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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열전] 가장 직관적인 게임 장르, 건 슈팅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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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슈팅 게임(Gun Shooting Game). 직역하면 총을 쏘는 게임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적이나 타깃을 조준-사격하는 장르를 말한다.

물론 ‘총을 쏘는 게임’을 모두 건 슈팅 게임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며, 또한 총이 아닌 다른 것을 쏜다고 해서 건 슈팅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건 슈팅 게임이 일반 슈팅 게임이나 1인칭 FPS와 차별화되는 점은 직관성이다. 건 슈팅 게임은 캐릭터 이동이나 시점 변환 등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총으로 적을 겨누고 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건 슈팅 장르란 플레이어의 행동을 조준과 사격만으로 제한시킨 게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양권에서는 제작자가 깔아 놓은 경로(Rail)를 자동으로 따라간다는 의미를 담아 Rail Shooter Ga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덕분에, 아케이드 게임센터에 가면 게임을 처음 접해본 초심자들도 건 슈팅만큼은 그럭저럭 즐기곤 한다.

이러한 직관적 게임성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쉽지 않다는 단점도 함께 지닌다. 실제로 건 슈팅 장르는 전성기였던 90년대 이후 별다른 발전 없이 정체 상태로 지금까지 왔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 쉽고 간편한 게임성이 특징인 건 슈팅 게임 (사진출처: gamemeca.com)

건 슈팅의 발생과 초기 형태

건 슈팅 게임의 발생은 사격의 스포츠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까지 수렵의 일환이었던 사격은 1900년 제 2회 파리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며 스포츠화가 시작됐다. 다만, 실제 총기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아, 대중의 관심에 비해 보급이 널리 이루어지진 못했다.

이윽고 1936년, 사격을 실내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건 슈팅 게임기 ‘Ray-O-Lite’가 등장했다. 이 게임기는 주크박스를 제작하던 미국의 제부르크(Seeburg)사가 전축의 광센서를 활용해 만든 것으로, 캐비닛 형태 공간 속에 실제로 움직이는 오리 모형이 들어 있다. 오리 모형의 몸통 부위에는 광센서 튜브가 내장되어 있다. 이에 반응하는 라이플 형태의 콘트롤러로 오리를 정확히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면, 타깃이 추락하고 화면 위에 점수가 불빛으로 표시된다.


▲ 세계 최초의 건 슈팅 게임기 ‘Ray-O-Lite’ (사진출처: marvin3m.com)

이 제품은 주크박스, 핀볼, 다트 게임 등과 함께 미국 내 카페와 펍, 휴게소 등에 주로 설치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제부르크는 약 20여년 간 몇 종의 신작 건 슈팅 게임기를 출시했다. 이 중에는 1952년 출시된 너구리 사냥 게임 ‘쿤 헌트(Coon Hunt)’도 있는데, 2개의 나무를 오르내리는 너구리 2마리를 쏘아 맞추는 참신한 방식을 선보여 미국 내에서 많은 인기를 모았다. 광센서를 이용한 사격 게임이라는 콘셉트는 이 당시부터 확립되어,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TV화면용 건 슈팅 게임의 토대를 다졌다.


▲ 초창기 건 슈팅 게임 중 가장 널리 퍼진 ‘쿤 헌트’ (사진출처: pinrepair.com)

‘쿤 헌트’ 이후 건 슈팅은 핀볼과 함께 60~70년대 아케이드 게임 문화를 주도했다. 훗날 ‘모탈 컴뱃’과 ‘크루즌’ 시리즈 등을 제작한 미드웨이 역시 이 당시 수많은 건 슈팅 게임을 출시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업체 중 하나인 세가 역시 1966년 아케이드로 발매한 ‘페리스코프(Periscope)’가 회사 역사상 최초의 흥행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인 게임 회사로 거듭났다.


▲ 미드웨이에서 출시한 실사풍 건 슈팅 게임 ‘레볼루션 X’ (사진출처: giantbomb.com)

‘페리스코프’ 이후 세가는 ‘미사일(MISSILE)’, ‘헬리콥터(HELICOPTER)’ 등 다양한 아케이드 게임과 핀볼 게임을 제작하며 게임 업체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했다. 이 때부터 쌓아온 인프라와 개발 노하우는 훗날 전자 게임이 등장한 이후에도 한동안 세가가 아케이드 게임 No.1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 세가 엔터프라이즈의 첫 흥행 작품으로 기록된 ‘페리스코프’ (사진출처: pinrepair.com)

아날로그형 건 슈팅 게임 시대는 1972년 아타리의 ‘퐁(PONG)’과 마그나복스의 가정용 콘솔 ‘마그나복스 오딧세이’가 보급되면서 디지털 국면을 맞이했다. 판넬 모형이었던 타깃은 TV 화면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 되었고, 점수 계산과 판정 역시 더욱 섬세해졌다.

당시 아타리는 ‘스타 워즈(Star Wars)’ 등 다양한 아케이드용 건 슈팅 게임을 꾸준히 발매했으며, 마그나복스는 당시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의 주변기기로 라이플 형태의 광센서 콘트롤러를 함께 출시해 건 슈팅 게임의 가정 보급을 주도했다.


▲ 아타리가 출시한 아케이드용 건 슈팅 게임-스테이지 1 한정- ‘스타 워즈’ 
(사진출처: giantbomb.com)

이후 닌텐도가 1984년 발매한 패미컴용 권총형 콘트롤러 ‘재퍼(Zapper)’가 큰 인기를 기록하며, 건 슈팅 게임은 일반 가정의 안방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특히 닌텐도의 ‘재퍼’ 전용 게임으로 발매된 ‘오리사냥(Duck Hunt)’, ‘와일드 건맨(Wild Gun Man)’ 등은 국내에도 본격 소개되며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 닌텐도 ‘재퍼’용 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가정용 건 슈팅 게임 ‘오리사냥’
(사진출처: oldiesrising.com)

90년대, 건 슈팅 게임의 최고 전성기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은 다양한 2D 건 슈팅이 출시되며 장르적 발전을 이루던 시기였다. 특히, 1993~1994년은 혜성처럼 나타난 두 천재에 의해 큰 변화가 일어난 해로 기록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존 카멕, 그리고 일본의 스즈키 유다.

먼저, 존 카멕은 ‘호버탱크’, ‘울펜슈타인 3D’를 거쳐 전세계적 흥행을 기록한 ‘둠(DOOM, 1993)’을 통해 건 슈팅 게임을 한 단계 발전시킨 1인칭 슈팅 게임(FPS)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립시켰다. 이전까지의 건 슈팅 게임 대부분도 1인칭 시점을 택했지만, 오로지 컴퓨터가 제공하는 타깃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맞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사용자 임의로 캐릭터와 시점을 움직여 스스로의 전략을 펼치는 게임은 거의 없었다.

‘둠’은 이러한 장르적 편견을 깨며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멀티플레이를 통한 플레이어 간 대결(Player vs Player, PvP)은 시점이 고정된 건 슈팅 게임에서는 불가능했던 경험이었다. ‘둠(Doom>’을 필두로 ‘하프 라이프’나 ‘콜 오브 듀티’, ‘메달 오브 아너’ 등 수많은 작품이 탄생하며 FPS는 건 슈팅을 능가하는 새로운 인기 장르로 급부상했다. ‘둠’ 흥행 이후 건 슈팅 게임을 개발하던 많은 미국 게임회사들은 아케이드보다 PC나 가정용 콘솔 패키지 사업 분야로 무대를 옮긴다.


▲ 건 슈팅에서 FPS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존 카멕의 ‘둠’ (사진출처: gamemeca.com)

한편, 정통 건 슈팅 장르는 일본에서 커다란 진화를 맞이했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 개발의 1인자이자, ‘버추어 파이터’ 등으로 전세계 3D 폴리곤 게임 기술의 선두를 달리고 있던 스즈키 유의 세가 AM2 팀. 그들이 1994년 발매한 ‘버추어 캅’은 ‘버추어 파이터 2’에 사용된 MODEL2 기판으로 제작된 건 슈팅 게임으로, ‘버추어’ 라는 시리즈명에 걸맞게 풀 3D로 제작됐다.


▲ 3D 건 슈팅의 서막을 연 세가 AM2 개발의 ‘버추어 캅’ (사진출처: arcadehits.net)

‘버추어 캅’은 최초의 풀 3D 건 슈팅 게임으로, 3D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로 이동하며 전투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플레이어는 더 이상 게임 속 공간 구조를 머릿속으로 상상할 필요가 없었고, 한 편의 부드러운 영화를 보듯 게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버추어 캅’이 3D화의 물꼬를 튼 후, 건 슈팅 게임을 3D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버추어 캅’에 자극을 받은 수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경쟁하듯 새로운 건 슈팅 신작을 출시했는데, 당시 출시된 작품 중에는 엄폐 요소를 추가한 ‘타임 크라이시스’, 좀비 호러 콘셉을 채택한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실사풍 2D 그래픽과 3D 맵을 결합시킨 ‘51구역(Maximum Force)’ 등도 포진해 있다. 이러한 명작 게임들을 필두로, 건 슈팅 게임은 유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 좀비 호러 콘셉으로 아케이드와 패키지에서 두루 인기를 얻은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사진출처: mobygames.com)

시대 변화와 함께 찾아온 장르적 한계

영원할 것 같았던 건 슈팅 게임의 황금기. 그러나 고성능 가정용 콘솔과 PC 온라인게임이 떠오르던 2000년대에 이르러 하락세를 맞이한다. 앞서 언급했듯, 건 슈팅 게임은 태초부터 총 형태의 콘트롤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아케이드 게임센터라면 모를까, 가정에서는 오로지 건 슈팅 게임 플레이를 위해 콘트롤러를 별도로 구매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 PC에서 건 슈팅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구입해야 하는 10만원대 내외의 전용 콘트롤러 
(사진출처: arcadeguns.com)

결국 건 슈팅 게임은 아케이드 게임센터를 중심으로 발달할 수 밖에 없었고,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시장에서는 비인기 장르가 됐다. 이는 PC와 콘솔 기기에서 대중화되며 전성기를 맞이한 FPS, TPS 등과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건 슈팅 게임은 아케이드로 먼저 출시된 후, 뒤늦게 PC 패키지와 콘솔 시장에 이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조작감과 난이도 면에서 아케이드의 하위 호환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콘솔 패키지 전용으로 나온 건 슈팅 게임도 몇 종 있었지만, 주로 가벼움을 내세웠거나 아예 ‘갸루 건(Gal-gun)’처럼 미소녀 콘텐츠를 내세우는 등 정통 건 슈팅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 많다.


▲ 건 슈팅 게임을 표방한 콘솔 전용 슈팅 게임 ‘갸루 건’ (사진출처: gamemeca.com)

물론 건 슈팅 게임의 보급화를 막은 원인이 콘트롤러 만은 아니다. 2000년 대 중후반 가정용 콘솔에서도 Wii, PS move 등 세밀한 광센서 콘트롤러가 대중화됐음에도 건 슈팅 게임은 여전히 비주류 장르다.

실제로, 건 슈팅 게임은 홈 그라운드 아케이드 시장에서도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유는 서론에 언급한 장르 특유의 경직된 게임 시스템의 문제다. ‘버추어 캅’에서 정립된 3D 건 슈팅의 형태는 쉽게 허물거나 진화시킬 수 없을 만큼 견고했고, 새로운 시도가 끼어들 틈이 극히 적었다.

물론 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다양한 실험적 게임이 출시되긴 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3D 입체나 흔들림을 동원한 4D 효과(렛츠고 정글, 데드스톰 파이러츠), 저격 시스템(사일런트 스코프, 월드 컴뱃), 모션인식 카메라(THE 경찰관-신주쿠 24시), 맥박 감지 장치(다크 이스케이프) 등을 도입한 다양한 신작이 끊임없이 출시됐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새로운 시도는 대부분 단발성으로 그쳤을 뿐, 장르 전체의 발전을 주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건 슈팅이 아닌 타 분야에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어 코딱지만한 적을 저격 스코프를 통해 확대해 보며 쏘아 맞추는 저격 게임 ‘사일런트 스코프(Silent Scope)’는 훗날 ‘스나이퍼 엘리트’, ‘스나이퍼: 고스트 워리어’와 같은 PC/콘솔게임 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정작 건 슈팅 분야의 장르적 발전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 저격을 테마로 한 ‘사일런트 스코프’. 지난 2014년, 12년만의 리부트 작품이 출시되었다
(사진출처: gamefaqs.com)

이와 함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아케이드 게임 시장 침체가 겹치며 건 슈팅 장르는 걷잡을 수 없는 하향세에 빠졌다. 아케이드를 주무대로 삼는 리듬액션이나 대전격투 등은 실시간 네트워크 대전 등 다양한 신규 시스템을 도입하며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지만, 건 슈팅 장르에는 이와 같은 신규 시스템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면 건 슈팅 기피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온라인게임은 플랫폼 특성상 아무래도 플레이어 간에 스스로 콘텐츠를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요소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건 슈팅 장르는 협동 플레이 외에는 이런 부분을 구현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건 슈팅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장르 중 하나로, 사실상 명맥이 끊긴 상태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모바일게임 업계에서도 건 슈팅 장르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한다. 비록 6축 센서를 이용한 조준 시스템, 터치를 이용한 직관적 사격 도입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비인기 장르에 속해 있다. 실제로 유저 간 대전 요소를 도입한 ‘스나이퍼 vs 스나이퍼’ 등이 출시된 바 있지만, 건 슈팅 장르는 모바일에서 흥행이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다.

가상 현실 기기와의 만남, 제 2의 전성기 도래?

10년 넘게 정체 상태에 빠져 스코어링 기록 대결을 즐기는 마니아 유저에 의존해 오던 건 슈팅 장르.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게임 분야에 불어오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바람을 타고 다시 한 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건 슈팅은 가상현실의 장점인 공간감을 적용하기 용이하고, 개발도 비교적 손쉽기 때문에 FPS와 함께 VR 시장에서 주목받는 장르 중 하나다. 별도의 콘트롤러를 통해 캐릭터를 조작해야 하는 FPS에 비해 조작 직관성이 뛰어나며, 특히, 기존에 출시되어 있는 PC/콘솔용 건 콘트롤러를 활용 할 수 있어 하드웨어적 진입장벽도 높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소비자용 VR 게이밍 기기가 보급되기 이전부터 각종 VR 포럼에는 각종 실험적인 건 슈팅 콘텐츠가 속속 업로드되고 있다. 그 중에는 ‘오리사냥’ 같은 초기 건 슈팅 게임을 연상시키는 새 사냥 게임 ‘All Birds Must Die’, ‘렛츠고 정글’과 같은 레일웨이 시스템을 채용한 ‘Swivel Gun VR Log Ride’ 등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작품도 여럿 존재한다.


▲ 오큘러스 리프트 VR 건 슈팅 게임 ‘All Birds Must Die’, ‘Swivel Gun VR Log Ride’
(사진출처: share.oculus.com)

비록 시대적 흐름과 변화를 이기지 못 해 다소 침체되긴 했지만, 건 슈팅 게임은 세상에서 가장 직관적인 게임 장르 중 하나다. 가상 현실 기기와의 만남이 건 슈팅 장르에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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