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광화문광장에서 관현악단이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테마, ‘문명4’의 바바예투와 ‘리그오브레전드’의 랭크 게임 배경음악 등 유명 게임들의 OST를 연주했다. 특히 게임 부문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문명4’의 바바예투 등이 연주될 때는 많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했다.
이처럼 게임 음악이 이제는 하나의 콘텐츠로 관심을 받고 그 추세에 맞춰 개발사에서도 많은 정성을 쏟는다. 네시삼십삼분의 ‘회색도시 2’는 가수 윤종신과 콜라보레이션으로 게임 음악을 만들며, 넥슨 ‘던전앤파이터’도 지난 6월 체코 국립 교향악단이 연주한 오케스트라 12곡을 담은 OST를 발매했다.
"게임은 문화다"라는 시류에 맞게, 게임 음악은 단순히 콘텐츠를 지원하는 입장에서 대중음악처럼 듣고 즐기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
새로운 확장팩 ‘절망의 유산’이 8월 14일 정식 서비스에 돌입한 ‘거울전쟁’ 시리즈도 음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씨스타가 부른 ‘거울전쟁’ 타이틀 ‘언덕위의 시계꽃’부터 메인 퀘스트 등 게임 내 음악의 작/편곡을 담당한 김희진 감독은 ‘네이비필드’, ‘포트리스2’, ‘씰온라인’ 등 게임 음악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또 런던 세션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주목 받았던 ‘A3’ OST에 총괄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김희진 음악감독은 게임 외에도 ‘왕가네식구들’, ‘선덕여왕’, ‘해운대연인들’, ‘그여자’ 등의 드라마와 영화 ‘조선명탐정’, 가수 유리상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산청 세계 한의약 엑스포’ 메인 상영관 음악 작/편곡 및 7.1 서라운드 사운드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 ‘거울전쟁: 절망의 유산’도 김희진 감독의 곡이 삽입됐다 (사진제공: 엘엔케이로직코리아)
락으로 시작해 드라마 OST로 이겨내고 게임에서 활약하다
김희진 대표는 게임 음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음악가다. 한 기업의 대표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음악감독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그가 음악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들려준 헤비메탈 때문이었다.
“헤비메탈을 듣는 순간 목 근처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타의 날선 음과 지르는 보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블시스터즈라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공연도 했었습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거죠”
헤비메탈이라는 락 음악과 공연에 심취해있던 김희진 감독은 군 제대 후 기타를 비롯해 음악을 연주하는 모든 악기를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런 관심이 자연스럽게 작곡으로 이어졌고, 음악감독으로 스타트를 끊는 계기가 됐다. 김희진 감독이 처음 작곡가로 활동한 영역은 게임음악이었다. 작곡가 인생을 처음 시작한 업체가 게임음악을 주로 하는 곳이었고, 이로 인해 김희진 감독도 게임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게임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어요. 게임 음악을 하다보니 관심이 높아진 경우죠. 게임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하면서 어떻게 쓰고 어떤 음악을 넣어야 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이 좋아진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게임음악가로 활동하며 ‘겟앰프드’, ‘큐링 온라인’, ‘씰온라인’, ‘메틴’, ‘메틴2’ 등 다수의 곡을 작곡한 김희진 감독이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30대 초반이 되면서 김 감독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이전까지는 제가 게임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곡이 잘 안되더라고요. 게임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음악 작업도 제대로 안됐죠. 그러면서 음악적으로 너무 치우쳐있나? 재능이 없나? 등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2006년 방영된 ‘그여자’라는 드라마 때문이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작업한 곡이 타이틀이되고 주제음악이 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이로 인해 작업 진척도도 빨라졌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슬럼프가 왔던 이유는 자신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김 감독은 게임음악가로 시작했지만 영화 ‘조선명탐정’, 드라마 ‘왕가네식구들’, ‘선덕여왕’ 등을 비롯해 유리상자와 타이푼, 배슬기 등 가수 앨범에도 참여한 바 있다. 주 분야는 게임이지만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영화나 드라마 OST와 대중음악, 게임 음악은 굉장히 달라요. 대중음악은 스토리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가사를 써서 가수를 돋보일 수 있게 해야 되요. 영화나 드라마 음악은 흘러가는 영상에 맞추죠. 하지만 게임은 영상의 흐름에 지배되지 않고 던전이나 필드 등 기능에 맞춰 작업이 진행 되요. 다른 장르와 달리 지극히 기능적인 음악인 셈이죠. 다만 시나리오나 시놉시스에 맞춰가는 방식은 영화나 드라마와 비슷한 면도 있어요”
▲ 김희진 감독이 참여한 조선명탐정(상)과 왕가네식구들(하) (사진출처: 공식홈페이지)
에스닉부터 재즈, 제 3 세계 음악까지 게임 속에 녹여내다
‘거울전쟁’ 시리즈에서 김희진 감독이 주로 담당한 부분은 메인 퀘스트다. 이에 대해 엘엔케이로직코리아 임태근 본부장은 김 감독이 감성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여성부터 차가운까지 다양한 감성이 김 감독의 음악에 담겨있기에 스토리를 풀어가는 메인 퀘스트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는 것이 임 본부장의 설명이다.
김희진 감독은 ‘거울전쟁’ 시리즈를 “뿌리였던 게임으로 돌아가게 해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2002년 ‘A3’ 작업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게임보다 영화나 드라마의 작업량이 많았는데 이런 김 감독이 다시 게임 음악에 주력할 수 있게 물꼬를 터 준 것이 ‘거울전쟁’이었던 것이다.
“거울전쟁’을 작업하면서 엘엔케이로직코리아에 가장 놀랐던 것은 100곡 가량의 기획을 모두 마친 상태에서 섭외를 해주셨다는 점이었어요. 일반적인 회사들은 제가 하나하나 기획하면서 작업하는 방식인데, ‘거울전쟁’은 음악의 소스와 라인, 장비 등의 기획이 다 끝나있어 굉장히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죠.
물론 기획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예요. 세부적인 사항은 제가 직접 작업해야 하죠. ‘거울전쟁’은 해방부대와 흑마술파, 악령군의 세 진영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색깔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르와 악기를 다 다르게 진행했어요.
해방부대는 피아노부터 기타 등을 어쿠스틱 악기 위주로 작업했어요. 또 흑마술파는 단순히 어둡기보다는 생뚱맞다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신디사이저나 와우기타, 일렉트릭 피아노 등을 사용했죠. 악령군은 락에 비유하자면 헤비메탈 중 제일 어두운 사운드라고 할 수 있어요. 어두운 음성과 무거운 음악을 추구했고 제 3세계 악기들을 사용했어요”
‘거울전쟁’ 음악이 진영별로 악기를 확실하게 구분 지은 것과 달리 장르는 락, 에스닉, 재즈 등 복합적으로 사용됐다. 특히 흑마술사와 악령군에 게임 음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재즈 요소가 삽입됐다.
“느낌을 구분하기 위해 진영별로 악기를 나눴지만 장르는 복합적으로 다 녹아있어요. 재즈적인 요소부터 에스닉 등 다양한 장르를 세 진영에 녹여냈죠. ‘거울전쟁’의 7~80여 곡을 작업했는데 안 해 본 장르가 없을 정도예요”
▲ '거울전쟁: 신성부활' 공개 당시 라이브로 연주된 '언덕의 시계꽃' (영상출처: 엘엔케이로직코리아 유튜브)
“‘거울전쟁’ 음악은 모든 장르가 다 담긴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어요. 이처럼 여러 장르를 혼합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게임음악의 특징인 것 같아요”
‘거울전쟁’ 음악에 대해 김희진 음악감독의 평가다. 특정 장르 위주로 제작되는 다른 앨범과 달리 게임음악은 세계관과 분위기에 맞춰 진행된다. 이 때문에 게임의 분위기와 스토리에 맞춰 다양한 장르를 활용한다. 이런 게임음악의 장점을 극대화 한 것이 ‘거울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