 캐릭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과학기술과 병기의 발전을 무시하고 전사들을 한데 모아 놨으니… 덕분에 데들리스트 워리어는 밸런스 파괴를 넘어서 밸런스가 없는 게임으로 불리며 ‘망겜’ 대열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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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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